[명혜망 2004년 2월 27일](명혜기자 추톈싱(楚天行)종합보도)랴오닝(遼寧)은 중국의 오래된 공업기지이지만, 최근에 들어 실물경제면에서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랴오닝 소수의 당권자들은 이익과 욕망에 마음이 검어져 정치 자본을 얻기 위해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에 앞잡이와 조수 노릇에 참여하면서 정력과 거액의 자금을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쓰고 있다.
1999년 7월─2004년 2월에 이르는 55개월 동안, 랴오닝성에서는 적어도 99명이 “眞善忍(진선인)”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생명을 빼앗겼다. 사망자 연령은 27세에서 65세까지 다양하나 그중 31세에서 39세가 많다. 랴오닝성은 박해로 치사한 파룬궁 수련생 숫자가 전국적으로 볼 때 사망수가 많은 성 중에서 네 번째로 꼽히고 있다.
선양 시교에 있는 마싼자 노동 교양원(랴오닝성 “사상교육 학교”라고 한다)은 이미 사악 세뇌반 전향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랴오닝성 사법청의 고급 관원이 마싼자 노동교양원 강제노동 해제(解教)총회 상에서 말하기를, “파룬궁을 탄압하는데 소모한 재정은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르는 경비를 초과하였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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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목록 1호 :
제 1부 마싼자가 박해 참극을 연출하는 동시에 사실 진상을 은폐하다.
1. 강제로 신념을 박탈하고 거대한 자금을 소모하다
2. 나치를 모방하여 수용소을 개방하는 속임수를 연출하다.
3. “남자 파룬궁 수련생을 가둔 적 없다”고 거짓말 하다.
4. 랴오닝성 성위가 직접 관심을 갖는 전향 세뇌
제 2부 : 마싼자의 참혹한 세뇌가 조성한 침통한 정신적인 상처와 가정 비극
1. 전향하지 않으면 핍박하여 모든 공공장소에서 소실한다.
2. 참혹한 세뇌
3. 흉악이 표현된 “공견전”
4. 사악의 강제 전환
5. 겁나는 마음으로 사악의 음모에 사악으로 전환된 후의 영혼의 고통
6. 영혼을 팔아먹은 극도의 타락
7. 내심 심처의 보류지(保留地)
8. 전향이 조성한 가정비극
9. 마싼자에 배치되어 공작하는 경찰들도 장쩌민 박해 정책의 피해자다(受害者)
제 3부 : 자유를 회복한 후의 양심을 정시하여 새롭게 수련하는 사람들
1. 11만 1천 5백명이 명혜망에 전향을 폐지하는 성명을 발표
2. 더욱 많은 각성
3. 하늘이 세인에게 경고
제 4부 : 마싼자내의 “부드러운 전환” 상용하는 세뇌 자료
제 5부 : 마싼자내의 사오한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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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마싼자가 박해 참극을 연출하는 동시에 사실 진상을 은폐하다.
1. 강제로 신념을 박탈하고 거대한 자금을 소모하다
마싼자 노동 교양원은 규모가 방대하고 부대시설도 많다. 많을 때는 7천여 명을 수용하며 적어도 3천 명 이상이다. 마싼자 교양원은 양어장,(마싼 어촌), 술 공장(따룽주업(酒業) 유한공사), 의류 생산 공장, 또한 마싼자 기계 공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수감한 인원의 노동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 개인마다 일정한 업무량이 있는데 그것을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하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처벌을 받는다.
마싼자 노동 교양원에는 남자 감방 외에 또 부녀자들을 가두는 곳이 있는데 그것이 이른바 마싼자 노동 교양원 여자 수용소이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할 때부터 이 여자 수용소에는 여자 파룬궁 수련생만을 가두었다. 박해의 정도가 심각해짐에 따라 1999년 10월말 마싼자 노동 교양원 여자 제 2수용소를 설립했으며 진수(眞修) 여자 파룬궁 수련생을 가두고 박해하고 있다. 세뇌를 거절하는 여자 파룬궁 수련생은 대부분 보통 노동 교양 인원과 같이 마싼자 노동 교양원 9대대 남자 수용소 옆, 남자 수용소에 가두고 상식을 벗어난 육체노동에 시달리게 한다. 대외적으로 개방한 “대외개방”은 일반적으로 여자 제 2수용소에서 세뇌를 마친 사람들이 나가서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고 중앙과 성시의 소위 견학(參觀 : 탐방)과 조사 연구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원래의 여자 수용소는 자연적으로 제 1수용소가 되었고 제 2수용소가 파룬궁 박해 수단과 실적이 좋다는 이유로 제 2수용소 소장 쑤징(苏境)은 항상 “상급으로 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는 제 1수용소도 제 2수용소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두 수용소를 경쟁시키는 방식을 박해와 전향의 새로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제 2여자 수용소는 조직된 후, 효과적인 세뇌로 상부의 인정을 받기위해 박해와 전향 수단이 갈수록 많아졌다. 전기 충격 고문은 일상적인 일이며 그 잔인함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이다. 제 2수용소와 도로를 사이에 둔 마싼자 교양원 6대대의 남자 감옥의 두목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며 도저히 비교도 못한다고 한탄하면서 진술하기를, “제 2여자수용소 경찰들은 정말 지독하다.”고 하였다.
중국 랴오닝의 한 파룬궁 수련생이 대법의 결백을 실증하고, 비록 양지가 남아 선량하지만 기만당한 중국인민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하여 네 번이나 북경에 가 청원하였다. 1999년 10월 29일, 이들 수련생과 진저우(錦州)의 약 10여 명 동료 수련생들, 랴오닝 기타 지구의 수련생들이 처음으로 마싼자의 악의 소굴에 갇혔고, 이듬해 9월 12일에 석방되었다.
자유를 되찾은 후에 이들 수련생은 “나는 평범한 중국 인민 중 한 사람이다. 1994년 6월 쯤 우연한 기회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의 신성한 문(聖門)에 들어갔다. 이선생님의 파룬따파가 나를 고통스런 인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나는 진정으로 사람이 사는 도리를 알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신체를 이렇게 건강히 하고 인품과 덕성(品德)을 고상하게 하며 개인과 사회에 백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하나의 해도 없는 고덕 대법이 중국 권력자들에 의해 비방당하고 참담한 박해를 받을 줄은 결코 생각지도 못했다. 장쩌민도 대사면 국제 조직에 의해 인권 탄압범으로 지목되었다.”
“마싼자는 초기에 강경한 방법으로 연공을 못하게 하였다. 후에는 회유책을, 또 이후에는 강경과 회유를 병행하는 수법을 사용하였으나 효과가 없자 그들의 사악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대법을 왜곡하여 인식이 깊지 못한 수련생을 미혹시켰다. 사악의 무리들이 사부님을 욕할 때 수련생들은 모두 반감을 가지며 심지어는 혐오한다. 그러자 그자들은 곧바로 부드러움 중에 기만하는 음흉한 수단으로 그들의 목적에 도달하였다. 예를 들면, 동료 수련생이 마싼자에 도착하면 표면상 교관(管教)들은 수련생들을 우호적으로 대하는데(이것은 밖에서 흉악하게 때리는 것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이것이 수련생을 미혹시키는 첫 단계이다. 잠깐 동안은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아 보기에는 매우 선하게 보이지만 그 다음 단계에 이르면 세뇌당한 자들이 돌아가며 금방 들어온 수련생들을 세뇌시키는 것이다. 3단계로 강한 방법을 취한다 : 전기로 지진다. 제 4단계에 교관이 친히 담화한다. 상담 중에 당신을 관찰한다. 당신의 일부 면에서 집착을 찾아 기만하는 술법으로 공격하는데 당신이 세뇌를 받을 때까지다.”
2. 나치를 모방하여 수용소를 개방하는 속임수를 연출하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 나치정부는 수용소를 탐방하게 하는 방법으로 부단히 증가하는 의식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전향하게 하였다. 바로 이 정부가 1936의 올림픽 대회를 열어 국제 언론을 조종하였다.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장쩌민 집단도 노동개조 계통에 똑 같은 속임수 연출하였다. 2001년 5월 22일, AP통신사 등 몇 몇의 국외매체들이 마싼자 교양원을 탐방 취재하였다.
마싼자 교양원 원장 장차오잉(张超英)이 외국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때, 마싼자 교양원은 남자 수련생을 가둔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마싼자 교양원에 갇혀있던 랴오닝 파룬궁 수련생이 말하기를, 실제로는 마싼자 교양원이 1999년 11월 19일에 첫 번째의 남자 파룬궁 수련생을 가두기 시작해서 2000년 8월 초까지 총 34명의 수련생을 가두었다고 말하였다. 2000년 2월 18일에 5명의 수련생을 마싼자 교양원 6대대에 보내어 핍박하여 세뇌시켰다.
마싼자 교양원 제 2여자 수용소가 무고한 사람에 대한 박해로 상부의 인정을 받자, 파룬궁 박해 전문집단으로 조직된 중국정부의 “610”사무실 책임자인 왕마오린(王茂林), 둥쥐파(董聚法)가 2000년 7월 초 마싼자 교양원을 시찰해 “성과”를 인정하고 장쩌민에게 상세한 보고를 하였다. 또 610사무실의 다른 한 책임자 류징(劉京)은 몇 번이나 마싼자를 왕래하면서 장쩌민을 재촉하여 인민폐 600만위안[위안(元) : 중국의 화폐단위]을 마싼자 교양원에 지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급속히 “마싼자 사상교육 전향 기지”를 건설하였다. 공사에 천만위안이 들었는데 모자라는 돈은 랴오닝성에서 해결하도록 하였다.
2000년 초, 당내외와 국내외에서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죄행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자 “사상교육기지”의 완공을 기다리지 않고 장쩌민 집단은 시급히 2000년 마싼자 교양원내에 새로 건설한 랴오닝성 소년교양원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이 큰 건물을 새롭게 장식하였다. 그리고 세뇌당한 일부를 여기로 이동시켜 정식으로 마싼자 교양원 제 2여자 수용소라고 간판을 붙이고 대외적으로 개방하였다. 국내외 매체들을 기만하여 탐방 취재를 하게 하고 진일보로 전 세계 선량한 국민을 기만하였다.
3. “남자 파룬궁 수련생을 가둔 적 없다”고 거짓말 하다.
2000년10월, 마싼자 교양원은 “전향율”을 높이기 위해 강제로 18명의 여자 파룬궁 수련생들을 나체로 남자 범죄자 수용소에 집어넣었다. 이 악질적인 사건이 국외에 폭로되자 큰 반응이 일어났다. 마싼자는 박해를 유지하기 위하여, “마싼자는 남자 파룬궁 수련생을 가둔 적이 없다”고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하였다. 뜻은 마싼자는 남자 수용소가 없다는 것이다.
마싼자의 “남자 수련생을 가둔 적 없다”라는 거짓말을 폭로하기 위하여 한 랴오닝 파룬궁 수련생은 2001년 6월 9일에 명혜망을 글을 써 보내 말하기를, “나는 파룬궁 수련생이다. 불법으로 마싼자 교양원에 갇힌 적이 있다. 근래에 마싼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떠난 지 2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이전에 마싼자 노동 교양원에 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변화가 있었다.”
“마싼자 부근에 도착했는데 여기의 정문 옆에는 당직실 하나가 더 생겼다. 또 전적으로 출입문을 지키는 인원이 추가되었다. 교양원의 출입문은 ‘긴장’을 증가시키고 경비는 오가는 차량과 행인을 엄밀히 ‘감시’하고 있다. 마싼자 교양원은 설립한지 몇 십년간 경비라고는 없었다. 언제 문을 설치했는지? 왜 설치했는지?”
“마싼자 교양원 내부 길은 어찌나 익숙한지 나와 여기에 갇혔던 기타 파룬궁 수련생들은 이 길을 수없이 청소하였다. 마싼자 교양원 옆 도로의 쓰레기도 다 우리 남자 수련생들이 책임지고 청소하였다. 일년 동안이나 청소하였다. 큰 길을 따라 마싼자 교양원 내의 ‘마싼자 소년 교양원’에 도착해서 보니 ‘마싼자 소년교양원’의 간판을 철문에 용접해 놓았는데 언제 ‘마싼자 교양원 제 2여자 수용소’로 바뀌었는가?” 여기에 원래 있던 18세 이하의 소년 교양원들은 어디로 갔는가? 왜 제 2여자 수용소가 여기에 있는가? 그것은 원래 마싼자 교양원 6대대의 옆에 있었는데?(주 : 나는 마싼자 교양원 기간 소년 교양원에서 3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여기의 일부 교양원은 새로 건설한 것이다, 우리 34명의 남자 파룬궁 수련생들은 여기에서 돌바닥과 잔디밭을 평평하게 깔았다. 이것은 2000년 8월의 일이다. 얼마 안 되어 우리는 마싼자 교양원의 해체 대대로 전출되었다.)”
다른 대륙의 한 파룬궁 수련생이 2001년 6월분 명혜망에 보내온 편지에서 말하기를, “권력을 잡은 소인들은 제 2여자 수용소를 6대대로 이사해 남자 감방과 멀리 떨어지면 여자 수련생 18명의 옷을 벗겨 남자 감방에 집어넣은 일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솔하게도 진정한 제 2수용소, 즉 6대대 북쪽의 4층에 아직까지 몇 백명의 여자 파룬궁 수련생을 가둬놓고 있으며 아직도 이전의 간판에, “여2소” 이렇게 큰 세 글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마싼자 교양원 “여2소”의 간판은 철수했지만 사실은 영원히 철수할 수 없는 것이다.”
4. 랴오닝성 성위가 직접 관심을 갖는 전향 세뇌
자기의 사익을 위해 파룬궁을 박해한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 본인 외에 장쩌민의 박해 정책을 따라 운동 중에서 정치 자본을 얻어 기회를 타 승진하고 돈을 벌려는 대륙 관원들은 마싼자를 통하여 양심을 어기는 추악한 극을 연출하였다.
2001년 2월 연합국 인권위원회는 부녀를 혹형으로 대처하는 특별 조사 보고에서 지적하기를, 뤄간이 2000년 10월에 마싼자 에서 여자 수련생 18명을 나체로 남자 감방에 집어넣은 일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소식에 의하면 뤄간이 몇 번이나 마싼자를 직접 지도[蹲點 : 중화 인민 공화국의 각 기관의 간부가 공장, 농촌 등의 말단 조직체의 현장에 가서 일정한 기간 동안 실질적인 작업에 참가하고 조사 연구와 사업을 지도하다]하고 지시 내리기를 “파룬궁 박해의 강도(力度)를 높인다” 고 고함쳤다.
신화사 2001년 2월 26일 보도에 의하면, 뤄간을 포함한 중앙 610사무실은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백여 개의 단체와 271명에게 표창하였다고 한다. 이번 표창 과정 중에 파룬궁 수련생의 천안문 광장에서의 평화적 청원을 박해하는 베이징시 공안국 천안문 광장 분국의 정치 위원 천유(陳友)와 파룬궁 수련생 박해 수단이 잔인함으로 더러운 이름을 날린 랴오닝성 마싼자 교양원 제 2수용소 소장 쑤징 등이 발언하여 회의에 참여한(대부분은 박해에 참여)자들에게 파룬궁 수련생 박해 경험을 선전하였다.
마싼자 제 2수용소 소장 쑤징은 그 해에 장씨 정치 망나니에게 협력하여 박해에 적극적이라고 사법부로부터 인민폐 5만원을 받았으며 또 소위 “일급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소장 사오리(邵力)는 인민폐 3만위안을 상금으로 받았고 대대장 왕나이민(王乃民)과 각 분대장은 모방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핍박하고 자기들에게 표창 서류를 쓰게 하였으며 깃발과 표어식 간판을 보내도록 강요하여 이것을 거짓과 기만으로 탐방(견학)하는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데 이용한다. 보도에 의하면 마싼자 교양원의 전체 악경들은 장씨 망나니 집단에 의해 “단체 2급 영웅”으로 표창을 받았으며 각 대장들은 상금을 받았는데 “전향율”의 높고 낮음에 따라 금액을 받았다.
중신망 선양 2002년 2월 10일 소식, 랴오닝 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2002년 2월 5일 오후 중공 랴오닝성위 부서기, 성(省)수호단체 안정 지도팀 조장 왕웨이중(王唯衆)은 마싼자 교양원에 가서 “정법전선(戰線), 말단 사법경찰 [쑤징, 쑨펑우(孫鳳武) 따위]를 위문하였다.” 랴오닝 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왕웨이중은 성 마싼자 노동 교양원 [참혹한 강요로 파룬궁 수련생이 신념을 배반하고 수련을 포기]하게한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였다.(계속)
문장완성 : 2004년 2월 26일
문장발표 : 2004년 2월 27일
문장갱신 : 2004년 2월 27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迫害眞相]
원문출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2/27/685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