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법제자 정짼(證見)
[명혜망 2004년 3월 2일] 나는 98년 9월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 전에 나는 좌골신경통으로 혈당, 당뇨 치수가 모두 높았으며, 머리는 어지럽고, 눈은 부어, 베이징의 큰 병원을 다 다녀봤지만, 효과가 좋지 않았고, 항상 병이 발작한 후에는, 혼자서 생활해 나갈 수가 없었다. 다행이 법을 얻은 후, 한 달이 좀 지나서 이 병들은 모두 사라졌다.
99년 4월 25일에 나는 베이징으로 대법을 실증(證實)하러 갔고, 돌아 온 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파출소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협박하고 위협하였다. 당시에는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상태였고, 마땅히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일종의 마비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명혜망에 실린 >이라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은 후, 나는 당시 한바탕 통곡했고, 이지(理智)는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의 고심구도(苦心救度)에 죄송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동수들이 박해받을 때,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은 대법제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줄곧 자책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바로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이 생사존망 앞에서 감히 걸어나오고, 최대한도로 잃는 속에서 걸어나오며,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위대한 일체를 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대법수련을 통해서 많은 이익을 얻은 수련생들은 모두 관건적인 시각에 걸어나와 진실을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왜 하지 못하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나는 2000년 12월 28일에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갔다. 당시 나는 혼자 톈안먼 진쇠쵸(金水橋) 위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좋습니다.”, “이홍지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주시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톈안먼 앞에 있던 경찰이 달려와서 나를 붙잡고 톈안먼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70여 세 정도의 노간부 한 분도 그곳에 잡혀와 있었고, 우리 두 사람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경찰에게 진상을 얘기했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이익을 봤소.” 그 경찰은 당시 동정심이 조금 생겼는지 우리들에게 말했다. ”대법이 당신들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당신들은 수련하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장쩌민이 반대하는데, 누가 당신들을 위하여 공정한 도리를 말해주겠습니까?“ 나중에 그들은 우리들을 경찰차에 태워, 광장을 지나 톈안먼 파출소로 갔는데, 그곳에는 많은 대법제자들이 잡혀있었다. 악경들은 대법제자들의 옆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고무 곤봉으로 구금당한 대법제자들을 마구 때렸다. 파출소의 위층에서는 어떤 사람이 창문에서 아래층에 있는 대법제자들에게 구정물을 뿌렸다. 대법제자들은 모두 함께 >, >을 외웠고, 그 우렁찬 목소리는 온 우주에 울려 공중에서 메아리쳤는데, 악경들은 들은 후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 대략 3-4시간 정도 지나자, 광장에서 다반(大班)차와 이웨커(伊維克)차가 와서, 대법제자들을 하나 둘씩 차에 태워갔고, 나도 한 대의 이웨커(伊維克)차에 실려갔다.
차에서 운전기사와 경찰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운전기사는 10월 1일부터 줄곧 대법제자들을 실었고, 벌써 2개월이 되었으며, 날마다 이러하다고 하였다. 차는 대략 반 시간을 달려서, 숸이(順義)파출소에 도착하였다. 운전기사는 “다른 곳에는 이미 인원수가 차서, 할 수 없이 이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대법제자들은 감옥에 끌려갔고, 그곳 담벼락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으며, 게다가 무장경찰은 망루(崗樓)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대법제자들을 줄 세워, 모두 땅에 앉게 하고는, 매 대법제자들의 가슴 앞에 흰 천으로 번호를 달기 시작했는데, 6번을 달아야 할 젊은 여 대법제자는 단호하게 번호를 가슴 앞에 다는 것을 거부했고, 동시에 경찰에게 말했다. “우리는 죄가 없기 때문에, 죄인의 번호를 달지 않겠습니다.” 몇몇 악경들이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한꺼번에 덮쳐 그녀를 방으로 끌고 가서는 심하게 때리기 시작하자, 밖에서는 몇몇 여 대법제자들이 큰 소리로 악경들에게 “당신들은 사람을 때리면 안 됩니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고, 게다가 인민경찰이 어찌 사람을 때릴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악경은 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악행을 저질렀다. 밤중이 되어서야 그녀들은 감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들의 말에 의하면, 악경들은 그녀들은 경찰대대에 데리고 가서는, 그들을 매달아 놓고, 감옥에 있는 죄인들을 시켜 심하게 때리게 했지만, 그녀들은 모두 함께 큰 소리로 논어를 외웠는데, 다섯 번째 외울 때 일부 죄인들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울면서 “우리는 더 이상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마당에 서있는 대법제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심문하기 시작했고, 대법제자들에게 자기의 이름과 주소를 말하라고 하였다. 당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면, 즉시 그 지역의 파출소에서 데려가게 하였고, 그 지역의 파출소에서는 이런 선량한 대법제자들의 집을 수색하고, 벌금을 내게 하였으며, 또한 여러 가지 자체적으로 만든 수단을 이용하는 등, 근본 합법적인 법률이 없었다. 대법제자들은 감금당하고 박해당하는 것을 제지하기 위하여,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단지 경찰에게 진상만을 말했는데,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해서 어떤 이익을 얻었고, 몸과 마음은 어떻게 변했으며, 많은 난치병도 모두 사라졌기에,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악경들은 근본 듣지 않았다. 한 여 대법제자는 박해를 배척하였다 하여, 악경은 그녀의 머리에 비닐주머니를 씌우고 좌우로 뺨을 때려, 이 여 대법제자는 심하게 맞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되었다.
다른 한 여 대법제자의 두 눈 주위는 악경에게 맞아서 검붉은 색을 띄었는데, 말하기를 “네 명의 악경이 그녀를 어느 한 방에 불러들여 옷을 벗겼다.(속옷만 남기고) 그 중 한 남자 악경은 손으로 음란하게 이 여자 대법제자의 가슴을 만지면서, 비열하게 성폭행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한 악경은 바닥에서 가래와 구정물, 엽차 등이 들어 있는 가래 통을 들더니, 갑자기 대법제자의 얼굴과 가슴에 부었고, 구정물은 얼굴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중에 몇몇 악경은 옷을 입지 않은 그녀를 마당에 있는 쓰레기더미에 밀어 넣은 후, 구두를 신은 발로 대법제자의 머리를 마구 짓밟았다. 당시 그녀의 왼쪽 귀는 짓밟혀 청각을 잃었는데, 바로 이때 그녀는 파룬이 머리에서 재빨리 돌기 시작했고, 청각이 즉시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나를 심문할 때, 경찰은 내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나는 “내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정부 영도들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합니다. 파룬궁(法輪功)은 좋은 공법이고, 병을 제거하여 신체를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선을 향하게 합니다.”라고 말했더니, 경찰은 아무 말 없이, 내 두 손에 수갑을 채우고, 나를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렸는데, 두 무릎은 다른 경찰 앞에 꿇게 되었다. 악경은 침대 머리에 앉았고, 또 다른 악경은 나일론 천으로 된 주머니를 내 머리에 씌우고는 주머니에 있는 끈으로 내 목을 조였다. 자비로운 사부님의 보호가 계시기에, 끈 한쪽이 끊어져 더는 조일 수가 없게 되자, 그들은 전기를 껐는데, 방안은 캄캄해졌다.(악경들은 악행을 저지를 때, 빛을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앞에 있던 경찰이 다시 나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리전슈(李眞修)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옆에 있는 악경이 이 이름을 듣더니 화가 나서, “리전슈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발로 내 허리를 차고, 주먹으로는 내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렸는데, 두 눈도 맞아 별들이 보였고, 머리 여러 곳이 부었으며, 왼쪽 얼굴은 멍이 들어 진붉은 색으로 변형이 되었다.(3년이 지났지만 내 왼쪽 얼굴은 아직도 늘 통증이 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악경은 이미 지쳐 숨을 헐떡거려서야 그만뒀는데, 이때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경찰이 들어와서 수갑을 풀어주었다. 나의 두 손은 시퍼렇게 되었고, 손목은 이미 수갑 때문에 깊이 패어있었다.
악경이 나를 독하게 때릴 때, 나는 마음속으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노라.”를 반복적으로 외웠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내 두 눈은 벌써 맞아 상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마땅히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사실 사악의 박해를 묵인하지 말아야 했고, 마땅히 정념으로 제지했어야 했다.)
내가 숸이(順義)에서 감금당한 지 3일 후,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경찰은 대법제자들을 일어나라고 하고는,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낸다.”라고 하였다. 그들은 대법제자들을 모두 두 명씩 묶어 수갑을 채운 후 큰 차에 태웠다. 당시 큰 차의 양쪽에는 공안국의 작은 차들이 있었다. 마치 강한 적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 쩐(眞), 싼(善), 런(忍)을 수련하는 선량한 사람들을 료닝(遼寧)으로 압송해갔다. 료닝 경찰들은 대법제자들을 넘겨받고는 더욱 악한 말로 욕을 했다. 차에 있던 두 경찰은 “베이징의 경찰들은 정말 지독해, 이들을 이 지경으로 때리다니”라고 말했고, 나는 린하이(林海)파출소에 보내졌다.
도착한 후, 나는 단식으로 항의하기 시작했고, 죄가 없기 때문에 죄인의 밥을 먹지 않을 것이며, 무조건으로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튿날 경찰은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걸어나오려는 목적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찰에게 말했다 “장쩌민이 파룬궁(法輪功)을 탄압하는 것은 틀린 것이며, 파룬궁은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하고, 병을 제거하여 건강하게 하는데, 그래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 두렵단 말인가?” 그리고는 또 “내가 좌골 신경통으로 13년 동안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질병에 시달리고 약물 부작용으로 혈당, 당뇨 수치가 높아져서, 베이징의 큰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내가 행운으로 법을 얻어, 연공을 한 후, 대법은 나에게 좋은 신체를 주었고, 도처로 병원을 찾아다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나를 고난 속에서 구해줘서, 행복한 가정으로 되게 하였다.”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천안문에 나온 목적은 바로 정부 영도들에게 파룬궁은 좋은 공법이기에 박해를 받으면 안 되고, 쩐(眞), 싼(善), 런(忍)을 믿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우리 사부님은 우리들에게 때려도 맞받아 치지 말며, 욕해도 대꾸하지 말고, 쟁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사회에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경찰이 말했다. ”우리도 당신들이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공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상부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당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면, 집에서 연마하면 되지, 왜 나오는가?“라고 말하자 나는 대답했다 ”예를 든다면, 우리 아버지께서 억울함을 당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제일 제일 착한 아들인데, 나도 마땅히 나서서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이번 심문은 이렇게 끝났다.
당시 감금당한 아홉 명의 대법제자들은 돌아가면서 심문받았고, 경찰들은 거짓(假善)으로 속이면서, 이름을 말하면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하였다. 제자들은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감금된 지 닷새 째 되던 날 점심, 경찰은 우리를 모두 불러내어 차에 오르라고 하고는 곧 떠났다. 나는 경찰이 손에 끈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나는 차에서 사부님의 경문 >“대법을 굳게 수련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지라, 층차를 제고함이 근본이로다. 고험 앞에서 진성이 보이나니, 공성원만하여 불도신이 되노라.” >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가 않노라.”를 외웠다. 아마 길에서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들은 나를 행정 경찰대에 끌고 갔는데, 우리는 2층에 올라갔고, 한 방에 한 사람씩 배치하였다. 당시 나는 금강불파의 신(金鋼不破的神)이며, 어떠한 속인의 수단도 나에게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일념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했다. 7, 8명의 경찰들은 나를 둘러싸고 잔혹하게 고문하고 독하게 때리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파룬궁은 좋은 공법이며, 사람들에게 마음을 선하게 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악경은 나에게 덮쳐들어 나를 묶었다. 두 팔은 뒤로하고, 끈으로 힘껏 조이는데, 조이면서 말하기를, 계속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끈으로 당신을 평생 불구자로 만들 거라고 하였다. 당시 나의 두 팔은 감각을 잃었다. 두 팔은 뒤로하였으며, 두 다리는 “人”자 형으로 벌렸는데, 이미 제일 큰 각도로 벌렸다. 악경들은 힘껏 내 다리 안쪽을 찼다.(지금까지 3년이 지났는데, 다리의 맞은 곳은 늘 통증이 있다. 끈으로 묶는 고문은 내 등의 살을 마치 찢어내는 듯 참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나는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했으며, 아파서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이름을 말하라고 했지만, 내가 견결하게 말하지 않자 의자를 하나 갖고 오더니, 내 두 손을 의자 위에 올려놓았고 다른 두 사람은 내 두 팔을 잡고, 또 다른 경찰은 허리에 찬 벨트를 휘두르면서 내 손등을 때렸다. 내 두 손은 마치 검은 찐빵 같이 변하였다. 그 중 한 악경이 변형된 내 손을 보더니, 곧 발로 내 손을 밟고 마구 비벼댔다. 그리고 밟으면서 말하기를 “아파 안 아파?”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에 아무 일 없다고 생각하고는, 곧 악경에게 “당신은 인민의 경찰인데, 어찌 우리를 이렇게 대합니까?”라고 말하자, 악경은 화가 잔뜩 나서, 바로 벨트로 내 얼굴을 때렸고, 나중에는 자로 내 얼굴을 때렸는데, 자는 바로 부러져 버렸고, 내 얼굴은 시커멓게 될 정도로 맞았다. 그들은 그래도 내가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보자, 이어서 발로 나의 왼쪽 가슴과 왼쪽 팔을 찼는데, 힘들면 잠깐 쉬고, 계속 말하지 않으면 또 차고, 고문하고 구타했다. 하지만, 내가 그래도 굴복하지 않자, 나중에는 그들은 방법이 없었고, 밤이 어두워져서야 나를 파출소로 돌려보냈다. 차에서 내린 후 악경은 또 물었다. “당신은 당신의 사부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우리 사부님은 제일 좋은 사부님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악경은 또 힘껏 나를 찼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사람들은 정말 류후란(劉胡蘭:중국 항일 전쟁시기 용감하고 견정했다는 사람.) 같아요.”라고 말했다.
감방에 돌아온 후, 나는 60여 세 되는 두 여 대법제자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윗옷을 벗는 것을 보았는데 온몸은 맞아서 멍이 줄줄이 났고, 한 줄 한 줄 나란히 많이 있었다. 그녀는 말하기를 악경이 그녀의 옷을 벗기고는, 채찍으로 지독하게 때렸는데, 줄곧 까무러칠 때까지 때렸다고 한다. 악경은 즉시 의사를 찾았고, 혈압을 측정하자 겨우 60밖에 안 되는 것이 확인되어서야 때리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감방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다른 한 대법제자도 심하게 맞아 까무러쳤는데, 바지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맞았다고 한다. 또 한 50여 세 되는 대법제자는 오른쪽 발과 종아리를 맞아 시커멓게 되었고, 며칠이 지나도록 서지 못했으며, 행동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우리 아홉 명의 대법제자들은 견결하게 박해를 배척했고, 단식으로 항의했다. 그러자 악경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였는데, 네, 다섯 명의 악경들이 나를 누르고, 코로 관을 넣어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했고, 관을 뽑을 때에는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악경들은 또 가짜 경문으로 우리를 속였지만, 우리는 즉시 그들의 수법을 알아챘다. 감방에서 우리는 날마다 >, >을 외웠다. 당시 나는 외우지 못했는데, 모두 감방에 있는 동수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나는 동수들이 법공부를 이렇게 잘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법공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곧 하나의 금강부동의 신이, 어찌 이런 곳에 감금당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자비로운 사부님의 보호 아래, 나는 감금된 지 11일 만에 정정당당하게 사악의 소굴에서 걸어나와, 또다시 정법의 홍류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게도 감사합니다!
문장완성: 2003년 12월 8일
문장발표: 2004년 3월 2일
문장갱신: 2004년 3월 2일 3:38:30 PM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3/2/6899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