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2월 10일] 나는 금년 70살인데 퇴직한 노동자이다. 내가 대법에 들어와 수련한 지도 이미 9년이나 된다. 내가 제일 깊게 이해한 것은 나이는 비록 한 해 한 해 많아지지만 신체는 한 해 한 해 더 건장해지는 것이다. 나의 신체는 가뿐하며 활기로 충만되었고 일을 해도 힘든 줄 모르겠다. 딸 집에 갈 때면 물을 들고 8 층까지 올라가도 조금도 힘든 줄 모르겠는데 마치 그 누군가 나를 밀어서 걷게 하는 것 같다. 정말로 극치에 달하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수련 전에 나는 일찍 한 가지 기공을 배웠었다. 연습하고 연습해도 병이 낫기는 커녕 도리어 임파에 걸려 목덜미에 큰 혹이 자라났다. 병원에 가서 절제 수술을 했는데 아직까지 큰 흉터가 남아있다. 1995년 아들이 파룬궁을 수련하였다. 수련한 후 매우 좋음을 느끼어 나와 부인더러 학습하라고 했다. 아들의 안내로 인하여 우리 온 집안 식구는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게 되었는데 수련 이후 나는 매우 빨리 혜택을 받았는데 풍습성 관절염, 그리고 수 차례 수술해도 치유되지 않던 치질이 치료하지도 않았는데 나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뻤다. 파룬궁은 너무나도 신기하여 그 어떤 기공과도 비길 수 없음을 심심히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굳게 다졌다. 오직 파룬궁만 믿겠다고!
수련을 갖 시작했을 때 나는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 것으로 만 여겼다. 후에 깊이있게 학습하는 것을 통해 사부님의 보서(寶書) 에 쓴 법리는 그토록 조예가 깊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거병건신(祛病健身) 은 제일 천박한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에서 해탈되게 하며 선천의 위치에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대법을 얻게된 것은 실제는 천년 동안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만난 것이며 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기회를 만난 것이다. 사부님의 넓고도 큰 자비가 우리에게 하나의 큰 대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학습했으며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처세했다 먼지로 가득했던 심령도 정화되어 사상경계가 끊임없이 승화되었다. 나는 집 근처에서 자전거 수리가게를 차렸다. 흥정하는 값이나 받는 돈은 모두 최저 가격이었다. 작은 고장이 있어 수리할 때는 늘 돈을 받지 않았다. 때로는 자전거 주인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이 부족 할 때는 얼마 주면 얼마를 받곤 했다. 심지어 어떤 손님은 돈을 잊고 가져오지 않아 나중에 주겠다고 하면 역시 괜찮다고 했다. 개별적으로 입으로는 돈을 가져 다 준다고는 했으나 가져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역시 별 문제가 아니었다. 3원 50전쯤 못 받아도 문제로 삼지 않았고, 20원~30원을 받지 못하여도 마음속에 넣어두지 않았다. 매일마다 나는 수입이 얼마면 얼마로 계산했고 그저 공짜로 의무적으로 일을 했을 때도 자연에 따르면서 돈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다. 많이 벌던 지 적게 벌던 지를 물론하고 나의 생활은 매우 충실하였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쩐(眞), 싼(善), 런(忍)“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니 마음속은 유난히 밝았다. 지금은 대법 중에서 수련하니 일체가 모두 그처럼 순리로와 모두 그처럼 현묘하다. 28형틀의 가중, 자전거 몇십 근의 무게일 지라도 나는 수리할 때 손으로 잡아 당기기만 하면 자전거는 저절로 끌려오곤 했는데 힘을 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는 진정 대법의 초상과 수련자의 행복을 체험하였다. 정말로 속인은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늘 마누라에게 “이 한 평생 우리는 파룬궁만 믿읍시다.” 라고 말하는데 이는 나의 흉금에서 우러나온, 한 마디 말이다. 인간세상의 쓰고 매운 것들은 몇십 년간 나로 하여금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게 했다. 퇴직한 후 편안하게 만년을 보내야 할 때 나는 행운스럽게 대법을 얻어 큰 수익을 보았기에 나는 대법만 굳게 믿고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99년 7월 20일 중국 및 세계 인민들의 환영을 깊이 받아오던 파룬궁은 장xx의 피비린내 나는 진압을 당하게 되었다. 아들은 대법을 위한다면 반드시 사부님을 위해 바른 도리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민의 합법 권익을 쫒아 북경에 가서 평화적 청원을 했으나 도리어 불법적으로 감금을 당하여 비 인간적인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고서도 중점 박해대상으로 되었다. 나와 마누라는 마음이 아프고 역겨웠고 고통스러워 말하기 어려웠다. 장xx 혼자서 대법을 무시하고 백성들이 말을 못하게 하고 학대하였다. 선량을 참살하면서 많고 많은 대법 수련생들을 가두고 심판했고 심지어는 생명을 잃게끔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했다. 산을 밀어내고 바다를 뒤집어 엎듯이 악한 파도가 뒤집어지던 백색공포에 직면했을 때 대법의 층층 법리가 우리를 인도 하였다.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새 경문은 점차적으로 우리를 가르치셨고 우리더러 정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촉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 사악이 얼마나 심하게 박해하던 지를 막론하고 우리집 식구들은 금빛 찬란한 수련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아들은 행운스럽게 천리 밖에 있는 한 견정한 동수와 동반자가 되었는데 실제는 대법이 붉은 줄을 놓아 연분이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 되게 한 것이었다. 우리집 네 식구가 모두 수련하니 가도정법 위원회는 끊임없이 우리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후에 우리는 재개발로 인하여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데 한 불법요원은 우리 새집까지 쫒아와서 소란을 피웠다. 뿐만 아니라 이곳의 가도 파출소와 내통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선의로 그들에게 대법의 진상과 우리 식구들이 대법에서 이익을 얻은 정황을 이야기 했다. 그들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모두 이해하게 되었는데 모두 대법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박해는 결속되지 않았다.
2002년 그믐날 우리 온 집 식구들은 즐겁게 설을 쇠고 있었다. 오후 2시쯤 한 상의 풍성한 요리가 준비되어 금방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새까맣게 밀집한 사람들이 복도와 계단에 꽉 매워서 있었다. 가도 사구파출소와 나의 회사 책임자와 아들의 책임자 약 20여 명이 모두 왔다. 집에 들어서자 마자 나의 아들을 찾으면서 그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아들이 저항하니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무리의 경찰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은 바삐 나와 아들을 호스로 묶었다. 이 강도같은 행위를 직면한 마누라는 급하여 큰소리로 물었다.
“내 아들이 무슨 죄를 졌는가?”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겉옷과 신 마저 신지도 못하게 하고는 우리 아들을 끌고 갔다. 마누라와 며느리는 온갖 힘을 다해 막아 나섰다. 속옷만 입고 신을 신은 채 급히 아래층에 내려가보니 울타리 안에는 차 5,6대가 서 있었다. 그들은 중과부적이었고 친인을 찾아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악당들에게 묶여갔다.
나는 마치 한차례 악몽을 꾼 것 같았다. 이 토비와도 같은 납치사건이 오늘날 중국의 xx당의 간부와 인민경찰 손에서 발생했다는데 대해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중국의 사악한 세력이 “쩐(眞),싼(善),런(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저지런 미친듯한 박해를 나는 친히 보았기에 증명할 수 있다. 슬프고도 탄식할 일이다. 약 반 시간이 지난 후 나의 회사의 책임자와 사구 판사처의 세 사람이 우리 집에 다시 와서 나에게 “저 세 사람들은 학습반에 참가한다.” 라고 말했다. 나는 “설을 쇠는데 사람을 붙잡아 가니 우리가 무슨 위법한 일을 했단 말인가?” 라고 말했다. 그들은 얼버무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나더러 그들 세 사람에게 웃옷과 신을 가져다 주라고 했다. 나는 물건을 가지고 차를 따라갔다. 뜻밖에도 소위 학습반 이라는 것이 정신병원 이었다. 나도 감금되었다. 나는 성이 나서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 “당신들이 나더러 옷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나를 가두는가?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기만 하는가? 당신들은 도리를 말하는가 하지 않는가?!”그들은 이치가 닿지 않아 말문이 막혔다. 그리하여 주눅이 들어서 가버렸다. 우리집 식구들은 한 방에 갇혀 있었는데 근본상 관계하는 사람이 없었다. 학습반 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연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했다.
우리는 집에서 설을 쇠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이곳에 가두어 두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일의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나는 우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곳에 가두는가?” 그들은 우리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을 지키는 것 밖에 관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상급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믐날부터 줄곧 소식이 없었다가 정월 초 닷새 가 되어서야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우리는 책임자에게 말했습니다. 초 여드렛날에 출근하면 다시 봅시다” 라고 했다. 우리집 식구들은 무고하게 또 분명하지 않게 감금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으로 되는데 그래 이것이 틀렸단 말인가 어느 국가 민족이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무서워 한단 말인가? 오직 중국의 쟝xx 집단만이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면서 하늘과 역행하여 국가와 민족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백성들을 기만하고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사람을 가둘 수 있으나 우리의 마음만은 가둘 수 없었다. 우리는 나쁜 사람으로 될 수 없으며 우리는 수련하지 않을 수 없다. “쩐(眞),싼(善),런(忍)” 의 찬란한 빛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우리는 금강부동하며 반석같이 든든한데 그까짓 서리며 설 한풍을 무서워 하겠는가! 큰 파도가 모래를 일고 나면 나머지는 순금이다. 우리는 진짜 금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사부님의 진정으로 수련하는 제자로 되어야 한다.
2002년 정월 초 여드렛날 나와 마누라는 무조건 석방되어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온 후 나는 또 친척들과 함께 다시 가서 아들과 며느리를 내놓으라고 했다. 악당 경찰들은 그 두 사람은 일반적인 제자가 아니라 성금에 이름이 걸려있는 인물들이기에 석방할 수 없다고 한다. 후에 며느리는 외지 사람인 연고로 본가 집사람들의 강력한 요구로 그녀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들은 3개월간 갇혀 있으면서 시달림을 받을 대로 다 받았다. 사후 우리 단위 책임자들은 사사로이 나의 월급을 차압하고는 이 돈으로 우리가 갇혀 있을 때 생활비로 지불했다. 풀려나온 후 나는 떳떳하게 책임자들을 찾아가 도리를 따졌다. 나는 날카롭게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집 식구들이 집에서 설도 못 쇠게 하고는 억지로 정신병원에 끌고 갔는데 또 무슨 이유로 나의 월급을 차압한단 말인가?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신들은 반드시 나의 월급을 돌려 주어야 한다.” 나는 연속 두 번이나 단위에 찾아갔다. 그들은 마침내 월급을 보상해 주었다.
우리 온 집 식구는 의연히 견정하게 수련하고 정념 정행 하면서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바짝 따르고 있다. 파란만고를 다 겪은 나 … 이 노인은 오직 파룬궁만 믿겠다.
문장완성: 2004년 2월 3일
문장발표: 2004년 2월 10일
문장갱신: 2004년 2월 10일
문장분류: [호법역정]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2/10/670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