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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생 유 성군을 그리며, 그의 장엄하고 정의로운 품행은 영원히 남으리라

글 / 길림성 대법수련생

(명혜망, 2004년 1월 13일) 유 성군은 ‘장’ 정권에 의해 1년 9개월의 잔인한 고문 끝에 숨을 거두었다. 나는 비극적인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얼굴로부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군은 죽었으나 대법에 대한 그의 정의로운 믿음과 중생에 대한 자비로움은 짧았지만 장대한 그의 삶에 획을 그었다.

박해의 표적이 된 후, 나는 오랫동안 집 없이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내가 성군과 같이 보냈던 시간들은 영상이 되어 영화를 보듯 끊임없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훌륭한 작가는 아니지만 나는 펜을 들고 정법 중에 일어났던 그의 단순하지만 장대했던 경험들을 쓰려고 결심했다.

내가 성군을 만난 것은 2001년 6월 이었다. 그 당시 그는 노교소에서 탈출하여 나왔다. 그가 떠난 후, 그곳 사람들은 그의 탈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그를 추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는 막 대법 자료소 하나를 설립했었는데 많은 일에서부터 모든 것이 생소했었다. 그래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고 장비에 종종 문제가 생겼다. 또한 수련생들 간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있었는데, 많은 수련생들은 내면을 향해 들여다보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종종 자신들의 생각들에 잡혀 있었다. 우리는 또 자료를 생산해내기에 적합한 수련생들을 찾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런 때 성군이 왔다. 그가 도착한 후, 우리 대법자료 생산소는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작업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조절이 이루어졌다. 성군과 나는 자료를 인쇄하는 일의 책임을 맡았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같이 법을 실증하기 시작했다.

성군이 도착한 후, 그의 손에 의해 기계들은 매우 작동을 잘했다. 그의 정념이 아주 강하고 마음가짐 또한 순수했기 때문에 조그만 고장은 그가 수리를 할 수 있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 중에서, 그는 대법에 대한 금강부동한 믿음을 보여주었고 대법 일을 할 때는 매우 조용히 조심스럽게 했다. 그의 행동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처음에는,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여러 가지 변이된 관념들 때문에, 자료생산소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마음이 불안했었다. 하지만 성군이 주위에 있으면 내가 지극히 조용해짐을 느꼈다.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항상 어떤 힘이 나로 하여금 제고하기를 재촉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를 더욱 잘 알게 되자, 나는 나의 매 언어와 행동이 그와 비교했을 때 같지 않음을 보았다. 왜 그는 모든 것을 그처럼 잘 할 수 있는가? 사실, 그 차이는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된다. ‘믿음’ 나의 믿음은 다만 표면적인 것이었지 근본적인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은 그의 생명의 미시적인 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관련을 가지면서, 우리는 그가 강제 노교소에서 대법을 실증했던 경험들을 얼마 정도 알게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그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었기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성군, 자네가 강제 노교소에 있었을 때, 자네는 경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그들이 당신을 때릴 때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고, 동수들이 벌을 받고 매를 맞을 때 그들을 도우러 가기까지 했는데, 자네는 더욱 더 심하게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나? ” 그는 대답했다. “나는 단순히 우리가 좋은 사람으로 되는 것만을 알았다. 우리는 부당한 취급을 받아왔다, 그래서 나는 고귀하게 걷고 바른 방법으로 일을 한다. 나는 법의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며 사부님의 말씀을 따른다.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같이 대법 자료생산소들이 도처에 있지 않았기에 , 그 때는 한정된 숫자의 자료소들만이 있었다. 우리모두가 다-기능 기계를 사용했지만, 우리에게 필요했던 자료의 양은 굉장히 컸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몹시 바빴고 쉬는 시간이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바쁘더라도 성군은 법공부를 하거나 연공하는 것을 결코 빼먹지 않았다. 그는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했고, 하루도 빠짐없이 법공부 하는 시간을 찾았다. 매일 일이 끝난 후는 자정까지 법공부를 했고, 아침에는 연공을 하고, 방을 청소하고, 얼마간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 3시 또는 4시경에 일어난 후 또 다른 하루의 정법 일을 시작했다. 성군은 아주 간단하게 살았다. 그는 육체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음식만을 먹었다. 아무도 그가 맛이 좋다거나 맛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마치 이런 마음 상태가 한 번도 그의 마음에 입력된 적이 없었던 것 같이 보였다. 한 번은, 우리가 방금 이사를 한 후여서 식기를 가지고 올 시간이 없었다. 그는 프라스틱 물통을 씻고 수돗물로 즉석 우동을 만들었다. 그는 단지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우리에게 항상 남아 있는, 성군의 마음에는 스승님께서 정해 주신 세 가지 요구를 따르는 것뿐이다.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고, 그리고 진상을 하는 것. 성군은 중생을 구도하는 그의 신성한 사명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우리가 논간(Nong’an) 郡에서 돌아오고 있을 때인데, 그는 많은 진상자료들을 봉투에 넣어서 그것을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겨울 어느 날 그는 살을 에이는 추운 바람 속으로 새빨간 페인트로 가득 채워진 등짐을 잡아끌었다. 밖은 영하 30도 였는데 그는 골목과 길을 다니면서 “法輪功(파룬궁)은 좋습니다!”를 빌딩 벽 위에 뿜었다. [주: 신문, 잡지, TV, 라디오와 같은 전형적인 전달 수단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法輪功(파룬궁) 수련생들은 중국 사람들에게 박해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많은 창작적인, 때로는 특이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그곳에서 벽에 글자를 뿜고 있는 그를 조용히 보고 있던 한 청년을 만났다. 일을 마치자, 성군은 그 청년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부디 法輪大法(파 룬따 파)가 좋다는 것을 기억해요.” 그 청년은 기쁘게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 아우성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었다. 성군은 그가 글을 쓸 때는 발정념을 해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사악의 교란을 무시했다.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페인트를 뿜었던 손이 얼어서 더 이상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경찰이 임시 숙소를 조사하러 오고 있다는 것을 한 수련생이 알아냈다. 같이 집을 쓰고 있던 두 수련생이 그에게 잠시 숨어 있을 것을 제안했지만, 성군은 응하지 않았다. 그는 동수들에게 그의 뜻을 전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집에 남아 있었고, 글을 읽으려고 뜰로 나갔던 두 수련생은 경찰을 만나게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성군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이것이 성군의 대법에 대한 금강부동한 믿음이고 법공부에서의 굳건한 기반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고난을 이겨나가도록 인도했다.
성군은, 2001년 중국 독립일인 10월 1일 전에, 그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천안문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2001년 9월 28일에 그는 내가 준 가벼운 신을 신고 비품을 들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북경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성군은 건강하고 힘이 있는 청년으로 떠났는데 20 여일 후에 돌아온 그의 얼굴은 온통 수염으로 덮이어 있었고 걸을 때는 흔들거리기까지 하는 풍지박살 난 노인이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는 그가 많은 고난을 겪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요청으로, 그는 북경에 갔던 여행과 대법을 실증할 때 마주쳤던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성군은 천안문에 도착하자 현수막을 펼쳐들고, “法輪大法(파 룬따 파)는 좋다!”를 외치면서, 천안문 광장 주위를 뛰어 돌았다. 바로 이 때 경찰 차가 다가왔다. 여러 명의 경찰들이 그를 차에 끌어넣은 다음 구류소로 데려갔다. 그가 구류소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즉시 범죄자들에게 알렸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 당신들은 나를 건드리지 말라!” 이런 강한 정념을 발하자, 그 범죄자들은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구류소에서 그는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다. 그가 그의 이름과 주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그는 악명 높은 북경 공보안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단식투쟁을 계속했고 물 마시는 것 조차도 거절했다. 이를 보자, 경찰은 그의 옷을 모두 벗겨 목욕탕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 넣은 다음 그에게 찬물을 들어 부었다. 나중에는 성군에게 전기봉으로 충격을 주었고, 그를 침대로 데리고 가 침대 네 모퉁이에 그의 사지를 묶었다. 그들이 강제로 그에게 주사를 놓으려 했을 때 성군은 생각했다. ‘내가 아직 손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그들은 성사시키지 못 할 것이다.’ 주사 바늘은 결코 들어가지 못했다. 그가 20일이 넘게 단식투쟁을 하면서, 또 경찰이 가하는 잔인한 고문으로 몸은 극도로 약해졌다. 그는 그의 생명이 끝에 달했다고 느껴졌다. 바로 그 때 그는 우리의 존경하는 스승님과 사악한 자들의 거짓에 속고 있는 수 천 만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는 울부짖었다. “나는 살아서 이곳을 나가야 한다. 나는 아직 이런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할 하나의 방법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이러한 강한 정념이 형성된 다음 날 그는 무조건적으로 석방되었다. 그의 옷가지와 새 신발은 구류소에서 없어졌기 때문에, 그는 죽은 감옥수의 옷을 걸치고 맞지 않는 가죽신을 신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모두가 울었다.

이것이 내가 성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는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와 인상은 계속 우리에게 남아있으며, 그의 용감한 정신도 남아있다. 성군은 곧게 살았고 고결하게 죽었다. 그의 장엄하고 바른 품행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발표일자: 1/28/2004
원문일자: 1/27/2004

문장분류: 정법 이야기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5/64839.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1/28/445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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