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법제자 소영
[명혜망2003년12월6일]나는 2002년 4월 18일에 북경에 갔다. 기차가 떠나는 순간 창 밖으로 프랭카드가 나의 한 눈에 비쳐 들어왔다. “참되게 법 공부 하고 참되게 연공하여 진정한 공이 나타나다.”
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온전하게 되었다. 내가 한 일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북경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명혜망에서 동수들이 북경에 정념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정념으로 돌아오는 문장들을 매번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2001년 6월, 1년 노동교양 만기가 되어 장춘 허이쭈이즈(黑 嘴 子) 노동 교양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속아서 노동교양을 받은 것이다. 나는 교양소에서 교관들의 전기고문이 무서워서 벗어나기 위해 잘못 판단을 내렸다. 교양소에 있는 기간 신체적, 정신적으로 받은 상처를 다 표현할 수 없다. 매일 17~18시간 노동해야 했다. 나는 겨우 30 몇 살 밖에 안 되었는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어떤 때는 혈압이 180에 도달했다. 악경에게 인격적으로 모욕받은 상처는 인간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수련을 포기하려 할 때 존경하는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자비롭게 점화해 주셨다.
반년의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또 다시 수련해야 한다 라는 의념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치도 >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시방세계를 진동시켰다. 존경하는 사부님께서는 나를 단번에 떠밀어 주셨다. 나는 법 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었다. 매번 명혜 주간을 볼 때마다 정체의 힘이 나를 위로 이끌어 올리는 것을 감각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 경문을 볼 때 나는 인식하기를 이미 수련을 선택했으면 지금 대법이 박해를 받고 있는데 나는 마땅히 나서서 대법을 실증해야겠다. 가기 전에 나는 동수들 에게 나는 꼭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고 또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10시간이 더 걸려서 북경에 도착했다. 천안문 광장에는 곳곳마다 경찰 사복경찰 그리고 경찰차였다. 나는 마음이 온정하지 못하였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하러 왔나? 나는 꼭 하겠다. 나는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발정념을 했다. 천안문을 향해 프랭카드를 높이 들어 “법륜대법은 좋다”라며 높이 외쳤다. 천안문 광장은 굉장히 컸다. 나의 프랭카드는 너무 작았다. 프랭카드를 거두는 순간 빨리 가야겠다 하는 인간의 생각이 들었다. 프랭카드를 주머니에 넣을 때 누군가 무장 경찰에게 고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뒤로 쫒아 왔다. 두 경찰은 나의 팔을 잡았다. 순간 나는 마음을 내려 놓았다. 큰 소리로 다시 외쳤다. “법륜대법은 좋다” 내가 머리를 들었을 때는 광장의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또 외쳤다. “법륜대법은 좋다.” 경찰차에 오를 때 까지 이렇게 외쳤다.
나는 악경의 박해를 저지해야지 하는 생각에 프랭카드를 의자 중간에 밀어 넣었다. 그들은 주머니를 들춰봐도 프랭카드를 찾지 못했다. 나를 천안문 광장 공안분국에 실어 놓았다. 차에서 내리자 나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왜 법륜공을 연공하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전에는 내 몸이 병투성이었는데 법륜공을 배운 후 몸이 다 좋아졌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이 말했다. 좋아졌으면 집에서 혼자 할 것이지 북경에는 왜 왔어? 내가 대답하기를 “나 혼자만 좋아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무관심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텔레비전에서 보여 주는 것은 모두 다 가짜이고 법륜공을 모함하고 거짓말을 날조하는데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하겠나? 내가 성명과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니 몸을 들추고 주머니를 뒤졌다. 나를 철쇠망에 가두었다. 나는 계속 발정념하고 나의 구호소리는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여행카드가 발급된 19세 한 여자 애를 나와 같이 가두었다. 이 여자 애를 통해 내 주소를 알아내려고 하였다. 나는 그 여자 애에게 진상을 말해주었다. 여자 애에게 법륜대법은 좋다 라는 것을 기억해 두라고 말하였다. 후에는 이 여자 애를 보고 사부님을 욕하라고 했다. 이 여자 애는 “나는 욕을 안할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하나”라고 했다. 조금 후 천안문에서 대법을 실증한 제자를 잡아왔다. 그녀는 40이 넘었다 명혜망을 보았는가? 하고 그 여인에게 물었다.보지 못했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는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법륜공을 해서 병이 다 나았다 고 했다. 조금 후 70이 넘는 노인 대법제자 한 분이 또 붙들려 왔다.
그는 천안문에 가서 붉은색 비단에 노란색 글씨가 쓰인 프랭카드를 들었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법공부를 적게 했다. 집사람이 > 경문 한 권만 보게 한다.” 노인이 다시 말하기를 “내가 한 번 오는데 그저 빈손으로 올 수 없어 간암이었던 X 레이 사진을 가지고 왔다.”노인은 법륜대법을 해서 다 완치 됐다고 한다. “내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중국의 모든 정치운동을 다 해 보았다. 법륜대법은 정법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 옆 철조망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청원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천안문에서 장사하는 사람, 광고를 배포하는 사람, 동냥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진상을 했다. 우리는 그들이 낯익은 느낌이었는데 그들도 어디선가 우리를 보았던 것 같다고 했다.
저녁에 악경들은 우리를 수갑과 수갑을 연결해 의자에 채웠다. 악경들은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서로 교대 하면서 우리를 지켰다. 이전에 법륜공 제자들이 여기서 많이 달아났다고 한다. 그들 중 610 두목이 말하기를 법륜공 수련생이 많이 붙들려 오면 좋겠다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자기 방에다 가두어둔다. 그는 승진하기 위해서 이다. 그는 본래 부과장 이었는데 법륜공 수련생을 잡아 박해하여 공을 세워 정과장으로 되었다. 지금은 그를 부국장으로 승진시키려 하고 있다. 그때면 의료 보험증을 가지고 병을 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병원에서 암을 고칠 수 있으나 강택민의 앞잡이가 되어 다만 위로 승진하려고 다른 사람을 박해하고 가정을 파산시키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보응이 올 때,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아내와 식구들이 모두 연루된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발정념 했다. 큰 언니의 수갑이 열렸다. 나의 정념이 강하지 못해 달아나지 못했다. 이튿날 오성기를 올릴 때 30 여세 되는 남자 수련생이 붙들려 왔다. 이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새로 발표하신 > 을 읽었다. 이 새로운 경문을 우리들에게 말하며 모두들 뛰쳐 나갈 수 있도록 정념을 북돋아 주었다. 각 지방의 북경주재 사무처에서 나와 자기 지역 사람들을 찾았다. 어느 지역인가 물었을 때 우리는 모두 발정념 했다. 점심 때 천안문에서 대법을 실증하던 한 대학 여 교수가 잡혀왔다. 국기를 내릴 때 캐나다의 한 여자 대법제자도 잡혀왔다. 그녀는 대 여섯 살 되는 딸을 데리고 와 대법을 실증했다. 악경이 그녀의 어디를 때려 피나게 했는지 그녀의 딸 아이가 놀라 울고 있었다. 그녀는 들어오자 큰 소리로 대법을 암송하고 옆 철조망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말하였다. 온몸이 정기(正氣)였다. 그녀와 외국의 대법제자가 진상을 더 얘기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조금 후 악경은 그녀와 딸을 남겨두고 우리들을 경찰차에 가두어 싣고 구치소로 갔다. 갈 때 우리들은 계속 발정념을 했다. 차가 섰을 때 나는 또 구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는 대법제자가 있을 곳이 아니다. 나는 계속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구치소 의사는 내가 쓰러질까봐 받지 않았다. 악경은 교섭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너희들의 말은 쓸데없다 고 생각했다. 70이 넘은 할아버지는 악경에게 놀라 주소를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두어졌다. 나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가두어놓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했다. 할아버지는 배가 고프면 자신이 가져온 과자를 먹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같이 먹자고 했다. 이 사악한 곳에서 나는 절대 아무것도 안 먹는다. 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생각하니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이리하여 나와 할아버지는 구치소에서 내보내졌다. 할아버지는 그 지역 사무처 사람이 데려갔다. 나는 혼자서 저녁 몇 시인지도 모르고 버스도 없이 걸어왔다. 발뒤축이 부어 물집이 생겼다. 길에는 순찰들이 적지 않았다. 나는 걸으면서 계속 발정념 했다. 새벽 4시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집을 떠난 지 5일이 지났다.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다. 거짓말해? 그러나 내가 우주의 제일 똑바른 일을 했는데 라는 정념이 나오자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내는 더 많이 묻지 않았다. 걸어온 이 길은 존경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정념의 위력이었다는 것을 깊이 느낀다.
집에 돌아온 후 한 동안 나는 안일한 마음이 들어 정진하지 못했다.수련의 길에는 부단한 선택이 있다. 대법을 앞에 놓았을 때 선택은 옳았다. 최근 나의 근본적 집착 인간의 소위 아름다운 생활의 욕망을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법일은 했으나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법공부를 하지만 줄곧 알 듯 말 듯 하였다. 나는 안으로 찾아 보았다. 법공부 할 때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 요구가 엄격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또 한번 선택했다. 나는 신으로 되는 길을 선택했다. 정법시기 정법 제자가 마땅히 해야 한다.
발표시간: 2003년 12월 6일
문장분류: 호법여정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3/12/6/619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