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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적이고 누락이 없는 고험(考驗)속에서 걸어 지나오다(3)

【명혜망 9월 6일 소식】(앞 문장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걸어 지나올 수 있는,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바로 위에서 제기한 것에 있다고 여긴다. 즉, 정의견(鄭毅堅)은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자기를 수련하는 것을 중시하였으며, 진정하게 “법 속에 용해”될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은 시간에 대한 집착을 닦아 버릴 수 있는 첩경일 뿐만 아니라, 모든 집착을 닦아 버리고 정법제자의 상태를 체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법 속에 있으면, 일사일념은 바로 법의 위력을 지니기 때문에 어떠한 사악도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이다. 아래는 정의견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드러난 몇 개 일화들인데,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2000년 5∼6월에,사부님께서는 “7.20”이후 아직 이 겁난(劫難)에 대하여 본질적인 깊은 설법과 해법을 하지 않으셨다. 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있던 많은 대법제자들은 당시의 형세에 대하여 매우 곤혹을 느꼈고 미망(迷妄)에 빠졌으며 심지어 이런 환경을 벗어나려고 희망하였다.

이점에 대해서, 공(Ball)을 깁는 일을 하던 중, 정의견은 주위의 동수들한테 이야기하였다.
“나도 어떤 때는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러나 그것이 어찌된 일이건 상관없이, 당신의 마음은 그런 어떠한 환경 속에서든지 다 그렇게 청량(淸凉)하고, 아름다운 경계에 도달하였습니까? 만약 아직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그럼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이용하여 빨리 수련하세요!”

물론 대법제자에 대한 법의 요구에 따르려면,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노동교양소의 환경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감당할 수 없으면서, 간고한 환경을 역이용하여 엄격하게 마음을 수련해 낼 수 없다면, 환경을 바로잡는다는 것도 빈말이 되고 만다. 만약 일단, 한 대법제자가 정말로 어떤 환경 하에서든지 모두 그렇게 확고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면, 사악도 박해할 수 있는 구실을 찾지 못한다.

(2)2001년 2월,노동교양소에서 이미 1년 남짓 박해를 받아온 한 대법제자가 20여 차례의 미친 듯한 구타를 돌파하고, 45일간의 밤낮으로 계속된 시달림을 돌파하고, 지친(至親)이 박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은 소식이 가져온 거대한 고통마저도 돌파하였으나, 이후에 시간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심해졌다. 다른 공간의 사악들은 그의 집착을 따라서 필사적으로 가상(假想)을 연화(演化)해냈다. 이 대법제자는 어두침침한 노동교양소 작업장에서 누구를 보나 다 1000년 전에 그와 함께 이 황량한 산굴 속에 붙잡혀 들어온 것 같았는데, 그 처량함은 가슴을 도려내고 뼈 속까지 스며드는 것이었다.(이 구절은 절대 문학적인 비유로 쓴 것이 아니며 그가 겪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때, 다른 공간의 사악들도 기회를 타서 돌진해왔는데, 악경을 통제하여 그에게 “전기고문” 을 배치하였다. 3일 사이에 네 차례의 전기고문을 당했는데 머리중심까지 다 타서 엉켜 붙었다. 다른 한 방면으로 정념(正念)은 또 소실되지 않았다. 두 가지 역량은 그의 마음속에서 격전을 벌렸는데, 이겨내는 가운데서 그는 거의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이런 정황에서, 어느 날 저녁의 이른바 “학습”때, 그는 앉자마자 하나의 강대하고 상화로운 마당에 휩싸인 것을 느꼈다. 신변의 대법동수 정의견은 가볍게 그를 일깨워 주었는데 어조는 상화롭고 평온하였다.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법 속에 용해시키세요. 자꾸 나갈 생각만 하지 말고요. 당신이 아무런 마음도 없게 수련되었을 때에는, 밖에서든 안에서든 모두 감각이 아주 초연할 때에는, 그들도 자연히 당신을 여기에 남겨두지 못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이 들뜨고 조급하며, 집착이 너무 강하면, 나간다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이 상화한 마당, 이 한차례의 대화는, 그 동수로 하여금 > 중의 “에너지마당” 이라는 단락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 제자는 뒤이어 또 아주 길고 고통스러운 심령(心靈)의 전투를 거친 후, 6개월 후, 끝내는 또 법 속에서 분발하여 일어났다. 그는 사악한 경찰의 연속적인 구타에도 굴복하지 않고, 밤을 새우는 것, 노동박해 등 시달림을 격파했다.

그 후, 그가 법을 암송할 때면, 각종 신기한 기적(神迹)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공능(功能)을 이용하여 법을 박해한 악인을 앓아 누워 일어나지 못하게 징벌하거나, 혹은 악행을 저지르는 노동교양범의 노동개조 기한을 더 연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선악필보(善惡必報)의 법리를 보여주었다. 만약 상대방이 후회하고 잘못을 깨달으면, 다시 공능으로 이 징벌을 제거해버렸다. 그러자 이 노동교양범은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었고, 나가면 꼭 대법서적을 찾아보겠다고 말하였다.)

그 자신은 공능을 이용하여 노동하지 않으며, 늘 외계(外界)와 전화연계를 하였으며, 노동교양소에서 자유롭게 사회에 법을 실증하는 자료를 부쳐 보내기에 이르렀다. 경찰들은 오히려 부치지 않을 수 없었고, 심지어 따로 시간을 내서 그가 글을 쓰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받지 않고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제공하였다.
(이 대법제자는 편지를 부쳐 보낸 후 또 전화로 추적을 진행하여 제때에 지정된 곳에 보냈는가를 확인하였다.)

여름이 되자, 그는 수시로 찬물로 샤워를 하여 더위를 쫓는 (만약 보통 노동교양범이 노동할 때 “비준(批准)”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샤워를 한다면 아마 반쯤 죽을 만큼 얻어맞았을 것이다.) 범상치 않은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악경들도 어찌 할 도리가 없자 2년 반이라는 감옥 생활을 결속(結束)하고, 머리를 들고 철문을 걸어 나갈 수 있었다.

(3)2000년 8월,밤을 새우며 못살게 구는 사악한 전술이 끝나자, 확고한 대법제자들은 작업장에 가서 휴대용 접는 의자에 앉도록 배치되었다. 밤을 새우며 못살게 구는 박해도 그들한테는 이미 효력을 잃었기에, 이젠 밤을 새우지 않게 되었지만, 경상적으로 고음 확성기로 대법을 비방하는 문장을 방송하였다. 휴대용 접는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어떤 제자는 사악의 철야공격을 싸워 이겼다고 느끼고는, 마음 편하게 벽에 등을 기대고 휴식하였다. 그러나 뒤쪽에 앉아 있던 정의견은 가볍게 휴식하고 있는 대법제자에게 말하였다.

“아!, 온 하루 이렇게 자버린다면 너무나 아깝습니다!”

벽에 기대서 휴식하던 대법제자는 이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지금은 밤을 새지도 않는데, 빨리 좀 휴식하고 자신을 조절해야지, 그래 이것이 틀렸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였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 9개월이 지난 후에야 그는 사악의 중점박해 속에서 분발하여 정진하는 중에, 다시 이 말을 회상하면서 갑자기 깨달았다. 당시 정의견은 뭘 하고 있었는가? 무엇 때문에 온 하루 옷깃을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태산처럼 온건해 보였는가?
왜냐하면, 그의 머리 속은 전부 법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체 시간과 틈을 이용하여, 자신을 법 속에 잠기게 하였으며 대법이 자기를 다시 주조(鑄造)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악들을 눌러버리고 없애버리는 거대한 역량의 원천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악들은 그를 보면 무서워하는가? 대법제자의 마음속 법의 역량이 강대할수록, 광명이 더 강렬하며, 어둠은 자연적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사일념에서 자기를 법 속에 용해시켰기 때문에 도달한 것이다. 이 높이에서 볼 때, 틈만 있으면 “휴식” 하는 동수들을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도리를 깨달은 후, 이 동수도 이렇게 하였으며, 후에 정념으로 노동교양소를 벗어났다.

(4) 또 어떤 수련생은 정의견한테 물었다
“정법 사이사이의 틈에 무엇을 생각합니까?”

정의견은 대답하였다. “전부 법입니다.”

수련생은 또 물었다. “어느 경문입니까?”

정의견은 말했다. “어느 경문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능하게 다만 한마디 구절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제일 자주 묵념하는 한마디 구절은 —‘……본성의 일면은 왜 정법하지 않는가?’입니다. 어떤 때는 이 한마디를, 온 종일 생각하는데, 가슴에 잡념이 없어지고, 에너지 마당이 극히 강합니다.”

사부님이 정법 구결을 전해 주시기 전에, 노동교양소 1중대에서는 아주 일찍, 여러 명의 제자들이 대법을 묵념하기 시작하였다. 틈이 있을 때나, 관을 돌파할 때도, 한마디 대법이 마음속에서 끝없이 반복되었으며 광채(光彩)를 뿌렸다. 후에 이 대법제자도 법을 묵념하기 시작하였으며, 법속의 한마디 말이 그를 방조하여 일체 시간에 대한 집착을 물리칠 수 있게 하였다. 장시간 묵념을 견지할 때면 에너지 마당이 극히 강렬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때는 사악의 미친듯한 박해에 부딪쳐도 무서운 마음이 젼혀 없었고, 머리를 쳐들고 관을 넘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사악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수련생은 이전에 정의견 한테 물었었다.
“사악이 미친 듯이 때릴 때 당신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정 의견은 대답했다. “바로 정념입니다.”
(당시는 대략 2000년 초여름이었는데, 사부님의 정념에 관한 경문과 설법들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을 때이다.)

“정념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킵니까?”

정 의견은 말했다. “예를 들면, 한 단락의 경문입니다. 그것은 아주 강
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에너지 속에 있으면 당신은 무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습니다.”

대법 속에서 발산되어 나온 에너지와 위력은, 사악들이 어떻게 행패를 부려도, 신기한 대법제자로 하여금 도리어 “무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속인들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공포적인 마귀굴에서 대법제자 정의견에게 신기한 기적이 수 없이 나타난 역량의 원천이었으며, 또한 법의 위력이 무한함을 설명한다.

관건은 우리자신이 어떻게 법에 동화(同化)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일체는 바로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는 것을 설명하였다.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반복적으로 우리들에게 법 학습을 많이 하라고 가르치셨다.

“대법제자로서 정법의 일을 잘하고, 자신의 일체를 잘 원만 시키자면 법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어떻게 바쁘던지 막론하고 반드시 법을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원만의 최대의 보증이다.(《정진요지(2)》치사)”

“낡은 사악한 세력이 당신들의 사상적인 틈을 타지 못하게끔 하자면 유일한 방법이란 바로 다그쳐 법 공부를 하는 것이다.”(《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가자)

“여러분더러 수련할 수 있고 제고해 올라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럼 이 한 부의 법 속에 나는 이미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는 일체 요소를 모두 이 속에 관통시켰다. 오로지 당신이 배우기만 한다면 어떤 문제나 모두 해결할 수 있으며, 오로지 당신이 수련한다면, 오로지 당신이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럼 못할 것이 없다.”(《미국 플로리다 법회에서의 설법》)

“대법제자는 무릇 당신이 그 어떠한 하나의 형세 하에서든지, 그 어떠한 하나의 정황에서든지 당신은 모두 법 공부를 하여야 하며, 모두 자신의 동화와 제고를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되며, 모두 법 공부를 잊어서는 안 된다.”(《2002년 보스턴 법회에서의 설법》);

“무릇 어떠하든지, 오로지 법 공부를 견지하여야만 비로소 속인의 마음을 버릴 수 있고 비로소 집착을 버릴 수 있으며, 그로부터 속인중의 모든 것에 이끌려 움직이지 않는데 도달할 수 있다.”(《2002년 워싱턴 DC법회에서의 설법》)。

우주대법에 대한 확고한 정신(正信)속에서 정념이 생기며, 확고한 정념이 있어야만 정행(正行)이 있을 수 있다.

(끝)

글발표시간:2003. 9. 6

문장분류 : 호법여정
관련문장 : 전면적이고 누락이 없는 고험(考驗)속에서 걸어지나오다(1)(2)는 각각 한글 명혜망 9월 14일과 10월 2일에 있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3/9/6/5676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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