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5월2일]나는 동북 대법제자이다. 금년39세 모(某) 기업직원, 공산당원(2000년에 제명), 직장에서 입이 달린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수련 전에는 술주정, 도박, 위궤양, 신경 쇠약 등의 질병이 있었는데 법륜대법을 수련하고 나서 몇 달 동안에 불량한 습관을 다 버리고 만성적인 질병도 다 없어졌다. 진정으로 병이 없는 상태가 어떠한 것인 줄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사상 수준도 제고되었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처도 수련하는데 모(某) 상점에서 복장 재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식은 중학교 2학년인데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포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99년 7.20부터 지금까지의 삼년의 시간에 우리 가정은 (수많은 다른 가정처럼) 각종 박해를 받았다. 친척들과 친구들도 연루 되었다. 우리 집이 강씨 정치 망나니 집단에 박해 받은 사실을 공소하고자 한다.
1999년 7월 19일 저녁, 처가 외출했는데 공안에 의해 근 한달을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7월 20일 이후 새벽 3시30분쯤 공안 분국에서 갑자기 집을 수색하고 사진을 찍고 대법책과 녹음테이프, 녹음기, 홍법에 쓰는 플래카드를 빼앗아갔다. 나를 파출소에 붙잡아두고 불법적으로 24시간을 가두었다. 7.20이후 우리 집 전화는 감시되고 통제를 받았다(실은 그 전부터 감시되고 있었다). 신체적 자유가 제한되었고 외출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소환되기도 했다. 일선 경찰에서부터 재판소, 주민위원회까지 마음대로 교란했다.
1999년 11월초 수련을 견지 한다고 불법적으로 행정 구류를 15일 당했다.
2000년 2월2일 아침에 내가 베이징에 신고하러 가자 그날 저녁에 파출소에서 처를 감옥에 가두었다. 2월 9일에 악경이 나를 市 제2간수소에 가두고 핍박하였으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히고는 17일간이나 계속 괴롭혔는데 새벽 2시나 되어야 휴식할 수 있었다.
2000년 6월 6일 제1간수소에서 9명의 대법제자가 강제노역에 항의했는데 간수소 책임자인 공안국 부국장이 격노하여 9명의 대법제자들을 지하의 각각의 형사실에 가두었다(원래는 우리는 방 하나에 같이 갇혀있었고 두 명의 노교원이 감시했다). 아무 물건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범죄자들을 시켜 우리를 괴롭혔다. 나를 중간에 앉혀놓고 줄이 맞지 않으면 나의 양쪽 턱을 때리고(腮拳). 등 허리 때렸다.(打鼓 – 북을 두드린다). 새벽 두 시가 되어야 잘 수 있게 하였고, 허리를 옆으로 90도 굽히게 하였는가 하면, 실 한 올 걸치지 못하게 하였다. 양쪽 발에 족쇄를 찬 사형수들은 조금이라도 건드리기만 해도 우리들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한번은 한 죄인이 “또 연공하냐?”고 묻길래 법륜공이 어떠하게 좋다고 하니 듣지 않고는 4,5명의 죄인들과 주먹과 발길질을 하여 허리아래에 계란만큼 큰 혹이 생겼는데 며칠이 후에야 가라앉았다.
2000년 8월 13일 우리 9명 대법제자가 市노교소에 넘겨졌다(나는 불법적으로 1년 노동교양를 선고 받았다). 강씨집단의 비밀지령에 따라 8월 30일 저녁 노교소의 소장, 대장, 관교들의 묵인 하에서 3명의 죄인이 각목(대략 50mm X 50mm 되는)으로 우리를 시멘트 위에 엎어놓고 볼기를 마구 때렸다. 연공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까지 때렸다. 얼마나 때렸는지 엉덩이는 검게 멍들고 크게 부었다. 앉기도 힘들었다. 밤에는 엎드리든지 옆으로 누웠다.
2000년 1월 4일 3명의 악경이 상점에서 나의 처를 불법적으로 붙잡아 갔다. 파출소에서 처가 혼수 상태에 빠졌는데 병원에 보내 검사하니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市공안 감독은 간수소에 가두라고 명령했다. 간수소에서 악경들은 각종 고문기술과 기만 수단을 사용하였다. 며칠 씩이나 잠을 못자게 하는 사악한 수단으로 박해하고 사악의 갖은 술법으로 불법적으로 7년 형을 선고했다.
2002년 4월 하순 내가 있는 시에서 성공적으로 유선 TV에서 법륜공 진상을 방영했다. 이튿날 全市의 공안원이 모든 법륜공 수련생을 수색했다. 저녁 7시 30분쯤 일반경찰, 주민 위원회 주임과 공안국의 악경이 수색증을 들고 불법적으로 집을 한 시간이나 뒤집어 놓았다. 아무것도 못 찾더니 가면서 아침 8시에 파출소로 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간 다음 나는 집에는 더 못 있겠다 싶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내가 집을 나간지 이튼 날부터 24시간 우리 집은 감시당했으며 친척들의 전화도 모두 감시되었다. 인신의 자유는 없고 미행당하고 심문당하고, 한 목격자가 나를 보았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악경에 의해 간수소에 한 달이나 갇히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일하다 다쳐 팔에다 석고를 붙이고 있었으나 악경은 가만 두지를 안았다.
내가 집을 나서자 악경은 몆 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나를 잡으려고 했다. 9개월 동안 나는 품팔이해서 생활했는데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법공부를 못하고 연공 을 못하는 것이었다. 몸은 바짝 여위었고 자식도 친척들이 돌보아야 했으며, 그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성적도 원래의 상위였으나 중간으로 떨어졌다. 이 일체는 모두 강씨정치 망나니 집단이 조성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천천만만의 법륜공 가정의 한 일원으로 법륜공박해 추적 국제조직이 공정한 도리로 정의를 촉구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아직까지도 강씨 정치망나니 집단을 위해 힘쓰는 졸개들은 빨리 벼랑에서 발을 멈추고 공을 세워 속죄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는다면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정의의 심판, 법률의 제제이다. 그때가 되면 후회해도 늦는다.
발고;2003-05-02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cc/mh/articles/2003/5/2/4953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