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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여정 – 나의 정법(正法) 수련 여정

[명혜망] 2000년 6월 사부님의 >를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사악으로 하여금 더 이상 계속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제자로서 마땅히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해야 하며, 어차피 법(法)에서 이미 똑똑히 말하였다면 그렇다면 나는 마땅히 가서 사악을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또 한번 북경에 들어가 정법(正法)하였다.

천안문에서 한 수련생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정법(正法)을 하러 왔지, 반드시 잡혀가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의 이 말은 나로 하여금 갑자기 또 한 층의 법리를 깨닫게 하였다. 나는, “맞다. 우리는 정법을 하러 온 것이지 잡히려고 온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7월 6일 오전, 나는 한 수련생이 광장 중심에서 신통가지법을 연마하는 것을 보았는데, 나도 서슴없이 걸어가 그의 옆에 앉아서 수인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함께 한 동안 가지(加持)하였고, 차 한대가 우리 몸 뒤에 온 것을 들었다. 경찰은 차에서 내려 걷어차고 때리고 난 후 우리들을 경찰차에 끌고 올라갔다.

차에 오른 뒤. 경찰은 또 차창문의 커텐으로 가리고 우리를 폭력으로 구타하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보면서 선(善)의 힘으로 그의 악의를 녹였는데, 얼마 안되어 그는 때리지 않았다. 그 후 경찰은 또 광장에서 일부 동수들을 붙잡았고, 우리들은 천안문 공안분국에 보내졌다. 우리 2, 30명의 수련생은 한방에 갇혔다. 조금 지나서 50여 세의 남자경찰과 30여 세의 여자경찰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법공부를 몇 년간 했으며 어떤 체험이 있었는가 한 사람씩 물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전혀 대법을 이해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으며, 어투를 통하여 우리가 어느 고장의 사람인가를 분별하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가야 한다.’ 막 이 생각이 나오자 내 앞에 서 있던 수련생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걸어서 나왔으며, 복도에 있던 경찰은 마치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대문 옆에도 경찰이 있었지만, 바로 이렇게 나는 대문에서 아주 침착하게 걸어나왔다.

이튿날 나는 또 천안문 광장에 왔는데, 그 날은 전국수험생들이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나는 광장에서 아주 많은 동수들을 만났고, 여러분들과 체험을 이야기하였다. 수련생이 말했다. “오늘 우리도 시험보러 온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들 저녁 7시에 국기를 내릴 때 함께 현수막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거의 7시가 될 때, 모두들 계속 금수교(金水橋) 앞에 도착하였는데, 이 때에 갑자기 두 대의 경찰차가 왔다. 수련생은 나에게 물었다. “경찰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알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할 것이고 우리의 일체는 모두 공개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두 대의 경찰차는 지나갔다. 한 수련생이 걸어와서 나에게 그의 가방 안에 현수막이 있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그를 도와 꺼내라고 하였다.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침착하게 지퍼를 열어 현수막을 꺼냈다. 금수교 앞에서 동수들과 함께 국기 하강식을 구경하고 있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현수막을 펼쳤다. 사악은 발견하고 우리를 향하여 덮치고 현수막을 빼앗았다. 우리는 손을 떼지 않았고 기타의 동수들도 계속 현수막을 펼쳤다. 같은 시간에 몇 개의 현수막이 금수교 앞에 펼쳐졌지만 사악은 막무가내였다. 그 당시의 장면은 위엄이 있고 장관스러웠다. 10여 분이 지속되어서야 비로소 두 대의 이웨이커 경찰차가 왔으며, 우리를 붙잡아 차에 올리고 혹독하게 우리들을 때렸다. 모두들, ‘법륜대법은 좋다(法輪大法好)! 법륜대법은 정법이다(法輪大法是正法)! 사부님에게 청백을 돌려달라(還師父淸白)! 대법에게 청백을 돌려달라(還大法淸白)!’고 높이 외쳤다. 나를 붙잡아 경찰차에 올릴 때, 나는 차 문의 손잡이를 꼭 쥐어잡고 차에 오르지 않았다. 악경은 또 혹독하게 나를 때리고 무선전화기로 나의 손을 찍었으며 나를 바닥에 때려눕힌 후 경찰차에 끌어올렸다. 그날 국기 하강식을 구경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악경들이 어떻게 선량한 백성들을 잔혹하게 때리는가를 목격하였다.

천안문 분국에 잡혀 갔을 때 숫자를 세어보니, 70여명의 대법제자가 있었다. 가장 나이 많은 이는 70여세이고 나이가 가장 어린 이는 젊은 여수련생이 데리고 온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였다. 우리 모두다 함께 경문을 외웠으며, 우리들을 감독하고 있는 무장경찰에게 법을 알렸다. 우리는 인원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경찰들은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몰라 할 수 없이 상급에 알렸다. 나중에는 차로 우리를 나누어 북경시의 각 파출소에 보냈다. 나와 다른 두 동수들은 함께 한 파출소에 보내졌다. 경찰은 한 밤중에 우리들의 성명과 주소를 심문하였다. 나를 심문하던 경찰은 아주 공손하였으며 나도 평온하게 그에게 도리를 이야기하였다. 담화 중에 그는 나로 하여금 아직도 나오지 못한 동수들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성명과 주소를 말하였다. 그는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어찌하여 말했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돌아가서 기타 동수들도 북경에 와서 정법하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그 당시 나의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는 것임을 아주 단호히 믿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오직 대법에 부합되기만 하면 반드시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때는 이미 한 밤중으로 그는 나에게 의자에 누워 휴식하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 나를 감독하던 보안이 물을 길러 나갔는데 나는 기회가 온 것을 보고서 서슴없이 걸어나갔다. 바로 이렇게 나는 기차에 앉아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후 몇몇 동수들에게 북경의 정황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가기로 결정하였다. 나도 실행한 정도가 미치지 못하다고 여겨졌다. 나는 우리가 이전에 연공할 때 쓰던 길이 4미터 넓이 1미터의 큰 현수막을 찾아냈다. 또 한번 천안문으로 향하였다. 한 수련생은 나와 함께 있었다. 이튿날 정오 나는 또 한번 광장에 섰다. 나는, ‘현수막을 어디에서 펼치면 효과가 제일 좋을까’하고 생각하였다. 머리를 들어보니 천안문성루였다. 맞다. 성루 위에서 펼치면 가장 좋다. 이 때 일부 인간의 관념과 나쁜 사상이 머리 속에 반영되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그러나 나는 아주 빨리 이것이 교란임을 의식하였다. 그것은 내가 가장 바른 일을 하고 가장 좋은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하는 이 일을 교란하는 일체가 모두 마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생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성루의 문 터널 안으로 걸어갔다. 걸어가서 보니, 어떠한 물건도 성루에 지니고 가지 못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현수막은 또한 너무나 커서 작은 주머니에 담아야 하였다. 어떻게 할까? 나는 낙심하지 않았고 가방과 > 책을 동수의 손에 놓았다. “제가 먼저 표를 사고 올라가 볼 터이니 당신은 아래에서 저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나는 표를 사고 안전검사를 통과하였다. 갑자기 나는 이 때 또 난간 옆에 가서 가방과 책을 가져오면 되잖은가?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철조망을 건너서 난간 옆으로 걸어가서 동수의 손에서 가방과 책을 가져오고 몸을 돌려 성루를 향하여 걸어갔다. 철조망을 건너는데 수련생이 뒤에서 큰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머리를 돌려 그를 보니 그는 나를 향하여 손을 흔들면서 내가 성공하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전반 과정 중에 그렇게 많은 검사원들 중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나는 성루에 올랐고 검사원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나를 격려하는 것 같았고 나의 손에 있는 손가방을 주의하지는 않았다.

성루에 도착하여 성루 안에서 한 바퀴 돌고 중문으로 걸어나왔다. 눈앞은 넓디넒은 천안문광장으로 성루 옆에는 초모(草帽)를 쓴 무장경찰이 한 줄 서있었다.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가방을 열고 현수막을 꺼냈다. 현수막이 너무 컸으므로 나는 혼자서 펼칠 수가 없었다. 한 쪽을 한백옥(漢白玉) 손잡이에 감고 나는 손으로 다른 한 쪽을 잡았다. 이 때 나의 눈 앞에 서있던 무장경찰이 내 손안의 현수막을 빼앗았다. 나는 손을 놓지 않고 그 곳에서 버티었다. 몸 뒤에서 몇 명의 사복경찰이 덮쳐왔고 나에게 주먹과 발길을 마구 가하였으며 나를 끌고 내려왔다. 성루 안의 한 방안에 끌고 가서 나에게 현수막에 무엇을 적었는가 물었다. 나는, “법륜대법은 좋다(法輪大法好)”라고 말했다. 나에게 어느 고장 사람인가 물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한 주먹으로 내 얼굴을 때려 나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나의 머리는 명백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한 일은 가장 바른 일이므로 나는 명명백백하게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곧바로 일어섰으나 그들은 또 한번 나를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나는 또 한번 일어섰다. 그들은 한참 때리다가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더니 엘리베이터로 데리고 내려갔다. 하나의 방안으로 데리고 가서 안에 있던 경찰에게 나를 감독하게 하였다. 이 때 나의 얼굴은 이미 맞아 변형이 되었고 높이높이 부어 있었다. 한참 지난 뒤 경찰차 한대가 와서 나를 또 천안문분국으로 데려갔다. 들어간 후에 경찰이 내가 맞은 모양을 보더니 나에게 몇 마디 물었으나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나를 방 뒤에 있는 골목에 데려다 주었다. 이 곳에는 이미 아주 많은 동수들이 갇혀 있었고 두 사복경찰이 작은 문 앞에 앉아서 보고 있었다. 나는 골목 안의 큰 철문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다가갔는데 두 명의 사복경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시멘트대에 올라 큰 철문 위로 기어올라서 나왔다.

나온 뒤 나는 수련생이 아직 광장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 그를 찾으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얼굴은 이미 아주 높이 부어 있었고 또 붙잡힐까봐 걱정하였다. 다시 생각하니, ‘나는 정정당당하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여, 나는 그를 찾으러 가서 아주 순조롭게 찾았다. 저녁에 우리들은 천안문 앞의 한 작은 여관에 투숙하였다. 한 밤중에 몇 명의 경찰이 갑자기 뛰어들었고 나를 붙잡아 방 뒤로 데려갔다. 나는 수련생이 복도에 있는 것을 보았다. 원래 여관의 사모가 경찰에 신고하였던 것이다. 경찰은 우리들을 대책란(大柵欄) 파출소로 압송하였다. 내가 여관에 투숙할 때 기록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주 빨리 대련 주(住)북경반의 경찰에 통지하여, 경찰은 와서 나에게 수갑을 채워 주북경반의 여관으로 압송하였다. 이튿날, 한 노(老)민경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의 일을 다 마무리 지었는가?” 나는, “그렇다. 끝마쳤다”고 말하였다. 그는, “나는 당신들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고 있다. 나를 따라 돌아가자”고 하였다. 나는, “좋다”고 말하였다. 7월 12일 나와 수련생은 함께 노민경을 따라 대련으로 가는 기차에 앉았다. 나는 돌아간 뒤로 나를 마주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수시로 떠날 수 있었지만 그 당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렇게 많은 동수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고 사부님은 이미 우리들을 위하여 너무나 많디많은 것들을 감당하셨다. 나도 가서 일체 고난을 마주할 것이다. (그 당시 아직 진상을 알려야 함을 몰랐다.) 기차에서 나는 조용히 >을 읽었다. 이튿날 아침 차에서 내린 후 노민경은 택시를 불러 우리들을 대련계독소(현재는 세뇌센타로 되었음)로 보냈다.

계독소에 도착한 후 내게 기록을 하게 하고 내가 가진 물건을 모두 내놓으라고 하였으며 내게 있는 50여 원의 돈을 모두 걷어갔다. 또 나에게 책을 바치라고 하였지만 나는 견결하게 바치지 않았다. 나중에 노민경이, “내가 집에 가지고 가서 보관할 테니, 당신이 나온 뒤에 나에게서 가져가시오”하고 말하고 나서 전화번호를 남겼다. 나는 비로소 책을 그에게 주었다. 기록한 후 한 남자 간경이 나를 4층으로 데려갔는데 이 곳에는 이미 20여 명의 수련생들이 있었다. 매 사람마다 모두 접이식 의자에 앉아 손을 뒤로 하도록 하였는데 나도 따라서 하라고 하였다. 후에 우리들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하였다. 이 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는 제자, 금강불파(金鋼不破)의 위대한 신(神)이다.”(>) 나는 후다닥 일어나서 연공하기 시작하였고, 바로 간경이 뛰어다니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가 찾아와서 나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높이 외쳤다. “내가 어쨌단 말인가? 당신들은 무엇을 믿고 이렇게 나를 대하는가?” 악경은 그 당시 놀라서 멍해졌지만 이어 또 악념이 생겨 나를 한 작은 방안으로 끌고 갔다. 수갑으로 나를 철침대에 채워놓고 악독하게 나를 때리고 전기충격기로 내게 전기충격을 주었다. 나는 큰 소리로 사부님의 경문 >와 >를 외웠다. “진수제자들이여. 나는 당신에게 수불수도(修佛修道)하는 법을 가르쳤지만, 당신들은 속인 중의 이익이 손실됨으로 하여 도리어 나에게 고생스럽다고 하소연할 뿐, 자신이 속인 중에서 집착심을 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고민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수련인가? 속인의 마음을 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이 진정으로 속인을 초월하는 데로 향해 나아가는 반드시 넘겨야 할 고비이다.” …… 여러분들 모두 일어나기를 희망하였고 경찰들 모두다 마음속으로 선념(善念)이 일어나기를 희망하였다. 나의 두 눈은 눈물로 충만되었다. 그러나 악경들은 오히려 더욱 악독하게 나를 때렸고 수건으로 나의 입을 묶었으나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몸부림을 쳐서 나온 후에 더욱 큰 목소리로 외웠다. 그 당시 전반 층집이 마치 모두 진동된 듯 하였다. 악경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를 때렸는데 지쳐서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두려워했다. 나 한 사람을 방안에 가두고 더 이상 나를 때리지 않았다. 나는 계속 큰소리로 외웠으며 마지막까지 외웠다. 악경 장영귀(莊永貴)가 들어와서 내게 물었다. “다 외웠는가?” 나는 “다 외웠다”고 말했다. 그는 몇 명의 간경과 함께 나를 5층으로 압송하였다. 악경은 나의 걸음걸이가 아주 가벼운 것을 보고 아주 달가와하지 않았다. 소호(小號)의 문 앞에서 내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대법제자로서는 오직 사부님께만 무릎을 꿇을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견결히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들은 또 주먹과 발길질을 하여 나를 바닥에 쓰러뜨린 후 나를 소호(小號)로 끌고 갔다. 내가 연공할까봐 두 손을 바닥의 철고리 위에 채웠다. 악경들은 내게서 일이 생길까봐 그들은 책임을 밀었다. 그리하여 한사람 한사람씩 나에게 생수 한 병씩을 가져와서 좋은 말을 하였다. 그들도 어찌할 수 없이 위쪽의 명령을 집행할 뿐이다고 말했다. 나는 선의(善意)로 그들에게 홍법을 하고서 단식과 단수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나를 어쩔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대련개발구의 경찰로 하여금 나를 개발구 간수소로 압송하게 하였다.

대련개발구 간수소 내에서 나는 계속 단식과 단수를 하였고 연공을 견지하였다. 내가 감옥규정을 외우지 않자 범인은 또 나를 때렸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굴복하지 않자 그는 할 수 없이 교관에게 이를 반영하였다. 교관은 외우지 싶지 않으면 외우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15일동안 단식과 단수를 하면서 두 번 음식물 주입을 당하여 신체는 극도로 허약하고 야위었다. 나는 한 젊은이로서 나이가 들고 노쇠감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아주 강렬하게 석방을 요구하지 않음으로 하여 후에 또 물을 마시고 밥을 먹었다. 또 15일이 지났다. 내가 한창 범인들에게 홍법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나를 불러내어 내게 교양판결서 한 장을 주었다. 기간은 200년 7월부터 2003년 1월까지였다. 모두 2년 반이었다. 나는, “내게 잘못이 없으니 나는 서명을 거절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말했다. “당신이 서명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들은 여전히 집행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나는 2000년 8월 13일 대련교양원으로 압송되었다.

교양원에 도착한 후 며칠동안 나는 감히 연공을 하지 못하였다. 후에, ‘나는 연공인이므로 어디에 가든지 모두 마땅히 연공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한 밤중에 일어나 베란다에 앉아서 가부좌를 하였다. 사방원(四防人員, 노동개조범을 감독하는 노동개조원)이 발견하고 나를 베란다에서 끌어내어 나로 하여금 잠을 자게 하였다. 정오에 교실에서 나는 또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하였는데 사방원은 나를 더 이상 감독할 수 없게 되자 나를 교관에게 맡겼다. 교관은 악독한 언어로 나를 모욕하고 나를 위협하면서 나에게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연공하는 데에는 잘못이 없는 것으로 이는 나의 기본권리다”고 하였다. 후에 한 번은 사람이 너무 많아(모두 150여 명 중 오직 3명만이 대법제자임) 큰 마당 안의 바닥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다리 하나를 틀었다. 사방원이 걸어와서 내게 다리를 내리라고 하였지만 나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것은 그의 무리한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손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나는 분개하여 다른 한 쪽 다리도 틀어 올리고 가부좌하고 연공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나의 다리를 내려놓으려고 하였으나 내려놓지 못하자 부대대장 쵸위(喬威)에게 보고하였다. 이 사람은 아주 사악하여 두께가 1촌이나 되는 고압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덮쳐왔다. 나의 머리를 향하여 연속하여 전기충격을 하면서 때렸으나 나는 계속하여 다리를 틀어 올리고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150여 명이 보고 있으며 나는 대법의 형상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의지가 견강해야 한다. 후에 머리는 맞아서 피가 솟아났다. 그들 몇몇 사방원은 나를 2층의 소호로 끌고 갔다. 나를 가둔 후 쵸위가 물었다. “또 연마할 것인가?” 나는 다리를 올리고 또 연마하기 시작하였다. 악경 쵸위는 화가 나서 사방원으로 하여금 나를 끌어내게 한 후 시멘트 바닥에 놓고 누르게 하였다. 그와 다른 한 악경 순잰(孫健)은 모두 고압 전기충격기를 한 대씩 들고 내게 전기충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상반신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다른 한 사람은 하반신에 전기충격을 가하였다. 나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 그들은 전기를 모두 쓸 때까지 하였고 나는 끝내 버텨냈다고 생각하고 방임하게 되었다. 후에 쵸위가 말했다. “또 두 대 가져오라!” 나는 조금 겁이 나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였다. 나는 잠시 연공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또 나를 소호에 가두었다.

나는 단식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7일간 가두기고 결정했었는데 4일간만 가두고 나를 1대대 4중대에 배치하여 가장 더럽고 가장 힘든 일을 시켰다. 매일 아침마다 6시에 공사장에 도착하여 벽돌을 잡았는데 매일마다 수만 번씩 허리를 굽혀 반드시 신속히 벽돌을 잡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 가마위로 전해지게 해야 했다. 그렇게 못하면 경미한 사람은 욕을 먹고 중한 사람은 매를 맞았다. 발 아래는 가마의 고온에 구워지고 손 안은 뜨거운 날벽돌이었다. 머지 않은 시간에 나의 두 손에는 달여져 몇 개의 구멍이 났는데 아주 아팠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 일하기 전에 천조각을 찾아 손가락에 감았다. 고온, 가루먼지, 소음, 초강도의 체력활동으로 하루가 지나면 이미 흙사람이 되었고 온 몸은 아파 길을 걷기도 힘들었다. 가장 간고한 시기에 대장은 나를 찾아 담화를 하였는데 나에게 보증을 쓰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나는 절대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3개월을 버텨냈다. 가장 간고한 시기에는 항상 사부님의 >중의 “마음의 고달픔(苦其心志)”을 외웠다.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거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몸 고생을 타산치 말지니, 맘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 고비마다 다 넘겨야 하거니, 도처에 모두 마(魔)로다. 모든 고생을 일제히 항복받으면, 어떻게 사는가를 볼지라. 세상의 고생을 다 겪고서, 인간을 벗어나니 부처로다.(圓滿得佛果 吃苦當成樂. 勞身不算苦 修心最難過. 關關都得闖 處處都是魔. 百苦一齊降 看其如何活. 吃得世上苦 出世是佛陀)” 후에 교양원은 단호한 대법제자들을 모두 3대대로 이동시켜 통일 관리하였으며 콩을 줍고 마댓자루를 메는 일을 시켰다. 한 번은 검사단이 교양원에 와서 검사를 하였는데 대법제자들이 참 말을 할까봐 두려워 우리들이 모두 창고에 숨어 일하도록 하였다. 우리는 모두 함께 교류하여, ‘우리는 어떠한 죄와 잘못도 없다. 더 이상 이렇게 감당해 나가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대법의 청백함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무조건 우리를 석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모두들 파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튿날(2000년 12월) 우리는 거의 전체 파업하여 (오직 몇 명만이 인식하지 못하였음) 교양원 영도가 상급에 반영하여 우리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파업이 하루동안 지속되었으며 교양원은 우리 7명(그들은 선도자로 여겼음)을 또 1대대로 보냈고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4대대에 보냈다. 우리는 계속 파업을 견지하였는데 대장이 나를 찾아 담화하였다. 말하기를, “당신도 여기서 공짜로 밥을 먹을 수는 없다”고 하였다. 나는, “누구도 이곳에서 공짜로 밥을 먹지 않았다. 바로 장쩌민 정부가 우리들을 강제로 이곳에 가두었다. 가장 고생스럽고 가장 힘든 일을 나는 모두 했다. 우리들은 고생이 두려워가 아니라 우리는 바로 이런 형식으로 무조건 석방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후에 우리는 함께 보내진 동수들과 견지해 나갔다. 우리는 그 당시 죽어도 복종하지 말자고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장은 달갑지 않아서 각종 방법을 다하여 우리를 동요시켰다. 후에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사악은 마치 강대한 것처럼 꾸미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가 앞으로 전진한다면 사악은 양보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앞으로 전진하지 않는다면 그는 방법을 생각해내어 우리를 동요시키고 박해할 것이다.” 그는 나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고 물었으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큰 마당에서 연공해야 한다.” 정오가 되어 보통 노동개조범들은 모두 줄을 서서 밥먹기를 기다렸고 몇 명의 대장은 큰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나와 수련생은 한 사람이 앞에 한 사람이 뒤에 서서 큰 마당으로 와서는 바닥에 앉아 수인을 하고 가지하기 시작하였다. 대장이 보더니, “큰일났다. 법륜공이 또 연공하기 시작한다”고 하면서, 덮치더니 나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1대대장이 내게 뺨을 여러 대 갈겼고 사람을 불러 나를 윗 층으로 끌고 올라갔다. 그 후 한 노동개조범을 두어 나를 감독하게 하고서, 나가서 일하라고 말라고 대장은 말하였다.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정말로 연공하고 싶으면 방안에서 하고 큰 마당에는 나가지 말라.”

이렇게 며칠이 지나서 나는, ‘기왕 나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계속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저녁에 꿈을 꾸었다. 사부님께서 내게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있는 방안에서 대문으로 나가려면 5개의 보초를 지나야 한다. 이 때 사부님께서 마치 또 내게 실패율은 오직 1/1000일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는 나를 놓고 말할 때 또 한번의 생사를 내려놓는 검증이었다. 아울러 나는 나간 뒤에 시시각각 붙잡힐 위험을 마주하고 있어야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부님께서 내게 알려 주신 길이므로 나는 반드시 단호히 걸어가야 했다. 나는 깊이깊이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것은 영원히 모두 가장 좋은 것임을. 그리하여 나는 결심을 내렸다.

12월 28일, 오전 8시가 넘자 대장들은 모두 출근하였다. 나는 오늘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어 마음속은 신심으로 충만되었다. 그 당시 날씨가 너무 추워, 2층의 층계보초(보초를 서는 노동개조원)와 1층의 층계보초는 모두 방안에 들어가서 난로를 쬐고 있었다.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내게 수방(水房)에 가서 쓰레기를 버리라고 하였다. 나는 정말로 얻기 힘든 기회임을 알고 서슴없이 층계를 내려와 문을 밀고 나갔다. 마침 두 명의 대장이 한 무리의 노동개조범들을 데리고 일하러 공사장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따라갔다. 대장만이 데리고서 나갈 수 있는 작은 마당을 걸어서 나왔다. 이 때에 제일 뒤에서 걷던 노동개조원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하러 나간다”고 했다. 그는 내가 법륜공을 연마하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일을 하지 않쟎아?” 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옆에 있는 대장에게 내가 연공하여 매를 맞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바로 이렇게 나는 또 두 번째 보초를 지났다. 큰 마당에 이르자 그들은 공사장에 가서 일하였으나 나는 그들을 따라 가지 않고 큰길의 정문으로 바로 뛰어갔다. 마음속으로 담담하였다. 그것은 내가 어떠한 죄도 없고 잘못도 없기 때문이며, 이 곳은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몇 명의 대장이 길 옆에서 눈을 쓸고 있었는데 역시 마치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주 빠르게 큰 대문에 도착하는 순간 한 대장을 보았는데, 그는 내가 막 왔을 때 연공한다고 나를 욕한 적이 있었으므로 마음속으로 두려웠다. 또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고서 걷기만 하고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몸을 돌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렇게 나는 큰 문을 나오자 마음속으로 아주 흥분이 되었다. ‘아, 나는 나왔다!’ 아마도 환희심이 나왔기 때문인지 몸 뒤에서 한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이! 어이!……”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었다. 뛴 것이 머지 않아 또 냉정해졌다. 나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하여 대략 20분간을 걸었는데 경보소리만 들었을 뿐 누가 쫓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나는 정정당당하게 4개월 반이나 나를 감금시켰던 대련교양원을 걸어나왔다.

후에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교양원은 화가 나서 대련공안국에 신고를 하였으며, 8일이라는 기간을 허비하면서 시 전역에 걸쳐 대수색을 하였다고 한다. 나의 친척과 친구집에 가서 공갈하고 캐물었으며 또 몇 사람을 북경에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에 나는 이미 동수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를 하고 있었다. 나오고 난 후에 나는 >을 보았다. 내가 나오게 된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방금 내가 말하였다. 나는 이 일체를 승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한 차례 사악을 포함하여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려고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내가 한 것은 단지 시종일관, 교양하는 시간을 포함하여 사악이 내게 강제로 가한 죄명을 승인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나오고 난 후 나는 며칠동안 책과 의 자료를 보았으며 일부 동수들을 찾아보았다. 어떤 이들은 북경에 갔다가 방금 돌아왔는데, 우리들은 함께 몇 차례의 작은 법회를 열었다. 모두들 서로 촉진하고 공동으로 제고하였다.

구정이 되어 한 수련생이 북경에 가서 정법(正法)하자고 제의하였다. 나는 백인수련생의 >를 보았는데, 그 중의 한마디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반드시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사악을 소멸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4번 째로 북경에 들어가 정법하기로 결정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 우리들 일행 십여 명은 새 옷을 입고 약속이나 한 듯 북경으로 들어가는 열차에 앉았다. 마치 설을 쇠러 가는 것처럼 우리들은 모두 아주 홀가분하였다. 초하루 날 아침에 우리는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 당시 우리들은 전날에 광장에서 분신자살사건이 발생한 것을 몰랐다. 다만 광장에 경찰이 가득한 것을 보았을 분이다. 대략 9시에 나와 수련생은 장안(長安)거리에서 “법륜대법은 좋다(法輪大法好)”라는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기타 동수들도 잇따라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우리들은 함께 천안문 공안분국에 잡혀갔다. 그 당시 4, 50명의 수련생들이 모두 철조망 안에 갇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 경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는다는 것은 연약한 것이 아니며, 거스르는 것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 “참음이란 이미 인간성이 없고 정념이 없는 그런 사악한 생명의 무절제한 악행에 대한 무제한의 용인(容忍)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사람을 놓아줄 것을 요구하였다. 무장경찰이 철문을 열고 안으로 사람을 들여보낼 때, 우리들은 문 앞으로 밀쳐나갔으며 한 단락 시간을 굳세게 버텼다. 그들은 막을 수 없음을 보자 우리들을 골목으로 유인하였다. 내가 들어가 보니 속에는 무장경찰들이 이미 손에 철곤봉을 들고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의 장면은 생각만 하여도 알 일이다. 우리 몇십 명의 대법제자들은 거의 모두 혹독하게 매를 맞았으며 남자 동수들은 맞아서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장면은 극도로 비장하였다. 나도 몇 명의 경찰에서 맞아서 쓰러진 후 발에 밟히고 수갑이 채워졌다. 그 후 그들은 큰 버스로 우리들을 북경 교외에 있는 핑구현(平谷縣) 간수소로 압송하였다. 간수소에서 우리들은 전부 단식과 단수를 하면서 석방을 요구하였다. 악경들은 범인에게 지시하여 우리들에게 강제로 음식을 주입시켰으며, 매 사람마다 부동한 정도의 혹독한 매를 맞게 하였다.

그 당시 우리 12개 전국 각지의 남자 대법제자들은 한 방에 갇혔다. 음식을 주입 당하던 첫 날, 나는 모두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악을 모조리 제거함은 법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개인적인 수련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은 오늘 법을 바로 잡으려 온 것으로 개인수련이 아니다. 사악이 우리 매 사람에게 가한 박해는 바로 대법에 대한 박해이므로 우리는 그를 모조리 제거할 책임이 있다. 모두들 나의 인식에 동의하였는데 한 동수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후에 그는 다른 감방 안으로 이동되었다. 이어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더 이상 이렇게 소극적으로 감당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만약 사악한 것이 이미 구원할 수 없고 필요 없는 지경에 도달하였다면 가히 부동한 층차의 각종 방식을 취하여 제지시키고 제거해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는데 이용한 나쁜 사람, 그들은 이미 인간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인류 이 한 층의 방식으로 그들을 제지해야 하며 그들의 사악을 통제하고 제거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건의를 제기하였다. “우리 단체로 심문을 거절함으로써 그들이 우리들에 대한 박해에 항의를 표시하자.” 바로 이렇게 우리는 1월 27일 정오에 모두 심문을 거절하였고 우리들 중 어떠한 사람을 불러내어도 우리들은 모두 나가지 않았으며 핑구현의 공안국장을 만나 정황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뛰어들어와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려고 하였으며 우리들은 함께 철문을 막았다.

그들은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우리와 담화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더 이상 범인을 이용하여 무고하게 사람을 때리지 말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을 때린 범인들에 대해 처벌하면 우리들은 나가서 당신들과 담화할 것이다.” 성이 가(賈)씨인 소장이 그럴듯하게 말했다. “우리 이곳에서는 사람을 때리지 않는데, 당신은 누가 사람을 때렸는지 보았는가?” 우리는 그의 위선적인 모습과, 아울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았다. 함께 >중의 >을 외웠다. “살아서 구함 없고 죽어서 남김 없네. 망념을 다 버리니 부처 수련이 어렵지 않도다.(生無所求 死不惜留, 蕩盡妄念 佛不難修)” 그들은 이 방법이 이루어지지 않자 나를 위협하였다. “당신이 선도자이니 당신은 기다려라. 나는 누구도 처리하지 않고 당신에게만 형을 내릴 것이다.” 나는 그를 향하여 웃었고 조금도 그를 두려워하는 개념이 없었다. 바로 이렇게 이 하루 동안의 우리의 거동은 모든 사악을 경악케 하였다. 원래 그들의 눈에는 대법제자가 모두 가장 업신여기기 좋은 사람으로 보였는지, 그들은 우리들을 어떻게 하고자 하면 어떻게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하루 동안의 거동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틀렸다!”고 알려주었다.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참는다는 것은 연약함이 아니며, 더욱 거슬리는 것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다”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법이 없자 저녁에 대책을 상의하러 갔다.

이튿날 한 성명을 알 수 없는 공안국장이 왔고 우리들은 선의(善意)로 그에게 이 곳에서 사람을 때리는 정황을 반영하였다. 그는 말로만 우리를 도와 처리하겠노라 대답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그에게 전혀 성의가 없음을 알았다. 단지 우리를 속여 나가게 하려고 할 뿐이었다. 우리도 더 이상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들 몇몇 영도마저 철수하였으며, 우리들은 그들이 아마도 진일보한 행동을 가하리라고 의식하게 되었다. 과연 한 단락 시간이 지나자, 복도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되지 않아 한 무리의 무장경찰들이 천근정(千斤頂), 지레, 목판, 괭이를 가지고 문 앞으로 뛰어와 강제로 문을 부수기 시작하였다.

이 시각 우리는 이미 생사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모두들 >을 외우고 서로 고무 격려하였다. 두 손으로 감방문을 꽉 막았고 악경은 감히 고압 전기충격기로 우리들의 손에 전기충격을 가하였다. 나무몽둥이로 우리들의 손을 때렸는데 어떤 수련생은 맞아 손이 파열되었고 맞아서 얼굴은 피를 흘렸다. 모두들 여전히 견지하였다. 이 때에 우리들은 이미 5일째 단식단수하고 있었다. 십여 명의 무장경찰은 하루의 오전을 꼬박 썼고 지쳐서 온 얼굴에 땀을 흘렸다. 나중에 안으로 여는 철문이 지레대질에 의하여 열려 잡아 당겨지자 그들은 덮쳐 들어왔다. 우리 11명의 모든 대법제자에 대해 마구 때리자 어떤 수련생은 그 당시 맞아서 기절하였다. 뒤를 이어 우리들은 모두 수갑이 채워진 채 풍장(風場) 안으로 끌려갔으며 또 우리 모두 족쇄가 채워졌다. 우리는 혹독하게 맞기 시작했으며, 한 악경이 나에게 채운 아주 꼭 죄인 수갑을 힘껏 당겨 나는 아파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발로 혹독하게 수갑을 밟았다. 수갑이 나의 손목으로 들어갔다.(지금도 상처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또 한 번 일어났지만 어깨 부위로부터 위로 마비가 오기 시작하였으며 머리에까지 마비가 되려고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념이 나왔다. ‘나는 신이다. 이렇게 사악에 박해 당하여 죽을 수는 없다!’ 그러자 “쏴”하고 마비감이 없어졌다.

이 때에 한 파출소의 경찰이 나를 심문하려고 하여 길을 갈 때에 나는 사부님께서, “지나간 1년 동안 수련생 자신의 업력(業力), 법에 대한 인식 부족, 난(難) 속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 등등은 모두 사악한 것에 의해 박해가 가중된 주요 원인이자 또한 사악한 것이 진정으로 법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구실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나는 자신을 대조해 보면서 생각하였다. ‘또 어느 한 점을 하지 못하였는가?’ 자신에게 아직도 아픔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진정으로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아냈다. 심문실에서 악경은 또 발로 족쇄를 짓밟고 손으로 나의 수갑을 비틀면서 나에게 성명과 집주소를 대라고 하였다. 나는 그를 담담하게 보면서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동안 괴롭히다가 내가 움직이지 아니함을 보고서, 할 수 없이 그만 두고 나를 돌려 보냈다. 풍장(風場)에서 악경은 범인을 이용하여 계속 동수들을 박해하였다. 나도 끌려나갔다. 옷을 잡아당겨 나의 머리를 덮어씌우고는 고무몽둥이로 나의 뒷등과 둔부를 혹독하게 격타하고 때리면서 나에게 밥을 먹도록 핍박하였다. 나는 이 때에 오직, ‘나는 신이다. 신은 생사를 내려놓는다. 신은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는 한 가지 생각만 있었다. 내가 소리를 한 마디도 내지 않자 범인들은 아주 놀라 옷을 걷어올리고 나의 얼굴을 보았으나 내 얼굴은 평온하였다. 범인은 나에 대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나를 때리지 않았으며 또 다른 동수들을 때리러 갔다. 기타 10명의 남자 동수들은 충분한 정념(正念)으로 대하지를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감당함으로써 모두 버텨 내지 못하였다. 그 당시 나는 그들이 맞을 때 정념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웠다. 그들은 모두 핍박에 의해 물을 마셨다. 그러나 이튿날 그들은 또 단식을 하였다. 나는 이를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아주 기뻤다. 그것은 이곳의 사악이 곧 우리들의 단체 정념 아래 철저히 소멸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어느 수련생이 천목으로 한 개의 큰 마의 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과연 6일째부터 시작하여 동수들은 계속 풀려났다. 나도 12일만에 다시 말하면 정월 12일에 다른 동수와 함께 풀려났다. 나를 심문하던 경찰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젊은이는 정말로 완고하구만.” 나는 이것이 그의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탄복임을 알고 있었다.

저녁에 대련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샀고 대기실에서 의외로 대련의 동수 2명을 만났다. 그녀들은 내게 현수막을 펼치러 왔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고 감히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들에게 우리들은 어떻게 했는가를 말했는데 그녀들도 이렇게 헛걸음을 할 수는 없다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매표소에서 표를 환불하였다. 나도 생각하였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녀들을 만나게 되었는가? 내가 감히 또 한번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는 표를 환불하고 그녀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하였다. 저녁에 우리는 한 호텔에서 투숙하게 되었는데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신분증이 없었으나 호텔의 경리는 우리들이 아주 성실한 것을 보고 동의해 주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 세 사람은 또 함께 천안문광장으로 왔으며 국기를 올릴 때 그녀 두 사람은 현수막을 펼쳤다. 그 당시 내 손에는 현수막이 없었으므로 또 나서지 않았다. 눈을 훤히 뜨고 그녀들이 잡혀가는 것을 볼 때 마음속은 알 수 없이 괴로왔으며,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대련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 나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 때문에 괴로웠는가를 알게 되었다. ‘동수들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도 나는 오히려 현수막이 없다는 구실로 나서지를 못하였는데 나는 자아를 모조리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 또 몇 명의 동수들이 북경에 가고 싶어하였지만 조금 장애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당신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리하여 돌아와서 이틀이 지난, 정월 15일에 나는 또 한 번 북경으로 갔다. 우리는 모두 5사람으로 4명은 젊은 남자, 한 명은 젊은 여자였다. 정월 16일 아침 차에서 내린 후 곧바로 천안문에 갔다. 도착하였을 때 국기 게양식을 보게 되었다. 국기가 절반 올라갔을 때 나는 모두들 준비가 잘 된 것을 보고 “진·선·인(眞·善·忍)” 현수막을 가지고 경계선을 건너 걸어들어가 얼굴을 여행객을 향하고서 현수막을 펼치고 높이 외쳤다. “법륜대법은 좋다(法輪大法好)!” 기타 세 명의 남자 동수들도 잇달아 현수막을 펼치면서 뛰어 들어왔다. 여자 동수도 머지 않은 곳에서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나는 현수막이 마치 예리한 검처럼 사악의 후두로 줄곧 꽂힘을 느꼈다.

몇 명의 무장경찰이 뛰어와서 나를 경찰차에 잡아 올려 천안문 분국으로 보냈다. 나를 붙잡은 한 무장경찰이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로 너무도 담이 크다. 경찰마저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경계선인데, 당신들은 정말로 ‘4대 금강(金剛)’과 같다.'” 천안문 분국에서 우리들은 아직도 선념(善念)이 있는 일부 작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보름 전의 “분신자살”을 제기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광장에 그렇게도 많은 소화기가 있었는가?” 그가 말했다. “우리들은 사전에 당신들이 ‘분신자살’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한마디는 실수를 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웃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고 얼굴이 빨개졌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저녁 때에 경찰차 한 대가 와서 우리들을xx간수소로 압송하였다. 간수소에서 우리들은 단식과 단수를 하였으며, 나는 저녁에 연공을 하였다. 감방 안의 범인은 나로 하여금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나는 반드시 이 환경을 창조해 낼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또 연공을 하자 그들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맞아서 넘어지면 나는 기어코 일어나서 또 연공을 하였고 맞아서 넘어지면 나는 또 기어이 일어났는데, 사람을 가장 독하게 때리는 한 범인이 또 한번 나를 때려 넘어뜨릴 때까지 줄곧 그리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였다. ‘참음 속에 버림이 있는 바, 모조리 버리는 것만이 빠짐이 없는 더욱 높은 법리이다.’ 나는 오늘 일체를 버리려고 하였다! 나는 또 한번 일어났다. 그들은 막무가내라 할 수 없이 나를 화장실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 이렇게 나는 화장실에서 4조 공법을 연마하였다. 이튿날 밤 나는, ‘연공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 나는 정법을 하러 온 것이다. 어찌하여 화장실에서 연공을 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나와서 연공을 하였는데 그들도 상관을 하지 않았다.

단식 때문에, 교관은 그들에게 나를 감독하게 하였으며, 내가 잠을 자지 못하도록 온 밤 당직을 서게 하였는데 닷새동안 밤낮 나는 잠을 자지 못하였다. 이 기간에 우리와 함께 온 한 수련생은 단식으로 신체가 아주 허약해졌다. 검사할 때 혈압과 심장박동이 비정상이었으므로 간수소는 가만히 그를 풀어주었다. 나도 그런 상태가 나타났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한번 검사해보니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후에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응당 범인과 교관에게 대법제자의 금강불파(金剛不破)한 견강한 의지를 펼쳐 보여야 한다.’ 이리하여 이후의 나날 속에서 내 정신은 줄곧 아주 좋았다. 후에 교관은 내가 매일 밤마다 연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범인으로 하여금 강제로 내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게 하였다. 수갑과 족쇄가 같이 메어 있어서 허리를 펴지 못하였다. 저녁에 나에게 잠을 자라고 하였지만 나는 도리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범인도 나의 의지에 모두 탄복하였다.

후에 교관이 나와 담화할 때 나는 선의(善意)로 그에게 홍법을 하고 진상을 말하였다. 그는 수갑과 족쇄를 내게서 풀어주었는데, 그 후로 나를 아주 좋게 대하였으며 각종 방식으로 내가 밥을 먹도록 권하였다. 나는 끄떡하지 않고 계속 견지하였다. 어느 날 밤 그는 나를 불러내어 그의 사무실로 데려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또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때에 한 교관이 들어왔다. 그는 그 교관에게 말했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나와 그는 천상에서 싸우고 있다!” 이 한 마디는 나를 일깨워 주었다. 나는 이것이 의식형태상의 투쟁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텔레비젼 속의 정에 마음을 움직이면 바로 사람마음이 나오게 되며 나는 지게 된다. 이리하여 나는 마음속으로 >를 외웠고 텔레비젼 속의 정절에 끌리지 않았다. 한시간 좌우 지나서 그는 열쇠를 들고 나를 돌려보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승리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21째 되는 날, 그들은 나에게 음식을 주입하였다. 호스를 잡아당길 때 피가 묻어 나왔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흉구 안이 아주 아픈데 만약 생명의 위험이 나타나면 모두 당신들이 조성한 것으로서 당신들은 모두 채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두려워하였고 이튿날 차로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을 시 공안국의 병원으로 데려갔다. 우리를 병원에 맡겨 감독하고 음식을 주입하게 하려 했지만, 병원측에서는 거절을 하였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우리들을 간수소로 데려왔다. 대략 저녁 9시가 넘었다. 한 교관이 내게 물건을 챙기라고 하였다. 그들은 경찰차로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을 함께 지하철 역전에 데려다 주면서 말했다. “xx간수소에서 당신들을 가두었다고 말하지 말라.” 바로 이렇게 그들은 우리 두 사람을 가만히 풀어주었다.

우리들은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북경역전에 갔으며, 마침 대련으로 향하는 큰 버스가 있었다. 버스 위에서 한 승객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법륜공을 연마하는 사람입니다. 북경에 와서 상방을 하였는데 방금 풀려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차 위에 있는 십여 명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 우리 마음속에서는 사악을 전승한 뒤의 희열만이 있었으며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경찰차가 차 아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우리로 놓고 말할 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튿날 정오, 차는 안산시(鞍山市)에 갔으며, 차에서 내릴 때 나는 기사석의 뒤에 있는 후미경에 사부님을 공격하는 말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기사에게 누가 붙혔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공안국에서 붙였다고 하였다. 나는 허허 웃으면서 아래로 찢었다. 뒤에 있던 한 남자 청년이 보고서 나를 잡고 말했다. “당신이 감히 찢다니, 나는 가서 신고할 것이다. 이는 경찰이 붙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금을 먹이는데 차가 북경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 매 사람마다 차에 오를 때 모두 읽어야 한다.” 나는 웃으면서 그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반드시 이 일을 위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나는 지나가서 “쫙쫙” 한 번에 찢어버렸다. 그는 화가 나서 차에 올라와 나를 끌고 파출소에 가자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해도 된다. 당신은 좀 기다리라. 나는 물건을 챙겨야겠다.” 물건을 수습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마땅히 그들을 선(善)하게 대해야 하며 그들에게 도리를 이야기하여야 한다.’ 이리하여 나는 허허 웃으면서 걸어갔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차주인이 말했다. “됐다. 우리도 방법이 없어서 비로소 이렇게 한 것이다. 당신들은 가봐.” 방금 나를 끌어당기던 사람이 말했다. “돈은 당신들에게 환불할 수 없다. 벌금으로 친다.(우리들이 산 표는 대련의 표이다)”. 그 당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것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한 일은 가장 바른 일인데 무엇을 근거로 내 돈에 벌금을 물리는가?’ 나는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차주인은 50원의 돈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기차표를 살 돈이다.” 두 사람이라 48원이면 충분하였다. 나는 돈을 받고 차에서 내려서 기차에 앉아 대련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의 마음상태를 회상하면 사상 속에 이미 자아(自我)가 없었다. 나는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책임을 지는 것으로, 마치 “무사무아(無私無我)”, “법 속에 용해된” 경지를 느끼는 것 같았다.

이상은, 2000년 7월부터 2001년 3월까지 8개월 동안의 내 정법수련 역정이다. 나도 예전에 법리를 잘 알지 못함과 집착심의 이끌림 하에서 사오(邪悟)가 있었고 보증을 썼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그들이 집착이 있으며 일시적으로 사악한 것이 틈을 타도록 하여 한 수련자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지만, 한 수련하는 사람을 전면적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이 일체를 승인하지 않는다. 그들이 명백해졌을 때, 즉시 새롭게 한 대법 수련생으로 그 때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것이며, 동시에 고압적인 박해 중에서 수련생으로 하여금 정신이 똑똑하지 않을 때 한 말과 써놓은 일체를 페지함을 성명(聲名)하면서 확고하게 수련할 것이다.”(>)

동수들이여. 우리 함께 전례로 있어본 적이 없었던 이 수련의 기회와 인연 속에 공동정진하자! 줄곧 법이 인간세상을 바로 잡는(法正人間) 그 날에 이르기까지.

2001년 10월 6일;
문장분류 [호법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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