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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여정 – 華南의 작은 도시에서 대법제자가 정법노정에 따라가다

[명혜망] 98년 춘절, 나와 아내는 장인어른의 집에 갔다. 정오에 잠잘 때 책상위에 휴대용으로 된 >책이 한세트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먼저 (권2).>를 본 후 다음날 >의 일부분을 보았는데 마치 어느 곳에서 한번 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 장인어른께 책을 빌려 가지고 집에 와서 계속 보았다. 자신의 세계관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고 수련하고자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몇 일후 3, 5일에 한번씩 연공장에 나아가서 연공을 하였고 계속 법공부하면서 점점 대법수련생으로 되였다.

99년 4,25일후 비록 일부 지역에서 대법수련생에 대해 불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교란이 있고. 물 뿌리는 일도 있었지만 자신의 느낌이 이렇게 좋은 공법을 사람에게 착해지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아무 상관없이 배워야 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여전히 연공장에 나아가 연공하였다. 5월말에 여러 곳에서 강화되어진 후 연공장의 소집인이 공안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 우리 수련생들은 앞으로 집에서 연공하고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였다. 모두들 법공부를 깊이 하지 않았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집에서 연공하여도 똑같다는 생각이 되어 모두들 연공장에 나가는 것을 견지하지 못하였다.

7.22 그날 오전, 회사에서 퇴근 후 집에가서 중요한 텔레비죤 뉴스를 보라는 통지를 받았다. 갑자기 법륜공을 “불법조직(不法組織)”으로 선포하였고 오후에 공산당 현위원서기는 “좌담회”를 소집하였는데 현급노간부와 수련생대표가 참가하여 인식을 토론하고 시비를 말하면서 일일이 태도를 표시 하였다. 나는 정부가 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법을 잘 알리지 못함으로 인해 조성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연공에 참가하여서 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 더욱 좋은 사람이 된 것, 그리고 자신의 심신의 변화에 대해 발언을 하였고 나중에 자신은 정부를 반대하지 않고 또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 후 착오는 >책을 지도자(領導)에 보내면 이렇게 좋은 책이 홍법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縣)에서도 확실히 수많은 지도자들이 소위 말하는”폭로 비평”을 위하여 >을 보았다. 나는 또 착오로 “연마하지 않는다”란 아리숭한 보증을 한번 썼는데 내가 반대하는 것은”가짜과학”이지 아울러 내가 수련하는 것이야 말로 비로소 진정한 과학이며 집에서 연마하면 누구도 상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박해가 더 심해지면서 주위의 일부 제자들은 수련을 포기하였고, 전에 문화혁명의 박해를 받았던 이는 “淨土”로 바꿔 배우고 또 주식을 샀다. 나의 장인어른은 배우지 않을뿐만 아니라 또 나에게도 배우지 말라고 말하였다. 나도 이 법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란 문제에 대해 생각하였지만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기만 하면 나는 사부님의 말씀(원 말씀은 아님)인 우주본원에 대한 묘사, 더욱 큰 한층의 입자일 수록 그의 활동범위는 더욱 작다. 우리는 제일 중간. 제일 바깥층, 제일표면에 있다. 라는 말들이 생각났다. 그당시 들은후 확 트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를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바로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바탕으로 소극적으로 면에서 적극적으로 대법을 위하여 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사부님께서 이 일에 대해 새로운 경문을 발표하였는지 사부님께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를 알고 싶었다.

나는 인테넷에 접속할 상황이 되어 거의 매일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사부님께서 새로운 경문. 새로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전부 아주 빨리 인쇄하여 功友들에게 전해 주었다. 8월이후 사부님께서는 거의 일년동안 새로운 경문을 발표하지 않으셨고 나는 명혜망에서 일부 제자들의 교류와 홍법경험의 문장을 인쇄하여 功友들에게 전함으로 모두다 끝까지 연마를 견지하도록 고무격려하였다. 우리 작은 도시 이곳의 魔難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지금까지 한명도 공안에 잡혀가지 않았다. 연공장의 소집인은 전에 공안국의 감시와 압력하에 그가 알고 있는 전 현의 수련생 이름을 모두 말해냈다. 농촌, 공장과 광산의 공우들이 포함되였다. 법을 얻은지 얼마 안되는 수련생은 이때문에 책을 몰수당하여 계속 법공부하고 수련할 수 없었다. 공안은 일부 대법제자들의 집에서 명혜망의 일부분 자료들을 찾아내어 대법에 상당한 손실을 입혔다. 하지만 이 제자들은 모두 괜찮았다. 한명도 자료의 출처를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와 애호를 느꼈다. 우리 이곳은 법을 늦게 얻었되어 대부분 노제자들은 모두 97년 이후에야 비로소 법을 얻었다. 만약 북방의 지역과 같이 魔難이 커다면 아마도 수련을 견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며 사부님은 우리가 제고되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계속 수련하고 있는 몇명의 노제자들과 교류하여 이것은 개인수련의 문제뿐만 아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전체적으로 제고되고 전체적으로 승화되는 것임을 느꼈고 연공장에 한사람만 남더라도 끝까지 견지하려고 하였다. 나는 다운받은 자료를 고정적으로 한 노제자에게 전한 다음 그녀가 기타 제자들에게 전하였으며 아울러 이 지역의 대표적인 상황을 모아 나에게 보내면 명혜망에 전달하였다. 퇴직한 이 노제자는 아들과 함께 살며 가정의 즐거움을 평화로움을 포기하고 조건이 아주 열악한 회사 기숙사에 홀로 지내며 주동적으로 사람을 소집하는 책임을 짊어졌다. 그의 아들은 그녀가 연공을 견지함으로 인해 승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나 현상위(縣常委)에서 토론된 후 승진 부결되였지만 여전히 그녀가 연공을 계속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2000년 초, 사부님께서는 “수련생과 세인을 조용히 지켜 보고 계신다”란 사진이 발표하셨고 모두들 큰 고무를 받았다.

하반기에, 아마도 魔가 교란하는지 혹은 자신의 원인 탓인지 갑자기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어서 거의 한달동안 인터넷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본 지역에서는 또 성, 도시에서 전해진 가짜경문이 나타났다. 생각과 교류를 거쳐 첫번째로 자신이 법공부와 연공을 소홀히 하였고 둘째는 당연히 심성을 제고해야 할 때이지만 어떤 어려움이든 자신은 모두 그를 돌파해야 함을 인식하였다. 가짜경문에 대하여 보지도 않고 즉시 공우(功友)와 함께 없애버렸고 기타 공우들에게 주의하라고 알렸다. 아울러 명혜망에서 발표한 경문을 책으로 인쇄하여 다시 전

하여 읽게 함으로서 가짜경문의 영향을 제거하였다. 관찰과 실현을 거쳐 또 다시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었고 일정 하지 않게 다운받을수 있게 되었고, 다시 자료를 전달하고 읽을 수 있는 상황을 회복하였다.

한번은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인터넷의 자료를 가지러 가는 길에 방향등을 키고 길을 가로 질렀다. 그때 뒤에 있던 차가 주의를 보지 않고 속력을 내여 달려왔다. “꽝”하는 소리만 들리더니 나와 차는 몇 미터 멀리 밀려나갔고 나는 도로중앙에 누워 오토바이가 내 앞에 멈추어 있는 것을 보았다. 좌측의 연료탱크를 닫지 않고 바퀴는 계속 돌고 있었고 불도 끄지 않았다. 차는 급제동하여 차도를 향하여 멈추어 섰고 기사는 황급히 달려와 상황을 물었다. 내가 기어 일어나면서 살펴보니 왼쪽 바지에 찢어지면서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고 왼쪽 신은 마찰로 찢어졌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무일 없습니다. 가보세요.” 뒤에 있는 오토바이의 등 씌우개(망가지지 않았음)를 줍고 오토바이를 세워 올라타고 갔다. 뒤를 돌아보니 젊은이는 아직도 그곳에 멍하니 서있었고 내가 분명히 멀리 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차를 몰고 떠나갔다. 그 당시 이 현의 변호사 한명 그리고 기타 일행이 자리에 있었고 사건이 발생한 전반 과정을 보았다. 집에 돌아온 후 소업상태가 나타나면서 왼쪽발이 부었다. 하지만 여전히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출근할 수 있었으며 일주일 지난후 정상으로 되었다. 자신이 마치 한층의 껍데기를 벗은 것 같았다.

나는 그 무엇도 내가 명혜망의 자료를 다운받는 것을 가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하여 인터넷에 들어 갔다. 갈수로 많아지는 사이트봉쇄를 돌파하였으며 아울러 안전하게 열람할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출근하면 회사에서 동료 수련생에게 법을 알리여 모두들 명혜망의 홍법자료를 보는 것에 대해 이미 습관이 되여 버렸다. 2000년 말. 나는 회사에서 우수공무원으로 선발되였는데 국민의 눈은 아주 밝으며 장쩌민의 망나니집단에게 기만당한 사람은 갈수록 적어진 다는 것을 반영한다. 법은 원용하다는 것을 더욱 느꼈다.

금년초, 모 진(鎭)에 있는 나의 한 친구의 아버지가 암으로 불행히 돌아갔는데 나에게 장례식에 참가하라고 하였다. 99년 말 나는 이전에 이들에게 홍법한 적이 있었고 그도 연마하고 싶다고 하여 >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농촌에 있는 그의 다른 한 친척도 대법제자였고 이 일을 알게 된 후 또 사부님의 설법녹음테잎을 그 에게 빌려주었지만 그는 병을 치료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최후에는 역시 대법이 스쳐지나가게 되었다. 장례식에서 이 친구(아직 연공하지 않음)의 소개로 그의 아버지에게 녹음테잎을 빌려준 수련생를 만났다. 그 수련생은 >을 밭머리로 가져갔다. 농촌에 있는 수련생들은 근본적으로 바깥소식을 얻을 수 없지만 여전히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고 있는데 대단하였다.

도시에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과 새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농촌 수련생은 도시로 와서 나를 찾았다. 나는 그를 데리고 자료전달을 책임진 노제자집에 갔고 이 농촌수련생에게 가끔 이곳에 와서 경문과 홍법자료를 가져가고 또 그가 알고 있는 기타 농촌. 공장과 광산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전해주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도시와 농촌의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세웠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그가 등에 진 광주리안에 주머니가 있었는데 깨끗한 신문지로 99년부터의 명혜자료와 사부님의 경문 몇편 그리고 다운받아 인쇄한 새책을 싸서 조심스럽게 그 주머니에 넣고 다시 광주리에 넣어 등에 지니면서 우리와 “조심하시오” 인사하며 떠나기 아쉬워하는 정경이 아직도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 작은 도시의 대다수 제자들은 계속 연공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자료를 보내면서 이렇게 묵묵히 담당하는 것은 보람이 있었다. 물론 기타지역의 걸어나와 천안문에서 대법을 실증한 수련생(同修)와 각종 장소에서 지혜롭게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同修)들에 비하면 우리는 여전히 거리가 있지만 우리는 하면 할수록 더욱 잘할 것 이다.

우리들은 정법에 따를 수 있었다.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법을 바로 잡는 것은 역사상 여태껏 있은 적 없는 선례(先例)이다. 이지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을 똑바로 밝히고. 자비로 홍법(洪法)과 세상사람을 구도(救度)하는 위대한 장거(壯擧)중에서. 개개 대법제자가 원만하는 길을 완벽히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시각에 온건한 매 일보(一步)는 모두 빛나는 역사의 견증(見證)과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위덕이다.” (>)우리 함께 대법입자의 작용을 발휘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긴밀히 따르자.

사부님 도와 세간행 하는 중에 우리의 마지막 길을 잘 걸어나가 다함께 온 천하가 같이 경축하는 그 날을 맞이하자.

작은 도시 모 수련생 2001년 6월 25일
2001년6월27일;

문장분류 [호법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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