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안수는 어릴 적부터 성실하고 정직하며 남달리 총명하여 7살에 문장을 지을 수 있었다. 14살 때 강남 안무사(安撫使-관직) 장지백(張知白)이 신동으로 송진종(宋真宗- 북송 제3대 황제, 이름은 조항(趙恆)황제에게 추천했다. 1005년 안수는 경성에 와서 전국 각지에서 온 3100여 명의 거인(舉人-명·청 시대에 향시에 급제한 사람)과 동시에 입전(入殿)하여 시험을 보았다. 안수는 본래 황제에게 면접을 직접 할 수 있었으나 그는 과거시험에 응시하겠다고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다. 그는 시험에서 반영된 성적만이 자신의 진실한 재능과 학식이라고 생각했다.
주임 시험관은, 안수의 요구에 동의하고, 그를 다른 거인과 함께 시험을 보도록 결정했다. 시험장에서 안수는 매우 침착하고 냉정했고, 답안을 빠르고도 훌륭하게 써서 송진종 황제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동진사 출신(同進士出身)’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다음날 또 두 번째 시험을 치렀는데 제목은 ‘시부론(詩賦論)’이었다. 안수는 문제를 보고 시험문제가 자신이 예전에 연습해 써본 것임을 발견하고 주임 시험관에게 말했다. “시험관님, 이 제목은 제가 예전에 연습해서 썼던 것입니다. 다른 문제 하나 내주십시오!”
주임 시험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안수가 쓸데없는 일을 만든다고 생각해 말했다. “써봤던 제목도 괜찮으니 써내거라, 만약 잘 쓰면 합격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문제를 바꿨는데 만약 잘 쓰지 못하면 낙방 될 것이니 너는 심사숙고해서 행하거라.” 안수는 이미 심사숙고한 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문제를 바꾸지 않으면 시험에 합격해도 저의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식이 아닙니다. 바꿔서 잘하지 못했다면 제가 학문적으로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므로 저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험관이 듣고 안수에게 다른 문제를 내주기로 동의했다.
안수는 새 문제를 받은 뒤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잠시 생각한 후 붓을 들어 단숨에 써 내려 갔다. 시험관은 놀라서 멍해졌고, 이 사람은 문장 구상이 매우 빠르고 진정으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인재임을 느꼈다. 안수가 성실을 기본으로 출제를 다시 해달라고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진실하게 자신의 수준으로 시험을 봤기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수험생 사이에서만 퍼진 것이 아니라 송진종 황제에게도 전해졌다.
송진종은 곧바로 안수를 불러 칭찬했다. “너는 진정한 재능과 학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속이지 않는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구나!”
안수는 자신이 숙지한 시험문제를 만나 쉽게 답할 수 있어서 3천여 명의 거인 중에서 단번에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지만 도리어 문제를 따로 달라고 청했는데, 안수가 바보인가? 아니다, 그는 성실하기 때문이고, 더욱이 그는 자신의 진짜 재능과 학문을 믿기 때문이다. 송진종도 바로 그래서 그를 특별히 좋아했고, 또 파격적으로 한림(翰林)으로 임용했다.
안수가 처음으로 관직에 올랐을 때는 태평천하일 때라 경성의 크고 작은 관리들은 종종 교외를 돌아다니며 즐기거나, 혹은 성내의 요리집 다관(중국 사람들이 간단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는 곳)에서 각종 연회를 열었다. 안수는 집이 가난하여 밖에 나가서 먹고 놀 돈이 없어 집에서 형제들과 문장을 읽고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송진종은 태자를 위해 스승을 선택해야 했지만, 대신에게 추천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지명해 안수에게 맡도록 했다. 신하들은 놀라고 의아해했다. 송진종이 말했다. “나는 안수가 늘 문을 닫고 책을 읽으며 각종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는 충후(忠厚)하고 신중한 사람으로서 태자 곁에 두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안수는 황제를 알현하여 사은(謝恩)할 때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놀러 가기 싫어서거나 연회에 참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집이 가난하여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돈이 있다면 저도 갔을 것입니다.” 송진종은 안수가 이렇게 기꺼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를 특별히 칭찬하고 더욱 신임했으며 총애도 깊어졌다.
안수는 솔직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황제와 군신들 앞에서 신망을 세웠다. 송인종 조정(趙禎)이 황제에 오른 이후 안수를 큰일에 임용하여 관직이 재상에 이르게 되었다. 안수는 재상이 되었어도 가식적으로 꾸며대지 않아 백성들의 추대를 받았다.
안수는 비록 여러 해 동안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겸손하고 온화하여 오히려 다가가기가 쉬웠다. 그는 어질고 현명하여 범중엄(范仲淹), 공도보(孔道輔), 왕안석(王安石) 등이 모두 그 문하에서 나왔다. 한기(韓琦), 부필(富弼), 오양수(歐陽修) 등은 모두 그가 양성하여 추천을 거쳐 중용되었다. 안수는 모든 학자를 진솔하게 대했다.
한 번은 안수가 양주(揚州)를 지나가다 성내를 걷다 지쳐 수행원들과 함께 대명사(大明寺-사찰)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안수가 절에 들어가 보니 벽에 많은 시가 쓰여 있었다. 그는 매우 흥미를 느끼고 의자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는 수행원에게 벽에 있는 시를 읽게 했지만, 출제 시인의 이름과 신분은 읽지 못하게 했다.
안수는 잠시 듣다가 시 한 수를 매우 잘 쓴 것 같아 곧 물었다. “어느 분이 쓴 것인가?” 수행원이 왕기라고 말했다. 안수는 사람을 불러 왕기를 찾아오게 했다. 왕기(王琪)가 찾아와 안수를 알현했다. 안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해서 즐겁게 음식을 대접했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함께 뒷마당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이때는 늦은 봄이라 온 사방이 모두 떨어진 꽃잎이었다. 한 차례 작은 바람이 불자 꽃잎이 뭉게뭉게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지극히 보기 좋았다.
안수는 보고 자신의 마음에 와닿아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왕기에게 말했다. “왕 선생, 나는 매번 좋은 구절이 생각날 때마다 벽에 쓰고는 다시 다음 구절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장이 하나 있는데, 저는 몇 년 동안 생각했지만, 좋은 다음 구절을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왕기는 얼른 물었다. “어른께서 어떠한 문장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안수가 한 소절 읊었다. “속절없이 지는 꽃 어찌해볼 도리가 없고.”
왕기는 듣고 곧 말했다. “어른께서는 ‘어디선가 본듯한 제비가 돌아왔네’가 어쩐지 좋지 않으십니까?” 이 구절의 뜻은 날씨가 따뜻해져 남쪽에서 제비가 날아왔는데, 이 제비들은 작년에 만났던 것 같다는 뜻이다. 안수는 듣고 손뼉을 치며 연속 갈채를 보냈다. “묘하네, 묘하네, 너무 묘하네.”
안수는 이 두 구절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완계사(浣溪沙)’라는 시 한 수를 지었는데 그 안에 이 대련이 쓰였다.
새 노래 한 곡에 술 한잔 마시네, 정자와 날씨 모두 지난해와 똑같은데, 서산으로 지는 해는 언제 돌아오려나.
속절없이 지는 꽃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고, 언젠가 본듯한 제비가 돌아와서, 자그마한 정원을 홀로 배회하는구나.
안수는 왕기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경성으로 돌아와서 송인종에게 추천하여 송인종의 인정을 받고 왕기를 경성으로 소환했다. 왕기는 먼저 관각교감(館閣校勘)을 맡은 후, 또 많은 기타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안수는 북송 문단에서 명성이 매우 높은데, 이는 그의 성실성과 재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원문발표: 2020년 1월 18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8/3991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