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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3대 시기의 천명관(天命觀)에 관해(11)

[밍후이왕] 주나라 사람들은 군왕의 천명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높고도 높은 하늘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천명의 변동과 이전도 군왕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달려 있지만, 군왕은 그 때문에 천명의 보호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었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는 더욱 없었다. 그렇다면 ‘하늘로부터 명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에 대해 주나라 사람들은 “천명은 늘 있지 않고, 오직 덕(德)이 있는 자를 돕는다.”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강조하면서 “덕으로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덕을 공경하며 백성을 보호한다.”라는 사상을 제시했다. 하늘이 하늘을 공경하는 군왕만을 ‘영원히 보살폈으므로’ 군왕은 하늘에 대해 예를 다하고 절대복종했다. 하늘에 대한 공경의 핵심이 덕에 있었으므로 군왕은 곧 마땅히 ‘덕을 공경하고’, ‘덕을 밝히고’, ‘덕을 숭상’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곧 ‘덕’ 자에 공을 들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덕을 공경하지 않아 일찍이 그 명이 떨어졌다.”

똑똑히 알 수 있듯이, 천명이 바로 ‘덕’의 기초 위에 건립되니 하늘의 의지와 군왕의 행위가 연결되었고, 군왕이 ‘덕’을 가졌는지가 곧 천명을 받고 못 받는 근거가 되었다. 이는 군주의 개인 덕행과 정치 도덕성이 정치 안정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주나라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써 주나라 사람들의 천명관은 이전 사람의 것보다 진보했음을 알 수 있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덕’이 문헌상에 빈번히 출현한 것은 주나라 시대부터다. 상서(尚書) 주서(周書)>를 펼치면 거의 매 편에 모두 ‘덕’에 관한 서술이 있고, ‘덕을 공경하고’, ‘덕을 밝히고’, ‘덕을 숭상한다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무엇이 ‘덕’이며, 그 내포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주나라 사람들은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문헌으로 보아 ‘덕’ 자의 주요한 개념에는 적어도 이런 몇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군왕의 도덕적 수양과 개인의 품행. 둘째, 백성에 대해 군왕이 시행한 덕정(德政)과 인정(仁政)이다.

중점적으로 강조한 이른바 “덕으로써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덕을 공경하며 백성을 보호한다.”라는 말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뿐이었다.

첫째, 군왕이 자신을 수양하는 도덕을 지녀 도덕으로 자신의 사욕을 단속하고, 백성 앞에 도덕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군왕이 도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것.

셋째, 군왕이 민정을 살피고 민의를 존중해 백성에게 인정(仁政)과 선정(善政)을 펼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생활을 보장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주나라 사람들에게 은나라 주왕은 덕이 없고, 덕을 잃은 전형적인 사례로 회자됐다. 무왕이 주왕을 정벌할 때 여러 제후에게 말했다. “오늘 은나라 왕 주가 여전히 부인들의 말을 들으며 스스로 하늘과 단절하고, 세 가지 정도를 해치고, 부모와 형제를 멀리하고, 선조의 음악을 버리고 음탕한 소리를 내면서 옳은 소리를 변형하고 난잡하게 하여 부인들을 기쁘게 했다. 고로 오늘 나 발(發)은 함께 천벌을 내리려 한다.” 상서(尚書) 태서(泰誓)> 뜻인즉슨 바로 오늘날 은왕 주가 부인의 말을 들어 스스로 하늘과 단절했고, 천, 지, 인의 바른 도리를 파괴하고, 자신의 친족과 형제를 멀리하고, 선조가 전해준 악곡을 버리고 음탕한 소리를 지어내어 바른 음악을 어지럽혀 부인의 환심을 샀다는 것이다. 상서(尚書) 조고(詔告)>도 그가 ‘덕을 공경하지 않음’을 질책했다. 무엇이 ‘덕을 공경하지 않음’일까? 바로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황음하고 방탕 무도하며,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다.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해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믿으며, 형법에 절도가 없고, 관리가 혼란한 것이다. 은나라 주왕과는 반대로 주나라의 기초를 잡은 문왕은 전형적으로 덕을 가진 군주였다. 주공은 주나라 사람들이 천명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문왕의 아름다운 인품과 덕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상서(尚書) 무일(無逸)>에서 그는 문왕의 아름다운 덕행을 이렇게 찬미했다. “문왕은 허름한 옷을 입고 들일과 밭일을 하였다. 착하고 어질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낮은 백성들을 품어주었고, 홀아비와 과부에까지 은혜를 베풀었다. 아침부터 한낮을 거쳐 저녁까지 밥을 먹을 겨를도 없이 백성들과 함께했다.” 뜻인즉슨 바로 문왕이 조리 정연하게 백성을 안정시키고 토지를 개간하는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또한, 문왕은 감히 사냥하지 않았고, 아주 공손하게 정사(政事)에 힘을 쏟았다. 주공은 또 문왕을 모범으로 삼아 성왕에게 훈계했다. 왕위를 계승한 후, 자신을 방종해서는 안 되고, 환락과 안일과 유희와 사냥을 지나치게 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주왕처럼 혼란에 빠지지 말고, 음주를 절제해야 하며, 백성의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했다! (계속)

 

원문발표: 2019년 8월 14일
문장분류: 천인사이>문사만담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8/14/3904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