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후난보도) 후난성 천저우 지역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 책임자로 알려진 공안청 마약금지총대(總隊) 총대장 탕궈둥이 보응을 받아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탕궈둥(남, 후난 헝난 사람. 1961년 6월 출생)은 2001년 3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후난성 공안청 정치부 부주임,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후난성 공안청 감옥 관리사무처 처장, 2006년 12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천저우시 공안국 당위서기와 국장, 2012년 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천저우시 부시장, 2014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후난성 공안청 교통관리국 당위서기와 국장, 후난성 공안청 교통경찰 총대(總隊) 총대장, 2017년 3월에 후난성 공안청 마약금지총대 총대장을 맡아왔다.
2017년 4월 1일, 후난성 기율검사위원회 소식에 따르면 후난성 공안청 마약금지총대 총대장 탕궈둥이 엄중한 규율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탕궈둥이 오랫동안 후난성 공안청, 천저우시 공안국에서 책임자로 있을 때 적극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기에 받는 보응의 시작이다.
탕궈둥이 천저우시 공안국장, 부시장으로 있는 동안 천이위안(陳義元), 리윈슈(李雲秀), 쉬싱궈(許興國), 궈후이성(郭會生), 쉬천성(許郴生), 궈밍가오(郭名高), 리자쥐(李甲菊), 궈보친(郭波琴) 등 적어도 8명의 파룬궁수련생이 고문과 약물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1. 박해로 목숨을 빼앗긴 천저우 자허현 파룬궁수련생 궈후이성
중상을 입은 궈후이성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머리부위를 수술한 후 사망
2009년 7월, 천저우 자허현의 파룬궁수련생 샤오쓰란(肖四蘭)이 진상을 알리다가 란산현 경찰에 납치됐고 오른손이 삐어 뼈가 어긋났다. 자허현 정부 법제사무실 간부인 파룬궁수련생 궈후이성(郭會生)과 아내 리쥐메이(李菊梅)는 이 소식을 들은 후 란산현 공안국장 시샤오강에게 전화를 하고 진상편지를 써서 샤오쓰란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시샤오강은 악의적으로 상급인 후난성 ‘610’(장쩌민 무리가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박해하기위해 만든 불법 조직)에 보고했다.
성 ‘610’의 지시에 따라 자허현 국보대대 경찰은 8월 6일 저녁 궈후이성 부부를 납치하고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해 귀중품과 현금(친척이 집을 짓고 인테리어를 하는데 쓸 몇 십만 위안을 포함해)을 강탈했다. 국보대대 교도원 후융후이 등 네 명이 궈후이성의 두 손을 뒤로 묶은 후 땅에 넘어뜨리고 구타해 궈후이성의 머리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다. 불법 심문할 때 궈후이성의 머리 반은 가려 있었고 늘어진 옷에는 혈흔이 낭자했는데 4, 5명에게 들려서 들어오고 들려서 나갔다. 10월 6일, 생명이 위독하게 된 궈후이성은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았다. 10월 12일 궈후이성은 박해로 52세에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겼다.
리쥐메이는 구치소에 4개월 넘게 감금되어 있다가 박해로 하혈하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0년 3월 샤오쓰란은 3년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2. 경찰차에서 경찰에게 박해를 당해 목숨을 잃은 47세 쉬천성
2012년 5월 16일, 천저우시 담배공장 직원인 파룬궁수련생 쉬천성(許郴生)은 거리에서 경찰에게 납치돼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12시간 동안 심문을 당했다. 심문하는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고, 밥도 주지 않았으며,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그런 후 쉬천성은 강제로 경찰차에 실려 구치소로 이송하는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이틀 후에야 베이후구 공안국은 가족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갑자기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부검을 요구했지만 중국공산당 정부와 공검법(公檢法)의 첩첩의 저애를 받았다. 현재 쉬천성의 시신은 여전히 장례식장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다. 언제 이 억울한 누명이 벗겨질까? 이 사건이 폭로된 후 많은 민중이 분노와 동정을 보내면서 흉수를 엄하게 징벌할 것을 요구했다.
3. 억울하게 8년 옥살이 한 천이위안이 세상을 뜨다
2003년 4월 20일, 천저우시 융싱, 안런의 경찰이 천이위안의 집에 뛰어들어 천이위안을 납치하고 강제로 그의 적금 1만5천 위안을 압류했다. 5월 1일, 안런현 구치소 경찰은 천이위안과 다른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밧줄로 꽁꽁 묶고, 천으로 입을 틀어막은 후 차에다 싣고 조리돌림을 했다. 2004년 2월경, 천이위안은 안런현 법원에서 억울하게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천이위안은 안런현 구치소, 후난 창더진시 감옥 배정처, 후난 유현 왕링 감옥 등에 감금됐다.
2011년 4월, 천이위안은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2011년 8월 20일, 천저우시 국가안전국, 후베이구 국가보안, 쑤셴구 국가보안, 파출소 경찰, 허핑로 주민위원회인원 등 30여명이 천위위안, 황샤오펀 부부의 집에 뛰어들어 이른바 증거를 찾는다고 샅샅이 뒤졌다. 그러면서 두 노인에 대해 위협 공갈했다. 이러한 불법적인 가택 수색과 공갈은 출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천이위안에게 큰 정신적 압력을 주었다. 그 후 천이위안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다. 2012년 3월, 천이위안은 끝없는 아쉬움과 억울함을 품은 채 영원히 가족의 곁을 떠났다.
4. 궈밍가오가 진시 감옥에서 이름 모를 약물 주입을 당해 기억을 잃고 정신이 흐려져 억울하게 사망
궈밍가오(郭名高, 59), 천저우 구이둥현 사람. 2008년에 불법적인 3년형을 선고받고 진시 감옥에서 이름 모를 약물을 주입당해 여러 질병이 발생해 행동하기 어렵게 되고, 기억을 잃었으며, 정신이 흐려지고,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2011년 6월 12일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2012년 5월 17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5. 칠순 노인 리윈슈가 박해로 정신 이상이 되고 억울하게 사망
리윈슈(李雲秀, 여, 향년 71세)는 천저우시 루청현 백화점 퇴직근로자다. 남편 마둔산(馬敦山)은 올해 80세이며 루청현 경공업국 이직휴양 간부다.
1990년 노간부 안치정책에 따라 그들은 천저우로 와서 시 위원회 울안에서 살고 있는 아들과 함께 지내게 됐다.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9개 부서 인원들이 찾아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2000년 12월, 마둔산 부부는 베이징으로 청원을 가다가 붙잡혀 천저우시 위원회 부서기 룽딩딩에 의해 루청현 구치소에 감금당하고, 2만 5천 위안을 갈취 당했다. 2001년 3월 말에 공안국, ‘610’, 주민위원회와 자녀의 직장 등 13개 부서에서 보증을 서서 마둔산 부부는 풀려났다. 이때부터 소란이 끊이지 않았고, 마둔산은 유급 처분을 받았으며, 악인들이 그들을 베이징에서 붙잡아 올 때 쓴 4만 여위안의 비용을 강제로 부담했다.
리윈슈는 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이름 모를 약물을 주입당해 정신 이상이 되어 스스로 생활을 못하게 됐다. 2008년 5월 11일, 천저우 ‘610’, 국보 인원 등 10여 명이 집에 뛰어들어 몇 시간이나 집을 수색했다. 리윈슈는 크게 충격을 받아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낯선 사람을 보면 놀라서 부들부들 떨었다. 하루하루 병세가 중해지다가 2011년 8월 16일 세상을 떴다.
6, 리자쥐는 천저우 세뇌반에서 이름 모를 약물을 주입당해 독살되다
2012년 10월, 중국공산당의 ‘18대(18大)’전야, 천저우시와 현의 각 지역의 근 40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이 베이후구 당교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또 천저우시 쑤셴구 ‘610’은 천저우 쑤위안 호텔에 세뇌반을 꾸리고 ‘안정유지(維穩)’란 구실로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했다.
2011년, 천저우시 ‘610’은 베이후구 당교에서 세뇌반을 꾸리고, 성 ‘610’에서 파견해 온 후난 정법대학 레이젠 등 사람들을 소위 ‘전향’ 일을 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30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됐고, 리자쥐(李甲菊)는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리자쥐(여, 향년 58세)는 천저우 융싱현 황니향 사람이다. 2011년 5월, 리자쥐는 남편과 함께 융싱현 ‘610’에 납치되어 베이후구 당교 세뇌반에서 박해를 당했다. 리자쥐는 보름 동안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세뇌반 인원은 리자쥐에게 이름 모를 약을 넣어 링거를 놓은 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리자쥐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고, 2011년 9월에는 하혈하기 시작했고 더욱 잦아졌다. 2012년 4월 16일 리자쥐는 억울하게 세상을 떴다.
7. 소학교 교사 저우샤오훙이 노동교양소에서 바늘로 찌르는 고문을 당하고 약물박해 당해
저우샤오훙(周曉紅, 여)은 천저우 사람이며 소학교 교사다. 2005년 3월과 2008년 8월, 저우샤오훙은 잇따라 두 차례 바이마룽 노동교양소로 납치되어 각각 1년과 1년 3개월 동안 불법 감금됐다. 그 동안 저우샤오훙은 매일 15시간 노역을 당하는 외에 온갖 시달림을 다 당했다. 예를 들면 저우샤오훙의 얼굴과 이부자리에 파룬궁 사부님을 욕하는 글을 써놓아 사악한 방식으로 강제 세뇌를 했고, 서있는 벌, 잠을 재우지 않고, 화장실에 보내지 않았으며, 구타하고, ‘속박 옷’을 입히고 ‘보검을 메게 하는’ 등 고문을 가했고, 입에 걸레와 밀대 걸레를 밀어 넣었고, 국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목을 찔러 목구멍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으며, 몸과 손가락, 발가락을 바늘로 세게 찔러 선혈이 낭자했으며, 피가 흐르는 손을 고춧가루 물에 넣게 했고, 또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과 이름 모를 독극물을 주사했다.
맺음말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면 끝내는 죽음을 자초하게 되고, 선악에는 결국 보응이 따른다. 밍후이왕 2017년 5월 31일에 ‘후난 천저우에서 박해에 참여한 자들이 보응을 받은 통계 사례’ 문장이 발표됐다. 천저우시에서 1999년부터 2017년까지 각 부서에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총 49명이 여러 정도로 보응을 받았다. 그중 본인이 직접 보응을 당한 것이 43명, 가족에게 화가 미친 것이 6명이다. 45명이 보응을 받은 중, ‘610’인원이 2명, 정법위원회인원이 4명, 공안 기관 인원이 15명, 검찰원과 법원인원이 2명이다. 사법국 인원이 2명, 각급 정부와 직장의 책임자가 16명, 보통 촌민과 주민이 6명이다.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이 시비를 명백히 가리고 중국공산당의 ‘희생양’이 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오직 중국공산당 악당(惡黨) 조직에서 탈퇴하고 박해를 멈추는 것만이 당신의 유일한 선택이다.
궈후이성의 목숨을 빼앗은 흉수 중 한 명인 자허현 사악한 국보 경찰 교도원 후융후이
원문발표: 2017년 6월 22일
문장분류: 천인지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22/3500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