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6.10사무실’ 주임의 비참한 최후

글/ 중국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그는 순풍에 돛단듯 승진했다. 하지만 새로운 자리에 부임되자마자 급사했다. 그는 행복한 가정까지 있어 주변의 부러움을 샀는데 갑자기 화를 당해 친지들은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쌀쌀한 북방의 초봄 날씨에 한 조문 행렬이 거리를 지나갔다. 2015년 3월 1일, 사람들이 명절을 보내며 친지들을 방문해 축복을 전하고 있을 때 왕지중(王繼忠)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그날 그는 허베이(河北)성 러팅(樂亭)현 조카 집에서 밥을 먹고 산리좡(三李庄)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두개골이 파열되면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현장에서 숨졌다.

왕지중이 그렇게될 것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이미 예상했다. 그동안 파룬궁수련생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그에게 부처를 수련하며 선을 지향하는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것은 죄 짓는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인과응보의 천리를 알려줬다. 하지만 그는 무시하면서 믿지 않았고 응보도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믿지 않고 무섭지 않다고 한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50대 초반인 왕지중은 겉으로는 현 당위원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정부기관이 아닌 ‘610사무실’ 주임이었다. ‘610사무실’은 1999년 6월 10일, 장쩌민(江澤民)이 권력을 이용해 국가헌법과 법률 밖에 세운 조직으로 히틀러의 비밀경찰 조직 ‘게슈타포’와 중앙 문화대혁명 소조 산하의 전국 조직과 비슷하다. 이들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육체를 소멸한다’, ‘때려 죽여도 되고 죽으면 자살으로 친다’, ‘신원을 밝히지 않고 즉시 화장한다’ 등 말살 정책을 실시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할 때부터 왕지중은 줄곧 러팅현 ‘610사무실’ 주임을 맡고 있다가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 자리를 옮겼다. 지난 10여 년 동안, 왕지중은 중국공산당 및 장쩌민의 박해정책에 충성하며 러팅현 공안, 검찰, 법원, 사법 등 기관을 통제해 파룬궁수련생과 가족들을 전력을 다해 박해했다.

60대 리쉐유(李學友)는 러팅현 성관(城關)진 삼가(三街)에 살고 있는 주민이다. 그는 삼륜차 인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분주하는 동시에 또 사지를 못 쓰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정성껏 돌봤다. 고생 속에서도 원망 없이 낙관적이고 명랑한 그는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켰고 이웃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선인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왕지중은 그를 체포해 러팅현 구치소에서 박해했다. 리쉐유가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 받은 후엔 납치해 황둥(黃東) 감옥에 가뒀다. 그의 아내는 그리움과 걱정에 시달리다 결국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싱웨(邢悅)는 누구나 좋아하는 젊은 교사였는데 박해 받을 당시 28살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으로 몸이 허약했지만 파룬궁을 수련해 병이 모두 사라졌다. 또한 진선인에 따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 아이들은 모두 싱웨의 수업을 듣기 좋아했다. 하지만 2010년 4월 납치돼 억울하게 3년형을 선고받았다. 어린 딸은 무슨 일이 발생한지도 모르고 매일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현 당위원회 대문 앞에서 왕지중을 기다려 딸을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끝내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싱웨의 어머니는 몸져누웠는데 불과 몇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정훙보(鄭洪波)는 2003년 5월 공안국으로 납치된 후 3년 동안 노동교양소에 불법 수감됐다. 그동안 그는 대나무로 손톱을 찌르는 고문을 포함한 온갖 고문에 시달려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정훙보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자 어머니는 부자가 만나게 해달라고 왕지중에게 수차례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왕지중은 이른바 “사상 변화가 없다”며 임종 전에도 정훙보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옌거좡(閆各莊)진 류좡(劉庄)촌 주민인 리창(李强)은 지난 2000년 실종됐다. 연로한 어머니와 가족들은 사방에서 알아보면서 한 해 한 해 애타게 기다렸지만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리창은 박해로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

파룬궁수련생과 그 가족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고 몇몇 사례로 다 기록할 수 없다. 16년 동안 러팅현에서는 수백 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생이 각종 박해를 받았다. 이는 다만 한 개 현의 상황으로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보면 10여 년간 부지기수의 파룬궁수련생이 세뇌반, 구치소, 노동교도소, 감옥 등에 수감돼 비인간적인 고통에 시달리거나 정신병원이나 마약중독 재활원에서 중추신경 파괴 약물 주사를 강제 주입당하는 박해를 받았다. 10여 년의 박해로 수 백만 파룬궁수련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신체와 정신적 장애를 갖게 됐으며 심지어 수 만 명이 생체장기 적출을 당하는 끔찍한 만행에 희생됐다.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이 지구상에서 전무후무한 만행이고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속인들에게 거듭 선행을 권했고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고 알려줬지만 일부 사람들은 믿지 않고 사고를 당한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그렇게 많은 우연의 일치가 있는가? 전국 각지에서 파룬궁 박해로 응보를 받은 사례는 밍후이왕에 보도된 것만 2만 건이 넘으며 도시별 분포를 보면 박해 받은 파룬궁수련생의 규모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정비례했다. 그들은 질병 혹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권력 다툼에서 패하여 쌍규(雙規) 처분을 받고 실형을 선고 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자살했는데 사건마다 매우 끔찍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화난(樺南)현 공안국 국보대대장 천훙후이(陳洪輝)는 파룬궁 박해 두목이었는데 16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체포했다. 그가 사고 당하기 며칠 전에도 파룬궁수련생들이 그에게 박해에 동참하지 말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차를 타고 다녀도 아무 일 없었다면서 자신은 끝까지 공산당을 따라 갈 것이니 정말 보응이 있다면 한번 시험해보라고 큰 소리쳤다. 그 후 불과 일주일 만에 그는 화난현 투룽산(土龍山)진에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차가 나무를 들이받으면서 두개골이 파열돼 그 자리에서 숨졌다.

허베이(河北) 탕하이(唐海)현 구치소 소장 리타이원(李太文)은 죄수들을 시켜 파룬궁수련생들을 폭행했다. 병에 걸리기 전 그는 파룬궁수련생에게 “나는 인과응보를 믿지 않아. 매우 현실적이란 말이지. 돈이 없으면 어떻게 잘 살아? 아무도 공산당을 건드리지 못해. 당신들은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데 난 믿지 않아. 정말 있는지 없는지 내가 죽은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지”라고 말했다. 리타이원은 이렇게 말한 당일 저녁 병에 걸렸으며 며칠 후 사망했다.

2009년 10월, 쓰촨(四川)성 안웨(安岳)현 린펑(林鳳)진 3촌 주민인 우사우밍(吳紹明)은 배포된 파룬궁 진상자료를 공안당국에 가져가 제보하고 마을에 사는 한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했다. 진상을 아는 다른 주민들이 그에게 보응을 받는다며 말렸지만 그는 “나는 공산당원이야. 그래서 보응 같은 건 믿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진 당위원회에 가서 고발하면서 분해서 말했다. “보응, 보응을 말하는데 올해 안에 정말 나타는지 보겠어. 그렇게 영험하지 않을 걸!” 그러던 2012년 2월 12일 저녁, 그는 가족들과 밥을 먹다가 갑자기 의자에서 몸을 움츠리더니 바닥에 넘어져 사망했다. 이처럼 그들은 모두 광언(狂言)을 했지만 정말 보응을 받았다.

인과응보는 천리다!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뉴스로 파룬궁을 모함한 CCTV의 제작자 천멍(陳虻)은 위암으로 사망했다. 국가 재정권을 장악했던 황쥐(黃菊) 전 부총리는 국고의 4분의1을 파룬궁 박해에 쏟아 붓다가 췌장암에 걸렸다. 초대 ‘6.10사무실’ 주임 류징(劉京)은 암에 걸렸고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진두지휘한 ‘6.10사무실’ 주임 리둥성(李東生)은 이미 낙마했으며 ‘톈진(天津)사건’을 계획해 1만 명 파룬궁수련생이 탄원에 나선 ‘4.25사건’을 일으킨 쑹핑순(宋平順)은 자살했다. 파룬궁 모함 뉴스 방송에 적극적이었던 CCTV 앵커 뤄징(羅京)은 암에 걸렸고 혀가 곪아서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2012년 이래 중국공산당 고위관료들이 잇따라 권력다툼에서 밀려났는데 대부분 파룬궁 박해에 적극 동참한 장쩌민 무리로 생체장기적출 원흉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 쉬차이허우(徐才厚), 저우융캉(周永康)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러팅현에서도 슬픈 일이 발생했다. 어떤 사람은 왕지중이 선해보인다고 말하지만 그 동안 그가 저지른 일은 그가 권력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유혹으로 양심을 포기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러팅현에서 파룬궁 박해로 보응을 받은 사람은 왕지중 뿐 아니라 판사오후이(範紹慧), 덩리쉬안(鄧立憲), 마즈선(馬志申) 등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포함된다. 판사오후이는 러팅현 현 당위서기를 맡고 있는 동안 중국공산당의 박해 정책을 꼬박꼬박 집행했다. 그러나 현재 보응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다.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던 순경 대대장 리바우핑(李寶平)은 심장이식 수술을 했다. 공안국 부국장이었던 덩리쉬안, 마즈선은 모두 50대인데 한 명은 심장 파열, 한 명은 암에 걸려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이었다. 마즈선은 임종 때 박해에 동참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왕지중은 이들에 이어 변을 당했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통치하에서 박해에 참가한 이들 역시 피해자다!

장쩌민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클린턴 대통령에게 미국은 과학이 그처럼 발달했는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심지어 과학자들도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일국의 지도자가 그처럼 저급적인 질문을 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사실 중국은 5천년 동안 요순(堯舜)에서부터 주(周)나라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한나라 문경(文景), 당나라의 정관(貞觀), 청나라의 강희(康熙), 건륭(乾隆)까지 성인이 많았고 유불교 정신이 빛났다. 역대 황제들은 모두 하늘을 경앙하고 신을 믿었으며 사람들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실천하여 사회도덕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이는 문화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중국인들의 뿌리였다. 하지만 중화민족 전통문화와 어울리지 않는, 한 서양인이 억측해낸 공산주의 신앙이 중국인들의 사상에 침입했고 결국 폭력으로 정권을 빼앗아갔으며 무신론을 추켜들고 신앙을 없애고 사찰을 부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문화를 철저히 짓밟았다. 몇 십 년 동안의 끊임없는 세뇌로 중국인들은 전통문화를 잃었고 더 이상 인과응보를 믿지 않게 됐다. 최소한의 도덕마저 사라진 중국인들은 현재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나쁜 일을 하여 사회 기풍이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불가는 선(善), 도가는 진(眞), 유가는 참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투쟁과 폭력을 숭상하며 몇 십 년 동안 각종 피비린 정치운동을 벌였다. 공산당은 대약진, 6.4학살, 파룬궁 박해 등 사건을 통해 평화 시기에 중화의 아들딸 8천만 명을 처참하게 사망케 했다.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망자 수를 초과한다. 자연과 싸워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파괴해 청산은 다시 푸르지 않고 맑은 물은 혼탁해졌으며 공기는 황사와 스모그로 오염됐다. 특히 사회적인 도덕과 신뢰에 위기가 발생해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친부모도 몰라보고 불량 쌀, 식용유, 분유 등 유독 식품들이 범람해 중국인들은 무엇을 먹든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 이처럼 전반 사회가 이미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권력자가 아무리 사회 기풍을 강조해도 뿌리 없는 나무처럼 일시적으로 완화될 뿐 근본적인 해결은 할 수 없었다.

파룬따파(파룬궁)는 불법(佛法)으로 중국의 오래된 수련문화에서 비롯됐다. 파룬따파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외 도덕승화를 중시해 박해 전에는 1억 명 이상이 수련했었다. 파룬따파는 심오한 법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억만 수련생들에게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하고 몸과 마음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지속된 박해와 권력자들의 모함과 모독에도 많은 수련생들은 여전히 마음속 깊이 바른 믿음을 견지할 수 있었고 박해가 시작된 후에도 16년 동안 홍콩, 마카오, 대만을 포함한 140여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고 있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진선인(眞善忍)이다. 우리는 무고한 속인들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이 문장을 쓴 목적은 아직도 중국공산당의 죄악의 쇠사슬에 얽매여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진심어린 권고를 들어주길 바라서이다. 누가 나쁜 일을 하면 그가 갚아야 한다. 당신과 당신 가족을 위해 길을 잃고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며 지금이라도 회개해 사악한 자들의 희생양이 되지 말아야 한다. 중국공산당의 순장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왕지중과 같은 비극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보다 많은 세인들이 진상을 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대법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일념을 가지면 하늘이 행복과 평안을 내린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

추가사례:

(오랜 기간 많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통계가 완전하지 못해 밍후이왕에 보도된 사례만 여기에 나열했다. 또한 문장 길이의 제한으로 몇몇 전형적인 사례만 선택했다.)

60대 파룬궁수련생 리수옌(李淑岩)은 2000년 러팅현 구치소에 1년간 불법 수감됐다. 2007년 6월 공안과 검찰원에 기만당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2년 형을 선고받았다.

팅류허(汀流河)촌 주민 류훙잉(劉紅英)은 2001년 5월 불법으로 노동교양 3년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몇 번 더 납치됐고 지금까지 여전히 불법적으로 탕산시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다샹거좡(大相各莊)진 주민인 왕쑤핑(王素萍) 부부는 2005년 5월 각각 노동교양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러팅현 청관진 주민인 먀오리췬(苗立群)은 2006년 5월 11일 납치됐다.

룽거좡(龐各莊)향 왕좡즈(王莊子)촌 주민 창전잉(常振營)은 2006년 6월 15일 납치됐다.

팅류허 주민 리춘화(李春華)는 2006년 11월 1일 납치됐다.

옌거좡진 주민 싱슈쥔(邢秀軍), 허원메이(何文梅), 허원리(何文裏)는 모두 2007년 불법적으로 1년 동안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중바오(中堡)의 60대 주민 리수옌(李淑岩)은 2007년 말 불법적으로 2년형을 선고 받았다.

중바오 파출소는 2008년 6월 마리쥔(馬麗君)을 불법 수사해 10일 동안 감금했다.

중푸가오좡커(中蔔高莊窠) 주민 리진쿠(李金庫)는 2008년 6월 26일 현지 파출소의 불법수색을 당한 후 구류됐다. 2012년에도 수차례 불법 구류됐다.

구좡(顧莊)의 30대 주민 구리쥔(顧立軍)은 다칭허(大淸河) 소금공장 직원이다. 2008년 7월 24일 새벽 3시 경 왕지중과 마즈선(馬志申)의 지시로 다칭허 변방초소에 납치된 후 비밀리에 스자좡 노동교양소로 끌려가 1년 동안 불법 수감됐다.

장시궁(張錫功)은 2008년 9월부터 2년 동안 불법으로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차오야춘(曹亞春)은 신자이진 샤오허옌(小河沿)촌 파룬궁수련생이다. 옌더푸(閆德樸)는 거러우퉈첸샤오잉(閣樓坨前小營)촌 파룬궁수련생이다. 두 사람은 2009년 8월부터 2년간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류시런(劉熙仁) 마터우잉(馬頭營) 부부는 2009년 8월 가택 수색을 당할 때 탈출했는데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칸샤오루(闞小茹)는 2009년 9월 신자이 파출소에 납치돼 2년 동안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다.

청관자오쥔양(城關敎軍場)촌 주민 리옌핑(李艶萍)은 그동안 수차례 괴롭힘을 당했고 범죄자들과 같이 길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받았으며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2010년 4월 다시 납치돼 억울하게 4년형을 선고받았다.

리옌링(李艶玲)은 2010년 5월 납치됐고 가택 수색을 당해 1만6천 위안(약 350만원)을 빼앗겼으며 나중에 억울하게 8년형을 선고 받고 스자좡 여자감옥에 갇혔다.

48세 러팅(樂亭)현 전력국 직원 장이뱌오(張一彪)는 2010년 11월 18일 회사에서 납치됐다. 가족들이 10만 위안(한화 약 2천만원)을 뜯기고서야 그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60대 후반 신자이(新寨)진 샤오허옌(小河沿) 주민 류춘란(劉春蘭)은 2011년 4월 납치되어 억울하게 7년형을 선고받았다.

신자이진 샤오허옌 주민 왕아이민(王愛民)은 2011년 납치되어 억울하게 2년형을 선고받았다.

신자이진 주민 펑즈루(馮志茹)와 후샹화(胡香花)는 현지 파출소에 납치된 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장거좡우자즈(薑各莊五家子)의 50대 주민 왕수롄(王淑蓮)은 2011년 6월 납치되어 억울하게 2년형을 선고 받고 스자좡 여자교도소에서 심한 박해를 받았다. 며느리가 출산했지만 돌봐주지 못했다.

팅류허 고등학교 교사인 웨이위후이(魏宇輝)는 2012년 2월 26일 납치됐다가 수일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3월 19일 자택에서 탕산(唐山) 카이핑(開平) 교도소로 납치돼 2년 동안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자오구이잉(趙桂英)은 팅류허 출신으로 2012년 6월 납치된 후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다.

청관진(城關)진 주민 셰위루(謝玉茹)는 2014년 6월 14일 시장에서 왕지중에게 파룬궁 진상자료를 줬는데 왕지중과 그의 무리들에게 납치돼 구치소에 갇혔고 집안 물품들을 모두 수탈당했다.

문장발표: 2015년 4월 8일

문장분류: 천인지간>인과>업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4/8/30727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