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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신원광업그룹 대표이사 랑칭톈이 응보 받다

[밍후이왕] 랑칭톈(郎慶田)은 산둥 신원광업(新汶礦業)그룹의 대표이사이다. 임직기간에 그는 전력을 다해 줄곧 파룬궁을 박해했고 2014년 10월, 거액의 탐오 수뢰죄로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랑칭톈은 65세로 1998년 3월에 신원광업그룹의 대표이사직 겸 총 책임자를 맡았으며 2001년 5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신원광업 그룹의 대표이사 겸 당서기를 맡았다.

랑칭톈이 임직한 기간은 바로 중공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를 이어가던 시기였다. 그는 장 씨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하라’는 박해지령을 받들었다. 그는 산하의 관리 악도가 파룬궁수련생을 야만적으로 납치하고 불법 감금하고 세뇌를 강요하며고문 학대하고 불법 가택수색, 재물을 강탈하며 물건을 노략질하고 불법으로 정직처분, 월급을 압수하고, 불법노동교양 등의 수단으로 잔혹하게 박해하는 것을 사주하고 방임했다. 불완전한 통계로는 수백 명 파룬궁수련생이 세뇌를 강요당했고 적어도 10여 명이 불법 노동교양을 받고 적어도 3명이 박해 치사 당했다. 이유 없이 소란을 피운 것은 셀 수도 없다.

대량의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되고 세뇌당하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던 초기, 신원광업그룹은 사악의 ‘610’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이다. 공안, 검찰원, 법원, 사법국을 능가한다.)을 성립했다. 층층의 ‘순서에 따라 조사하고 내막을 탐지’하여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하는 수련생을 소속 각 단위, 회사의 세뇌반에 모이게 했다. 사당서기 (혹은 지부서기)는 공안과, 보위과 인원과 심문, 협박, 사악의 영상물을 방영하고 가택수색, 벌금, 체벌, 가족 협박, 사진촬영, 서명 강요, 신분증 몰수 등의 수법으로 수련생을 핍박해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게 했다.

사악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는 수련생은 타이안 시 ‘610’에서 꾸린 세뇌반, ‘산둥성 법제교육기지(주버왕 촌에 설치되어 있다.), 노동교양소에 강제 납치해 계속 박해했다.

1999년 7월 19일에서 8월 2일까지, 신원광업그룹의 량좡쾅(良莊礦) 병원의 직원 정훙링(鄭洪玲)과 남편 자오지썬(趙其森), 파룬궁수련생 왕지란(王吉蘭), 한성리(韓勝利, 이미 박해 치사 당했음.), 한이민(韓義民, 한성리 아들)을 광업 초대소 세뇌반에 납치하여 강제 세뇌했다. 광업보위과 과장 리총빈(李從彬), 지부서기 라오젠밍(勞建鳴), 부과장 구지강(賈繼剛)은 대법 서적, 대법 자료를 바치라고 핍박하고 대법을 모욕하는 사악한 영상물을 보게 했으며 ‘연공하지 않는 보장’ 등을 강제로 쓰게 했다.

2000년 여름, 광업병원 지부서기 완후이쥐(萬會舉)는 정훙링, 왕지란을 강요해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게 했다. 그녀들이 거절하고 응낙하지 않자 왕촌노동교양소에서 강제로 세뇌하고 소위 ‘3서’를 쓰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보름 동안 박해했다. 2004년 3월 11일 광업보위과 지부서기 루지웨이(蘆繼偉) 등은 정훙링과 왕지란을 신타이(新泰)간수소로 납치해 27일 불법 감금했다. 다음 또 왕촌의 ‘산둥성 법제교육기지’로 납치해 강제로 44일간 세뇌했다. 단위에서 ‘바오쟈(包夾)’를 파견해 감시하게 하고 사악의 영상물을 억지로 보게 하고 사당의 거짓말을 주입했다. 매일 100위안 바치게 했으며 각 개인에게서 4,400위안을 갈취했다.

2001년 장관민[薑官民,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일찍 신원광업그룹의 위춘쾅(禹村礦)과 원난쾅(汶南礦)광업소의 부소장]과 아내 순윈화(孫運華)는 신광그룹 ‘610’과 타이원(泰汶) 공안국 악인에게 납치되어 왕춘노동교양소에서 1개월간 세뇌당했다. 순윈화는 핍박으로 당뇨병과 심장병을 초래해 줄곧 회복되지 않아 불행하게도 2007년,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2002년 5월 2일, 신원광업그룹 화펑쾅(華豐礦)의 퇴직직원 왕즈화는 타이안(泰安)에서 한창 새집을 꾸미고 아내 볜쉐윈(卞學雲)도 태안에서 손자를 보고 있었다. 화펑광업보위과 쑨쇼우펑(孫少朋)은 다짜고짜 두 부부를 왕촌 세뇌반으로 납치해 갔고 그곳에서 온종일 대법과 사부님을 공격하고 중상하는 사악의 영상물을 방영해 사당의 거짓말을 퍼뜨리고 수련생을 강제로 세뇌했다. 그들은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 심신이 심하게 손상을 입었다. 볜쉐윈은 32일 감금되었다. 왕즈화는 시종 사악과 협조하지 않았고 65일 감금된 후 비로소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각류의 세뇌반에 납치되어 박해받은 수련생은 또 요우룽산(姚隆山) 고우민어(高敏娥), 후라이슈(胡來秀), 리칭상(李慶香), 류전푸(劉貞福), 스카이화(石開花), 주파란(朱法蘭), 우신시(吳新喜), 장리(薑麗), 왕안잉(王安英), 바오페이핑(包配平), 조우원주(趙文祝) 등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있다.

적어도 10명 파룬궁수련생이 불법 노동교양을 받다

신원광업그룹 ‘610’, 공안, 보안계통은 여러 가지 세뇌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의 ‘진선인’에 대한 신앙을 개변시키지 못하면 그들을 불법 노동교양을 시켜 파룬궁수련생의 심신에 아주 큰 상해를 입혔고 그들 가정에도 극대한 재난을 초래했다.

류센룽(劉先榮), 30여 세, 신원광업그룹 판시(潘西)탄광 직원. 그는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혹독한 구타, 전기충격, 꽁꽁 묶여 대중 앞에서 처벌당하고, 강탈, 노동교양을 당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시범: 혹독한 구타

1999년 7월 20 이후, 류센룽 등 파룬궁수련생은 대법을 위한 공정한 처리를 요구하러 북경으로 가다가 지난(濟南)기차역에서 저지당했다. 판시탄광에 데려온 후 보위과장 차오둥훙(曹東紅), 류성(劉生)은 보위과의 류리쥔(劉麗軍), 장룬화이(張潤懷), 청쩡쥔(程增軍), 위진유(於金友) 리광성(李光勝)에게 지시해 박해를 하게 했다. 그들은 두 남성 파룬궁수련생을 시멘트 바닥에서 기어 다니게 했다. 움직이지 못하자 리광성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위진유는 뒤에서 발로 찼다. 대략 50바퀴 돌자 또 기마자세를 취하게 했다. 바닥에 넘어지면 가차 없이 마구 때렸다. 류센룽은 또 단독으로 작은 방에 감금당하고 혹독하게 구타당했다. 70세 넘은 한 여 수련생은 핍박으로 두 손을 앞으로 곧게 펴고 쭈그려 앉게 했다. 그녀가 지탱하지 못해 바닥에 넘어지자 위진유는 그녀를 구타해 코와 입에서 출혈이 있었다. 밤낮 자지 못하게 했기에 그녀는 기절해 쓰러지면서 탁자 모서리에 얼굴이 부딪쳐 찢어졌다. 그들은 두 남자 수련생에게 10여 차례의 전기충격을 가해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악도들은 또 그들을 철 기둥에 수갑을 채워 거의 10일간 학대했다.

1999년 12월, 류센룽 등은 북경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붙잡혔다. 판시탄광에 압송된 후 보위과의 상화이훙(尚懷紅)은 치욕적으로 류센룽의 넥타이를 소변보는 음부에 매고 경찰봉을 휘둘러 때렸다. 다른 수련생 4명은 교류문장을 돌려 보았다고 보위과로 불렀다. 악도는 엄동 섣달에 그들을 실외의 어두침침한 곳에 쭈그려 앉게 했다. 후에 경찰은 류성(劉生)을 부추겨 6명 수련생을 꽁꽁 묶고 손에 총을 쥔 무장경찰 두 명이 누르고 판시탄광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대중에게 보게 했다.

며칠 후 베이징으로 청원 간 두 수련생은 벌금 2,500위안을, 기타 4명은 500위안을 징수했다. 그중 두 사람을 강청(鋼城) 세뇌반에 끌고 가 강제로 7일 동안 세뇌했고 개인마다 또 벌금 3,150위안을 징수했다. 류센룽은 라이우(萊蕪)시 베이부(北埠) 간수소에 1개월 불법 구류당했다. 사람을 풀어줄 때 악도는 류센룽 부모에게 강성구(區) 공안 분국에 5천 위안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2000년 12월, 류센룽은 류성에게 속아 보위과에 갔다가 무고하게 1개월 넘게 감금되었다가 섣달그믐날 오후 4시 넘어서야 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류센룽은 또 왕촌 노동교양소에 2년 6개월 동안 불법노동교양 당했다. 집에는 직업이 없는 아내와 생후 몇 개월 된 아이가 어렵게 생활했다.

뉴룽톈(牛榮田, 여 51세). 신원광업 그룹 화헝(華恒)광업 유한회사 직원의 가족이다. 그녀는 ‘진선인’ 수련을 견지했다는 원인으로 혹독한 구타, 강탈, 노동교양을 당했다.

2001년 12월 초하루, 뉴룽톈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의 고발로 장촨위(張傳玉-이미 악보를 받아 죽었음.)와 고우레이(高磊)에게 광업공안국으로 납치당했다. 3일 후 또 산둥 제1 여자 노동교양소에 납치되어 강제적으로 세뇌당하고 거의 3개월간 박해받았다. 장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하였고 악담으로 모욕하고 벌로 서게 하였고 매일 10여 시간 노예노동을 했다. 강박으로 소위 ‘3서’를 쓰게 하고 또 6천 위안 세뇌비용을 강탈한 후에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7년 정월 초닷새, 이른 아침, 뉴룽톈 일가족이 일어나기 전에 공안과장 고우레이는 한 무리 악경을 데리고 강제로 집에 뛰어들어 TV, DVD 플레이어와 대법서적, 자료 등을 강탈하고 노인과 아이를 악독하게 위협했으며 또 야만적으로 뉴룽톈을 납치했다. 80세 노모는 앞에서 저지하다가 하마터면 악인이 밀어 넘어질 뻔했다. 몇몇 악경은 6층에서 뉴룽톈을 밀고 당기며 아래층까지 끌고 내려와 경찰차에 밀어 넣고 공안과에 납치했다. 불법으로 6일 감금했고 가족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후 뉴룽톈은 또 타이안(泰安)시 간수소에 납치되어 20일 동안 박해받아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심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곤란해지고 혈압이 높아졌다. 간수소는 위험이 두려워 풀어주려 했지만 악경 과장 고우레이, 사당서기 왕리신(王立新)과 회사 ‘610’ 리둥쥐는 도리어 가족들을 속여 1만 위안을 바치면 사람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뉴룽톈은 가족이 여기저기에서 빌린 1만 위안을 준 후 산둥 제1 여자 노동교양소에 납치되어 1년 반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酷刑示意图:摧残性灌食
고문 설명도 :박해 음식물 강제 주입

노동교양소에서 뉴룽톈은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며 ‘전향’을 거절했다. 그녀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다가 1대대 악경 정모(鄭某), 샤오잉(肖英), 류쥐안(劉娟), 악범 판안화(番安華) 등 한 무리의 미친 듯한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독약을 섞어 강제로 주입했다. 뉴룽톈은 전신이 아파 바닥에서 뒹굴었고 죽었다 살아났는데 하마터면 세상을 떠날 뻔했다. 후에 좀 시간이 지나 한 무리 악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가차 없이 마구 때려 그녀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 또 장시간 잠자지 못하게 하고 매일 거짓, 압박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2개월이 좀 지나자 뉴룽톈은 박해받아 피골이 상접하고 걸을 수 없었다.

2008년 8월, 뉴룽톈의 불법 노동교양이 만기 되었다. 고우레이, 왕리신과 리둥유는 또 그 가족에게 3천 위안을 강탈했다. 뉴룽톈 가족은 선후로 2만여 위안 (그녀의 남편 수련생 바오페이핑-包配平도 일찍 감금되어 협박으로 돈을 강요당했다.)을 강탈당했다. 두 아이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다. 집에 확실히 돈이 없자 고우레이는 그 가족을 압박해 부족한 부분은 차용증을 쓰게 하여 비로소 뉴룽톈을 풀어 주었었다.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또 장창정(張長征), 런즈링(任志玲), 정훙링(鄭洪玲), 순수팡(孫淑芳), 리수친(李淑芹), 허우옌샹(侯延香), 류친(劉芹), 왕루빈(王汝斌) 등이다.

적어도 3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치사 당했다

신원광업그룹 ‘610’, 악경, 악도는 장쩌민의 ‘때려죽여도 실수이고, 때려죽이면 자살로 친다.’는 밀령을 빙자해 파룬궁수련생을 두려움 없이 박해했다. 그들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련생이 맞아 다치고 불구가 되고 심지어 사망했다.

한성리(58세). 신원광업 그룹 량좡광업 퇴직 직원이며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1999년 7ㆍ20 이후, 량좡광업 보안경찰은 줄곧 그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2001년 5월 하순, 한성리는 창칭(長清) 고향집으로 돌아가다가 광산보안경찰에 의해 고향에서 왕춘노동교양소에 야만적으로 납치되었다. 그는 10여 일 불법 감금당하고 ‘세뇌’를 강행했다.

집으로 돌아간 후, 그는 세뇌를 당해 대법에 가져다준 부면적인 영향, 자신이 수련에 조성한 엄중한 후과를 심각히 인식했다. 그리하여 그는 단호히 천안문에 가 ‘진선인’이 있는 대법 현수막을 펼쳤다. 그는 신타이에 송환된 후 신타이구류소에 감금되었다. 그는 혹독한 형벌을 받았고 거액의 벌금을 당해 정신이 거의 붕괴하였다. 후에 또 왕춘 노동교양소에 보내졌지만, 신체적인 원인으로 되돌아갔다. 현지 사악의 악도는 그를 계속 불법감금하고 잔혹하게 박해했다. 한성리는 3개월 동안 혹형 시달림을 받은 후 2001년 8월 초 박해치사 당했다.

장칭메이(張慶梅, 여, 35세). 신원광업 그룹 화펑광산[닝양(寧陽)현 경내에 있다.] 직원 가족이다. 1999년 7월 23일 장칭메이와 남편 류둥화(劉東華)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돌아온 후 화펑쾅 공안에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집에 있는 대법 서적, 사부님 설법 영상물, 녹음테이프, 전화 통신록과 많은 재물을 악경이 모조리 빼앗아 갔다. 부부는 각각 연행당해 심문당했다. 악도는 끊임없이 욕하고 자정까지 잠자지 못하게 학대하고 5일 동안 불법 감금했다.

1999년 12월 10일 장칭메이 부부는 재차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타이안 시공안국 베이징 사무소에 억류당했다. 12일, 화펑쾅 공안과 지부서기 추이위허(崔玉河), 부과장 장퉁전(張同珍)은 그들을 현지로 호송해 불법감금했다. 악도는 연속 며칠 고문을 해 자백을 강요하고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며 식수를 주지 않고 가족과 만나는 것을 금지했다. 15일 오후, 쾅공안과 천펑(陳峰), 화펑진 링산향 (華豐鎮靈山鄉)파출소 부소장 장성펑(張勝峰)은 장칭메이를 심문하고 강박으로 기마자세를 하게 했다. 두 사람의 더러운 말과 욕지거리는 귀에 담기 어려웠다. 장시간 체벌로 장칭메이는 바닥에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악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꽉 잡고 위로 잡아당겼다. 일어나지 못하자 걸레로 그녀의 팔과 다리를 비틀었고 또 아주 굵은 나무 막대기로 척추를 맹공격했다. 악도는 지쳐서야 멈췄다. 장칭메이는 시달림에 숨이 곧 끊어지는 듯했다. 저녁에는 또 작은 방에 수갑을 채워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악도들은 떠벌렸다. 때려죽여도 실수다. 18일 오후, 장칭메이는 닝안 현 공안국에 불법으로 15일 구류되고 남편 류둥화는 1개월간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만년에 병이 중한 시아버지는 매일 아들 며느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걱정에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못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붙잡혀 매 맞고 백방으로 능욕당했음을 알고 시아버지는 마음이 너무 아파 분통하고 비통해 세상을 떠났다.

장칭메이 부부는 장기적으로 중공 악도의 까닭없는 소란을 받고 전화감시 등 끝없는 위협을 당했다. 간혹 한밤중 1시 넘어 문을 두드려 이웃들이 놀라 불안해했다. 그들에게 부과한 벌금을 누계하면 8,800위안이 넘고 어떠한 영수증도 없다.

2001년 1~2월 사이 악도는 장칭메이에게 매일 공안국에 와 ‘보고’하게 했다. 3월 3일 사악은 그녀에게 ‘회개서’와 노동 교양 중에 선택하라 핍박했다. 3월 4일 아침 일찍 장칭메이는 또 보위과의 협박과 위협으로 마침내 치사 당했다.

위안옌숭(亓廷松, 67세), 신원광업 그룹 어좡(鄂莊)탄광[라이우(萊蕪)경내에 있음]의 퇴직교사다. 2007년 10월 15일 그는 악경의 납치를 당했다. 11월 5일 저녁, 라이우 시병원에 실려 와 응급조치를 했지만 6일 새벽 3시 10분에 병원에서 ‘위독통지서’를 하달했다. 병원은 위안옌숭의 내장 기능이 쇠약하고 상부 소화기에 출혈이 있고 오장의 상태가 엄중하다고 평가했다. 악도는 위안옌숭의 생명이 위험한 것을 보고 또 가족을 핍박해 이미 석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인을 하게 했다. 6일 오전 어좡광산 보위과 과장 양러핑과 라이우 시 공안, 검찰원, 법원의 한 무리 악인은 량퍼(梁坡) 파출소에서 회의를 열어 비밀 모의를 했으며 위안옌숭이 ‘x 교를 이용해 법률실시를 파괴했다.’ ‘제재가 두려워 자살했다.’고 내정했다. 11월 11일 오전, 위안옌숭은 신원광업 그룹 병원에서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세상을 떠났다. 위안옌숭은 일찍 혼미상태에서 대변에 많은 어혈이 있었고 입으로 피를 토했다. 병력에는 간장, 심장, 신장이 엄중히 쇠약하고 수혈원인은 빈혈, 상부 소화기에 출혈이 있고 입안이 전부 문드러지고 혀는 검고 줄어들었고 절단면은 가지런하며 등허리 부분과 팔은 심한 상처 자국이 있다고 했다.

랑칭톈이 장악한 신원광업 그룹 악도들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천인공노했다. 2001년 12월 27일, 원난(汶南)탄광에 특대 탄진 폭발이 발생해 2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상해했다. 랑칭톈은 그룹 회사 안전생산 제1 책임자로서 행정 과실기록 처분을 받았다.

2007년 8월 17일, 파산되어 다시 구성된 화위안 광업회사(원 장좡쾅-張莊礦)에 특대누수 사고가 발생해 172명이 죽고 광산이 문을 닫는 일을 초래했다. 랑칭톈은 신원광업그룹 이사장으로 단지 과실기록 처분만 받았다.

설령 이러해도 랑칭톈 이 ‘홍정(紅頂)상인’은 하늘의 경고를 알지 못하고 중공이 그의 머리에 씌워준 종종 ‘영예’ 광환에 도취하여 직원의 생명을 초개로 여기고 파룬궁 박해를 계속해 범죄의 심원으로 점점 깊게 빠졌다.

그러나 하늘의 이치는 분명하고 응보는 틀림없다. 2010년 6월 22일, 랑칭톈은 신원광업 그룹 회사 이사장, 당위원회 서기 직무에 면직되었다. 6개월 후 61세의 랑칭톈은 기업 주주권을 변경하고 은닉하여 국유자산을 착복하고, 1억여 위안을 탐오, 수뢰한 혐의를 받고 조사 처리당했다.

2014년 10월, 짜오좡(棗莊) 시 검찰원이 입안 수사한 신원광업그룹 유한책임회사 원 당위서기, 이사장, 산둥 신량유지(新良油脂)유한회사의 원 이사장 랑칭톈(정청급), 신원광업 원 총회계사, 신량회사 원 이사장 판푸화(부청급)를 탐오, 수뢰, 공금을 돌려쓴 안건으로 공소를 제기했다. 짜오좡시 중급법원은 법에 따라 심리하고 1심 판결을 해 탐오죄, 수뢰죄로 피고인 랑칭톈을 2년 사형집행유예, 종신토록 정치 권리를 박탈하고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한다고 선고했다. 탐오죄, 수뢰죄, 공금을 돌려쓴 죄로 피고인 판푸화에게 무기형을 선고하고 종신토록 정치 권리를 박탈하며 동시에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한다고 판결했다.

선악에 응보가 있는 것은 하늘의 이치다. 인간쓰레기를 청산하는데 반드시 시기가 있다. 고금왕래 신분이 어떻게 높고 얼마나 큰 권리를 소유하고 일시 얼마나 호사하고 얼마나 방자하고 오만하든지 결국은 자신이 지은 어떠한 죄업도 모두 자신이 갚아야 한다. 우주의 법리는 일체에 균등하다. 천멸중공(天滅中共)의 법규 아래 고관은 분분히 낙마하고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한 흉수 왕리쥔, 보시라이는 이미 일찍 감옥에 갇혔고 리둥성, 쑤룽(蘇榮) 등은 분분히 체포되고 피의 부채가 가득한 저우융캉도 마침내 체포되어 법에 따라 처벌되었다.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주모자 장쩌민도 당황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말로에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설마 아직도 자신의 말로를 똑똑히 보지 못했는가? 지금까지 여전히 잘못을 고집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형세를 똑똑히 인지하고, 시비를 식별하고 즉시 파룬궁 박해를 멈추기를 바란다. 파룬따파를 지지하고 대법제자를 선대하고 박해자의 죄악을 폭로하여 공을 세워 속죄하며 중공사당의 일체 조직을 탈퇴하고 자신과 가족에게 한 갈래 살길을 남기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천인지간(天人之間)>인과>악에 대한 보응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10/3013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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