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통신원 대륙보도) 중공의 각급 기관단체의 일부 종사자들은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는 중공(중국공산당)의 도구 역할을 하고 있는데 특히 경찰과 중공의 각급 지부의 책임자들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사람들이 악보를 받고 죽고 다치거나 기타 방법으로 재난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로 나타나고 있는데, 암으로 죽거나 혹은 교통사고 혹은 가족에게 재난이 오고 또는 당사자 스스로가 중공에게 이용을 당할 대로 당한 후 재판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기도 한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늘 그들의 재앙을 우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러나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음은 천리로 이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어긋난 적이 없다.
당신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은, 당신들이 사당의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여, 지금 자신의 생명을 영원히 책임지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악행을 중지시켜 스스로 자신이 악보를 받거나 아직 악보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구도될 기회를 남기기 위함이며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린퉁화(吉林通化)현 공안국원 국보대대장 츠얜민(遲延民)이 악보로 사망
2007년부터 2국보대대장직을 수행한 츠얜민(遲延民)은 재직 중에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한 자로, 퉁화현 8중 물리교사 쉬훙진(徐洪軍)을 억울하게 재판에 회부되게 하여 4년 반의 중형을 받게 했고, 영어교사 류핑(劉萍)을 박해하여 4년이 넘도록 유리걸식하게 만들었으며, 란신화((蘭新華), 잰위제(臧玉潔), 리쑤메이(李淑梅) 등에게는 노동교양처분을 당하게 하고 그 외 다른 많은 사람들을 납치하고 감금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츠얜민은 그 후 임업국 부국장으로 보직변경 발령을 받았으나 발령된 지 얼마 안 되어 급사했고, 그의 처는 골절상을 당했다. 2012년 9월 22일 오전 츠얜민은 그의 처 왕앤(王岩)과 함께 임업국 관용차를 몰고 백산온천으로 온천욕을 하러 가던 중에 쟝원현 지역에서 타고 가던 차량이 4m 높이 골짜기로 추락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츠얜민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그의 처는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으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외지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졸지에 가족의 재난을 당한 것이다.
츠얜민은 금년에 직장인으로서는 한창 나이인 51세였으나 대법의 박해로 악보를 받아 일찍 사망에 이르렀고 가족들에게는 끝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하얼빈시 후란구 악경 장앤위, 악보로 사망
장앤위(張延宇, 50대)는 2005년 하얼빈(哈爾濱)시 후란(呼蘭)구 팡타이진에서 파출소 소장으로 근무했다. 1999년 7.20 이후 그는 장 씨 집단을 바싹 뒤따라 여러 차례 파출소 직원을 이끌고 대법제자들을 교란하고 위협하며 납치하고 감금했다. 그는 재임기간에 팡타이진 대법제자를 납치하여 감금(구류)하고 노동교양처분을 시켰는데 그가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하여 재판에 회부한 것만도 7,80여 명에 달하며 그 과정에서 장쉐원(張學文) 수련생은 혹심한 박해로 사망했다.
장앤위는 인사이동으로 후란구 쐉징진 파출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계속 관할 지역의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를 지속적으로 감행하였다. 그러나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뒤따르기 마련이어서 그가 어찌 천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다만 일찍 오거나 늦게 올 뿐인 것을. 장앤위는 2012년 9월 16일 교통사고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각기 다른 곳에 떨어지는 처참한 꼴로 목숨을 잃었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머리와 몸통이 둘로 나뉘는 그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다.”고 말했다.
중칭시 주민위원회 주임 쟝꾸이팡, 파룬궁 수련생 박해의 악보로 사망
중칭(重慶)시 주민위원회 주임 쟝꾸이팡(蔣貴方)은 중공도당의 당원으로 중칭시 따주구원 쑨밍광춘 출신이다. 그는 따주구 산취진 룽수이 파출소에서 재직한 경력이 있어, 2000년 따주구 룽수이진 꾸난제 동사무소 소장으로 발령된 후 파룬궁 박해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사당의 입장에서 대법을 비방했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꾸난 지역에는 파룬궁수련생들이 비교적 많아 그는 늘 수련생을 찾아가 소란을 피웠는데, 중공사교가 발행한 이른바 ‘5서’라는 것을 들고 가서 대법제자를 핍박하며 서명받기를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연합도급카드’를 악용, 지역 주민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서명하게 하거나 주민위원회 사무실까지 활용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협박을 가하여 재물을 갈취했다. 이런 탐오와 횡령 독직 등 나쁜 행실의 자행으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쟝꾸이팡은 2002년 8월 30일 오전 룽수이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룽수이진 주민위원회로 가다가 과속으로 대형 화물트럭 밑으로 돌진하며 부딪쳐 머리통이 터져 사방으로 튕겨나가며 현장에서 즉사하는 악보를 받았다. 그 시체를 고향인 쑨룽밍광춘으로 운송했으나 고향의 아저씨와 조카들이 모두 시신 안치를 거부하며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할 수 없이 들안 중간 지점에 간단한 빈소를 설치하여 장례를 치렀다.
룽수이꾸난 동사무소의 지역 주민들은 쟝꾸이팡이 횡액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지역의 재해가 제거됐다. 하늘에도 눈이 있다.”며 모두 그의 죽음에 갈채를 보냈다. 또한 모모라는 사람은 그 사고사와 관련하여 쌍방과실 운운하며 화물차 기사로부터 거액을 갈취하려던 탐욕의 죄행이 낱낱이 폭로되기도 했다.
문장발표: 2012년 10월 2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2/2635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