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디웨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기 시작할 때, 나는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북경에상방(청원)하러 갔었는데, 중공의 반응은수 차례체포와 감금뿐이었다.
한 번은 북경의 한 파출소에서 쇠막대기로 가로막은 임시 감방에 갇혔다. 저녁 무렵 감방 안에는 또 금방 붙잡혀 온 ‘불법체류자’ 몇 십 명이 들어왔는데, 사실은 바로 각지에서 북경에 상방하러 온 민중과 민공들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북경에서는 이른바 ‘안정’을 위하여 온 시내의 모든 군경을 출동시켜 마치 과거 일본군들이 소탕하던 것처럼, 이들에 대해 포위추격하고 가로막았다고 했다. 경찰은 이 ‘맹류(盲流, 농촌에서 도시로맹목적 유입자)’들을 파출소에 잡아온 후 퇴근해버렸고, 오직 군용 외투를 걸친 사람 하나만 남겨 당직을 서게 했다.
당직을 서는 사람은 50여 세 되어 보였는데, 외투에는 ‘연방(聯防)’이라는 완장을 찼다. 그는 정규 경찰이 아니라 파출소에 편제된 그런 임시직이었다.
‘맹류’가 감방에 들어오자 이 ‘연방’ 완장을 찬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몸을 수색했다. 말로는 ‘안전검사’였지만 ‘검사’해낸 것은 모두 현금과 값 나가는 물건이었다. 비록 말로는 상자에 넣어 잠시 보관한다고 했지만 누구도 다시는 가져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 ‘연방’은 솜씨가 재빠르게 이 일체를 했는데, 그의 냉혹한 표정과 거칠고 사나운 태도, 수척한 얼굴에서 튀어 나온험상궂은 얼굴근육을 보니 이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님을 보아낼 수 있었다.
‘맹류’ 중에 또 몇 명의 부녀자가 있었는데, 감방 안은 사람과 사람이 바짝 붙어 서있어서 제대로 서있을 수 없었다. 그 중에는 또 임산부 한 명이 있었는데, 그녀를 감방의 철문 앞쪽에 배치할 수 밖에 없었다. ‘연방’은 문가의 책상 뒤에 앉아 있었는데, 얼굴은 무표정했으며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그가 감시 관리하는 것이 한 무리 사람이 아니라 팔리기를 기다리는 고양이, 개, 죽기를 기다리는 새끼양인 듯 했다.
아마도이 임산부가 노상에서 도주하다 극도로 놀라 이로 인해 태아가 놀랐는지 밤에 그 임산부는 갑자기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으며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경험이 있는 부녀자 몇 명이아마도 해산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필경은 사람의 운명에 관한 것이었기에 감방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부녀자 몇 명은 ‘연방’에게 빨리 그녀를병원에 가도록 풀어주라고요청했다.
그러나 ‘연방’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눈까풀만 들었다 놓으면서, “참으라고 해요. 나가려면 내일 출근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나한텐 그런 권한이 없어요.”라고 했다.
임산부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마음을 졸였다. 파룬궁 수련자는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선(善)하게대해야하는데, 하물며 이런 긴급한 시각에는…..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호주머니에 남아있는 돈 2백 위안(약3만4000원)이 생각났다.내 신분이 특수해서였는지 들어올 때 빼앗기지 않았다. 나는 그 중에서 백 위안(약1만7000원)을 꺼내어 사람들 틈새로 철문 앞까지 비집고 나와, 철창 난간 사이로 임산부 앞에 내밀었다. “당신은 현재 몸에 일전 한 푼 없는 것 같은데, 나도 많지는 않지만이 백 위안을 당신이가지고있으면 아마마땅히 쓸 곳이 있을 겁니다.”
이때, ‘연방’의 눈꺼풀이 또 올라갔다. “돈! 돈이 많아 쓸 데가 없는가 보지요? 그럼 나한테 줘요, 나는 돈이 모자라요!” 어조는 마찬가지로 거칠고 사나웠지만, 그래도 약간 켕겨 하는 게 있었다.이 쇠창살로 만든 감방 안에서 마치 정어리 통조림 같은 사람무리 속에서 보여진 이 관심이 그의 마음속에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양심을 자극하였는지 단지 허장성세하는 엄포로마음속의 불안을 덮어 감추었다. 나는 여전히 집요하게 돈을 쥔 손을 내밀었는데, 철문 밖의 사람은무서워서 감히 받지 못하였다.
나중에 상황이 안정되어마침내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혼란 속에서, 나의 그 백 위안이 그 임산부의 손에 넘어갔는지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튿날 내가 풀려날 때, ‘연방’의 몇 마디 말은 나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나는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나는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당신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진짜 좋은 사람이다. 내가 진심으로 당신에게 권고하는데 집에 돌아가서 이후에 다시는 여기 오지 마라!” 말할 때 그냥 무표정이었지만, 이미 관심 어린 말속에 숨은 뜻을 감출 수 없었다. “공산당은 바로 이런 물건 짝이다. 나는 선량한 사람들이 고생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말이 끝난 후 그는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고는 또 한 마디 했다. “나는지난 몇 년 동안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말은 거의 습관되어 있지 않고 또 수치감이 있었지만 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마음이 안심되는 듯하였다. 이 말속에 담긴 적막감, 어쩔 수 없는 슬픔은 갑자기 나를 슬프게 했다. 그들 이 세대 사람은 이미 너무나 많은 정치운동과 너무나 많은 상처를 지니고 왔기에진실과 선량을 가슴속에 파묻는 것이 습관되었는지 모른다. 현재 또 생계를 위해 기꺼이 파출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양심을 어기고 악한 일을 다하였으며, 귀를 막고 국민들의욕을 듣지 않는다.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는 것을 벌써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과 신임을 감히 바라지 않으며, 더욱이조금의 진심도 바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약자에 대한 그의 무관심과 무시가 또 내심의 공허함과 고독과 고통을 감추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가 끝내 나한테 던진 이 한마디 관심 어린 말은 또 그의 내심 깊은 곳에서 선량에 대해 얼마나 승인하고 기대하고 있는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일이 지나간 지이미9년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늘 생각난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깊이 촉동(觸動)했고, 나한테 많은 계시를 주었기 때문이다.
매번 이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이 세계에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 한 사람으로서 한 때 그의 표현이 얼마나 사악하고 무심했든 지를 막론하고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아직도 깨우침을 갈망하는작은 선한 양심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오직 우리가 진심으로 선한 마음을낸다면 주위의 사람을 비추어 줄 수 있다.
문장발표: 2011년 8월 12일
문장분류: 명혜주보 제227기> 고금담론
원문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227/A05/91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