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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우(錦州) 교도소 소장, 면직되다

[밍후이왕]2011년 7월 진저우교도소 마전펑(馬振峰)、 가오원웨이(高文偉)、 왕량(王亮) 교도소장이 별안간 면직되어 진청(錦城)의 백성들은 모두 이 일에 의견이 분분했다. 범인 1명이 도망쳐 교도소장이 3명이 면직 당하고 교도관 4명이 형사구류 당해 진저우교도소에 대 지진이 일어난 것보다 좋다고 한다.

2011년 6월 20일 진저우교도소의 범인 모씨가 타지역의 병원방문을 기회로 도망쳤다. 8일 후 그는 우한(武漢)경찰 측에서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진저우 교도관이 일련의 뇌물을 받고 직책을 더럽힌 위법 범죄행위를 고발하였는데 그중 교도관 장바오즈(張寶志)가 받은 뇌물이 10몇 만원이어서 진저우교도소 장바오즈 등 4명 교도관이 혐의를 받아 수뢰죄로 형사구류하고 마전펑、가오원웨이、왕량 교도소장이 면직 당했다.

표면적으로 범인 1명이 도망하고 교도소장 장바오즈가 뇌물을 받아 법을 어겨 중공사당의 “반부패” 가짜극의 희생양이 됐다. 다음으로 마전펑(馬振峰)이 관장이 된 이래의 행적을 함께 살펴보자?

마전펑은 2009년 교도관장이 된 이래 관교(管教)관장 가오원웨이와 서로 의기투합하여 나쁜 짓을 저질렀는데 “전화(轉化)”목표를 정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고 외지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적극분자”를 청해 보고를 했다. 그는 감시구역、감시구역장 심사와 “전화”목표를 연계하고 아울러 파룬궁 수련생 한사람을 “전화”하면 2천원 장려한다고 하여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이리를 저버린 사람이 중간에서 이익을 꾀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면 파룬궁 수련생 장리톈(張立田)을 때려죽이고 위증한 범인 교도소 의사 옌페이(閆飛)에게 3등급의 공을 보고하여 2천위안의 부상을 받게 했다. 각 감시구역의 사악들은 권력과 이익 아래 혹형、강경책과 유화책을 함께 쓰고、위선 등 수단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여 “전화”를 시도했다.

진저우(錦州) 교도소에서는 2008년에 수차례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파룬궁 수련생 장리톈(張立田)이 핍박에 의해 죽은 사건이 가장 주목받았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장리톈은 2008년 11월 17일에 20감시 구 감시구역장 청쥔(程軍)、부 구역장 장바오즈(張寶志)와 범인 리융(李勇)、 류페이옌(劉裴岩)에게 혹독하게 맞아 사망했다. 그 후 대외적으로 장씨가 심장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으며; 가속(家屬)이 외지의 법의를 위탁하여 시체를 검사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시체를 화장터에서 훔쳐 갔다. 박해에 참여한 흉수 장바오즈(張寶志) 등은 줄곧 법을 어기고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행동하여 처벌받지 않았다.

2010년 초 마전펑(馬振峰)은 교도소 소장직무를 이어받은 후 공정하게 이일을 처리하지 못해 가속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었다. 도리어 금방 부임하여 교도소 정탐 처 처장 가오융링(高勇令)등 두 교도관이 장리톈의 고향, 산둥(山東)성 라이저우(萊州)시 사허(沙河)진 주마(朱馬)촌에 가서 장리톈의 아내와 사적으로 사람을 죽인 죄에서 벗어나려 했다. 장씨네는 시체검사를 요구하여 진정하게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 흉수의 형사책임을 추궁하려 했다. 가오융링은 말했다: “이것을 우리는 대답할 수 없으며 사적인지를 봐야한다.” 장리톈의 가속이 태도가 견결하여 사적인 것에 동의하지 않은 후 고오융링은 의견을 교도소 소장 마전펑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마전펑은 후에 이 안건을 공평하게 처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 장바오즈 등을 감싸 주었다.

하지만 악한 짓을 한 자는 천벌을 피할 수 없다. 장리톈이 박해당해 죽은 후 장바오즈등은 비록 잠시 법률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가 너무 악한 짓을 많이 하여 마지막에는 쇠사슬에 묶여서 감옥에 들어갔다. 마전펑은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살인흉수 장바오즈를 감싸주어 부득불 자신이 빚은 쓴 술을 마시게 되었다.

문장분류:천인사이
문장발표:2011년 8월 24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8/24/2457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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