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清言
이고(李皋)는 당나라 사람이며 자는 자란이다. 젊었을 때 참군을 지냈고 후에 비서소감(秘書少監)으로 승진한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상원초년(上元初年), 경성에 가뭄이 들어 쌀값이 폭등해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 이고는 자신의 월급만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어려워, 돈을 더 벌기 위해 지방 관리를 맡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고는 후에 잘못을 범해 좌천당해 지방 관리를 맡게 되었으며. 원저우장사(長史)가 되어 주(州) 중의 사무를 맡아 주관하게 되었다.
원저우(溫州)에도 농사가 잘되지 않아 수확이 좋지 않았다. 이고는 주부 관청에 보관된 수십만 곡의 곡식으로 백성을 구제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하의 하급관리는 황제가 칙명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자고 간청했다. 이에 이고는 “사람은 며칠만 밥을 먹지 않아도 굶어죽는데, 명령을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느냐! 만약 나 한 사람이 죽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가치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여 임의로 관청의 곡물로 백성을 구했고,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자신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바쳤다. 이를 본 황제는 그를 소부감(少府監)으로 승진시켰다.
어느 날 이고가 주변 관할현을 순시할 때 백발의 노부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고가 이유를 물었더니 “나는 이씨의 아내로 두 아들이 있는데 이균(李鈞)과 이악(李鍔)이라고 합니다. 두 아들은 밖에서 벼슬을 한지 20년이 되었지만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저는 너무나 가난해 혼자서는 먹고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당시 이균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이악은 경조부(京兆府)의 법조(法曹)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과거출신이었다.
이고는 노부인의 말에 화가 나 “집에서는 당연히 효성하고, 밖에서는 노인을 공경해야 하며, 여력이 남으면 학습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품행으로 어찌 조정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여 그 일을 조정에 고한 결과 리균, 리악 형제 모두 관직에서 파면되어 다시는 채용되지 못했다.
“부모를 모시고 효도를 다 하는 것(以孝事亲)”은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이고, 또 윤리규범이다. 옛사람들은 왜 “효도(孝道)”를 중히 여기고, “모든 선(善) 중에 효(孝)가 으뜸이다(百善孝爲先)”라고 하였는가? 원인은 “효(孝)”와 “수신(修身)”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효”를 행하려면 우선 반드시 선하고 인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는 인간으로 처세하며 살아가는데 반드시 구비해야 할 소질이며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또 은혜에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며, 자신의 근본을 잃지 않고, 어른을 공경하며, 타인을 생각하는 등 여러 방면의 미덕을 포함한다.
생각해보라, 만약 자신의 친인마저 선하게 대하지 못한다면, 어찌 진정으로 타인을 선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떻게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나라 때부터 조정에서는 “효성과 청렴함”을 인재를 선발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이고는 진정한 효심과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부모와 친인을 대하듯이 모든 사람을 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부터 먼저 돌보지 않고 꿋꿋하게 백성을 구제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하나의 선한 마음이 육성되면 그 사랑을 박애로 발전시켜, 주변의 친인을 선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처세술로써 바로 옛사람들이 “효도”를 중히 여겼던 진짜 목적이었을 것이다.
문장발표:2006년 9월 7일
문장분류:천인사이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9/7/1372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