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육진(陸真)
【명혜망 2007년 1월 27일】 장량(張良)의 자(字)는 자방(子房)으로 한나라 초기의 대신이다. 진(秦)왕조의 폭정을 무너뜨린 후 항우의 초(楚)나라와 벌인 패권 다툼에 큰 공을 세워 한고조 유방으로부터 “천 리 밖 후방에서 책략을 세우고, 지휘하여 승리를 거뒀다”는 칭찬을 받았다.
한 왕조가 건립된 후 장량은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하지만 다른 공신들과 달리 장량은 명리를 꾀하거나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수련해 최후에 신선이 되었다.
《선전습유(仙傳拾遺)》라는 고서 중에는 《장자방(張子房)》이란 한편의 문장이 있어 이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장량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하비(下邳)라는 지방에 있는 비교(圮橋)를 지날 때 마침 눈보라가 몰아쳤다.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는데 신발을 벗어 다리 아래로 던지고는 “얘야 가서 내 신발을 가져오너라!”라고 말했다. 장량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가져와서는 공손하게 노인에게 바쳤다.
노인은 발을 내밀고는 장량에게 대신 신겨달라고 했다. 장량이 공손하게 신을 신겨주자 노인이 웃으면서 “젊은 녀석이 가르칠 만하구나! 내가 가르칠 것이 있으니 내일 또 이곳에 오너라.”라고 말했다.
다음 날 장량이 날이 밝자마자 그곳에 도착해보니 노인이 이미 와 있었다. 노인은 “네가 나보다 늦게 나오다니 도(道)를 전할 수 없겠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모두 3차례를 했는데 마지막에 장량이 먼저 도착했다.
노인은 만족스러워 하면서 책을 주며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만약 다시 나를 만나고 싶다면 곡성산(穀城山) 아래에 있는 누런 돌(黃石)이 바로 나다.”
장량이 이 책을 읽은 후 지혜가 아주 많아졌고 변화무쌍한 형세에 잘 대응해 각종 국면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량은 이 책을 이용해 “몸을 닦고 기를 연마했으며 몸이 가벼워져서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기리계(綺裏季), 동원공(東園公), 각리(角裏)선생, 하황공(夏黃公) 등 여러 신선들과 더불어 친교를 맺었다.”
《선전습유》 마지막 문장에서는 장량이 나중에 세상을 떠나 용수원(龍首原)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한나라 말기에 적미군(赤眉軍)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어떤 사람의 그의 묘를 도굴했지만 단지 황석(黃石)으로 된 베개만 남아 있었는데 그 돌베개가 신속히 변해 마치 유성처럼 날아갔다고 한다. 묘 안에는 장량의 시신은 물론 모자나 의복 등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장량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후 태현동자(太玄童子)가 되어 태청계(太清界)에서 태상노군을 따랐다. 그의 손자인 장도릉(張道陵)도 나중에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는데 장도릉이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를 만날 때 장량도 함께 갔다고 한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일부 내용들도 있지만 군더더기는 싣지 않는다.
장량은 공명을 이룬 후 일체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련을 선택했다. 장량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아름답고 수승한 결과로부터 보자면 장량은 확실히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이를 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인생 백년 끊는 물과 같거늘
늙고 병드는 고통 다 헤아리기조차 어렵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다한들
결국에는 한줌의 흙이 될 뿐이니
수련하여 하늘에 올라가
속세의 온갖 고통을 물리치는 것만 못하리라!
人生百年如湯煮,生老病痛難盡數;
萬貫家財弄到手,到頭還是一抔土。
不如修煉升天去,了卻塵世萬般苦!
문장발표 : 2007년 1월 27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분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27/14737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