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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문화】 세상에 사람의 욕망보다 험한 것은 없다

글/청언

【명혜망 2007년 1월 26일】 호담암(胡澹庵)의 이름은 전(銓)이며 남송 시기 명신이다.

그는 충의(忠義)롭고 강직했으나 간신 진회(秦檜)의 노여움을 사 10여 년 동안 영남(嶺南)에 귀양 갔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상담(湘潭)에 있는 호 씨 정원에서 술을 마신 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임금의 은혜로 돌아와 한번 취하노니

옆에 있는 여인의 얼굴에 작은 보조개 이네”

君恩許歸此一醉

旁有梨頰生微渦

여기서 옆에 있는 여인이란 그를 모시던 기녀 여천(黎倩)을 가리킨다. 호담암은 일찍이 그녀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남에게 수모를 당한 적이 있다.

주희(朱熹 주자)가 이 시를 본 후 다음과 같이 읊었다.

“10년 바다에 떠 있어도 온몸이 가볍더니

돌아와 여인의 보조개를 대하니 도리어 정이 생기누나.

세상에 인욕보다 험한 것은 없나니

몇이나 이 때문에 평생을 그르쳤는가.”

十年浮海一身輕

歸對梨渦卻有情

世上無如人欲險

幾人到此誤平生

이 시의 대략적인 의미는 “10여 년 동안 온갖 곤란과 액운을 겪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귀양에서 돌아와 기녀에게 미련을 갖는다. 이를 통해 보건대 세상에 사람의 욕망보다 흉하고 위험한 것이 없거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때문에 성공 앞에서 실패했는가.”라는 것이다.

주희는 이 시에 ‘자경시(自警詩 스스로를 경계하는 시)’라는 제목을 붙였고 《주문공전집(朱文公全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마치 한나라 때의 충신 소무(蘇武)를 연상시킨다. 그는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흉노에게 19년간 붙잡혀 있었음에도 한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그의 굴하지 않는 절개는 실로 많은 사람들을 탄복하게 하지만 흉노 땅에 머물 때 흉노 여인과 살림을 차려 아들을 낳았다. 사람들은 이 때문에 소무가 큰 오점을 남겼다고 여겼다.

문장발표:2007년 1월 26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26/14708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