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청언(淸言)
【명혜망 2006년 12월 4일】
청(淸)나라 때 전당(錢塘) 지역에 허전생(許滇生)이란 이름을 가진 상서(尙書 역주:지금의 장관에 해당)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연속 4대에 걸쳐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매년 향시(鄕試)를 치를 때마다 허 씨 문중에 급제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 그의 집안 내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것이 모두 그 조상이 큰 덕(德)을 쌓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허전생의 조부(祖父)인 낙정(樂亭) 선생은 평생 선을 베풀고 덕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일찍이 섬서(陝西)성과 감숙(甘肅)성에서 관직에 나아간 적이 있고 나중에는 직례(直隸 역주: 북경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 총독 방관승(方觀承)의 초빙을 받아 그의 문하에서 관리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해 평량(平凉), 경양(慶陽) 등 여러 부현(府縣)에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낙정 선생은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고 연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그는 개인적으로 상서를 올려 총독인 방관승에게 전해주며 위로 조정에 알려 은자(銀子) 20만량을 풀어 평량 지역 수재민들을 구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가 총독에게 상서를 올린 지 며칠이 지났건만 총독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에 낙정 선생은 봇짐을 지고 총독을 찾아가 자신은 사직하여 집에 돌아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관승이 물었다. “내가 선생을 대함에 조금도 태만함이 없었거늘 오늘 이렇게 갑자기 사직하려 하시는 것을 보니 분명 지난번에 올린 상서 때문이 아닌가요?” 낙정 선생은 “만약 총독께서 지금이라도 상서를 올리신다면 저는 사직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방관승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다짐하고 당일로 조정에 상서를 올리게 했다.
하지만 상서를 올린 후 방관승은 내심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수재민을 구휼하자면 필요로 하는 돈이 너무 많아 조정에서 분명 비준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몇 달 후 황제의 지시가 담긴 상서문이 되돌아왔다. 청나라 황제들은 중요한 안건에 대해 상소를 올린 사람에게 직접 황제의 답변이 적힌 문서를 보내주는 관행이 있었다. 원래 황제는 낙정 선생의 상소문을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은자 20만 냥으로는 구휼에 충분치 않다고 여겨 20만냥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방관승은 이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즉각 낙정 선생에게 알리게 했다. 아울러 자신이 조정에서 청을 받아주지 않을까 우려해 상소문을 빨리 올리지 않은 잘못이 있음을 사과했다.
이리하여 평량 등에 거주하는 십만이 넘는 백성들이 굶어죽을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수년이 흐른 후 낙정 선생의 아들이 향시(鄕試)에서 급제했고 그의 손자인 허학범(許學范), 허학증(許學曾)이 연속으로 진사(進士)에 급제하며 집안이 날로 번창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낙정 선생 생가(生家)의 풍수가 아주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낙정 선생이 선량한 연민을 품고 자신의 직책과 공명을 잃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조정에 상소를 올려 수많은 생명을 살렸기 때문임을 모르는 소치이다. 낙정 선생이 이렇게 큰 덕을 쌓는 좋은 일을 했으니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복을 받은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4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2/4/14330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