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육문(陸文)
【명혜망 2007년 3월18일】 송나라 흠종(欽宗) 정강(靖康) 말년(서기 1127년 5월), 한 고관[원래 이 글을 쓴 송대 작가 홍매(洪邁)는 이름을 밝히길 원치 않았다]이 청주(靑州)와 제주(齊州) 일대[지금의 산둥성 치보(淄博)에서 지난(濟南) 일대]를 책임졌다. 그는 아주 불행하게 죽었는데 비정상적인 사망에 속했다. 십년 후 그의 아들이 꿈을 하나 꿨다. 꿈에 자신이 큰 길에서 걷고 있는데 길옆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행인은 없었다. 갑자기 앞에서 큰 소리가 났다. 마치 몇백 개의 큰 북을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갈수록 가까워졌다. 그는 대군이 온다고 생각하여 급히 길 옆 흙집 안에 숨었다. 창문으로 슬그머니 밖을 내다보니 원래 몇 백 마리 귀신들이 큰 맷돌을 돌리고 있었는데 쉴 새 없이 돌리고 있었다. 맷돌의 윗구멍에 한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온통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자기 부친이었다. 그가 놀라서 가슴 아파할 때 그 거대한 북소리가 또 났다. 소리가 가까워진 다음 또 큰 맷돌이 나타났는데 맷돌 위에 또 사람의 머리가 있었다. 나타난 것은 그의 모친이었다! 그는 차마 견딜 수 없어 통곡하면서 꿈에서 깼다.
이 고관의 아들은 자신의 부모가 저승에서 이런 혹형을 받는 것을 보고 매우 겁이 났다. 그는 급히 엄주(嚴州)로 가서 많은 돈을 들여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곧 승려를 청해 재앙을 제거하기 위해 임시로 만든 도량이었다. 그는 신령에게 자기 부모의 징벌을 사면해 줄 것을 빌었다.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 고관의 몇몇 아들과 가족들은 모두 하나의 작은 신인(神人)을 발견했는데 몸에는 자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허리에는 금띠를 두르고 있었다. 키는 한자 남짓했는데 눈썹까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단 아래에 서 있었다. 제사를 다 끝내자 작은 신인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제사를 책임진 사람이 아들들에게 말하기를 “당신 부친의 일을 나로서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당신들이 친히 보도록 하라.” 그리고는 큰 함을 가져다가 그 안에 재를 뿌린 다음 함을 꼭 닫고 밀봉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이튿날 보도록 했다. 이튿날 형제들이 함을 열어보니 제위에 쓴 글은 “이 사람은 나라와 백성에게 해를 끼쳐 죄를 사면하지 못한다.”였다. 그들 형제들은 즉각 대성통곡하면서 비참히 떠나갔다.(《이견병지(夷堅丙志)》 16권에서 발췌)
두(蠹)란 바로 좀벌레란 뜻이다. 두국(蠹國)이란 곧 나라를 좀 먹어 나라가 부패해졌다는 것이다. 그 고관은 생전에 관운이 통하여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바르지 않아 직권을 남용하여 나라와 인민을 해쳤기에 뜻밖의 재앙을 만나 죽었던 것이다. 십년 후에도 여전히 지옥에서 혹형을 받고 있다. 그 아들이 도량을 설치해 신령의 용서를 빌었지만 부질없었다. 죄를 사면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리가 지극히 공정한 것의 표현이다. 그의 모친도 부친과 마찬가지로 공동으로 죄를 범했기에 죽은 후 마땅히 같은 벌을 받았던 것이다. 이 역시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현재 중공 고관 중에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들이 죽은 후 엄벌을 받는 것도 필연적인 것이다. 사악한 당을 따르는 자들에게 한 번 더 권고한다. 즉각 죄를 철저치 뉘우치고 낭떠러지에서 말을 돌려 세워라.
문장발표 :2007년 3월 18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3/18/15103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