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청언
【명혜망 2006년 10월 18일】천중(陈仲),명은 정(定)이고 산둥 저우핑 사람이며 전국시기의 저명한 현사이다. 그의 형은 제국의 경대부로서 봉록은 만종이 넘었다. 그 속에는 또 의롭지 못한 재물도 있었다. 천중은 이를 수치로 여기고 간링으로 가서 거주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위링종자”라고 불렀다.
천중 부부는 신발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비록 생활이 어려웠지만 즐거웠으며 남의 재물을 원칙없이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음식물도 의롭지 않은 것이면 먹지 않았다. 어느 해에 기황이 들어 집에는 삼일동안 양식이 없었다. 천중은 나무의 벌레를 먹으면서 연명했다.
초왕은 천중의 현덕을 듣고 사자를 특별히 파견하여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서 그를 재상으로 모셔오도록 했다. 천중은 아내와 의논했다. “초왕은 나를 재상으로 봉하려고 하는데 내가 만약 오늘 재상이 된다면 내일부터 높은 마차를 타고 풍성한 음식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현재 거문고(琴)를 타고 책을 읽으면서 즐겁게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높은 마차를 타더라도 앉은 곳은 두 발을 용납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풍성한 음식물 앞에 있더라도 고기 한그릇이면 배가 부릅니다. 지금 만약 그 두 발을 용납할 곳과 그 한 그릇의 고기를 위해 초왕를 도와준다면 현재 난세인지라 생명을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하여 두 사람은 사자에게 감사를 드린 후 장백산 일대에 은거했다. 그 곳에서 그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천중은 자신을 아주 엄격히 요구하고 자신을 억제하면서 몸을 닦았다. 어느 해 대한이 들었고 물이 없었다. 천중은 아침 일찍 물동이를 이고 10리 밖에 가서 물을 길었다. 물이 본래 많지 않았는데 천중이 물을 길은 후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이때 천중의 뒤로 달려온 사람들은 물이 없는 것을 보고 한숨을 지었으며 늦게 온 것을 후회했다. 천중은 이 정경을 보고 아주 후회했으며 한켠으로 ‘자신이 왜 남들보다 일찍 와서 물을 길었을까’고 질책했다. 또 한켠으로 자신의 물을 전부 나눠주었다. 물을 나눠준 후 천중은 자신의 물동이를 깨버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간 후 며칠동안 물을 먹지 않았으며 이로써 이익 앞에서 앞을 다투는 자신의 사심을 제거하도록 경계했다.
천중은 어느 한 번 꿈 속에서 같은 마을 사람의 야채를 가만히 뽑아다가 볶아 먹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아주 후회했는데 필경 자신의 사상 깊은 곳에는 이런 좋지 못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 속으로 아주 불안하여 또 그 집에 찾아가 돈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또 돈이 없어 그는 자신이 만든 초신을 그 사람에게 주려고 했다. 같은 마을의 사람은 이 일의 내막을 안 후 단호하게 받지 않았다. 여러 차례 옥신각신하다가 천중은 신발을 내려놓고 가버렸다. 이 신은 그 곳에서 여러해 동안 놓여 있었고 누구도 그 신발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 사람들은 이 예로 자신의 자제들을 교육했다.
문장완성:2006년 10월17일
문장발표:2006년 10월18일
문장갱신:2006년 10월17일 21:50:52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0/18/14048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