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청언(淸言)
【명혜망 2006년 8월 13일】 구양관(歐陽觀)은 송나라 시기 노릉(盧陵) 사람으로 일찍이 사주(泗州)와 면주(綿州) 두 지방에서 판관으로 일했다. 그는 마음이 선량하고 연민(憐憫)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언제나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안건을 처리했다. 또한 진실한 상황을 명확히 조사하지 못하여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일이 생길까 봐 늘 염려 하였다.
어떤 때 구양관은 집에서 밤늦게까지 공문을 처리 하면서 한탄을 그치지 않았다. 부인이 그 원인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 죽을 죄를 지었는데 내가 살리고 싶어서 몇 번이나 다시 조사를 했지만 살릴 방법이 없소. 이렇게 해야만 적어도 나와 죽은 죄로 판결 받은 사람에게 유감이 없을 것이오. 만약 내가 전력을 다해 그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은 아주 큰 원한을 품게 될 것이오. 나는 늘 그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그들의 생명을 잃게 할 수 있소. 그러나 세인들은 흔히 이런 사람들은 빨리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구양관은 후에 나중에 아들인 구양수(歐陽修)를 낳았지만 아들이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세상을 떴다. 구양수의 어머니는 남편이 일생 동안 선량하게 남을 도와주어 쌓은 덕이 많기 때문에 후대자손들이 반드시 흥성하고 번창하리란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친의 생전 이야기들을 아들에게 알려 주면서 말했다. “나는 네가 앞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네 부친은 반드시 훌륭한 후손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중에 구양수는 과연 과거에 급제하여 북송의 현명한 재상이자 유명한 대 문호가 되었다. 구양관은 나중에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문장발표 : 2006년 8월 13일
문장분류 : 【전통문화】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8/13/13545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