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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윤회’ 나는 누구인가?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4월 2일】 내가 천년윤회 중 만약 인간으로 전생했다면 그 수 천년 윤회 중의 나는 어떠했을까? 내가 생생세세로 고생스럽게 추구하고 기다린 진실이 왜 한번 또 한번씩 나에게 상처를 주는가? 밤이 깊어 세상이 모두 잠들 때, 몇 번이나 하늘에 물었던가? 부모 사랑을 갈망하자 부모가 일찍 헤어져 어린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의 괄시와 상처를 입게 하는가? 내가 친구들에게 마음을 다 주었지만 절친한 친구가 등뒤에에서 칼로 찌른다. 내가 부부간에 힌 머리가 될 때까지 아끼고 사랑할 것을 갈망하지만 누가 알았으랴…나의 마음은 백 번도 더 상하고 멍이 들었다.나는 자신이 무능한 것을 한탄한다. 하늘이시여, 왜 나에게 다정다감하게 선한 마음을 주고 내가 갈망하는 진정을 거두어 갔는가? 하늘이시여, 왜 이러한지 알려줄 수 없는지요?

어느날 내가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을 때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인간의 참뜻은 세상의 만가지 고통을 겪고 오늘날 법을 얻어 구도된다는 것을…

1.남여치정의 소용돌이─ 춘추전국, 황제 첩의 비운

춘추 전국시기 나는 한 소국 국왕의 애첩이었다. 한번은 공로를 경축하는 연회에서 내가 당시의 호국대장군의 눈에 들었다. 연회 후, 호국 대장군이 몇 번이나 치근대는 것을 내가 묘한 말로 사절하였던 것이다. 노한 대장군은 성이나서 적에게 투항하고 국가를 배반하여 적국의 군대를 데리고 성을 포위했다. 나는 국왕과 성루에서 적정을 살펴보았다. 호국 대장군은 국왕에게 왕비를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성을 피로 물들이겠다고 했다. 부부의 정이 깊은 국왕이 양보하지 않고 죽어도 고수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최후에 성이 함락되고 국가는 망하고 왕이 죽자 나의 마음도 죽어버렸다. 나 혼자 심산으로 도망쳐 고독한 수련의 생애를 시작한 것이다.

2. 당조와의 인연

태평성세의 정관년대에 나는 남편과 세아들을 데리고 인도에서 당조의 장안으로 왔다. 나의 이름은 아윤도다. 출산을 하지 못해 남편의 조카를 아들로 데리고 왔다. 남편은 황궁 태병원에서 태의(太醫)였다. 몇 년 후, 남편이 병이 중하자 당조의 황제를 보고 싶어 했다. 내가 남편의 부탁대로 황궁에 가서 당시의 태종황제 리세민을 뵈었다. 내가 인도에서 당조에 왔다는 것을 알고 당태종은 크게 웃으시면서 “내가 황제로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연분을 맺기 위해서다.” 라고 하셨다.

3. 삭발하고 출가한 미혼부

송조 시기로 보인다. 나는 절강 일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맺은 미혼부는 부모가 다 사망하는 바람에 가정이 망했다. 부친이 미혼부를 집에 데리고 와서 글 공부를 시켜 내년의 과거시험 준비를 하였다. 어릴 때부터 불경을 읽고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미혼부는 어느 날 창 밖의 목탁소리에 이끌리어 그 길로 절에 들어가서 삭발하고 중이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듣고 나는 온 거리를 헤매면서 찾아 다녔다. 절이 있는 곳마다 나의 발자국을 남겼다. 몇 달이 지나가고 신발에 구멍이 뚫리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얼굴은 검게 그슬렸다. 결국 항주성 밖의 사원에서 중이 된 미혼부를 보았다.

내가 절까지 바짝 따라 왔지만 ‘꽝’하고 대문이 닫혀 나는 문을 두드리면서 크게 울었다. 문을 열어 한번 만나보게 해달라고 하자 한참 후 큰 스님이 나와 이 절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내가 직접 그가 이 문으로 들어 오는 것을 보았으니 그가 나와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꼭 나를 따라 집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은 나를 설복할 수 없자 노하여“다 큰 처녀가 온 거리를 쏘다니면서 남자를 찾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얼굴을 들 수 있는가? 당신의 처지를 보라.그는 절에 있으나 당신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빨리 가라”고 뿌리쳤다.

극도로 상심하여 억울한 마음으로, 나는 또 중의 모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그날로 석자의 흰 노끈으로 자신의 젊은 생명을 결속지었다.

4. 도대부중의 둘째 부인

명조시기, 나는 청빈한 수재 집에서 태어났다. 17~18세에 도대부중 대인의 눈에 들어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시집을 간 후에야 알았는데 대부인은 혼인생활 20년동안 출산을 하지 못하고 성격이 교활하고 독살스러웠다. 하인들이 잘못이 있어 경하면 욕사발을 먹고 중하면 몽둥이로 때린다. 나도 집에서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아 아주 조심했다. 한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신변의 하인들이 억울함을 당하고 생활이 곤난할 때면 나는 뒤에서 좋은 말로 안위해주고 나의 돈으로 그들이 어려운 난관을 넘게 해주었다.

일년이 지나 내가 임신하자 늙으막에 자식이 없던 도대는 만분 좋아하여 나에 대하여 몇 배의 관심과 사랑을 보이자 대부인이 크게 원한을 품어 불행의 씨앗을 심었다. 임신한지 7개월만에 도대인이 외지에 가서 일을 보게 되였다. 아들이 생기면 엄마가 귀한 존재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부인은 하인에게 독살을 사주했다. 손에 약을 든 하인은 나의 무거운 몸을 보고 내가 그의 병든 모친을 도와주었던 일을 생각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사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대경실색한 나는 두 무릅을 꿁고 눈물 투성이가 되어 살길을 열어달라고 애걸하였다. 동시에 도대부중을 멀리 떠나 대도부인과 도대인이 나의 행방을 모르게 하겠다고 했다.하인은 마음이 약해져 독약 대신 몽한약을 먹이고 죽은척하고 도대부중을 떠나도록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귀청을 때리는 우뢰 소리와 아품으로 혼미 상태에서 깨여난 나는 성 밖의 잡초가 무성한 무덤가에서 조산하였다. 번개가 치는 비 바람 속에서 나는 한 달이 넘는 조산아를 안고 고향을 떠났다.

5.민국초기-충시아가씨의 몸종

산서 모지에서 병이 위급한 신랑은 신혼의 즐거움도 모른채 세상을 떠났다. 충시아가씨는 이렇게 젊은 과부가 되었다. 아가씨와 수족같이 친한 나는 아가씨의 살림을 관리하는 하인이되었다. 어느듯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가정이 부유하고 얼굴이 이쁜 아가씨는 그 도시의 양곡가게 주인의 눈에 들었다. 쌀가게 주인은 40여세로서 아들과 딸을 남기고 부인이 죽었다. 그 주인이 몇 번이나 청혼했으나 20여 세의 나이 차이로 아가씨의 단호한 거절을 받았다. 청혼이 안 되자 억지로 빼앗아 오기로 하고 어두운 밤을 타서 손에 칼을 쥔 량식 주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망나니 들에게 분부하기를 그는 한 사람만 요구하니 이 집의 금, 은, 하인, 재산은 빼앗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했다. 한참 동안 사람의 고함소리와 난장판 속에 아가씨는 군관인 오빠에게 구명을 요청했다.

가짜 아가씨로 변장한 나는 집 문을 나섰는데 칼로 상처를 입어 아픔을 무릅쓰고 앞으로 들고 뛰었다. 결국 피를 많이 흘려 혼미해 쓰러졌다. 3일후 나는 낡은 사원에서 깨어나 향불 재를 상처에 발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길가던 사람으로부터 마음 속으로 흠모하던 연인이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강에 뛰어 들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인이 죽은 다리에 서자 나도 죽을 마음이 생겨 정을 위해 생명을 마감했다.

6.아무런 원망도 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할머니

나의 아들이 탄생 할 때 시집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많은 가을철이었다. 시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딸을 키우고 또 셋째 아들의 혼사를 장만하고 다섯째 딸의 공부도 시키느라고 바삐 돌아쳤다. 산후 조리기간은 곧 끝나갔다. 허리와 등허리가 아파 내가 아기를 볼 사람이 없어 걱정을 하던 차에 73세의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왔다. 세월은 빨라 눈깜짝할 사이에 6년의 시간이 지났다. 약한 아들이 늙은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활발하고 사랑스럽게 자랐다. 아무런 원망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잊고 일하는 할머니에게 나는 감격했다.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몰라 매일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으로 나날를 보내던 중, 97년 어느 하루 사부님의 점화로 나는 결국 할머니와의 인연관계를 알았다.

오래 전의 일이다. 내가 몇 년 동안 과부로써 고생 끝에 세 아들을 다 키워 성인이 되었다. 큰 아들은 목재상을 경영하고 장기간 외지에 다니면서 많은 재물을 모았다.둘째는 공부를 많이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셋째는 공명시험을 보아 천리 밖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흰 할머니는 큰 며느리와 같이 생활했다. 며느리는 늙고 체질이 약한 나를 괄시하기 시작했으며 게다다 큰 아들이 장기적으로 밖에서 장사를 하여 집에 없으므로 마지막에 며느리는 오래 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사면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널판자 집에 나를 가두었다. 밥은 입구로 한 그릇 들여보낸다. 이 일이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발견되었을 때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었다. 가죽옷을 입은 아들은 떨리는 손으로 다 헤어진 이불을 열어 제끼고 벼집을 얇게 깐 나무침대 누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친을 보았다. 성이 날대로 난 세 형제는 마지막에 큰아들이 아내를 버리는 것에 동의했다.

쫒겨난 큰 며느리는 나의 방문에 꿇어 엎드려 그의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애걸하였다. 내가 아들을 달래여 생각을 바꾸게 해달라고 하자 자신이 이대로는 세상에 살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맹세코 이전의 잘못을 고쳐 나를 잘 대해주겠다고 하면서 이생에 보답하지 못하면 내생에 소나 말로 태여나서라도 보답하겠다고 하였다. 삼 일이 지난 후 내가 문을 열어 며느리를 땅에서 일으켜 아들보고 처를 버리는 문서를 태워버리라고 했다. 이야기중의 큰 며느리가 바로 내 금생의 노 할머니였다.

이외에 윤회전생하는 중에서 나는 열 몇 생이나 중이 아니면 비구니였다. 한 세기는 인디안 여 추장 노릇하고 친절하게 느껴지는 여 수련생은 나의 전생의 형제 자매이다. 성실한 노년 수련생은 나의 몇 세기의 남편인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 제기한 당조 때의 태의와 조카는 나의 금생의 남편과 아들이다. 집을 나선 미혼부와 흉악한 쌀가게 주인은 나의 금생의 동수이다. 현재에서 보면 정말 한 막의 극이다. 그렇게도 미혹되어 정에 목숨을 바치는 것을 지금 보면 아주 유치하다.

윤회 전생 수천년이라 정에 집착하니 고생은 말로 하기에 힘들다.
속세에 떨어져 만가지 고생을 겪음은 법이 제도하여주기를 기다림이다.
오늘 법을 얻어 마음의 매듭을 푸니 그제서야 모든 것은 연분이란 것을 알겠노라
고생은 무한하나 의지는 확고하고 정에 얽힌 실머리를 잘라 제도되었네
조사세간행을 맹세하니 나를 수련하고 사람을 제도하여 큰 소원을 이루네

轮回转世数千年,情痴痴情苦难言。
历尽红尘万般苦,只为等待法来度。
今朝得法破心结,方知一切都是缘。
苦海无边意志坚。斩断情丝出凡度。
发誓助师世间行,修己度人了大愿。

문장완성: 2006년 04월 01일
문장발표: 2006년 04월 02일 문장갱신: 2006년 04월 02일 05:53:57
문장분류: 문학역사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4/2/12422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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