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선양(沈陽)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 24일】왕위(王玉)는 선양(沈陽) 대법제자인데 불법으로 룽산(龍山)강제노동수용소에 감금되었다. 2004년 9월 24일자로 왕위가 박해에 반대하여 단식을 시작한지 이미 40일이 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최근에 직접 노동수용소에 가서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관련 민원부서에 진정하러 갔다. 가족은 의지가 확고하여 불법요원이 그녀에 대한 박해를 종식하는 그날까지 줄곧 찾아다니겠노라고 했다.
룽산(龍山) 강제노동수용소의 악경이 가오룽룽(高蓉蓉)에게 혹형을 가하고 있을 때, 왕위는 이런 인간성이라고는 없는 박해행위를 제지하기 위해 몇 몇 대법제자들과 함께 단식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2004년 9월 24까지 왕위는 이미 40일째 단식으로 박해반대를 해 왔다. 9월 27일, 그녀의 가족 일행 8명은 룽산 노동교양소(역주: 실질은 강제노동수용소임)에 왕위를 구출하러 갔다. 노동교양소에서 수위의 제지를 물리치고 노인과 아이가 먼저 들어가서 노동 교양소의 간부를 찾아 왕위를 만나겠다고 했다. 악경(惡警)은 만나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을 사무실로 보냈다. 이리하여 8명은 함께 사무실에 가서 원장을 찾았으나 원장의 조수 장펑을 만나게 되었다. 가족들은 그에게 여기 온 의도를 이야기하면서 매섭게 말하여 “사람이 만약 죽으면 고의살인죄로 고소하겠다. 만약 사람이 다 죽어갈 때 석방하면 집에서는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나쁜 일을 하고서도 깨끗하게 떠넘겨버리는 일은 절대로 못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들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노인들은 남고 다른 사람은 떠나갔다. 대략 2시간 후, 두 노인은 악경들에 의해 문밖으로 밀려나왔다.
20일 오후, 가족들은 다시 베이징 중앙민원처리사무실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29일 아침, 두 노인(수련하지 않음)은 몇 몇 젊은 가족을 동반하여 겹겹의 교란과 저애를 돌파하고 북경에 갔다. 그리고는 우여곡절 끝에 선념(善念)이 있는 한 택시 기사를 만났는데, 노인이 민원처리 사무실로 간다는 말을 듣고 그는 대법제자 가족들의 정의로운 행동을 아주 잘 이해해 주었으며 또 장(江)씨 집단이 인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호되게 욕했다. 운전기사는 노인에게 알려주기를 중난하이(中南海) 파출소 옆의 사람들은 각 성에서 청원하러 온 군중들을 막는 사람들이며 옆에 세워놓은 각가지 색깔의 북경 번호판을 단 차들은 그들의 교통수단 등이라고 했다.
정오쯤 두 노인은 순조롭게 지금 한창 쉬안우구(宣武區)로 이사하고 있는 민원처리사무실 입구로 왔다. 당시 민원처리사무실 입구에서 청원자들을 막던 폭력배들이 식사하러 가서 휴식하고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더욱 많았는데 많이는 땅에 앉아 있었다. 길옆에 헌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은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그들은 길에서 산둥(山東), 랴오닝(遼寧), 헤이룽쟝(黑龍江), 허베이(河北)에서 온 사람들을 막아서는 때리는데 정말 되게 때립니다! 그저께 또 한 남자 청년이 입구에서 맞아 죽었습니다! ” 이때, 한 낮선 남자가 이 가족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같이 온 것은 아닌지를 다급히 물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나면 가족들은 떠나야만 했다.
얼마 후, 가족들은 순조롭게 민원 자료를 중앙 민원처리사무실에 넘겨주었다. 책임자 같은 사람이 가족들을 만났는데 가족들은 연락할 수 있는 전화를 남기고는 무사히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에도, 왕위 가족은 의지가 굳세어 기다리지 않고 계속 유관부문을 찾아 불법으로 감금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 왕위를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의 가족은 사악이 그녀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는 그 날까지 줄곧 찾아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문장 완성: 2004년 10월 11일
문장 발표: 2004년 10월 24일
문장 갱신: 2004년 10월 23일 22:25:51
문장 분류: [천인사이]
원문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0/24/874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