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추수감사절에 느낀 소감

글/ 미전(覓真)

[밍후이왕] 추수감사절이 도래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인들의 독창적인 명절이다. 1620년,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호(Mayflower)’는 영국 내 종교 박해를 견디지 못한 청교도 102명을 가득 싣고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마음씨 착한 인디언들은 이민자들에게 생필품을 가져다줬고, 특별히 사람을 파견하여 사냥하고, 고기 잡는 방법과 옥수수, 호박을 심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인디언의 도움으로 이민자들은 마침내 풍작을 이루었다. 이민자들은 풍년을 경축하는 날, 종교적 전통과 풍습에 따라 하느님께 감사하는 날을 규정하는 한편 인디언들의 정성 어린 도움에 감사드리기 위해, 그들을 초대하여 함께 명절을 경축하기로 결정했다.

거의 400년이 지난 오늘, 사람들은 갈수록 ‘은혜에 감사하다(感恩)’라는 두 글자의 크기를 알게 되었고, 또 갈수록 ‘추수감사절’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파룬불법(法輪佛法)의 위대한 자비와 대법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을 몸소 겪어본 파룬궁 수련생들은 ‘은혜에 감사하다(感恩)’라고 하는 두 글자의 특별한 내포를 더욱 깊이 깨닫고 있다.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전통이요 미덕이다. 최소한의 인성과 양심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은혜에 보답해야 함을 알고 있다.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이라고 하는 공산주의를 분석·비판한 책에서는 중국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통적인 중국인은 큰 덕이 있어야 부자가 될 수 있고(厚德載物), 덕이 그 지위에 맞지 않는다면(德不配位) 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황조(皇朝)시대 선황명군(先皇明君) 예를 들면 복희(伏羲), 황제(黃帝), 요(堯)·순(舜)·우(禹) 임금, 한 무제, 당 태종, 명 성조, 강희 등과 같은 명군들이 실천한 경세제국(經世濟國)의 치도(治道)는 5천 년 왕도(王者之道)를 다졌었다.

순(舜) 임금은 요(堯) 임금에 의해 역산(歷山)에 파견되었는데 현지인들은 본래부터 땅을 쟁탈하기 위해 싸웠다. 순 임금의 도덕적 감화력으로 인해 1년 후 역산의 사람들은 예를 갖춰 사양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순 임금이 가는 곳마다 민풍(民風)이 매우 온순하고 인정이 두터워 그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순 임금이 가는 곳은 1년이 지나면 촌락이, 2년이 지나면 도시가, 3년이 지나면 도성(都城)이 형성되었다.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교화를 실시하게 하여 세인들이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로우며, 형은 우의가 있고, 아우는 공경하며, 자녀는 효를 다하는 오륜(五倫)을 따르게 했다. 민중이 자각하여 스스로 지키니 천하가 평안하고, 백성은 화목하였다. 사기史記>에 쓰기를 “천하 명덕(明德)은 모두 우제(虞帝-순 임금)에서 비롯됐다(天下明德,皆自虞帝始)”고 했다.

“당나라 정관(貞觀, 태종) 6년(632년) 12월 말, 태종은 사형수 감옥을 시찰했는데 죄수들이 새해를 앞두고 가족을 만나지 못함을 보고 연민을 느꼈다. 이에 태종은 사형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음 해 가을 스스로 장안에 돌아와 형을 받으라고 명했다. 사형수들에게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은 어불성설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9월이 되자 390명의 사형수들은 누가 감시하거나 압송하지 않았지만 모두 날짜에 맞춰 스스로 돌아왔으며 한 명도 도망가지 않았다.”(자치통감資治通鑑>) 이처럼 태종은 사형수까지도 신용을 지키게 할 정도의 신뢰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감화시켰다. 태종이 사형수들을 감형해 준 이야기는 천고의 미담으로 전해졌다.

사형수들이 모두 날짜에 맞춰 스스로 돌아왔으며 한 명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황제의 자비와 연민을 알고,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함을 안 것이다. 태종 이세민이 백성의 복지를 생각하고 성실하게 교화하여 중생을 감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이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이치를 깊이 알았기 때문이다.

강희황제는 어진 정치를 시행하고 민정을 보살펴 거의 매년 조세 감면 조치가 있었다. 강희제가 재위한 62년 동안에 전국적으로 세금을 모두 545차례 면제하였다. 환산하면 1억 5000만 냥에 달하는데 당시 재정수입 2000만~3000만 냥의 5~7배와 맞먹었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이래 독재·폭정을 시행하여 백성들은 제멋대로 가혹한 세금을 강제로 징수당하고, 도살 처분당하는 어린양이 되었다. 마치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중에서 묘사한 대로 “20세기 중반에 공산당이라고 하는, 서쪽에서 온 유령이 정권을 찬탈한 후 국민을 살육하고, 문화를 파괴하고, 환경을 훼손하여 산하(山河)는 생기를 잃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으며, 한때 찬란했던 문명도 빛을 잃고 거의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라고 한 것과 같다. 8천만 명이나 되는 생명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당했다.

바야흐로 인류의 도덕이 급속히 미끄러져 중화민족이 위난(危難)에 처했을 1992년 즈음에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고덕(高德)대법-파룬따파를 세상에 널리 전했다. 짧은 7년 동안 중국대륙에만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입도(入道)하여 법을 얻었고 경건하게 수련했다. 법을 얻고 수련하는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파룬따파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고 있으며, 고심(苦心)으로 그들을 제도해주신 리훙쯔 사부님을 깊이 신앙하며 존경하고 있다. 매년 새해, 설날, 추석과 파룬따파의 날이 오면 밍후이왕은 수천수만의 국내외 파룬궁 수련생과 진상을 알게 된 백성들로부터 리훙쯔 사부님의 안녕을 축원하는 축하카드와 축사를 받는다. 수많은 중생들이 파룬따파 창시인 리훙쯔 사부님의 자비한 구도에 끝없는 감사를 표한다.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며 사람 마음이 선해지게 하고, 도덕을 승화시키는데 이는 중국 전통문화의 가치관이자 세상의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세상에 널리 전해진 파룬따파는 도덕이 날로 미끄러져 가는 사회에 생기를 가져다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을 보게 하였다. 이것은 중공 악령과 장쩌민이 가장 질투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서 그것들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파룬궁을 멸살하는 박해를 일으켰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19년 동안, 중공 장쩌민 불량집단은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되,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않고, 때려죽였으면 자살로 처리하고, 신원을 조사하지 말고 즉시 소각하라.’는 학살 정책으로 억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모독하고, 수백만 수련생들을 체포, 감금, 노동교양처분, 판결, 심지어 혹형을 가해 죽게 하거나 생체로 장기를 적출하여 죽게 하였다. 또 수백만 가정이 박해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참혹한 불행을 당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치기에 도덕이 승화되고, 사회는 안정된다. 국가, 사회와 국민에 대해 백가지 이로움은 있으나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 그러나 중공은 왜 은혜에 보답하여 더욱 빛나게 발전시킬 줄은 모르고,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잔혹하게 탄압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은 하나의 ‘악령’으로서, 그것은 증오와 우주 저층의 부패 물질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오하면서 인류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장쩌민은 바로 인간세상에서 공산악령의 총대표이다. (또는 악마라고 부름) 그는 이전에 “나는 공산당이 파룬궁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할 것이다!”라고 목이 쉬도록 떠들어댔다. 하지만 200여 개월이 지났어도 파룬궁은 소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밍후이왕의 보도에 따르면 21만 명에 가까운 파룬궁 수련생과 가족들이 장쩌민을 고소하고, 288만 명의 국제사회 정의 인사들이 연서하여 장쩌민을 고발했으며, 3억 2천만이 넘는 민중들이 중공(중국공산당)을 포기하고, 사악한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공산사악(邪惡)주의 토벌에 속도를 내고 있어, 공산사령(邪靈)이 멸망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시사반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23/3775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