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쉰전
[밍후이왕] ‘납팔절(중국 전통명절- 음력 12월 8일)’이 다가왔다. ‘납팔죽’에 관하여 민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예전에 공주 한 분이 출가하여 수련하려 했다. 그녀는 음력 12월 8일에 출가하기로 정했다. 누구도 공주를 말릴 수 없었다. 공주는 평소 죽을 좋아했다. 이날 아침 황후는 기장쌀, 콩과 대추를 넣어 직접 죽을 끓였다. 공주는 황실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출가했다. 황후는 그녀가 며칠 있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공주는 그때 집을 나간 후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가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어명을 내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는 명령을 내려 절에서 가장 힘든 일을 그녀에게 시키게 했지만, 고생스럽고 힘든 일도 공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느 한해 큰 가뭄이 들었다. 황제는 또 명을 내려 절에서 가장 힘든 일을 공주에게 시키라고 했다. 주지 스님은 공주에게 매일 절에 있는 모든 꽃에 물을 한번 주라고 했다. 다 주지 못하면 그녀에게 속세로 돌아가라 했다. 공주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산에 가 물을 길어왔다. 며칠 후 강물이 말랐다. 주지 스님은 그녀에게 더 먼 곳에 있는 강에 가 물을 긷게 하면서 그녀에게 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황궁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공주는 결심을 이미 내린지라 수단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천막을 치고 하늘에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그녀는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고 정했다. 점심에 빌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그녀는 초막과 함께 분신하려 했다. 이튿날부터 그녀는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지만, 점심에 비가 오지 않아 그녀는 막에 불을 붙이고 본인은 막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그녀 머리 위에 갑자기 구름이 한 조각이 나타나더니 비를 뿌려 불을 껐다.
황후와 황제는 또 어명을 내려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했다. 황후는 딸이 생각나 밥을 먹지 못했고 황제도 딸이 생각나 조정에서 정무(政務)를 보러 나갈 수 없었다. 공주는 어명을 받은 후 자기 손 하나를 잘라 황후에게 보냈고 본인의 눈 하나를 파내어 황제에게 보냈다. 황제와 황후는 이를 보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아울러 세간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부처 수련하려는 선한 마음이 이토록 견정한 것을 보고 공주를 위해 기뻐했다. 이때 황제는 머리를 들어 하늘에 기도했다. 나의 공주에게 온전한 손, 온전한 눈을 돌려주십시오. 하늘은 공주에게 손 천 개와 눈 천 개를 돌려주었다.
공주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련한 사적은, 사람들을 감탄하고 경앙하게 만든다. 오늘에도 이런 기이한 여성이 있다. 그녀들이 감당한 것은 전례 없는 고난이다. 그러나 이런 고난은 공주처럼 부모가 준 것이 아니라 사악한 세력을 대표하는 중국공산 악령이 그녀들에게 전가한 것이다. 이런 전대미문의 참상 속에서 그녀들은 여전히 본인의 숭고한 신앙을 굳게 지켰다. 수련인이 생사를 초월하여 세간의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반본귀진의 광명한 길로 걸어가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몇 가지 진실한 이야기가 있어 여러분에게 들려주겠다. 허베이에 UN의 주목을 받는 천훙핑이라는 여성이 있다. 2001년 6월 9일 허베이성 화이라이현 공안국은 그녀를 납치하고 두 손을 뒤로 수갑을 채우고, 끈으로 팔을 묶어 문에 매달아 놓은 채로 경찰은 끊임없이 수갑을 흔들었고 다리를 때려 부러뜨렸다. 천훙핑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를 높이 외쳤다. 언니 천수란도 따라서 외쳤다. 잠시 후 천훙핑은 기절해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밤 11시 천 씨 자매는 화이라이 구치소에 피송되었다. 여동생 천훙핑의 손은 다 부었고 온몸은 다 상처였으며 머리카락도 잡아챈 채로 떨어져 허옇게 두피가 보였고 선혈을 토했다.
6월 11일 오전 이미 박해받아 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가 난 천훙핑을 다시 허베이 가오양 노동교양소로 납치해갔다. 천수란은 박해로 빈사 상태가 되자 그의 호적 소재지인 베이징 창핑현 파출소에 통지하여 그녀를 데려가도록 했다. 창핑 파출소는 그녀의 빈사 상태를 보고 받지 않았다. 사악한 경찰은 두려워 죄를 회피하기 위해 그녀를 석방했다. 이렇게 천수란은 비실거리며 구치소에서 나왔다.
허베이 가오양 노동교양소는 인간성이란 전혀 없이 경찰과 죄수들이 계속 천훙핑을 혹독하게 때리고 협박하고 공갈했다. 종일 몇십 명이 밤낮 24시간 교대로 세뇌했다. 1년 반의 정신적인 시달림과 병적 고통으로 그녀는 생명이 위급해졌고 말라서 장작과 같았다. 체중은 원래 50여kg에서 20여kg으로 되었다. 노동교양소는 그녀가 안에서 죽을까 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천훙핑에게 옷도 입히지 않고 경찰 한 명을 파견하여 그날 밤으로 집에 돌려보냈다.
2003년 3월 5일 천훙핑은 그녀 둘째 오빠 품에서 영원히 두 눈을 감았다. 임종 때도 여전히 가족에게 본인의 신앙을 견지하겠다고 당부했다. 32살밖에 되지 않는 젊은 생명이 이렇게 중국공산당이라는 불량배 집단에 의해 박해받아 사망했다. 생사 이별 시기에도 그녀는 자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자신의 신앙을 견지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런 생명은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가!
중국 다롄시 산부인과병원 간호사인 파룬궁 수련생 류신잉의 남편 파룬궁수련생 취후이는 중국공산당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받아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는 침대에 13년 누워있으면서 매일 고통에 시달렸다. 류신잉은 13년을 줄곧 2014년 2월 19일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루 같이 매일 침대에서 남편을 돌봐주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달도 되지 않았는데 류신잉은 집에서 5번째로 납치되었다. 6일 후 다롄 중산구 법원은 그녀에게 무고하게 5년형을 선고하여 집에는 미성년자인 딸이 혼자 남았다. 원래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족이 순식간에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산산이 흩어지고 집과 가족을 잃고 말았다.
류신잉이 감옥에서 딸에게 쓴 편지를 보고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네 아버지가 나쁜 사람에게 맞아 전신 마비로 고통스럽게 13년을 살다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거대한 고통을 감당한 것을 너는 직접 보았다. 어린 너에게 너무 많은 의혹을 주었지. 네가 말을 할 때 엄마에게 묻곤 했지. ‘왜 다른 집 아버지는 서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누워있어요?’ 그때부터 이 엄마는 꼭 아버지를 위해 누명을 씻어 주고 정면으로 너의 문제를 대답하리라 마음먹었다. 네가 어리고 순진하기 때문에 마음에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하지 않게 하려고.” “너의 17살 생일에 엄마는 너를 위해 생일에 면을 끓어주면서 먼 곳에서 묵묵히 너를 위해 축복하고 있다.앞으로 생활에서 햇빛과 행복이 너를 따르기 바라고, 평안함이 너의 꽃다운 17살 나이를 따라 엄마가 잠시 떠난 이 시간을 함께하길 바란다. 이 이별이 지나고 나면 우리 모녀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다시 태어나는 봉황과 같이 생명의 순정한 빛을 나타낼 것이다.”
한 생명이 이렇게 거대한 난 앞에서 생각한 것은 모녀간의 생사 이별, 끔찍한 사랑이 아니라 봉황과 같은 욕화중생(浴火重生-자신의 몸을 불살라 다시 태어남)이다. 이는 얼마나 강인한 경지인가!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생 가정이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산산이 흩어지고 집과 가족을 잃었는가? 얼마나 많은 어머니, 고아가 매일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글로 다 적을 수 없다! 이번 잔인무도한 박해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류신잉과 딸이 한자리에 모일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허베이에는 지수쥔이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허베이 청더시 연초 전매국의 전 회계담당이다. 2002년 천안문에서 연공하여 대법을 실증한 이유로 잡혀 돌아와 2년 반의 노동교양을 받고 각종 혹형과 고문을 당했다. 가정이 깨지고 일자리도 잃었다. 이런 심한 타격에도 그녀는 견정하게 수련하려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에는 여전히 말겁에 있는 많은 중생의 안위를 걱정했다! 2006년 봄 그녀는 고향과 수백 리 떨어진 작은 산간도시에서 거의 이 5,000여 제곱 km나 되는 산간을 다 돌았다. 여기에서 그녀는 세인에게 박해 진상을 알린 이유로 연이어 적어도 5번 납치되어 수감되었으며, 노동 교양을 받았다. 매번 석방되어 나오자마자, 거리 혹은 시골 마을에서 그녀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십여 년간 그녀는 잇따라 5번 납치되어 수감되었고 3번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1번 징역형을 판결받아 잔인무도하고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마음의 숭고한 신앙을 추구하기 위해, 그녀가 사전에 세운 중생구도의 사명과 서약을 실천하기 위해, 수련의 의지는 반석과 같이 견고하여 여전히 반석과 같이 견강하게 앞으로 가고 있다.
파룬궁수련생들이 중국공산당 독재정권 하에서 수련을 견지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데 얼마나 큰 고난과 압력을 감당해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녀들이 생사를 내려놓고 굳은 의지의 경지를 이해하고 알 수 있을까?! ‘납팔죽’ 전설에서 이상의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들의 수련 이야기 역시 공주의 수련 이야기처럼 천고에 전해질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24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4/3599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