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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인과율을 개변할 수 있는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 중국공산당의 대량의 당, 정, 사법인원이 파룬따파 수련자를 박해해 당한 보응 사례가 기재됐는데 위로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아래로는 향, 진, 촌 하급 공무원과 진상을 모르는 민중으로서 층층이 다 있다. 그들 중에는 이외의 재앙으로 숨진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기이하게 숨졌고, 어떤 이는 급성 질환으로 숨졌는가 하면 어떤 이는 투옥되고 어떤 이는 자살했으며, 어떤 이는 큰 병에 걸렸고, 또 어떤 이는 가족에게 재앙이 미쳤다.

통계에 따르면 보응을 당한 지역의 인원 분포와 그 지역의 파룬궁 박해 정도는 놀랍게도 정비례를 이뤘다. 밍후이왕의 불완전 통계를 따르면, 파룬궁 박해로 보응을 당한 1만 건이 넘는 사례가 대륙 23개 성에 분포됐고, 랴오닝, 헤이룽장, 허베이, 후베이, 지린, 쓰촨, 산둥 7개 성만 해도 7천 명 정도가 된다. 이 7개 성은 모두 파룬궁 수련생 박해가 가장 심각한 성들이다. 이 숫자는 이미 인과응보가 지금 바로 눈앞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일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으니 응보를 당하는 일은 아무 때든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결과는 생각만 해봐도 알 수 있다.

베이징의 한 작은 경찰 책임자가 친척방문으로 고향에 돌아갔을 때 현지의 한 파룬궁 수련생에게 마음속 말을 했다. “지금 베이징에서는 파룬궁을 여전히 심하게 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면 한 번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뚜렷하게 느껴요. 우리 경찰 노릇을 하는 사람도 뒤가 무서워서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고,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는 더욱 모르겠네요.”

그는 또 말했다. “얼마 전에 제 상사가 큰 병에 걸려 입원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어찌된 일인지를 알았으므로 퇴원한 후 사직했습니다. 평소에 저는 그에게 아주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하지만 이걸 하지 않고 제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속으로 아주 고민했습니다. 이번에 말로는 고향에 와 본다고 했지만 실은 그곳 환경을 피해 이 일을 좀 잘 생각해 보려는데 있었어요.”

인과응보의 준엄한 현실 앞에서 아직 양심이 남아 있는 많은 박해자는 각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깊이 빠져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어떤 이는 오만하게 부르짖는다. 나는 인과응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과응보는 객관적 규율로서 당신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대과학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인과 관계를 승인하면서도 오히려 인간 세상의 인과응보는 부정해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자아모순을 느끼게 한다. 실은 차이란 단지 인과응보의 시간 거리가 어떤 때는 너무 길어 적시에 검증할 수 없을 뿐이다. 또 드러나거나 은폐되거나 직접적, 간접적인 구분이 있기도 하다.

초등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우리가 배운 교과서 내용은 어느 것인들 인과 관계를 벗어난 것이 있었던가? 인과 관계가 없으면 논리도 없고, 논리가 없으면 정신 착란자의 막말이 될 것인즉, 어디에 또 과학이 있겠는가! 설령 미혹된 그런 사람의 왜곡된 사설이 그럴듯한 ‘논거’를 찾아내 잘못된 이론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미혹시킬 수 없을 것이다. 볼 수 있는바 인과가 있으면 그 결과가 있는 법이고, 그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법인데 바로 보편 규율로서 만사만물은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일시 해석할 수 없고 아주 고립된 현상에 대해서는,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런 사물 간의 연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는 것이다. 인류의 지식이 아무리 고심하고 아무리 발달했다 할지라도 역시 다만 드넓은 우주 지식의 작디작은 국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과응보에 도전하는 그런 부르짖음은 실제로는 분별없는 무모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과 관계와 인과응보는 두 가지 일이라고 말한다. 전자는 보편 규율이고 후자는 가치 판단이다. 하지만 어떠한 가치 판단이든 모두 반드시 인과 관계에 부합돼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판단은 아무런 논거도 없는 말로 될 것인즉 어찌 설득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응보’ 자체가 바로 인과 관계의 ‘결과’이다, 단지 뒤에 ‘결과’라는 단어를 보충해 강조했을 뿐이다. 즉 나쁜 원인(惡因)이 낳은 나쁜 결과(惡果)인 것이다. 문화대혁명에서 중국공산당 국가주석 류샤오치(劉少奇)는 반역자, 내부첩자라는 모자를 쓰고 홍위병에게 끌려나가 투쟁을 당했다. 류씨는 ‘헌법’을 내 들고 자신의 권위를 수호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파지처럼 조금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고 시달려 죽었지만 시신을 묻을 데도 없는 신세가 됐다. 아주 억울하고 아주 비참하고 불행하지 않은가?

류샤오치의 역사를 펼쳐 보면 이런 것을 볼 수 있다. ‘염황춘추’(炎黄春秋) 기재에 따르면, 1995년 1월, 그때의 최고검찰원 검찰장이던 장딩청(张鼎丞)이 류샤오치에게 사업 보고를 한 후 류샤오치는 많은 지시를 내리면서 말했다. “우리의 법률은 자신을 단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을 단속하고 적을 타격하고 소멸하는데 쓴다.” 1955년 7월 류샤오치는 또 베이다이허에서 최고 검찰원 책임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리의 법률은 인민이 적과 투쟁하는 것을 보호해야지 혁명 인민의 손발을 단속해서는 안 된다. 가령 어느 조목의 법률이 우리 자신의 손발을 단속한다면 이 조목의 법률을 폐지해야 할 것이다.” 그의 눈에는 법률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천칭’인 것이 아니라 적대 투쟁의 도구로 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 자신이 적으로 된 후 이 도구 아래에서 죽은 것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자기가 판 구덩이에 자기를 묻었는데 이것이 인과응보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전생을 믿지 않고, 세대를 거른 인과, 3세 인과, 더 나아가 다세(多世) 인과도 믿지 않는데 그건 미신이라고 여긴다. 최근 몇 년 간, 후난, 후베이 일대에 수많은 ‘재생인(자신의 전생을 말할 수 있는 사람)’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중 후난성 화이화(怀化)시 퉁다오향(通道鄉)에서는 전향 7천여 명 인구 중 놀랍게도 110여명의 ‘재생인’을 발견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공산당의 무신론과는 충돌이 됨으로 당 매체는 선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비교적 상세한 조사 보고가 있었고, 어떤 보도는 여전히 무신론의 제한을 돌파하지 못했지만 밝혀진 사실은 오히려 과학으로서는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국제적으로도 많은 학자가 ‘윤회와 환생’의 연구를 하며 대량의 사례를 누적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국 버지니아 대학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세계가 공인하는 윤회 연구 권위자다. 그는 1960년부터 40년 동안 윤회 환생 연구를 하면서 세계 각국을 다니다가 2007년에 세상을 떴는데, 총 2600여개의 윤회 사례를 모았다. 그는 이런 서류와 사진을 2000여 페이지로 된 두 책으로 편집했는데 무게가 8파운드에 달하는 서적 – ‘윤회와 생리학–모반(母斑)과 생리적 결함으로 초래한 원인’을 연구자에게 참고로 주었다. 1997년 그는 또 이런 자료를 한 권으로 종합해, 220여개 사례가 있는 ‘윤회와 생리와의 관계’란 책을 출판했다. 스티븐슨 교수의 가장 큰 연구 실적은 윤회와 모반 및 천성적인 결함의 중요 관계를 발견하고 증명한 것이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어린이 몸에는 모두 그의 전생의 사망 원인과 관계있는 모반이나 천성적인 결함이 있다는데 주목했다. 이는 어린이가 전생에 대한 기억이 환상이거나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님을 증명하는데 유리했다.

또 미국 마이애미 시마이 의료센터 센터장이며 유명 정신 심리학 의사인 브라이언 웨이스(Brian Weiss) 박사, 국제 심리 회귀치료학회 부회장이며 미국 유명 정신 심리 의사인 릭 브라운(Rick Brown) 박사, 그들은 모두 윤회에 대해 비교적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대량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무신론 통제를 받고 있기에 중국 대륙은 이 방면 연구가 아직도 공백이고 게다가 정부의 엄격한 여론, 정보 통제로 많은 사람은 여전히 하늘이 첫째이고 땅이 둘째이며 유아독존의 나르시시즘에서 살면서 무지몽매하게 독재 정권을 위한 졸개로 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선과 악에는 고정적인 표준이 없고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며 이익,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다를 뿐이다. 틀리다! 선과 악의 기준은 어느 권위, 어느 계급, 어느 권세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규율의 체현이다. 우주가 선량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주가 그의 원래부터 있는 규율에 따라 질서 있는 운행을 하기 때문이지 난잡하고 무질서하게 마음대로 운행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규율은 불변하는 것이며 선악의 표준도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다.

2500년 전, 동서양의 성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치하게 세상에 내려와 세인들에게 사유제 사회에 진입한 후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해설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가 말한 ‘자비’, 공자가 말한 ‘인(仁)’, 노자가 말한 ‘무위’, 기독교 예수가 말한 ’박애’,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말한 ‘윤리철학’ 등등, 그 핵심 사상은 모두 ‘선(善)’의 함의를 체현한 것으로 모두 우주의 기본 규율에 부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학설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칭송할 가치가 있으며, 이런 학설로 세워진 원시 종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강권통치를 보면 이렇게 오랜 생명력을 가진 정권은 하나도 없었다. 통치 시간이 비교적 오랜 왕조는 모두 한 때 선한 정치, 인정(仁政)을 한 결과이고, 그러나 모든 왕조가 몰락할 때는 모두 악정, 폭정을 했기 때문에 패망한 것이다. 선악에 고정 표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고의적으로 인심을 혼란시키는 것으로서 사람에게 선악을 가리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그를 따라 계속 악행을 하여 그를 따라 순장품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누구도 인과 관계(인과응보)를 개변시키지 못한다. 그에게 얼마나 높은 능력이 있고 얼마나 큰 권력이 있든지 상관없다. 20세기 4대 살인 마귀두목이라고 호칭하던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는 당시에 모두 권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고, 자신 밖에 없는 듯 거만하고 뻔뻔스러웠다. 그들의 권세 범위 안에서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마구 죽여도 아까울 게 없었다. 그들이 마치 능력이 있어 민중에게 보다 훌륭한 결과를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결과는 결국 어떠했는가? 그들이 죽은 후 국제적으로 명성이 어떠했는가? 그들의 가족은 어떠했는가? 이건 모두 아주 명백한 인과가 아닌가?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들 자신, 그들의 가정, 그들이 통치했던 왕조의 결과를 개변시키지 못했다. 비록 마오쩌둥의 초상이 여전히 오늘도 천안문 성루에 걸려 있지만 그건 영웅이어서 올린 것이 아니라 그건 고대의 전통 방식으로 역적 두목을 최종적으로 징벌할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비록 마오의 팬들이 여전히 있는 힘껏 그의 허위적인 이미지를 수호하고 있지만 단지 욕설, 집중공격, 모자를 씌우고, 때리는 등 문화혁명의 도가 넘치는 수작으로 진상을 폭로하는 사람을 대처하는데 불과한 것으로서 무슨 바른 효과를 일으키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들추어낼수록 인과응보는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기지만 누락은 없다. 이 하늘의 그물은 얼기설기 무수한 인과 관계로 조성됐는데, 우주 중 누가 빠져 나갈 수 있겠는가? 금전, 권세는 모두 일정한 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것으로 이 인과를 이탈하자면 동시에 또 다른 인과의 기존 틀에 떨어지는데 순환 왕복하며 끝이 없다. 사람이라, 작은 선이라고 아니 행하지말고, 작은 악이라고 행하지 말라. 그래도 착실하게 사람의 본성으로 돌아가 점차 자신을 ‘선(善)’이라는 천도에 동화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미래가 있게 될 것이고 그래야 뒷걱정이 없을 것이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5/3451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