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덕행과 지위가 일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것은 ‘주자가훈(朱子家訓)에서 온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이 지위에 합당한 덕행이 없다면 틀림없이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덕행은 집터와 같고, 명예와 권리 그리고 재산은 집과 같다, 튼튼하지 못한 기초 위에 큰 건물을 세운다면 위태롭지 않겠는가. 건물이 기울거나 뒤틀리거나 흔들려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지반이 얕고 튼튼하지 못하면 건물이 무너지듯이, 덕행이 지위와 걸맞지 않을 때는 재앙이 닥칠 것이다.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유명인사는 명성이 자자하다가 후에는 평판이 나빠지고, 어떤 빈민은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됐다가 곧바로 중병에걸려 재물도 잃고 사람도 잃었으며, 어떤 공무원은 직위가 승승장구하다가 몇 년 후에는 감옥에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렇지만그들에게 안겨줬던 명예, 재물, 권세의 행복들이 왜 하루아침에 재난으로 변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사람의 덕행이 낮은데 지위가 높으면, 다시 말해서 덕행과 지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마치 높은 나무다리를 밟고 가다가 벼랑 끝에 다다른 것처럼 위험한 것이다.
역대 왕조의 관리 중에는 품행이 방종하여 선량한 사람을 속이고 억눌러서 신세를 망친 관리들이 많다. 당나라 신하 내준(來俊)이란 자는 무고(誣告)로 출세했던 사람이다. 그는 충신에게 죄상을 날조해서 고문혹형을 가하며 모함한 공으로 승진했지만, 후일 그 역시 악인에게 고발당해 참형을 당한 후 시신의 눈알을 도려내고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파열시키는혹형을 당했다. 악인은 악인에게 당하는 법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마음이 착잡하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여전히 옛사람들의 잘못된전철을 밟고 있으니 말이다. 인류는 오직 비극과 오류 속에서만 헤매는 것 같다. 왕조가 바뀌고 인물 또한 바뀌었지만, 사건의 얘기는 언제나 같음을 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 단체를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어떤 공무원은 중국공산당의 정책을 바짝 따르며 파룬궁박해에 적극 참여 하면서 그로 인해 중용되고 승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우융캉, 보시라이, 리둥성, 저우번순 그들은 장쩌민의 박해정책의 핵심적인 앞잡이로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확실히 빠른 승진을 했지만, 근래 그들은 하나둘씩 연이어 낙마했다. 그들은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한 편으로는 뇌물을 받는 등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들은 비록 한때는 권세를 떨쳤지만 품성이 야비하고 행위가 사악했기 때문에 결국 신세를 망치고 만년토록 악명을 남기게 되었다.
고위직에서 파룬궁박해에 참여한 자는 낙마 당하고, 중간간부층으로 파룬궁박해에 참여한 자는 목숨을 잃었는데, 이런 사건은 이미 중국에서는 무슨 뉴스거리가 아니라 늘 흔히 있는 일이다. 허베이성 탕산시 차오페이덴구 공안국 부국장 리푸궈(李福國)는 2013년 부국장으로 발탁됐지만, 그는 2016년 5월 22일 약관인 47세의 나이로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 병을 발견한 지 겨우 2개월 만에 죽었다. 그는 2006년 국보대대장이 되면서부터 언제나 파룬궁박해에는 적극 참여했다. 그가 부국장으로 발탁됐을 때 파룬궁수련생 리언잉을 스자좡 노동교양소에 감금시켰는데, 리언영이 고문박해로 사경을 헤매게 되자, 병보석으로 풀어줬지만,13일 만에 한을 품은 채 사망했다. 또 리푸궈는 2012년 2월 25일 이른 새벽 수하들을 대동하고 오토바이를 수리하겠다고 속여 문을 열게 한 후, 오토바이 수리점을 하는 파룬궁수련생 정샹싱(鄭祥星)을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한 후, 10년형을 받게 하여 감옥에 수감시켰는데, 잔혹한 고문학대로 두개골 골절상과 내출혈로 두 눈이 실명된 채 정신이 온전치 못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스스로 혼자서는 활동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리푸궈는 흉악하고 악독하며, 야비한 냉혈인간의 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러므로 그의 그런 품성은 그에게 합당한 위치를 정해 주었던 것이다. 선량한 사람을 박해한 사람은 복이 없고 장수하지 못하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그들은 다만 정책을 집행했을 뿐이다. 그건 그들의 직책이다.” 옛 사람은 무고하고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는 것은 칼로 살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공무원이 명령에 따라 집행함으로써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산 채로 장기적출당하고, 어떤 수련생은 고문에 시달리며 구타를 당해 죽고, 어떤 수련생은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되고, 어떤 수련생은 신체가 불구로 됐는데, 그것들이 단지 명령에 따라 집행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게 살인한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는 매 참여자 모두가 누구에게 책임을 밀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크고 넓은 하늘의 정의의 그물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천리, 도덕, 법률로 볼 때, 살인하면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남을 해치는 것이 자신을 해치는 것으로 되는데 그건 모두 응보의 윤회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덕행이 지위와 일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난을 당하게 되는 그런 숙명적인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건 아주 간단하다. 덕을 중히 여기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했다. “덕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 “덕을 쌓으면 복이 들어온다.”, “후덕하면 재물이 들어온다.”, “덕망이 높으면 대가가 있다.” “선을 행한 자의 집은 복을 받을 때가 있다.”, “도덕을 쌓으면, 복을 많이 받는다.”
사람의 선은 복의 원천이다. 선을 행하고 덕을 부지런히 쌓으면 복은 자연히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덕행이 풍부하고 오직 바르게 행해야만, 일어설 수 있고, 재물과 지위를실을 수 있는 것이다.
원문발표: 2016년 10월 2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23/3366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