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진선인’을 펼친 역사적 사건 ‘4.25’

글/ 미쩐

[밍후이왕] ‘4.25’ 사건이 지난 지도 이제는 16년이다. 이 사건의 증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자못 깊다. 사건 경위에 관해서는 10여 년 동안 이미 진상이 세상에 다 알려졌다. 그러는 가운데서 사람들은 ‘4.25’ 사건 중에서의 파룬궁수련생의 선량함을 더욱더 보게 됐고 또한 중국공산당의 사악함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

게다가 사람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4.25’ 청원에 나갔던 만 명을 넘는 파룬궁 수련생이다. 그들은 시종일관 ‘진선인(眞善忍)’을 이행했고 특별히 바르게 걸었다. 바로 백옥에 티가 하나도 없듯이 추호의 불순과 흠이 없었는바 바르기로 사람을 경탄하게 했다.

우리 함께 갔던 파룬궁수련생은 사후에 함께 앉아 회상했는데 당시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매우 순정했다. 톈진 파룬궁수련생이 붙잡혔다는 말을 듣고는 국무원에 가서 나라 지도자에게 상황을 반영하자고 했다. 연세가 많은 수련생이 있었지만 ‘문화대혁명’, ‘6.4(천안문사건)’를 겪어봤으므로 그곳으로 청원 가기는 보통의 일이 아님을 의식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무 주저함이 없이 따라나섰다.

그날 아침 푸유가(府右街)에 이르러 보니 그곳 동쪽은 중난하이(中南海) 붉은 담장이고, 중간 길에는 이미 많은 경찰차와 경찰이 있었으며, 서쪽 길옆에는 사람들이 가득 서 있었다. 한 경찰이 우리를 그들 앞으로 인도했고 우리는 각자 자리를 찾아 사람들 속에 섰다. 길옆 중간 사람들은 주동적으로 한 갈래 통로를 내어 오가는 행인이 쉽게 다닐 수 있게 했다. 우리와 마주한 길에는 30미터 간격마다 무장 경찰이 우리를 마주하고 섰다.

그날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째는 ‘진(眞)’을 체현한 것이었다. 톈진 파룬궁수련생이 구타를 당하고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수련생에 대한 절박하고 조급한 심정에서, 정부가 파룬궁수련생이 반영한 진실한 정황을 들어주기를 진정 바라는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타당하게 일을 처리해 냈다. 사실상 당시 총리 주룽지는 중앙 두 개 판공청을 책임지고 파룬궁수련생의 “즉각 톈진에서 붙잡힌 파룬궁수련생을 석방하고, 파룬따파 서적의 정상적인 출판을 허용하며, 수련생에게 합법적인 수련 환경을 제공하라는 이 세 가지 요구”를 청취했다. 톈진에서 파룬궁수련생이 석방된 후 수련생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두 번째는 ‘선(善)’으로 가득 찼다. 그날 우리는 줄곧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이후까지 서 있었다.(많은 수련생은 아주 일찍 가버렸다) 나이 많은 어떤 수련생은 서 있다가 힘들면 뒤에 가서 좀 앉아 있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전법륜’을 보았고 배고픈 사람은 인근 가게에 가서 먹을 것과 음료를 샀다. 나는 몇몇 수련생이 비닐 봉투를 들고 수련생 사이를 오가면서 묵묵히 음식물 포장 봉투와 음료수병 등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 것을 보았다. 오후가 되자 누군가 무슨 ‘통고’같은 것을 나누어주면서 사람들에게 떠날 것을 권고했다. 내가 보니 대다수 사람은 모두 받지 않았고 나도 받지 않았다. 많은 수련생이 선의로 그들과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한 사람도 떠나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들의 선(善)의 힘은 조용히 그곳을 자비와 상서로움으로 충만하게 했다. 온종일 내내 질서 정연했고, 묵묵히 소리 없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사람들에게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저녁 8시가 넘어 회담이 끝났고, 톈진 방면에서 이미 체포된 수련생을 석방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중난하이 앞 파룬궁수련생은 아주 재빨리 흩어졌다. 떠날 때 바닥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종잇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며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마저 다 주어갔다. 전 과정은 조용하고 상서로웠는데 당시 질서 유지를 했던 경찰이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보세요, 이것이 바로 덕입니다!”

세 번째는 ‘인(忍)’을 견지한 것이다. 사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탄압은 1996년에 벌써 시작됐다. 1996년 6월 17일 ‘광명일보’는 평론 문장을 발표해 파룬궁을 비방했다.

1996년 7월 24일, 중앙선전부(中宣部) 소속인 신문출판서에서는 전국 각 성시 신문출판사에 내부 서류를 내려 보내, 당시 베이징에서 10대 인기 도서인 ‘전법륜’, ‘파룬궁’ 등 파룬궁 관련 서적의 출판 발행을 금지했다.

1997년 초, 중국공산당 정법위 서기 뤄간(羅幹)은 공안부에 지시를 내려 전국적으로 증거를 수집해 파룬궁을 X교로 비방하려 했다. 전국 각지의 공안국에서 충분한 조사를 한 다음 모두가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보고하자 조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1998년 7월 공안부 1국은 공정[1998] 제555호 ‘파룬궁에 대한 조사를 전개하는 데 관한 통지’를 발했다. ‘통지’에서는 먼저 파룬궁을 X교로 모함하고 잇따라 또 활동 내막과 상황을 파악하며, 그의 위법과 범죄 증거를 발견해야 하고, 각지 공안 정보부는 깊이 있게 조사를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파룬궁수련생의 ‘4.25 청원’은 기타 어떠한 종류의 청원이나 항의 사건과는 근본적인 구별이 있는 것으로, 사상 전례 없는 가장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정부에 상황을 반영한 한 차례 청원이었다. 바로 경찰차와 무장 경찰이 빈번히 출동하고, 어떤 사람이 수련생들에게 무슨 ’통고‘를 나눠주면서 떠나라고 떠드는 과정에서도 현장에서는 조그마한 소동도 일지 않았고 그들과 싸우고 떠드는 사람도 없었다. 수련생들이 물처럼 고요하고 조용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비록 장쩌민 정치 깡패 집단은 ‘4.25’ 사건을 이번 파룬궁 박해 발동의 구실 중 하나로 삼고, “중난하이를 포위 공격”하고 “사단을 일으켰다“라는 등 수많은 거짓말을 만들어 내어 한 때 수많은 민중을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상은 드디어 천하에 드러나 장쩌민, 뤄간, 허줘슈 이런 어릿광대들이 고의로 사단을 일으켜 탄압 구실을 만들어 낸 행위 역시 세인의 비난을 당하게 됐다.

청원 당시는 가장 오래 수련한 수련생이라 해도 7년이 안 되는데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의 끊임없는 교란과 박해 앞에서도 대선대인(大善大忍)의 흉금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은 파룬궁 ‘진선인’의 법리가 이미 그들의 심신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장장 16년에 달하는 사악한 박해 중에서 강인하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파룬따파의 위대함, 이런 대법제자의 위대함을 더욱더 증명하는 것이다.

‘4.25’, 지금껏 있어 본 적 없는 가장 평화롭고 이성적인 이 청원사건은 파룬궁수련생이 ‘진선인’을 실천한 진실한 증명이다! 파룬따파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문장발표: 2015년 4월 2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수련자 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4/22/30785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