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생명 선택의 길

글/ 쩡옌(曾嚴)

[밍후이왕] 2차 대전 때, 유럽동맹군의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은 아주 추운 어느 날 저녁, 차를 타고 총본부로 가고 있었다. 도중에 한 쌍의 늙은 부부가 길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추위에 얼어서 형편이 매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는 운전병에게 차를 멈추고 그 노인들에게 사연을 물어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의 참모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경찰국에 연락하여 그들이 두 사람을 처리하게 하시지요. 우리는 본부로 가는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장군은 고집스럽게 차를 세우라고 하면서, “경찰에 연락해서 그들이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아마 이 두 노인은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 두 노인을 그들 차에 태웠다. 원래 두 노인 부부는 차를 몰고 아들 집에 가던 중이었는데 그만 차가 중도에서 고장이나 멈춰서는 바람에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들은 장군의 도움에 몹시 고마워했다. 장군은 운전병에게 지시하여 먼저 길을 돌아 두 노인을 집에까지 데려다 준 후 다시 본부로 가자고 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야 동맹군으로부터 보고를 받게 되었다. 그날 저녁 독일군의 저격수가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나는 길목에 매복해 있었다고 했다. 만일 장군이 그 두 늙은 부부를 도와주지 않고 원래의 노선대로 갔더라면 아마 황천객이 됐을 것이다. 이는 아주 분명한 바, 아이젠하워 장군의 선한 행동은 실은 자신을 도운 것이다. 누가 어둠 속에 하늘의 뜻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건 바로 하늘이, 위험한 환경이나 액운에 직면한 장군에게 내려준 생명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제대로 옳게 한다면 무사할 것이고, 틀리게 한다면 차와 사람은 전부 멸망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장군은 옳게 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 노부부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았지만, 사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은 바로 아이젠하워 장군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장군에게 재난이 오려하자 하늘이 노부부에게 어려움이 닥치게 하여, 그 노부부로 인하여 장군이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것이다. 하지만 전제는 장군이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자신이 이익에서 손해를 보아야 하는 많은 저항앞에 서게 되는데, 이런 곤란 중에서 노인을 도와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 시공을 초월하여 다시 그 추운 저녁으로 돌아가 그 환경에서 자세히 생각해 보자. 이런 선택을 해내자면 사실 쉽지가 않다. 당시의 많은 요소와 여건으로 아이젠하워 장군은 능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장군 일행은 그렇게 추운 밤에 본부로 급히 가고 있었는데,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군사적 큰 작전계획이 있을 수 있어, 이 노부부를 도와주게 되면 시간을 지체할 수 있다. 2. 장군의 참모는 반대의견을 제기했다. 그 참모도 그걸 상관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당시 여건상 단지 경찰기관에 연락하여 처리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역시 장군에게 노부부를 내버려 둘 수 있는 이유가 됨으로 내려 설 수 있는 ‘계단’인 것이었다. 3. 당시의 상황은 추운 밤이고, 그들이 동맹군 총본부로 급히 가지 못한다면 동맹군들은 밖에서 시간을 소비하며 추위에 떨어야 한다. 그러나 장군은 먼 길을 돌아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노부부를 도와주어야한다고 고집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어떤 ‘좋은 점’도 없고, 수지가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적군이 장군이 반드시 지나야할 길목에서 장군을 저격하려고 매복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는 모두 장군이 다른 ‘답안’을 선택하도록 촉구했을 것이다.

가령 장군이 아주 현실적이고 냉담한 사람이었다면, 가령 장군에게 이런 착한 마음이 없었더라면, 만약 장군에게 양심을 견지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면, 어쩌면 부하의 객관적인 환경에 이끌려 생명의 선택적 기로에서 틀리게 했을 것이다. 그럼 장군과 관련된 일체의 역사는 고쳐 써야 했을 것이니, 그는 후에 우리가 알게 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아닐 것이며, 그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일체 영예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의 생명은 그 추운 겨울밤에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옳게 했다. 그는 그 노부부를 도와주어 하늘의 뜻에 순응(하늘은 그를 도와주려 했다. 하지만 사람 자신의 선택도 아주 중요하다)하였으므로 하늘의 보호를 받아 그 자신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동행한 모든 사람도 구했던 것이다.

우리는 장군의 성장여정을 모를 뿐만 아니라, 장군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왜 그렇듯 선량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사람이 늘 죽는 전쟁 중에 하찮은 한 쌍의 노인을 그렇듯 존중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장군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그런 선량함과 정의로움이 어떤 한 일에 발 벗고 나섰으므로, 자신의 생명에 정확한 선택을 해 주었으며, 그러므로 복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착한 마음의 행동이 바꿔온 것은 운명의 전환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이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하사한 가장 훌륭한 예물이었으며, 동시에 사람들에게 남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을 돕는 것이며, 선행은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준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의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현 정권 중에서, 선택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진정 현실적인 의의와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는 억만의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에 대해 말한다면, 중국사회에서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민중이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여전히 불법적으로 납치되고, 불법적으로 감금되며 혹형에 시달리고, 억울한 판결을 받고, 심지어 여전히 생체장기적출 … 등등을 당하고 있는바, 현 중공정권의 고위층은, 장 씨 집단이 이렇게 종종 헌법을 무시하고 법률을 짓밟은 이런 범죄행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전대미문의 이런 참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장쩌민 집단이 끊임없이 사단을 빚어내는 행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계속 박해를 방임하고 묵인할 것인가? 끝까지 당을 보호하며 그와 함께 역사에 도태될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뜻에 따라 중공을 해체하고 자신을 구할 것인가?

한 쪽은 중공의 권력과 사리사욕의 집단적인 이익 그리고 각종 죄악세력의 방해와 모험이고, 한 쪽은 억만의 선량한 민중이 여전히 계속해서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데, 그 박해를 마땅히 중지시킬 것인가? 그런 범죄를 마땅히 제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선량함을도와주어야 하겠는가?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을 표준으로 비교하고 선택을 할 것인가? 이익인가 아니면 양지인가? 이는 그 당시 아이젠하워 장군이 직면했던 것과 비슷한 선택이다.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는 것도 무방하다. 당시 아이젠하워장군이 직면했던 그 생명에 대한 시험 길에서 얼마나 되는 사람이 ‘대답을 맞게’ 할 수 있었는가? 물론 사람들이 그 두 노인을 구하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면… 그래서 오늘 날 이미 그 당시와 같은 ‘현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도움’ 쪽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많게는 대부분 앞일을 전혀 똑똑히 볼 수 없다. 더구나 일은 생사의 선택에 걸렸음에도 각종 거짓의 답안은 더욱 유혹으로 충만하였으므로 ‘이유’는 더욱 충분해 보일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할 때 “무엇을 표준으로 하는가?” 하는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그것은견실한 도덕과 양심의 기초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장군은 확고하게 정확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 본토의 사람들은 몇 십 년 동안 중공의 ‘지극한 관심’으로 얼마나 많은 당문화의 독소를 주입 당했는가, 중공은 무신론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양심을 소멸시켰으며, 각종 운동을 만들어내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인간성을 왜곡시켰는가? 중공을 따라 천지(天地)와 싸우면서 온갖 나쁜 짓은 다하고도 자신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의 중공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박해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 씨 집단의 각종 잔혹한 박해와 심지어 생체장기적출 등 반인륜적인 심각한 행위에 대해, 양심의 최저선에 도전하는 마귀짐승의 그런 행위를 보고도 못 본 척 하며,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걸 뻔히 알고, 각종 만행의 죄악이 지금 바로 무수하게 발생하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중공집단의 이익을 위해 침묵을 지키며, 사당의 죄악을 감히 분명이 가려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또 자신이 일찍 그 박해를 크게 받았음에도 여전히 당을 수호하고 보호하며, 당의 이익을 크게 보고 권력욕을 크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선택의 길’은 이미 매 사람들 앞에 놓여 있다. 선과 악 둘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세 번째 선택은 없다. 바로 아이젠하워 장군이 두 노인을 만났을 때 반드시 실제 행동으로 돕겠는가, 안 돕겠는가 하는 두 가지 선택 중에서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부할 방법이 없고 회피할 방법이 없다. 만약 그가 참모장의 ‘건의’ 대로 노인을도와주는 책임을 경찰에게 밀어주고 가버렸다면 그는 마찬가지로 돕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니, 그럼 길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여전히 차와 사람의 멸망이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권리와 계획, 변통, 타산, 재치는 모두 어떠한 의의도 없는 것이며 모두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된다.

‘장쩌민 파룬따파(法輪大法) 박해청산 국제조직’에서 공표한 “중국 현 정권집권자에게 박해원흉을 체포할 것을 정중히 알린다”는 내용이 2013년 7월 21일 밍후이왕에 보도됐었는데, 그 공고가 발표된 지도 이제 1년 남짓하게 지났다. 이 1년 남짓한 시간에 스스로도 죄를 면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중공의 장 씨 집단은 광적으로 사단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회와 행정부의 ‘중국 위원회(CECC)’가 2014년 10월 9일 발표한 중국인권 연도보고서에서, “중국의 현재 인권상황은 지난 1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욱 후퇴했다”고 강조했다. 동 보고서는, “중공당국은 2013년에 계속 대규모적이고 계통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고, 혹형과 학대는 보편적이며 더욱 심각하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강제로 생체장기적출을 당하고 있다. 밍후이왕을 통해서, 날마다 대량의 파룬궁수련생이 중국에서 납치, 혹형, 무고한 판결을 당하는 소식을 볼 수 있고, 중공의 각급 공, 검, 법 기관원들은 여전히 무수하게 법률을 짓밟고, 집법범법(執法犯法)과 지법범법(知法犯法)을 저지르고 있다…”

오늘, 전 세계 사람들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음을 다 알고 있다. 중공이 폭력으로파룬궁수련생의 생체에서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고 있는데 중공의 우두머리로서 그 박해의죄에 대한 책임이 없겠는가? 현 중공의 집권자로서 박해에 대해 조금의 책임도 지지 않는단 말인가? 이 점을 장쩌민 집단은 잘 알고 있으므로 현 정권의 각종 ‘약점’을 틀어잡고 더욱 더 박해의 사단을 빚어내도록 조장하여 현 정권을 묶어 놓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공이 불법(佛法)을 박해하는 죄악이 갈수록 커지게 하고 있는데, 그 죄악에 참여한 사람은 물론 무지로 그것을 짊어진 사람들이 속죄할 기회는 갈수록 멀어지고 적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15년이 지났다. 중국 본토에서는 박해가 여전하고, ‘진선인(眞善忍)’은 여전히 불법적인 것으로 취급당하고 있으며, 인륜도덕은 최저선에 이르렀고 법률 또한 심각하게 최저선의 도전을 받고 있어, 각종 무수한 범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가짜, 사악, 투쟁은 여전히 살판났다고 활개치고 있다. 이는 중화민족의 심중한 재난이다. 이는 매 한 사람, 중화자손의 커다란 치욕이다. 박해가 이처럼 존재하는 한, 법치국가라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것이며, 공평공정은 언급할 여지도 없다. 도덕이나 법률적인 단속이 없는 나라에는가짜상품과 마약이 범람하고 테러가 창궐하여, 사람마다 모두 피해자로 될 것인즉, 단지 파룬궁수련생만이 피해자가 아닐 것이다. 비록 당신이 손에 큰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흉악무도한 악도의 암살목표로 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는데, 사람의 의지로는 바꾸지 못한다.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으로서 최후의 연극막이 내려지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하늘이 사람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을 뿐인데, 사람은 단지 그 중에서 연기하며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역사의 안배에 순응하여 선량함으로 가호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역사에서 도태될 대상으로 선택받을 것인가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한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으므로 분명히 보지 못하지만, 하늘이 사람에게 준 시간과 기회는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자비다. 주어진 기회를 분명히 보면서도 여전히 환상에 빠져 지연시킨다면 자신의 사명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불법무변(佛法無邊)이라, 이 사당을 해체하는 데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다만 이 생명 스스로 만고에도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놓치는데 불과할 뿐이다. 국내외 천만의 파룬궁수련생들이 15년 동안 견지한 견정불이(堅定不移)의 끈기는 막을 수 없었다. 진상 알리기는 이미 무수한 사람의 양지와 선념을 깨우쳐 주었고, 진선인(眞善忍)은 무수한 선량한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기게 했다. 현재 1억 8천여만 명의 사람이 중공조직에서 탈퇴했으며, 지금도 날마다 10만 명이 탈퇴를 하고 있어 그 인원수는 날이 갈수록 더욱 가속화 하고 있는데 마치 화산의 마그마가 분출되는 전야와 같다.

중공이 당을 보호하는 일은 이제 사경에 처한 길로써, 그 길의 종점은 영원히 되돌아 올 수 없는 천애의 낭떠러지이다. 바로 그 장군이 가려던 ‘원래의 길’처럼 앞에는 어디를 가든지 험악한 ‘매복’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공산사악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사라지는 오늘,겨우 남아있는 몇 개의 공산사당 국가마저 전 세계에서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이익으로 파렴치한 정객과 양심이 없는 재벌을 유혹하고 매수할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인심은 수매할 수 없으며, 천리는 더더구나 개변시킬 수 없다. 중공이 근 100년 동안 저지른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을 어떻게 대하고, 오늘의 생체장기적출이란 이런 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죄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런 죄악에 분칠(粉飾)을 한다고 해서 바뀌거나 없어지지않을 것이다. 지금 바로 발생하고 있는 박해도 감히 정시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증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누가 당을 보호하고자 하면 필연적으로 중공의 모든 죄악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어떤 생명도 없는 것이다. 자신은 중화민족의 자식으로, 서쪽에서 온 공산사령의 괴뢰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5년간의 박해에서 장쩌민 집단이 제일 많이 저지른 짓이란 바로 진상을 덮어 감추고, 진상을 가로막은 것인데, 진상을 폭로하는 것은 장쩌민 집단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현 정권의 집권자는 우선 파룬궁이 박해당한 모든 진상을 철저히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인심을 얻을 수 있고, 도덕의 높은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어쩌다 장쩌민 집단이 억만 민중을 박해한 것 중에서 그것들이 범한 각종 반인륜적 범행을 어쩌다가 조금 발표하는데, 그것들의 핍박으로 상황이 다급해지자 급한 나머지 그것을 내부투쟁의 목적으로 상대방이 두려워 떨게 하려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본말을 전도시키는 짓이다. 실은 파룬궁이 박해당한모든 진상을 철저히 공개하는, 이것만이 장쩌민 집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며, 이것이야말로진정으로 장 씨 집단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다.

세상에 온 생명은 모두 사명이 있다. 하늘은 이미 당신들에게 박해를 저지할 위치와 능력그리고 조건을 부여했다. 이런 특별한 영예는 무수한 생명이 얻으려 해도 다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당신이 밀어버릴 수 없는 당신의 책임이다. 또 양지가 있는 매 한 중국 사람에게도 모두, 중공의 장쩌민 집단이 장장 15년에 걸쳐 가한 박해를, 공동으로 저지하여 공산사당이 중국에 강요한 중국 근대 100여 년의 악몽을 종결짓고, 진상을 공개하여, 장 씨혈채파의 앞잡이와 그 패거리를 조사하고 처리하여, 그들의 박해 죄악을 청산시킬 책임이 있다. 역사가 이 한 페이지를 넘길 때, 모든 사람의 선악 표현은 모두 아로새겨질 것이다. 당신의 손에 있는 권력을 잘 이용하라. 선량함을 도와주고 정의를 지지하며, 사악을 징벌하면 사람에게도 자신에게도 필히 이로울 것이며 공덕이 무량할 것이다. 장래 당신은 이 역시 당신 생명의 영원한 영예와 영광임을 보아낼 것이다.

2013년 7월 21일 밍후이왕에 보도된 ‘장쩌민 파룬따파 박해청산 국제조직‘의 발표는 현 중공정권에게 알려준 유일한 출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더는 다시 있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인연을 스스로 놓치지 말라. 놓치면 고통과 후회는 끝이 없을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그러나 자신은 아주 어려운 선택이라고 여길 수 있다. 이 때 양심으로 판단하고 추진한다면 영원히 다 잘못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일깨우면 얻는것은 진정한 지혜이며, 그 지혜는 각종 복잡한 가상에서도 곤혹스럽지 않을 것이다. 양심과 용기로 스스로를 도와줘라! 70여 년 전, 아이젠하워 장군의 그날 밤 진실한 체험이, 바로 하늘이 당신들에게 준 생명선택의 본보기로 가장 훌륭한 참고가 될 것이다.

문장발표 : 2014년 12월 8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830123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