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탄봉진(撣封塵)
[밍후이왕] 후난(湖南)에 ‘물을 양보하다’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난볜(南边) 마을과 수이좡(水莊) 마을은 한 도랑의 물을 함께 쓰고 있었다. 수원이 제한돼 있어 매번 여름에 가뭄이 오기만 하면 상류에 있는 난볜 마을은 우세가 있어 수원을 20여 년이나 독점했다. 1995년 7월, 파룬궁이 난볜에 전해져 전 마을에서 176명이 공을 배웠다. 그들은 ‘진선인’ 에 따른 사람이 됐는데 정신 면모에 빠른 변화가 발생했다. 그들은 선의로 사람을 대해 물을 다투고 물을 독점하던 것에서 물을 양보하는 것으로 변했고, 이때부터 두 마을은 증오가 사라지고 화목하게 지냈다.
파룬따파를 파룬궁이라고도 부르는데 리훙쯔 선생이 창작한 불가(佛家) 수련 대법으로서 우주 최고 특성 ‘진선인(眞善忍)’ 동화를 근본으로 삼는다. 글자로부터 이해한다면, ‘진’이란 바로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며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것이며, ‘선‘이란 바로 선량하고 선의적이며, 선념선행(善念善行)하는 것이며, ’인‘이란 바로 모순에서 참고 양보하며 상대방을 알아주는 것이다. 물론 파룬따파의 수련 중에서 이 세 글자에는 더욱 깊은 내포가 있다. ‘진선인‘ 이 세 글자 진언은 혼탁한 속세를 깨끗이 씻어주는 맑은 샘물과도 같아 인심을 씻어준다.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다
리훙쯔 선생님은 제자에게 ‘진선인’에 부합되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리 선생님의 일언일행이 이미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 리 선생님은 학습반 비용을 전국에서 가장 적게 받았는데, 10일 학습반의 비용이 40위안이고 노 수련생은 절반을 받는다. 다른 기공사보다 받는 비용이 훨씬 적으므로 많은 기공사에게 이견이 있었다. 이에 대해 중국 기공과학 연구회는 여러 차례 리 선생님에게 학비를 높일 것을 요구했으나 시종 동의하지 않으셨다.
한 파룬궁 수련생은 리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사부님 아십니까? 사부님께서 수업을 마치신 후 우리는 몰래 사부님 뒤를 따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셔 어떤 산해진미를 드시는지를 보려고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부님께서 즉석식품 가게에 들어가셔 급히 칼국수 한 사발 드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한 번은 그날 사부님께서 비를 무릅쓰고 수업을 하러 오셨는데 회의장 밖에 제자들의 자전거가 넘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시계를 급히 들여다보시더니(그때는 아직 10여 분 시간이 남아 있었음) 허리를 굽히시고 자전거를 한 대 한 대씩 세워 놓으셨습니다.”
1997년 3월 17일, ‘다롄일보’는 ‘무명 노인의 묵묵한 공헌’이란 제목으로 고희 노인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길을 닦은 이야기를 보도했다. 노인은 성리젠(盛禮劍)이라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길이 1,100미터의 공용도로를 닦았다. 누군가 그에게 어느 직장에 다니며 돈을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을 때, 노인이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배운 사람이며 여러분을 위해 좋은 일을 좀 할 뿐이고 돈은 받지 않습니다.”
캐나다 서양인 수련생인 제논은 말한다. “제가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저 자신이 이미 파룬궁을 수련한지 이미 3년 반이 됐기 때문입니다. 파룬궁을 연마했기에 저는 술, 담배, 마약 그리고 저의 심신을 오염시키는 기타 많은 악습을 버리게 됐습니다. 바로 제가 파룬궁을 막 찾게 될 무렵에 저는 이미 저의 가족, 친구를 버리고 이 사회를 떠나려 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몹시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산 속에 가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저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자신의 예전에 박힌 모든 나쁜 습관을 버렸고 제 과거의 더럽고 타락한 마음에도 ‘진선인’이 차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불광이 널리 비추니 병마가 흔적 없이 사라지다
파룬궁은 1992년부터 전해진 후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신기한 효과는 모든 공파 중에서 훨씬 앞서고 있었다. 어떤 병이든, 설령 병원에서 밀려나온 암환자라 하더라도 오직 진심으로 파룬궁을 배우기만 하면, ‘진선인’의 요구대로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한다면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이럴 뿐만 아니라 더욱 칭송할만한 것은 수련하지 않는 속인이 일단 파룬궁 진상을 알고 성심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란 아홉 글자 길언(吉言)을 묵념하기만 해도 상상 밖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를 보기로 하자.
유명 테너 관구이민(關貴敏)은 수천 곡의 노래를 불렀고 전국 청중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였다. 1983년, 39세인 그가 가수 생애의 절정기에 이르렀지만 B형 간염 겸 조기 간 경화에 걸린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는 사방으로 질병 치료하러 다녔고 민간 처방을 찾아 헤맸으며 각종 기공을 접해 보았으나 호전이 없었다. 1996년 봄, 관구이민은 파룬궁을 연마했고 일 년 정도 후에는 건강을 회복했다.
1998년 7월 10일, ‘중국경제 시보’에 “나는 일어섰다.”란 제목의 보도가 실렸는데 주인공은 세슈펀(謝秀芬)이라 불렀고 허베이 한단(邯鄲)에 있는 16년 된마비 환자였다. 1996년 7월 1일부터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했을 뿐만 아니라 파룬궁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심성을 수련했다. 두 달 후 세슈펀의 병은 사라졌고 장장 16년간 마비됐던 그녀가 일어서게 됐다. 그녀는 격동해 말했다. “리훙쯔 선생님께서 저에게 인생의 길을 다시 배치해 주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새 삶을 얻었어요!”
리치화(李其華), 집은 베이징 펑타이 75호 원에 있으며 1931년에 입대한 중국공산당 노 홍군이다. 이직 휴양 전에 제2군의대학 교장, 총후근부 위생부 정위, 베이징 301 병원 원장을 역임했다. 그의 부인은 수십 년간 중병으로 앓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면서부터 질병이 모두 사라졌다. 리치화 노인은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고 1993년에 그도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병도 약을 쓰지 않고 나아졌고 신체가 날마다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사상 경지에도 뚜렷한 승화가 일어났다. 리치화가 직접 경험한 이 일체는 그로 하여금 파룬궁은 진정한, 더욱 높은 과학임을 깊이 느끼게 했다. 자신의 감수와 심득을 소개하기 위해 그는 ‘원칙은 과학연구의 출발점이 아니며, 과학은 탐색과 실천이 더욱 필요하다.’라는 문장을 썼는데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졌다.
이 문장에서 노인은 말했다. “나는 일생수많은 중대한 문제, 인생관, 세계관 문제, 의학 중 생명과학 문제, 사회과학 문제를 애타게 추구하고 탐색하고 사고했는데 모두 ‘전법륜’ 책에서 해결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나는 법을 얻은 후 더는 동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사상 경지에 승화와 제고가 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 한 사람만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내가 있는 베이징 노인 법 공부 팀에는 평균 연령이 70여 세, 80세 이상의 여러 사람 있었는데 당력만 해도 몇십 년이 됐고, 많은 사람은 ‘노 혁명’, ‘노 간부’, ‘노 과학자’, ‘노 교수’로 불리는 고급지도자와 고급 지식인 계층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맹목적이 아니고 두뇌가 간단한 것이 아니라 참답게 사고를 거친 후 파룬궁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70이 넘은 후에야 리훙쯔 선생님의 대법을 얻은 것이며 모두 너무 행운스럽고 매우 연분이 있으며 너무 진귀하다고 여긴다.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는 공동 염원이 있었는데, 우리의 노 전우, 노 동료, 노 지도자, 우리의 중년 세대, 젊은 세대, 소년 세대들께서도 모두 속인 중의 굳어진 관념, 고유한 관념을 내려놓고 각종 장애를 배제하고 세심하고 조용히 ‘전법륜‘을 읽어보고 파룬궁을 연마해 보며 그런 다음 스스로 우리 이 늙은이가 하는 말에 그런 이치가 있는지 없는지, 대법이 우리의 정신문명에 도대체 유익한지 유해한지 생각해 보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이는 80여 세 노인의 마음속 말이다.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모 지방 어느 농촌에 60여 세 노인이 있는데 뇌혈전 후유증으로 길을 걸으면 발이 원을 그려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한 대법제자가 그에게 말했다.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믿었고 또 삼퇴(중국공산당의 3대조직에서 탈퇴)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말 복을 얻었고 병도 나았다. 추수 때 그들 내외간은 삼륜차를 사서 7-8무(畝) 되는 밭의 옥수수와 옥수숫대를 모두 자기 집으로 운반해 왔다. 지금은 정상인과마찬가지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마을에 또 70여 세 할머니가 계시는데 아주 심한 심장병이 있었고 병이 심해 의사는 치료해 주지 않았다. 자녀들도 후사를 다 준비해 놓았다. 대법제자가 그녀에게 말했다.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진상 호신부를 주니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목에 걸었고 진상자료도 받았으며 또 삼퇴도 했다. 몇 달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 얼굴은 희게 변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성심성의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더니 병이 정말로 나았어요. 나는 날마다 손자를 학교에 데려가고 데려올 수 있게 됐어요. 나는 나를 구해주어 두 번째 생명을 얻게 해주신 대법 사부님과 대법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앞으로 나는 여전히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겠어요, 왜냐하면 정말 효과 있기 때문이에요.”
1998년 5월, 중국 국가체육총국 국장은 직접 파룬따파 발원지인 지린성 창춘시에 고찰을 갔다. 1998년 국가체육총국은 파룬궁 수련생 12,553명을 샘플 조사했는데 질병 완쾌와 기본 회복률이 77.5%, 호전된 인원 20.4%를 합하면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한 유효율이 최대 97.9%에 달했다. 평균 사람마다 매년 의료비 1,700여 위안(약 30만 원)을 절약했으며 매년 의료비 총 2,100여만 위안(약 3,700만 원)을 절약했다.
국가에 유익하고 국민에 유익하며 세계에 유익하고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
1998년 하반기, 일부 전국 인민대표 이직휴양 노 간부들은 대량의 군중에서 반영한, 공안이 파룬궁 군중을 불법적으로 대한 문제에 따라 파룬궁에 한동안 상세한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파룬궁은 나라에 유익하고 국민에 유익하며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리훙쯔 선생님과 파룬궁 수련생의 선행과 의로운 행동은 이 결론의 가장 훌륭한 증명이 될 수 있다.
1993년 12월 27일, 리훙쯔 선생님은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서 기공과학 보고를 하신 후의 4천 위안(약 70만 원)의 수입을 전부 중화 ‘의로운 일에 나서기’ 기금회(中華見義勇爲基金會)에 헌납하셨다. 1994년 5월 14일, 15일, 리 선생님은 중화 ‘의로운 일에 나서기’ 기금회에서 거행한 기증보고회 초청을 받고 베이징 공안대학 강당에서 두 차례 기공학술 보고를 하신 후 6만여 위안(약 천만 원)의 수입 전부를 기금회에 기증하셨다. 동시에 또 ‘파룬궁’ 1천 권을 각 도서관에 기금회를 대신해 기증하셨는데 가치가 6,600위안(약 115만 원)에 달했다. 1994년 8월 27일, 리 선생님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학습반을 운영해 얻은 7천 위안(약 120만 원)을 전부 그 자치주 적십자회에 기증하셨다.
1993년 베이징 동방건강 박람회에서 리훙쯔 선생님은 표창을 가장 많이 받은 기공사였다.
1992년 12월, 리훙쯔 선생님은 제자를 거느리고 베이징 92 동방건강박람회에 참가하셨는데, 그 박람회에서 표창을 가장 많이 받은 기공사가 되셨다. 1993년 12월, 리훙쯔 선생님은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서 박람회 최고상인 ‘변연과학진보상’과 대회의 ‘특별 금상’ 및 ‘군중의 환영 받는 기공사‘란 칭호를 받으셨다. 1993년 12월 27일, 공안부 소속 중화 ‘의로운 일에 나서기‘ 기금회는 리훙쯔 선생에게 영예증서를 발급했다.
2002년 3월 9일, 캐나다의 중국인 이민자 천루칭(陳儒慶)은 친구를 데리고 차량 수리센터에 차를 수리하러 가는 도중에 한 소년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면서 외치는 것을 보았다. “여자애가 운하에 빠졌어요.” 천루칭은 즉시 200미터 떨어진 운하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보니 한 여자아이가 강변에서 약 10미터 되는 곳 얼음 구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얼음이 녹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놀이에 팔려 한 여자아이가 불행히 얇은 얼음을 밟아 빠진 것이었다. 천루칭은 옷도 벗을 사이 없이 얼음 위를 기어가 여자아이의 손을 꽉 잡아당겨 그 아이를 구해 냈다.
2003년 11월 17일, 퀘벡 주 이민부는 표창대회를 열고 2002년 자신을 잊고 남을 구한 24명 우수 국민을 표창했는데 천루칭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퀘벡 이민부 장관 실 커시니는 수상식에서 말했다. “아시아 혈통의 국민이 퀘벡에서 최초로 이런 영예를 얻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화교 지역사회, 화교 친구가 사회에 공헌한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저는 화교 친구에게 말하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상을 받은 후 기자가 엄동설한에 왜 강에 가서 사람을 구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곧 죽게 되는데 구하지 않는다면 한 수련인(파룬따파)으로서는 틀림없이 불합격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자아이가 얼음 구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생각도 하지 않고 가서 구했습니다.”
바로 미국 휴스턴시 시장이 ‘휴스턴 리훙쯔 대사의 날’을 선포할 때 말한 것처럼 “파룬따파는 문화와 민족의 제한을 초월해 우주의 진리를 지구의 매 한구석마다 울려 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 사이에 다리를 이어 주었다. 리훙쯔 씨는 피곤하지만 파룬따파를 중국에서부터 세계 각지로 널리 전해 주었다. 이 길을 따라 그는 수많은 국가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끼쳤고 숭고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진선인’의 찬란한 빛발 세상에 씨 뿌리게 하자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폭군이었던 네로가 궁전 확장에 쓸 땅이 장애를 받게 되자 로마시를 불태우고는 그 죄를 기독교도에 들씌웠다. 민중의 증오를 선동하려고 네로는 이론가에게 지시를 내려 유언비어를 만들게 했고 고대 로마 사회의 악행을 모두 기독교도에 들씌웠다. 네로는 또 기독교도를 경기장에 몰아넣으라고 명령을 내렸고 로마인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산채로 맹수에게 잡아먹혔다. 그 후의 몇 대 집권자는 네로 뒤를 이어 계속 기독교를 박해했다. 그러나 매번 박해가 발생한 후면 모두 한 차례씩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해 박해자와 유언비어에 속아 그들을 따라 죄를 지은 사람들은 잇달아 보응을 받아 전염병 중에서 비참하게 죽었으나 기독교를 박해하지 않은 좋은 사람은 살아남았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은 ‘진선인’을 적으로 삼고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다. 고대 로마의 비극이 재연되지 말게 하려고 파룬궁 수련생은 거짓말에 기만당한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위대한 역정을 시작했다.
한 파룬궁 수련생은 정부에 보내는 공개편지에 썼다. “우리는 이 대지에 정기(正氣)가 넘치고 사람마다 서로 선하게 대해 국가에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예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되는 충의지사가 나라에 충성하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올리고 충심을 천고에 남겼던가. 오늘날 나라의 장원한 미래를 위해 진선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를 주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불공정한 대우를 너무 많이 말하고 싶지 않다. 가령 이것으로 사람들의 더욱 많은 정념과 양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연로한 한 농민이 베이징에 청원을 가다 체포됐을 때 그는 자신의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신어서 구멍이 난 헝겊신 몇 켤레를 경찰 앞에 꺼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먼 길을 걸어서야 이곳에 온 것은 바로 ‘파룬궁은 좋습니다! 정부는 잘못하고 있습니다!’하는 마음속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2002년 3월 5일 저녁 8시, 파룬궁 수련생은 지린성 창춘시 유선 텔레비전 8개 채널에 파룬궁 진상 동영상을 삽입해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폭로해 큰 진동이 일었다. 많은 창춘 시민은 이 때문에 분신자살 진상을 알게 됐다. 박해 원흉 장쩌민은 이 때문에 경악했고 공포와 분노를 느꼈다. 그는 방송을 삽입한 자를 ‘전부 죽여라.’라는 밀령을 내렸다. 뒤이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과 체포에서 최소 5천 명 파룬궁 수련생이 수감을 당했고, 15명이 4~20년 징역형을 받았으며 최소 8명이 고문으로 사망했다. 그중 삽입에 참여한 허우밍카이(侯明凱)는 체포된 후 이틀 사이에 박해로 사망했다. 주요 삽입자 류청쥔(劉成軍)은 1년 9개월 동안 잔혹한 감옥 시달림을 겪은 후 2003년 12월 26일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시신은 7시간 안에 경찰에 강제 화장당했다.
인간 세상에 ‘진선인’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고 국내에서 박해당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해 해외 파룬궁 수련생은 ‘도보 걷기’를 발기했다. 그들의 발자취는 유럽, 아메리카, 호주, 아시아 4대 주에 남았다. 그들은 만나는 매 사람마다 미소로 이야기를 나누고 길에서 만난 매 하나의 작은 마을의 관리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신념은 단순하면서도 확고했는바 그것이 바로 파룬궁의 진상과 긴급구원 소식을 매 한 사람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애들리라고 부르는 한 캐나다 청년은 보행하는 수련생을 본 후, 자발적으로 가입해 여러 사람과 함께 일주일을 걸었다. 작별할 때 그는 수련생에게 편지를 남겼다. “이 편지를 쓰게 됐을 때 저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슬픈 것은 제가 더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고, 기쁜 것은 제가 당신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로 저를 감동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2001년 11월 20일 오후 2시경, 세계 12개 국가와 지역에서 온 36명 서양인 파룬궁 수련생이 천안문에서 ‘진선인’이라고 쓴 현수막을 펼쳐 전 세계인의 ‘진선인’에 대한 중시와 환영을 증명했다.
기독교는 300년을 박해당했다. 300년 동안,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경건한 기독교도는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이어가면서 오직 사람들에게 예수는 사람을 선을 행하도록 가르쳤으며 그가 말한 것이 진리임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14년이 지나갔다. 파룬궁 수련생은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한시도 중단한 적이 없다. 그들은 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의 적색 테러를 무릅쓰고 대선대인(大善大忍)하고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으며 의지가 강인하다! 그들은 다만 중공이 ‘진선인’에 뿌린 먼지를 털어버려 ‘진선인’의 불광이 인심을 비추게 하려는 것뿐이다.
문장발표: 2014년 1월 25일문장분류: 시사평론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5/2861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