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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正氣)를 떨친 사례

글/ 비우(飛宇)

[밍후이왕]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지 14년이 됐다.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당해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지만 중공의 고문은 그들의 신앙을 개변시키지 못했다. 그들이 의연히 중공의 감옥을 나설 때, 그들 가족과 파룬궁을 믿는 사람들은 감옥 입구에서 그들을 환영했다. 이 열렬한 장면은 중공 악경(사악한 경찰)들에게는 충격이었고 또한 세인의 심령을 깨우치기도 했다…….

“산산, 나와라!”

2013년 11월 8일은 ‘탕산의 딸’이라 불리는 리산산(李珊珊)의 불법 노동교양 만기일이다. 탕산시에서 온 경찰 4명이 원래 산산을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산산을 맞으러 온 백여 명 친구와 파룬궁수련생을 마주한 그들의 얼굴은 저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중공의 사악한 규정에 따르면, 무릇 감옥이나 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 신앙이 확고해 중공에 타협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은 현지 정부에서 세뇌반으로 재차 납치해 박해를 연속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백여 명 친구와 파룬궁수련생은 아침 일찍부터 허베이성 여자 노동교양소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산산이 나오면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은 파룬궁 박해 초기 몇 년 동안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었으므로 파룬궁수련생을 보기만 하면 다 광적으로 체포했기 때문이다. 중공에 세뇌되어 자아를 잃은 사람이라면 오늘날에 와서도 이런 정황은 여전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집회가 아닌가? 노동교양소 경찰은 여전히 사악한 수단을 써 위협하면서 모임을 촬영했다. 하지만 흉금이 넓은 파룬궁수련생과 산산의 친구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물러서지 않았으며 사악과 마주했다.

오전 8시 55분, 산산이 철문을 나서기 전에 여러 명 경찰이 그녀를 둘러싸고 시간을 지연시키려 시도했다. 이때 문밖에서 백여 명 사람이 함께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산, 나와라! 산산 나와라!” 한 친구는 아름다운 연꽃 한 묶음을 산산 앞에 내밀었다. 순간, 산산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인 산산은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멍하니 서있던 경찰은 풀이 죽고 주눅이 들었으며 의기소침해 말없이 재빨리 자리를 떴다.

꽃다발, 박수소리, 폭죽으로 모녀를 환영

헤이룽장 자무스(佳木斯)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친웨밍(秦月明)의 아내 왕슈칭(王秀靑)과 딸 친하이룽(秦海龍)은 하얼빈 첸진(前進) 노동교양소에서 1년 반 노동교양을 당했다. 2013년 4월 13일에 불법 노동교양이 만기됐다. 그녀들을 맞으러 간 사람은 친웨밍의 큰 딸 친룽첸(秦榮倩) 외에도 또 수많은 파룬궁수련생과 세인들이었다. 파룬궁수련생을 지지하는 한 세인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첸진 노동교양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길에는 두세 사람씩 짝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노동교양소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서 보니, 갈수록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모두 길가에 서서 친웨밍 가족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8시 후 첸첸이 꽃다발 두 묶음을 들고 노동교양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탄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근심과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때, 차 세 대가 꼬리를 물고 달려왔는데, 그 중 한 대는 파출소 경찰차였고 먼저 와 있는 차까지 합치면 모두 다섯 대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친웨밍의 가족을 데려다 계속 박해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9시 반이 됐을 때 친웨밍의 가족이 울안 건물 앞에 나타나자, 경찰은 그녀들을 강제로 끌어가려 했습니다. 이 때 꽃을 든 파룬궁수련생이 노동교양소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도 따라서 함께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들 세 사람의 팔을 잡고 함께 노동교양소 대문을 나섰습니다.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 순간, 모두들 열렬히 박수를 쳤고 또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역사로 하여금 이 한 시각을 목격하게 했습니다.”

“이 때 누군가 폭죽을 터뜨렸습니다. 이때 저는 이 장면에 감동해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격동되어 당시 말을 할 수 없었지요. 바로 이때 경찰차와 기타 차량도 울안에서 나왔어요. 이를 보고 나는 차를 직접 그들 앞까지 몰고 가서 가로 막고 있다가 친웨밍 가족이 안전하게 떠난 후에야 그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때 그 경찰차는 줄곧 제 뒤를 따랐어요. 저는 조금도 두렵거나 긴장하지 않았어요. 얼마쯤 달린 후 경찰차도 더는 따라오지 않았지요.”

갈수록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그들의 동반자를 맞이하고 있다

헤이룽장의 한 대법제자는 올해의 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의 교류 원고에 ‘대법수련 중 정체를 형성하고 정체 속에서 승화’란 문장을 썼는데 문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4월 하순 어느 날, 우리는 대법제자 두 명이 검은 소굴에서 나올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그 감옥은 앞서 몇 번은 대법제자를 석방할 때 아주 많은 사람이 와서 ‘610’이 아예 사람을 데려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새벽 5시에 사람을 석방하기로 사전 모의했다. 소식을 들은 후 우리는 0시에 차를 몰고 감옥으로 갔다. 우리가 4시 넘어 도착했을 때 감옥 문 앞에는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진작부터 와 있었다……”

“5시 정도에 두 곳 ‘610’의 차가 모두 도착했는데, 그들은 모두 두 수련생의 가족을 데리러 왔다가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온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경찰을 불러 각 길목을 막고 전면적으로 납치하려 했다. 수련생들은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610 인원 및 그 가족에 진상을 알려주고 선을 권했다……. 약 두 시간 정도 대치하고 나서 아침 7시 12분경에 감옥 대문이 열리고 두 분의 대법제자가 나왔다. 수련생들은 열렬히 박수를 쳤고 한 수련생은 그들에게 꽃을 안겨 주었다. 이들은 대법제자에게 둘러싸여 대법제자가 사전에 준비한 차량에 올랐다. ‘610’도 사람을 데려가려 했으나 전혀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두 분 대법제자는 각기 두 차량에 올랐고 첫차가 떠나자 610은 두 번째 차를 쫓아가려 했다. 수련생들은 보고나서 즉각 ‘610’의 차를 빼곡히 둘러싸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외쳤다. 외침소리는 기복을 이루면서 감옥의 상공에서 메아리 쳤고 천하를 진동시켰다.”

“이는 정과 사의 겨룸이고 이는 선과 악의 투쟁이다. 사악은 이번 겨룸에서 실패로 끝을 맺었다. ‘610’ 차량은 포위를 아예 뚫을 수 없게 되자 ‘610’인원은 차에서 내려 사진으로 우리를 찍었다. 모든 대법제자는 견고한 정체를 이루고 사악이 어떻게 행동하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10여 분이 지난 후 수련생을 태운 차가 사라진 후에야 수련생들은 각기 흩어졌고 ‘610’은 황급히 도주했다.”

이는 하나의 위대한 역사적 시기다. 위대한 신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세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이로써 출옥한 자는 영예를 얻었으며, 동시에 박해자의 추악함과 악독함을 대비시켰다. 갈수록 많은 세인이 출옥하는 수련자에게 그렇듯 큰 영예를 안겨 줄 때,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하는 중공 악도들이 어찌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 2013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30/2832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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