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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철의 장막 하에서의 정신 통제(그림)

글/ 철막(鐵幕)

[밍후이왕] 원스턴(Winston)은 갑자기 전신이 아픔을 느꼈다……. 그의 몸은 바스러져 형상이 없고 관절마다 모두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아픔을 못 이겨 그의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흘렀다. 그러나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등골뼈가 부러지려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코로 호흡하면서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겨우 40이야?” 오브리엔(O’Brien)이 말했다. “당신이 보다시피 최고는 백이야. 이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할 때 당신은 늘 기억해야 해, 나에겐 언제 어디서든지 모두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있어.”

오브리엔은 네 손가락을 펴면서 말했다. “만약 당에서 네 개가 아니고 다섯 개라 한다면 그럼 당신은 얼마라고 말할 것인가?”, “4개”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심한 아픔을 느꼈다. 계기의 지침이 55를 가리켰다. 원스턴의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의 폐부로 드나드는 공기마저 다 큰 신음을 냈다. 설령 그가 이를 악물었다 할지라도 억누를 수 없었다. 오브리엔이 그를 보니 네 손가락은 여전히 편 채였다. “몇 손가락이야, 원스턴?”, “네 개” 지침은 60을 가리켰다….

이는 영국 작가 오웰(Orwell)의 정치 예언 소설 ‘1984년’ 중의 한 지면이다. 오웰이 1948년에 써 내 후세에 전해지게 된 이 훌륭한 작품은 ‘큰 형님’이 영도한 철통식의 극권 사회를 그려냈다. 이 사회 중의 매 사람의 사상은 모두 엄밀한 감시를 받는데, 당의 의지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면 사상 범죄로 인정되어 반드시 잔혹한 사상개조를 받아야 한다. 상술한 정경이 바로 당의 핵심당원인 오브리엔이 ‘사상범’인 원스턴에게 사상개조를 진행하는 과정이다. 독자가 본 것이 바로 복마전(煉獄般) 같은 당의 논리 ‘2+2=5’를 영혼에 주입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세뇌 전화와 상상외로 똑같다.

파룬궁수련생의 진선인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중공의 삿된 사설을 접수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중공은 각양각색의 세뇌술을 자행했는데, 고문으로 세뇌하는 것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한 가지다.

우한의 한 파룬궁수련생은 시 공안국 정신병 관리 병원에 갇혀서 전기침으로 박해당하는 한편 다른 한 면으로는 전화를 강행 당한 과정을 자술하였다. “여섯 사람이 나를 특수 제작한 침대에 들어 놓고는 나의 두 발과 양어깨를 침대에 묶고 다섯 사람이 제각기 나의 머리, 손, 발을 힘주어 눌렀다. 진씨 성을 가진 주임이 나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연마할 테냐? 아직도 단식할 테냐?” 내가 대답했다. “연마하겠다, 단식을 끝까지 할 것이다.” 그들은 전기침 두 대를 각기 나의 양측 태양혈에 꽂았는데 전기침은 표피에서 약 4-5cm 깊이로 꽂았고 전류, 전압을 최대치로 조절하였으며 한 시간 남짓 지속했다. 나는 온몸이 모두 전류에 자극받고 다섯 사람에게 눌리고 있었지만 온몸이 들썩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머리는 만개의 뾰족 칼로 후벼내듯 아프기 그지없었다. 전기 충격을 받은 후 대뇌는 지각을 잃었고 정상 사유를 할 수 없었으며 지옥과 공포 속에서 사는 것 같아 빠져나올 수 없었다.

中共酷刑示意图:电刑
중공 고문 설명도: 전기고문

랴오닝 파룬궁수련생 숭웨깡(宋月剛)도 번시(本溪) 노동교양소에서 당한 ‘공중에 매달아 늘이기’(懸空抻-수쇄로 두 손 두 발을 채우고 곧게 펴서 늘인 다음 쇠사슬에 걸고 당기면 사람은 공중에 매달린다.)로 사람을 괴롭히면서 전화를 협박할 때의 정경을 자술하였다. “…… 두 날 두 밤이 지나갔습니다. 나는 이미 늘어나 하지가 마비되었습니다. 부원장 우강이 와서 내가 아직도 견지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만 8천 볼트의 전기 곤봉으로 나의 얼굴에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4일이 지나자 나의 하반신 근육은 이미 감각을 잃었고 비길 데 없는 동통이 골수로 스며들고 허리 척추는 마치 끌로 끊임없이 후벼내 부러질 듯 아팠습니다. 상반신은 늘어나 근골이 부러질 것 같았고 흉부는 수만 마리 개미가 끊임없이 깨무는 듯 가벼운 숨 한 번 쉬어도 아파서 견딜 수 없었는데 사는 게 죽기만도 못했습니다. 매초 나는 끝없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데 악경 왕이, 류장펑은 도리어 또 만 8천 볼트의 전기 곤봉 두 개로 나를 충격하였는데 충격할 때 튕기는 불꽃은 한자 남짓하였습니다. 왕이는 나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숭위깡, 너 오늘 전화하지 않으면 너를 때려죽이겠다!”

酷刑演示:抻床
고문 실연: 늘이기 고문

이 두 파룬궁수련생의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는 듯, 중공의 혹형은 지극히 잔혹하여 신체 감당의 극한으로 밀어붙였는데 그 목적은 바로 파룬궁수련생더러 “연마하지 않겠다.”(不煉)란 두 글자를 말하게 하려는 것이다. 무엇이 이보다 더 황당하고 비루한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것은 개별적 지방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공의 노동교양소, 감시통제 계통, 그리고 세균처럼 번식돼 나온 전국 각지의 세뇌반 중에 다 널려 있다. 중공은 ‘큰 형님’과 마찬가지로 세계상의 어떤 곳이든, 얼마나 은폐되었든 지를 막론하고 당의 의식에 부합되지 않는 사상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상 범죄 자체가 바로 죽음이다.”(‘큰 형님’ 당어)는 ‘육신을 소멸한다.’를 의미하며, 그러나 “설사 그들을 살해하기 전이라도 그들을 개조하여 당이 요구하는 사람으로 되게 한다.” 오늘까지 폭로되어 나온 근 4천 명에 달하는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절대다수는 모두 잔혹한 세뇌 전화에 시달려 사망한 것이다.

박해 세뇌의 실질 과정을 오발량(奧勃良)의 말로 한다면 바로 인류 사상을 갈가리 찢어 찢어버린 다음 당이 요구하는 모양대로 그것을 다시 붙이는 과정이고, 중공의 말대로 한다면 바로 당성으로 인성을 대체하는 과정이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자연 인성과 자유의지를 말살한 다음 전면적 정신통제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 역시 중공과 ‘큰 형님’의 구별되는 곳 즉 일반 폭정의 가장 사악한, 세계에서 오직 사이비교에만 있는 이런 극단적인 정신 통제이다.

일반 민중에 대하여 역사상 중공은 주기성적인 정치 운동으로 이런 통제를 완수하였다(파룬궁수련생은 타협하지 않음으로 하여 비로소 받은 박해가 가장 잔혹하고 지속시간 역시 가장 길다.). 매번 운동의 폭력위협과 사상 주입, 오랫동안의 정신단련을 통해 한 무리 한 무리 중국 사람이 ‘육체로부터 영혼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들부들 떨면서 당의 권위 아래에 굴복하였다.’ 이후 몇십 년을 중공은 중심을 돈을 버는 데로 전이했다 하지만 이런 정신 통제는 사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되어 필요하기만 하다면 아무 때건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중공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자 신속하게 문화혁명식의 사람마다 태도를 표시하고 사람마다 관을 넘는 바람을 일으켰는데 심지어 어린이마저 놓치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모두 파룬궁을 모함하고 욕하는 말이 있다.

지금, 이런 통제는 이미 없는 곳이 없어 절정에 이른 정도이다. 비교해 보면 곧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생활환경은 ‘1984’와 놀랍게도 비슷하다. ‘1984’에 ‘진리보’가 있고 현실의 중국에는 중선부(中宣部)가 있다. 양자는 똑같이 거짓말을 꾸며내고, 역사를 왜곡하며 흑백을 뒤바꾸고, 옳고 그름을 뒤바꾸었다. ‘1984’에 ‘우애부’(友愛部)가 있고, 현실 중국에는 방대한 정법위, ‘610’(전문 파룬궁 박해를 책임진 중공 조직), 국안 등 기구로 구성된 안정유지 체제가 있는데 양자는 모두 폭력탄압과 세뇌전화를 책임졌다. ‘1984’에는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현대화 설비 즉 ‘전광판’이 있는데 매 사람의 일거일동을 감시한다. 현실 중국에는 각가지 엄밀한 시스템 감시 체계가 있는데 매 사람의 일언일행을 감시한다. ‘1984’에 관한 한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표현방식과 사상습관에 대한 통제를 통해 당의 의식 형태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사상은 모두 존재하지 못한다. 중국 사람마다 익숙한 당의 말이 있는데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자동으로 중공의 의지와 일치를 유지하게 한다(이 방면은 ‘해체 당 문화’에 대량의 논술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체 중국은 한 푼의 에누리도 없는 정신 감옥으로서 사람마다 모두 중공의 마수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오웰이 예견한 강권 사회는 그 이후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역사에 따라 검증되었고 인류도 이 때문에 고난을 겪을 대로 다 겪었다. 하지만 사람이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은, 21세기 인류가 여전히 오웰의 예견 중의 암흑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원스턴의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중공 사당의 변태 행위로 말미암아 그것은 본래보다 더욱 심각한 극치에 달하여 동서고금에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84’의 중문 역자는 말했다. “강권주의 해를 폭로하여 세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줌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다 그것의 위해성 – 윤리에 대한 파괴, 사상에 대한 통제, 자유에 대한 박탈, 인성에 대한 말살, 역사에 대한 날조와 왜곡을 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만약 그가 하자는 대로 맡긴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 사회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경지에 빠질 것이다.

2004년 11월, ‘9평 공산당’이란 책이 발표되었는데 책에서는, 중공이란 이 반 인류, 반우주의 사령이 바로 현재 중국 사회 일체 고난과 죄악의 근원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중공을 이탈하고 중국인민을 구속하는 정신 쇠사슬을 푸는 것이 바로 중국인민을 고난의 길에서 구해내는 것이며, 이래야만 중화민족은 비로소 미래와 희망이 있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7월 2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7/20/2769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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