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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불량배 저우융캉이 인권 보장을 언급하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글/ 이천검(伊天劍)

[밍후이왕] 파룬궁박해 원흉 중 한 명인 저우융캉(周永康)은 피의 빚이 첩첩해 그의 행방은 줄곧 국내외 중시를 받고 있다. 며칠 전 중공 정법위(政法委) 서기 저우융캉이 놀랍게도 인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수정 후 실시하게 될 형사 소송법 좌담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강연을 했는데, 각급 정법 기관에서 인권 의식을 강화해 범죄 징벌과 인권보장의 통일을 실현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자연히 사람들의 중시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저우융캉은 지금도 여전히 임직하고 있는 최대 인권 불량배다. 그가 주관하는 정법위는 전국의 공안, 검찰, 법원, 사법(공검법사)를 통솔하고 있다. 공검법사가 얼마나 부패한지는 그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 중국 사회가 엉망진창이 된 절대 다수는 모두 공검법사에서 조성한 것이다. 감옥 안 죄수의 말대로 한다면 저우융캉이 바로 진정한 마피아 두목이다.

장기간 저우융캉은 중국 국민의 인권을 타격하는 방면에서 있는 힘을 다 했다. 밍후이왕 5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4월 초, 저우융캉은 우한(武漢)에 몰래 기어들었는데 반 달 후 우한의 수십 명 파룬궁 수련생이 속속 납치당했고, 그중 7명은 이른바 ‘조직자’로 모욕당했다. 날조된 이 억울한 사건은 중공 우한 사법 계통의 인원들마저 차마 보기 어려워했고 검찰원은 여러 번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이 사건을 반려했다. 2011년 12월 19일 우한시 ’610‘은 우창구 검찰원에 강제로 7명 파룬궁 수련생을 ’일괄 사건‘을 처리하게 하고 불법 소송을 제출해 이른바 하나의 ’중대한 사건’을 조작하려 망상했다. 하지만 필경은 불법 조작된 억울한 사건인지라 이 불법적인 재판은 시일을 끌고 또 끌었다. 그런데 금년 4월 저우융캉이 재차 후베이에 기어든 후 우창구 법원은 5월 19일, 불법 개정을 강행해 법을 어기고 이른바 ‘중대 사건’을 심리했다. 이날 법정 밖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행인에게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고는 강제로 가방을 검사하면서 대법과 대법 창시자를 욕하도록 강요했다. 이미 8명 파룬궁 수련생이 강제 납치를 당했다고 한다.

저우융캉은 전국 도처로 돌아다녔는데 그가 간 곳마다 파룬궁 박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금년 인민대표대의에서 그는 공개적으로 보시라이(薄熙來)를 지지했다. 보시라이는 파룬궁에 피의 빚을 진 또 하나의 중공 고위관리로 랴오닝성 다렌시장에 임직하고 있을 당시 공안에 “파룬궁에 대해서는 사납게 혼내주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해외 매체 소식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파룬궁에 대한 보시라이 잔혹한 박해가 마음에 들어 비로소 그를 자신의 정법위 서기 직위를 이어 받을 사람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중공의 정법위 서기로서의 저우융캉은 최대의 범법자가 됐다. 우수 변호사 가오즈성(高智晟)은 중공 최고 당국에 세 번이나 파룬궁 탄압 중단 요구 편지를 쓴 이유로 장장 몇 년간 불법 감금을 당하고 있다. 가오즈성 변호사를 전문 박해하기 위해 중공 중앙 정법위 내부에서는 일찍이 전문적으로 가오즈성 변호사를 박해하는 전문팀을 설립했다. 2차 대전 역사 연구원 뤼자핑(呂加平) 노인은 장쩌민은 일본 매국노이자 러시아 간첩이며 가짜 중공 당원이고 가짜 열사 고아라는 신분을 폭로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비밀리에 납치당해 10년 징역에 언도됐다. 또 시각 장애자 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을 감시하기 위해 저우융캉은 6천만 위안의 경비를 소모하면서 불법 감시를 유지했다.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저우융캉의 잔혹한 박해로 인해 그는 출국할 때면 여러 번 법정에 기소 당했다. 중공이 파룬궁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챙기는 일이 폭로됨에 따라 그가 중국인의 인권을 심하게 박해하는 악행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런데 중국인의 인권을 박해한 인권 불량배가 왜 갑자기 인권을 논하는가? 한 가지 해석은 그가 부득이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어서 말한 것으로 본다. 그것은 국내외 모두가 중국 인권을 박해한 죄악으로 그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런 방식으로 질책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다른 한 가지 해석은 그가 직면한 것이 청산될 말로이기 때문이다. 보시라이의 낙마, 그리고 이로부터 유발된 장쩌민 깡패 집단의 패배로 인해 저우융캉은 진작부터 그 속에 빠져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인권을 논한다는 실질은 자신을 위해 발뺌하려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 기생이 죽음 임박에 자신에게 정절문을 세워 자신이 저지른 더러운 일을 평생 감추려는 것과 같다. 저우융캉이 지금 말하는 인권 역시 이런 일종 함의가 있다.

저우융캉이 말하는 인권은 중공의 일관적인 태도에 부합된다. 하는 말과 해놓은 일은 꼭 상반되고, 인권을 높이 말할수록 인권 박해는 더욱 잔혹하다. 이는 당년에 장쩌민이 한 쪽으로는 “때려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때려서 죽으면 자살로 치라.”는 지령을 내리면서도 한 쪽으로는 “중국은 역사상 인권이 가장 좋은 시기에 처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저우융캉은 무슨 “범죄 징벌과 인권 보장의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파룬궁수련생에게 지은 죄행을 보면 그가 한 말과 완전히 상반된다. 그는 파룬궁을 박해할 때 진정으로 “인권 징벌과 범죄 보장”의 통일을 실현했던 것이다.

문장발표: 2012년 6월 4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4/2584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