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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는 세계의 양심

글 / 중국 파룬따파 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세상에 전해진 20주년에 즈음하여 갈수록 많은 사람들은 파룬따파를 ‘세계의 양심’이라 칭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파룬따파는 왜 ‘세계의 양심’으로 칭할 수 있는가?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파룬따파 수련생은 시종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고수하고 있으며, 시종 도덕의 제고, 심성의 승화를 첫 자리에 놓을 뿐 이익을 첫 자리에 놓지 않았다. 어떠한 이익의 유혹, 심지어 생명의 위협에 직면해도 그들은 절대로 자신의 도덕 준칙을 버리지 않았고, 이익을 위해 자신의 도덕성을 팔아먹지도 않았다.

중공 사당은 파룬따파 수련생을 위협하려 애쓴다. 파룬따파 수련생이 오직 ‘연마하지 않겠다’는 한 마디만 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연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거절하면 실직, 수감, 고문, 심지어 생명을 잃을 위험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천수만의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연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박해자에게 자비롭게 진상을 알리며 악을 버리고 선을 향할 것을 권고한다.

많은 사람들은 파룬따파 수련생을 너무 바보라고 한다. 왜 ‘연마하지 않겠다’는 말 한 마디를 하고 나와서 집에서 몰래 연마하지 않는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따파 수련생이 추구하는 ‘진’은 순수한 진으로서 하늘을 속이지 않고 땅을 속이지 않으며, 남을 속이지 않으며, 또한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들은 도덕 가치를 첫 자리에 놓을 뿐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 싫어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당신이 좋다고 여기면 자기 집에서 연마하면 될 것인데 왜 나와서 진상을 알리는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따파 수련생이 추구하는 ‘선‘은 무사(無私)한 선으로서 이렇게 훌륭한 공법을 수련하면서도 남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자사(自私)한 게 아닌가? 만약 파룬따파가 중공 사당에 가장 악독한 방식으로 박해 당해도 전혀 무감각하다면 또 어찌 ’선‘을 닦는다고 말하랴. 파룬따파 수련생이 생명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리는 행위는 세인이 죄 짓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서이고, 세인이 선을 향하도록 권고하기 위한 것으로서, 대선지거(大善之舉)이다. 파룬따파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전 인류의 도덕 준칙을 수호하기 위해서이지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당신들은 총도 대포도 없는데 공산당을 이길 수 있는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파룬따파는 어떠한 사람이든 전혀 원수로 여기지 않으며, 더욱이 누구하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 공산 사당이 파룬따파를 잔혹하게 박해한 13년 동안에 파룬따파 수련생은 여태껏 단 한 번도 과격한 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한 적은 더더욱 없다. 진선인‘을 믿는 파룬따파 수련생이 추구하는 ’인‘은 어떤 사람이든 원수로 대하지 않으며, 그들은 시종 스스로가 원한도 원망도 없음을 해낼 수 있을 것을 요구하며, “당신의 적을 사랑하라”고 한다.

공산 사당은 이미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룬따파 수련생은 공산당원에 대한 개인 구원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일체 방법을 다하여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더러 공산사당을 탈퇴하게 함으로써 자구(自救)하게 한다. 파룬따파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는 것은 공산 사당을 타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된 공산당원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개괄해 말한다면, 파룬따파가 세상에 전해진 20년 동안 파룬따파 수련생은 줄곧 마음을 다해 ‘진선인’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정신 경지를 승화하고 있으며, 인류 도덕의 상승을 이끌어 가고 있다. 공산 사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13년 동안, 파룬따파 수련생은 시종 ‘진선인’에 대한 바른 믿음을 견지하고, 자신의 도덕성을 수호하며, 보편적인 세상 가치를 수호하고 있다.

파룬따파 20년 이래의 수련 실천은 인류에게 도덕 승화의 희망을 보여 주었다. 도덕이 나날이 미끄럼질 치고 사회는 매일 긴장하며, 생태 역시 매일 악화되는 오늘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파룬따파 수련생을 통해 또 다시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덕과 존엄을 보게 되었다. 그로부터 곤경에서 벗어나고 아름다운 곳으로 가는 방향을 보아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 수련생의 고상한 행위에서 자신의 도덕 격차를 보아내고 이로부터 자신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양심을 찾아냈다.

파룬따파의 고상함은 무수한 사람의 내심세계를 밝게 비추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도덕적 용기를 주어 갈수록 많은 사람의 양심이 깨어나고 있다. 사악을 버리고 선량을 선택하는 것은 이제 큰 홍세의 물결이 되고 있다.

파룬따파는 ‘세계의 양심’이라는 이 영예로운 칭호에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할 것이다.

문장발표:2012년5월10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10/2570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