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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죄증, 저우융캉의 사법처리는 필연이다

글/중옌(鍾延)

[밍후이왕] 저우융캉은 적극적으로 장 씨의 파룬궁(法輪功) 탄압 정책을 추진시킨 최고 두목이자 원흉이다. 장 씨가 최고 권력에서 물러난 뒤에도 저우융캉은 여전히 여력을 다해 정법위원회 계통의 불법 권력을 악용하여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집단말살을 추진하고 있다. 저우융캉은 최근 중공 내부 투쟁에서 낙마된 보시라이와 마찬가지로 파룬궁 박해정책을 가장 철저히 추진시킨 자이다. 박해가 결속되는 그 날은 이들이 철저히 청산되는 날임을 이들은 가장 분명히 알고 있다.

저우융캉은 박해를 연장시켰고, 죄증이 뚜렷하다

저우융캉의 범죄 증거는 직접 박해를 당한 파룬궁 수련생들이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법위원회, ‘610’이라는 범죄사슬에 관련된 각급 기관의 관리들 손에도 장악되어 있다. 마치 박해에 참여한 왕리쥔이 보시라이가 박해에 참여한 범죄의 증거자료를 대량으로 장악하고 있듯이 저우융캉의 수하 관리도 역시 죄행의 증거를 장악하고 있다. 아래의 사례는 이런 문제를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충칭시 장베이구 공안분국 국보지대(支隊)의 610주임 량스빈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자신이 파룬궁을 탄압한 행위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밀령을 집행하는 것이다.”라고 직접 말했었다. 금년 2월 29일 밍후이왕의 ‘충칭 장베이구 량스빈 등 610 악인의 100여 차례 범죄사실’이란 글에서 “전에 파룬궁 수련생 가족이 량스빈을 찾아왔을 때 량스빈은 ‘나는 결정권이 없다,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나한테 밀령을 내린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량스빈은 단지 일개 구급 610 두목에 지나지 않는데, 2004년부터 백여 차례 박해를 감행한 기록을 갖고 있다. 진실한 박해 기록에서, 우리는 량스빈 같은 악인들이 파룬궁 수련생을 마음대로 납치하고 강탈, 구타, 협박하여 죄명을 만들어 억울한 사건을 조작했으며, 온갖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가짜 증거를 만들어냈음을 보아낼 수 있다. 이로써 파룬궁 수련생은 납치되어 불법 판결당하고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으며, 혹은 세뇌반에 감금되어 박해 당했다. 어떤 수련생은 박해로 생명을 잃었고 어떤 수련생은 박해로 불구가 됐고 어떤 수련생은 겨우 한 가닥 목숨만 남아 아주 위중한 상태에 처해 있다. 이들은 모두 무고하고 선량한 국민이며 이들의 온전했던 가정은 어려움에 시달리게 됐다. 이런 박해는 바로 저우융캉의 밀령을 집행한 결과이다.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의 사이트 데이터에 의하면 전국에 구, 현급 행정단위가 2,862개가 있다. 이 숫자에서 우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현재 중국에서 저우융캉을 대표로 한 정법위원회와 ‘610’이 실시하고 있는 박해의 규모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으며, 그 죄는 실로 너무 크고 많아 기록할 수 없을 정도다.

저우융캉이 어디에 나타나면 죄악은 어디에서 벌어졌다

저우융캉은 적극적으로 장 씨의 박해정책을 추진한 원흉으로서 그가 어디에 나타나면 어디의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박해가 심해졌다. 파룬궁 수련생은 검거되거나 세뇌반에 납치당하거나 하여 정신이 붕괴됐고, 그곳의 국민은 거짓말에 독해됐다. 밍후이왕의 보도에 따르면 부분적인 통계에서 지난 2년간 저우융캉은 전국 각 성시로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파룬궁 박해를 진두지휘 하여 무수한 죄악을 빚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저우융캉이 시안에서 섬서 파룬궁 수련생 리쉬펑을 검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리쉬펑이 시안에서 떠난 지 얼마 안 된 2011년 11월 25일 서안의 610과 국보대대 요원들이 멀리 광저우까지 가서 리쉬펑을 납치한 것이다. 십 몇 명의 방탄복을 입은 악경(사악한 경찰)들은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들고 리쉬펑의 셋방에 무단 침입하여 강제로 불법 가택수색까지 했다.

아래는 밍후이왕에 보도된 전형적인 탄압 사례들이다.

◇ 2009년 연말부터 2010년 연초까지 중공사당의 중앙정법위원회 두목 저우융캉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겨냥하여 법원 등 관련 기관에 명하여 “파룬궁 수련생과 관련된 일련의 모든 사건은 가장 신속하고 엄격하게 처리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 2010년 4월 14일부터 15일, 저우융캉은 상하이에 나타났다. 그러자 상하이 주변 지역의 파룬궁 수련생은 상하이엑스포를 구실로 지역 정법위원회의 시달림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불법 검거되기도 했다. 이유는 행사 주변 도시의 파룬궁 수련생은 상하이로 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조치를 취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 2010년 4월 랴오닝성 푸순시 칭위안현의 촌민 376명은, 둥링감옥에서 고문 박해로 시달림을 당하다가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 쉬다웨이의 억울함을 벗겨주려고 진정서에 단체로 서명했다. 정법계통 기관원의 말에 따르면 중공 정법위원회 서기 저우융캉은 ‘연명서사건’을 조사하라고 직접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억울한 사건을 조사해줄 것을 청구한 진정서에 연명으로 서명하도록 한 발기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하여 촌민들이 이 일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 2010년 7월 말부터 8월 초에 중공 각 지역 ‘610’ 불법 조직의 구성원들은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각 지역 ‘610’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소위 ‘경험교류’였다. 중공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저우융캉은 이번 회의에서 장쩌민이 최초에 내린 명령인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하라”를 다시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각 지역에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사용할 자금을 지급했다.

◇ 2010년 8월 저우융캉은 쓰촨 메이산시에 도착했다. 저우융캉이 메이산시 505공장에 당도한 것은 바로 이곳에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세뇌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2010년 9월 저우융캉은 화이화에 도착했고 파룬궁 박해는 갑작스레 격화됐다. 각급 ‘610’은 끊임없이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에게 소란을 피워 시달림을 당하게 했는데 전화 혹은 방문하는 방식으로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을 위협하거나 혹은 수련생이나 가족에게 서명을 강요했다. 1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화이화시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이들은 화이화시의 각 현성에 거주하거나 또는 주변 도시인 샹시자치주의 사람들이다.

◇ 2010년 11월 15일 저우융캉은 충칭 완저우구에 나타났고, 다음 날인 16일 충칭 주요 도시에서 계속하여 악한 짓을 벌였다. 그 당시 충칭시위 서기인 보시라이는 2012년 위로 기어 올라가 사당 정법위원회 서기직을 계승받기 위해 저우융캉이 충칭에 도착하자 왕리쥔과 함께 충칭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향한 피바람을 일으켰다. 이들은 충칭 610, 국가안전국, 공안, 지역특무 등을 조종하여 엄밀히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했다. 이들은 각 지역으로 돌아다니며 특무를 시켜 파룬궁 수련생을 탄압하고 검거하도록 했다.

11월 16일 충칭 610, 국가안전국, 지역특무 등은 저우융캉과 보시라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조직적으로 음모를 꾸며 몇 십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다.

◇ 2010년 11월 13일 저우융캉은 산둥성 지난에서 지닝으로 향했다. 11월 12일 밤 지난에서 두 건의 사악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10명의 지난 파룬궁 수련생이 납치됐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는 모두 저우융캉이 직접 선두에서 지휘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또 12월 7일 산둥성 ‘610’의 악경들은 지닝의 황화이호텔에 투숙하여 자리를 잡은 후 시와 각 지역의 ‘610’에 지시하여 가도에 통지, 지역 파룬궁 수련생들을 회의에 소집하여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소위 ‘보증서’에 서명을 받도록 시달했다.

◇ 2010년 11월 파룬궁 수련생은 랴오닝성 다롄 교통TV방송에 진상을 삽입해 스폿(spot) 방송을 했다. 중공 당국은 극도로 놀랐고 중공 정법위원회 서기 저우융캉은 다롄에 묵으면서 모든 경찰은 물론 심지어는 군의 병력까지 동원하여 직접 파룬궁 수련생을 검거하도록 배치했다.

◇ 2011년 4월 초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원흉 중의 한 명인 저우융캉은 우한에 도착하여 파룬궁 수련생 검거에 박차를 가해 보름 뒤에 우한 시는 파룬궁 수련생 검거의 최고봉을 이루었다. 4월 20일 우한 ‘610’은 거의 동일한 시간에 적어도 10명의 우창 파룬궁 수련생을 검거했으며, 또 3일 이내에 16명을 검거했다. 이렇게 5월 말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전체 시에서 적어도 45명의 수련생을 검거한 것이다. 각 지역이 경쟁적으로 검거 작전을 전개하는 과정 중 가장 많은 실적을 올린 지역은 우창이다. 4월 20일 우한 당국은 11명 파룬궁 수련생을 검거했는데 2011년 4월에 대대적으로 검거바람을 일으킨 후 우한시 세뇌반(양위안세뇌반)에는 적어도 18명이 불법 감금당했다. 같은 시기 후베이성 세뇌반(반차오세뇌반)에는 9명, 차오커우구 에터우완 세뇌반에는 7명, 장안구 천자지 세뇌반에는 6명, 장한구 얼다오펑 세뇌반에는 11명이 각각 감금당했다.

마피아처럼 사람을 연이어 납치한 사건들은 저우융캉이 4월 초에 우한에 도착한 것과 관련이 있다. 시 공안국은 저우융캉의 뜻에 따라 소위 ‘연합행동팀’을 편성했으며 총책임자로 부국장을 임명했다. 책임자는 직접 시공안국 1처(국보처), 6처(기술형사정찰처), 우창분국국보대대, 칭산분국 국보대대 등을 지휘할 수 있었다. 시 공안국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장기적으로 도청하고 추적 미행하는 특무들의 수법이 감행됐으며 그중 1처가 주요한 임무와 작용을 했다.

◇ 2011년 5월 저우융캉은 윈난에 도착했다. 윈난 ‘610’은 5, 6월 여러 차례 은밀한 모의로 조직적 통일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검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 경찰은 “이는 위에서 검거하라고 시달된 지시로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임무이다.”라고 밝혔다.

저우융캉이 비밀리에 윈난에 도착하여 2011년 5월 11일 쿤밍시 ‘610’과 쿤밍시 공안국은 통일적으로 중공 경찰을 지휘하여 하루만에 천환리, 장샤오화, 장샤오윈, 둥비웨이, 구리칭, 딩구이잉, 펑정란, 궈모모 등 여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다.

장 씨, 저우융캉 깡패 집단은 거금을 들여 파룬궁을 탄압했다

박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장 씨, 저우융캉 깡패 집단은 거금을 탕진했는데 국민생산총액의 1/4에 해당되는 국고를 파룬궁 박해에 사용했다. 3월 6일 ‘중국실사보(中國實時報)’는 중국 국내 안전을 위한 지출이 금년 예산을 포함해 볼 때 연속 3년간 군사비용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5일 인민대표대회가 열린 후 2012년 경찰, 민병, 법원, 감옥과 기타 ‘공공안전’ 항목 예산은 11.5% 증가된 7,018억 위안(약 1,114억 달러)에 달했으며, 중공의 2012년 국방예산은 11.2% 증가(인민폐로 6,703억 위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9년 이후 중공은 파룬궁을 가장 큰 탄압의 대상으로 여겼는데, 이로보아 어느 곳에 예산이 집중적으로 지출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국가계획위원회의 한 관리는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장 씨는 중공의 국고를 모두 바닥냈고, 많은 관리는 이 기회를 이용해 공금을 착복했다고 밝혔다. 또 중공 당국은 파룬궁 탄압을 지속시키기며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일부 해외 학자 및 언론 매체와 손을 잡는데 거금의 국고를 소모했다고 덧붙였다. 오늘 중공의 현실은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만일 파룬궁 탄압에 대한 정책을 개변하지 않고서는 누가 최고 지도자로 되든지 역시 똑 같게 된다. 왜냐하면 이 탄압을 유지하려면 큰 인력과 큰 재정의 손실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관리나 국민들은 누구나 이 정책의 틈을 타 이익을 얻으려 한다. 국가의 법체계는 파괴됐고 국고는 바닥났다.

2004년 전 랴오닝성 한 사법청 고급관리는 ‘마싼자 노동교양소 복역해제 대회’에서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대처하는데 투입된 예산은 이미 한 번의 전쟁에 소모되는 경비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이 경비는 지금도 끊임없이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마저 끌어들여 박해에 참여시키다

더욱 마음이 아픈 일은 장쩌민-뤄간 깡패집단은 문화대혁명 때의 군중투쟁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고한 수많은 국민들이 이번의 박해에 끌어들여졌다. 연좌제, 호적제, 밀고, 적발 등의 형식으로 사람들이 박해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밍후이왕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금년 3월 저우융캉은 산둥의 크고 작은 거리에 대법진상 표어가 나붙은 것을 발견하고, 칭다오시 610에 명하여 각 향진의 제1책임자를 소집시킨 후 비밀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국민을 시켜 사악한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제작해 붙이게 했고, 현상금을 내걸어 국민들에게 파룬궁 수련생과 진상 자료점을 고발하게 하는 악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2011년 8월 22일 저우융캉의 지시로 충칭시 치장현의 사당 정법위원회와 파룬궁 박해 불법 전문기구인 ‘610’은 최근 사당 당교의 접대소 2층에 연이어 세뇌반을 설치했다. 세뇌반 종사자로 현의 공안국, 검찰원, 법원 등에서 특별히 선발한 요원들과 전 현의 각 공장, 광산 기업단위, 사회구역 직원들을 참여시켜 함께 파룬궁 수련생을 탄압하는 전문 요원으로 편성했다.

2011년 11월 저우융캉은 섬서에서 박해를 독려한 후 또 신장으로 갔다. 신장 과학기술관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전람회를 열어 민중을 기만했다. 11월 25일 저우융캉은 전체 신장사업회를 소집한 후 신장의 사당 조직원들에게 인민을 강박하여 ‘승낙카드’에 서명하게 했다.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을 표준으로 하고 있는 파룬궁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도록 인민을 그르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기만행위를 한 것이다.

2011년 12월 저우융캉은 구이저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재차 구이저우 각급 정부와 공안국, 검찰원, 법원 계통과 교육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기만했다. 그의 사악한 지시 하에 구이저우의 일부 중학교와 초등학교 학교방송에서 대법을 모함하는 내용을 방송하게 했으며, 또 학생들에게 대법을 모함하고 공격하는 글을 짓게 하여 수많은 학생들을 독해시켰다. 저우융캉의 음험한 명령으로 사당의 공안국, 검찰원, 법원 및 그 관할지역 사무실 사람들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과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을 사진으로 찍고, 파룬궁 수련생 가족을 단위별로 찾아가 잘못을 밝혀 준다는 소위 ‘조사등기’라는 수법으로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을 위협했다. 그들 중공 사당의 목적은 계속하여 독재정치를 유지하려는 것이며, 계속하여 중국대륙의 민중을 기만하고 그 민중들을 그것들의 순장품으로 되게 하려는 것이다.

못된 짓을 저지른 자는 결코 법망을 벗어날 수 없다. 저우융캉은 반드시 반인류죄, 혹형죄, 집단학살죄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아울러 악을 징벌하는 연극은 이미 개막됐으니 두고 볼 일이다.

문장발표 : 2012년 3월 23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23/2546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