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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 죄인 왕리쥔, 보시라이

글/ 중옌(鍾延)

[밍후이왕] 최근 왕리쥔(王立軍)과 보시라이(薄熙來)는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시끄럽게 떠들어 국내외 화인들의 관심거리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들이 저지른 잔혹한 폭행과 고문 그리고 뇌물을 착복하는 등 부정부패로 얼룩진 탈법의 어두운 내막이 점차 폭로됨에 따라 머지않아 그들의 죄행이 낱낱이 드러나 깨끗이 청산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최후 권력싸움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이들은 과거 10여 년간을 서로 결탁하여 경쟁적으로 천인공노할 나쁜 일을 일삼아 파룬궁을 박해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탄압했는데, 그 수단과 방법은 극히 흉악하고 잔인했다. 그들은 반드시 자신이 범한 집단 학살죄로 법률과 도의 그리고 천리(天理)에 따라 그에 상응한 징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 12년간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어디로 가면 어디의 파룬궁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 피해 지역으로 됐다. 그들이 직접 계획하고 악당을 배치하여 탄압한 지역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대규모로 납치되어 감금되고 고문당해 세뇌당하거나 투옥됐다. 이렇듯 이들 양인의 두 손에는 무고한 민중의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충칭(重慶)의 전면적 세뇌에서 보、왕은 주모자다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가 충칭에 부임한 후 1백70억 위안(약 3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도시 천체에 50만 개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여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감시통제의 도시를 구축했다. 특히 2009년 보시라이가 측근인 왕리쥔을 충칭시 공안국장으로 임명한 뒤 파룬궁 박해의 수위는 점차 높아졌는데, 그들은 각계 각처에 지시를 내려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도록 명령했는데 특히 각 지역 공안기관에 파룬궁 수련생들을 색출 검거하도록 엄명을 내려 일거에 파룬궁 수련생들을 대량으로 납치했으며, 납치한 수련생들에 대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혹독한 박해를 가해 납치된 수련생들은 물론 그들 가족에게까지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

중공사당은 2010~2012년까지 소위 전향교육의 실천을 위해 ‘신 3년 교육의 전반적 통합 전투’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파룬궁 탄압 정책을 전개했는데, 보시라이는 목적 달성을 앞당긴다면서 3년의 계획을 2년으로 단축하여 탄압의 박차를 가하며, 충칭지구의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발악적인 수색과 납치, 고문, 세뇌 등의 박해를 가해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삼으려 했다. 보시라이가 충칭시에 부임한 2007년을 전후하여 20여 명의 선량하고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들이 고문 박해로 사망했다.

대략적인 통계에 의하면 2011년 충칭지구에서 36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를 당했는데 그 중 277명이 납치되어 22명이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고문 폭행 세뇌와 전향의 압박을 당했으며, 70여 명은 악경(사악한 경찰) 등 중공 관련 기관에 의해 압수 수색으로 물품 강탈을 당하거나 심한 협박과 교란을 당했다. 그들의 박해 수단은 갈수록 포악해지면서 경찰을 증원하고 또 보조원을 늘려 집단 감시체제를 강화하여 중점 인물로 지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24시간 미행 감시를 하는 등 박해에 혈안이 되어 2009년에만 충칭에서 188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 감금, 가택수색을 단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6명의 수련생이 고문 박해로 사망했고 5명이 정신병원에서 박해당했으며, 18명이 불법판결로 투옥되었고, 76명이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밍후이왕이 폭로한 박해 사망한 사례에 의하면 철도건축 고급공정사인 류광디(劉光弟.60.남) 와 충칭시 퉁량(銅梁)현 안쥐(安居)진의 탕이(湯毅.46)는 파룬궁을 수련하다가 그들에게 납치되어 각각 노동교양 처분을 받고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해, 탕이는 2009년 4월 하반신 마비 증상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엉덩이 부위에 욕창이 생겨 참혹한 고생을 하다가 2009년 9월 22일 오전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으며, 류광디(劉光弟.60.남)는 2008년 올림픽기간 충칭 시산핑(西山坪) 노교소에서 1년여 간 고문 박해를 당하며 대량으로 불명의 약물 주입을 당하여 심신이 피폐해져 끝내 2010년 9월 25일 역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각 국에서 집단학살죄와 혹형죄로 기소 ― 보시라이

보시라이는 파룬궁 수련생 박해와 관련한 범죄혐의로 이미 세계 12개 국가의 사법당국으로부터 형사 및 민사소송으로 기소된 상태다. 호주 고등법원에서는 피소된 보시라이에 대해 궐석재판을 속개하여 소송을 제기한 파룬궁 측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04년 캐나다 황실 기마경찰대에서는 45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중공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 입국 거절, 강제송환, 또는 사법처리를 위한 기소 등을 위해 감시체제에 돌입했는데 그 명단에 보시라이도 유력한 인물로 등재돼 있다.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가 미국, 캐나다를 순방할 때 상업부장의 직책의 수행원으로 보시라이도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그가 우이(吳儀)를 수행하며 외국을 순방할 때는 이미 파룬궁 수련생의 고발로 미국 사법당국에 기소당한 상태라 미국의 입국이 금지된 바 있었는데, 캐나다에서마저 보시라이가 죄인으로 지목되어 감시자 명단에 포함되는 바람에 부득불 그의 이름은 후진타오 수행원 명단에서 결국 삭제된 것이다.

밍후이왕 보도에 의하면 보시라이가 랴오닝 다롄(大連)에서 시장직을 수행할 때 파룬궁 박해가 가장 극심했는데, 당시 박해의 수단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으며 불법체포, 감금, 혹독한 구타, 전기충격과 심지어 성적 학대까지 가하는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이로써 다롄은 중국 전체에서 파룬궁 박해의 정도가 가장 극악했던 도시 중의 하나로 지목됐다. 그 결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극악무도한 악행을 자행해 세인들조차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분노를 일으키게 한 악명 높은 다롄 노동교양소 악경들은 전국에서 제1의 ‘교육전화의 선진집단’르로 평가받았다.

‘국제 추적조사’의 보고에서는 보시라이가 랴오닝의 재직기간에 지역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했다. 그 성내의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와 다롄 노동교양소에 감금당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혹형 학대는 상상을 초월하며 그 죄상 역시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주모자 보시라이는 회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캐나다 전 아태 사무국장이며 다선의 국회의원인 데이비드 킬고어는 ‘중공의 장기생체적출조사보고서’를 통해 증거를 밝혔다. “보시라이는 1999년부터 2001년 다롄시장으로 재직,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랴오닝성 성장을 역임했는데, 우리의 증인(女)에 의하면 보시라이 재임 기간에 이천여 명 파룬궁수련생의 각막을 적출해 냈다고 증언했다.”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장기적출 직접 참여자 ― 왕리쥔

왕리쥔은 진저우(錦州) 공안국장 재직기간에 친히 전면적으로 파룬궁 수련생 박해를 진두지휘했다. 그가 진저우 공안에서 재직하는 동안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반드시 모조리 없애라!” 라는 강경한 명령을 내렸다고 한 증인이 말했다.

또 왕리쥔 공안국장은 2008년 2월 25일 이른 새벽 구타(古塔)、링허(淩河)、 타이허(太和) 등 3개 지역의 경찰을 총동원 같은 시간대에 수련생을 급습하여 30여 명을 납치하고 압수 수색으로 십여만 위안(약 1,800만 원)의 금품을 강탈했다. 그들은 납치한 수련생들을 분담하여 조사를 진행했는데, 루하오(陸昊)는 타이허구 공안 분국 형사대를 지휘하여 파룬궁 수련생 류펑메이(劉鳳梅)、취청예(曲成業)、황청(黃成.56)에 대해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가했다. 황청의 경우 철 의자에 앉혀 결박하여 연속 10여 시간의 전기충격을 가해 두 손이 골절됐고 왼발 정맥혈관이 노출됐다. 황청은 후에 진저우감옥에서 고문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류펑메이와 취청예 등 여자 수련생은 루하오에게 기만되어 인격모독을 당했다. 루하오 악인은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완전히 양심과 인성을 상실한 자다.

더욱 엄중한 일은 왕리쥔이 생체 장기적출 만행에 직접 참여한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이다. 2002년 생체장기적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은 랴오닝성 진저우시 공안계통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파룬궁 수련생을 불법 납치하여 고문 박해를 가하는 악행에 가담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2002년 4월 9일에는 증인이 당시 경호 임무를 맡고 있던 중 랴오닝성 선양(沈陽) 군부 종합병원 수술실에서 2명의 군의가 여자 파룬궁 수련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전 과정을 목격했다. 장기 적출을 단행한 군의관은 랴오닝성 공안청 모 판공실에서 파견된 2명으로 한 명은 선양(沈陽) 군구종합병원의 군의이고 다른 한 명은 제2군의 대학을 졸업한 군의였다. 이들 군의관은 선양(沈陽) 군구종합병원에서 여자 파룬궁 수련생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마취도 시키지 않고 복부를 절개하여 심장, 신장, 간 등 각 기관의 장기들을 적출했다. 이 살인 행위는 모두 왕리쥔의 직접 명령에 따라 행해진 것이다.

증인은 또 자신이 진저우 공안국에서 근무한 기간에 공안국장 왕리쥔이 파룬궁 수련생을 “반드시 모조리 없애라!”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증인은 몇 명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는데 참여했고 여러 차례 혹독한 고문과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에도 참여했다고 했다. 랴오닝성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가장 엄중한 지역으로서 밍후이왕에 발표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 수가 406명에 이른다.

학술 논문의 ‘약물 주사 후 장기이식에 관한 실험연구’에서는, 단 한 번도 장기이식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는 왕리쥔 역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 논문에서 왕리쥔이 직접 참여하여 알게 된 사실은 신선한 인체의 장기를 제공하여 실험의 수요를 보증한 것이라고 했다.

파룬궁 수련생을 구출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랴오닝 진저우는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심각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적어도 50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하여 감금했고, 그 중 적어도 71명이 박해당해 사망했으며 이외 또 30여 명이 박해로 불구가 됐다.

선악에 보답이 있는 것은 천리(天理)이다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전국 610, 공안 및 국가 안전부의 직원들이 잇따라 응보를 받아 상해로 사망하는 비율이 박해 전보다 훨씬 더 높다. 중공 공안부에서 형사경찰의 신체검사를 한 결과 불합격률이 70%나 된다. 그중 30%가 심혈관 질병이고, 40%가 고혈압이며, 30%가 소화기계통 염증이고, 20%가 관절염이며, 간염이 16%이다. 또 80%에 달하는 공안경찰이 이 직업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남방도시보(南方都市报)’ 미니 블로그가 있는데, 아직 인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 미니 블로그에는 왕리쥔이 병을 본 진단서와 병원비가 충칭시 제3군의대학에 입금된 사실이 공개됐다. 진단서에서는 왕리쥔이 2, 3시간밖에 잘 수 없으며 정신이 고도로 긴장하여 잠을 자도 전등을 끄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후에 더욱 심해져 늘 히스테리를 부리며 발광할 뿐만 아니라 자살을 생각한다고 했다.

네티즌은 왕리쥔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고,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하여 응보를 받은 것이며 귀신이 나타나 정신이 긴장되어 잠을 잘 수 없으며, 의심이 심하여 나중에는 죽는 길로 가게 될 것이라는 평을 달았다.

문장발표 : 2011년 2월 10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10/2529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