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밍(陳明)
[밍후이왕]
세상정치
중국 사람이 말하는 ‘정치’는 사실은 ‘정(政)’과 ‘치(治)’ 두 가지 방면의 것이다.
정은 곧 국가의 정사로 제도, 질서, 정책법령 등등이다. 예를 들면 “정치가 통하고 백성들이 화목해서, 온갖 폐지되었던 것들이 모두 잘 살아났다(政通人和, 百廢俱興)”[범중엄(範仲淹)의 『악양루기』)] 중에 ‘정’은 곧 이런 의미다. 공자는 말하기를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앞장서서 바르게 행동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게 행동하겠는가?”(『논어-안연편』) 만약 위정자가 정직지사라면 위에서 행하고 아래에서 따라 한다면 누가 또 감히 위법하고 규율을 어지럽히겠는가? 만약 대권을 좌우지하는 이가 모두 보잘 것 없는 탐오부패 한 사람이라면 윗 들보가 바르지 않아 아랫 들보가 비뚤어 질 것이니 부패가 심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옛 사람들이 “안에서 바로잡고 민중을 권고함으로 제후를 믿을 수 있다.”(『관자』), “상하숙연 해야 정리(政理)라고 한다”(『후한서. 장형전』)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 이 ‘치(治)’는 무엇인가? 묵자는 “천하가 서로 겸애하면 다스려지고, 서로 증오하면 혼란해진다(故天下兼相愛則治 相惡則亂).”(『묵자. 겸애상』)고 말했다. “옛날에 명덕(明德)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 몸이 닦여지고 몸이 닦여진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평화롭게 된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修其身;欲修其身者,先正其心……心正而後身修,身修而後家齊,家齊而後國治,國治而後天下平.)(『예기. 대학』)
『좌전』에서 기재하기를 정(鄭)나라 많은 사람들이 향교에서 국가정치를 의논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나라 정치가였던 자산(子產)에게 향교를 부숴버리자고 했다. 자산이 말했다. “무엇 때문에 향교를 파괴하려고 하느냐? 사람들은 정책의 좋고 나쁨을 의논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그는 용감히 말하는 사람을 자신의 스승이라 불렀다. 결국 정나라는 자산의 관용한 인도정책으로 다스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질서가 정연해졌다.
『자치통감-당기(唐記)』에 이런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당태종은 활(弓箭)을 매우 애호했다. 한번 그는 자신이 보존했던 열 몇 개 좋은 활을 공예가에게 보였는데 공예가는 모두 좋은 활이 아니라고 했다. 당태종은 원인을 물었더니 공예가는 “이런 활의 목심이 곧지 않아 목재의 무늬가 다 바르지 않은 것으로서 이런 활은 쏘면 아무리 힘이 있어도 빗나가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당태종은 문뜩 깨달았다. ‘관리의 덕성 여하가 온 나라를 놓고 말하면 얼마나 중요한가.’
인류사회는 본래 ‘정치’가 없었고 다만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나중에 옛 사람들이 이야기한 정치도 권모술수가 아니었고 더욱 엎드려서 시체를 어루만지는 백만, 천만의 ‘정치운동’, 권모, 사람을 괴롭히는 것 등이 아니고 ‘심정(心正)’, ‘겸애’, ‘명명덕(明明德)’이며 “정(政)은 정(正)이다(政者, 正也)”의 도덕적 경지였다. 근대에 이르러 손중산(孫中山)은 말하기를 “정치 두 글자의 의미를 천박하게 말하면, 정은 많은 사람의 일이고 치는 관리인데 많은 사람들 일을 관리하는 것을 정치라 한다”고 했다.
‘정치’란 서방 사회에서도 하나의 아주 평범한 말이다. 사람들이 여러 사람을 관심하는 공중(公衆)사무를 정치라고 한다. 종교, 상업을 제외한 사회활동을 모두 정치활동으로 본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고무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급여와 ‘극장 입장권’을 주었다고 한다. 근대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규정하기를 “어떤 정치결합의 목적이든 모두 사람의 자연적인 것과 동요할 수 없는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권리는 곧 자유이고, 재산이고 안전이며 억압에 반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UN총회는 1948년 12월 10일에 『세계 인권선언』을 통과, 반포했는데 제 1조에서 규정하기를 “사람마다 사는 것은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상 일률적으로 평등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천하의 흥망은 사람마다 책임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곧 ‘천부인권’, ‘신앙자유’, ‘인신자유’, ‘언론자유’, ‘사상자유’가 아닌가? 이런 정치는 물론 인류에게 유익한 것이고 인류에게 없어서 안 되는 것이며 마땅히 긍정하고 수호하며 적극 참여해야 한다.
공산당의 ‘정치’
마르크스가 말하기를 “정치상 일정한 목적을 위해 심지어 마귀와 연맹을 맺을 수 있으며 다만 긍정할 것은 당신이 마귀를 이끌고 가지 마귀가 당신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Kossoth. Mazzini. Louis ― Napoléon 』)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가? 마르크스는 또 “지금까지 일체 사회역사는 모두 계급투쟁의 역사였다”(『공산당선언』)고 말했다. 엥겔스가 보충해서 “그 어떤 정치투쟁이라도 모두 계급투쟁”(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레닌이 따라서 “정치는 각 계급지간에 투쟁”이라고 말했고, 스탈린는 이런 정치는 “현대사회생활의 축”이라고 했으며, 마오쩌둥은 “모두 계급이 계급에 대한 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공산국제운동’, ‘10월혁명’, ‘대청세(大淸洗)’, ‘홍색고면(高棉)대도살’, ‘공인운동’, ‘농민운동’, ‘정풍운동’, ‘토지개혁운동’, ‘반혁명진압운동’, ‘반(反)우파운동’……‘문화대혁명’, ‘6.4천안문학살’, ‘파룬궁박해’ 등등의 ‘정치운동’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투쟁’, ‘계급투쟁’, ‘노선투쟁’, ‘사상투쟁’, ‘잔혹한 투쟁, 무정한 타격’, ‘혁명’, ‘소멸’, ‘타도’, ‘대비판’, ‘투쟁’, ‘태도를 밝히다’, ‘사상 심처에서 혁명을 하다’, ‘세뇌’, ‘노동교양’, ‘ 노동개조’, ‘처단’, ‘계급의 원한’, ‘깊은 원한’, ‘무산계급’……‘정치선전’, ‘정치학습’, ‘정치공작’, ‘정치면모’, ‘정치입장’, ‘정치생명’, ‘정치각성’, ‘정치목표’, ‘정치표현’, 대중소 학교에는 모두 정치과정이 있고 정치공작을 함에 『당의 건설』, 『붉은기』잡지, 『사상정치공작』잡지, ‘정치운동’을 함에 ‘숙반 위원회’, ‘문화혁명소조’, ‘6.10사무실’, 장쩌민(江澤民) ‘3강’에 ‘정치를 이야기하다’가 있고 당당하게 ‘중국청년정치학원’을 만들고 첩첩으로 각급 당교를 꾸렸으며 ‘정치제일 사상 선두’, ‘정치는 일체 공작의 생명선’ 등등…정말 ‘정치’가 온 하늘에서 날아다니고 온 땅에서 굴러다닌다.
이렇게 많은 ‘정치’를 다 누가 했는가? 백성들이 한 것인가? 절대 아니다. 백성들은 무슨 권리가 있어 정치를 하겠는가? 장쩌민은 ‘생존권은 가장 큰 인권’고 말하지 않았는가? 당신에게 살게 하는 것만도 감지덕지 해야지 또 무슨 정치를 한다고 하는가! 중국 수십 년간 무수한 ‘정치운동’은 다 공산당이 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늘날 중국에서 하는 정치는 언제나 공산당의 특허이자 그것들의 비장한 솜씨이고 가장 기본적 통치수단이다.
공산당은 정치를 한다고 하면 매우 흥분되어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람과 싸우면 즐거움이 끝없다’고 말한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매 7-8년마다 다시 한 번 한다’고 말했다. 정치운동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놀라고 피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정치’는 우리인류 정치와는 완전히 반대로 되어 있으며 어울리지 않는다.
공산당이 하는 ‘정치’에는 농촌생산 조직자와 사회 안정의 초석인 향신들에게 ‘지주계급’ 딱지를 붙이고 소멸과 전정을 했다.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본가 계층을 소멸했다. 장즈신(張志新)은 한 보통 사람으로서 몇 마디 바른 말을 하다가 잔혹한 학살을 당하고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려는 것마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공산당 자신의 국가주석 류사오치(劉少奇)가 공산당의 뜻에 조금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죽이고 인민과 심지어 자신의 당도들에게 모두 어떤 인계도 하지 않았다….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沈陽市) 노신(魯迅)미술학원 재무처 직원 가오룽룽(高蓉蓉)은 파룬궁수련을 했기 때문에 2003년 7월에 납치당해 룽산(龍山)강제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 2004년 5월 7일 오후 3시에 본 교양소 2대대 대장 장자오화, 부대대장 탕위보우(唐玉寶)는 가오룽룽에게 연속 7시간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리하여 얼굴은 심하게 망가지고 온 얼굴에 물집이 잡혔으며 피부와 두발은 타고 농혈과 엉켰으며 얼굴은 부어 눈은 한 갈래 틈만 남았고 입은 붓고 변형돼 매일 함께 있는 죄수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악당은 그래도 그만두지 않았으며 중공 정치위원 뤄간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2005년 6월 16일, 모두 좋은 사람으로 공인하는 가오룽룽을 살해했다.
이렇게 무고한 죽음을 당한 중국인은 1949년부터 지금까지만 해도 8천여만 명에 달한다.
공산당의 ‘정치’속에서 중국은 탐오부패가 갈수록 많아지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물가는 갈수록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오르며, 집값은 폭등해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말도 하지 못고, 비싼 학비와 의료비는 많은 사람들을 핍박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한다. 끝없는 이주, 토지를 징수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택에서 쫓겨났고 거대한 취업압력과 생활 압력은 사람들을 핍박해 비관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했다. 얼마나 많은 부패분자, 특권 신귀족. 망나니 깡패들은 허리춤에 만금을 꿰어 차고 호화로운 주택과 고급차량을 갖고 돈을 물쓰듯 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은 오히려 후안무치하게 그들은 ‘인민의 공복’이라고 공언한다.
공산당 ‘정치’ 속에서 중국인은 신앙 자유마저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는 많은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는 중공의 손에서 묵직한 지폐로 변했다. 얼마나 많은 속임수, 절도, 강탈, 매음, 도박, 부녀 아동 유괴, 보복, 살인으로 목숨을 해쳤는가. 얼마나 많은 토지가 사막화 되고 수질 오염, 대기 오염, 소음 오염, 수재, 대가뭄, 충재, 산사태, 지진과 각종 전염병, 얼마나 많은 탄광 사고, 아동학살, 부녀학대, 독 쌀, 독 밀, 독 우유, 하수구 기름, 쓰레기 돼지 등등이 몰려들어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하지만 중공 고위 관료들은 모두 도도하게 층층이 자신을 보호하거나 일찍이 자신의 자녀, 재산을 국외로 모두 빼돌렸고 혹은 수시로 달아날 준비를 하거나 이미 성공적으로 달아났다. 이 일체는 공산당이 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당신은 생각하지 못한 것은 공산당이 줄곧 파룬궁이 정치를 한다고 선전했다는 점이다. 파룬궁수련생들이 법률에 따라 청원한 것을 정치한다고 모함했고 자신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리는 것을 정치한다고 모함했으며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고 외치면 정치를 한다고 모함하고 『9평 공산당』서적 전파를 정치라고 모함한다. 공산당은 무엇 때문에 늘 ‘정치한다’는 패쪽을 치켜들고 그것들이 공격하려는 대상을 겨냥하는가?
중국인은 공산당의 ‘정치’를 두려워하고 ‘정치’를 제기하면 모두 벌벌 떨고 안색이 변하며 인류의 정치는 다 이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파룬궁이 정치를 한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괜한 의심으로 혼자 놀라서 고민하며 원한을 파룬궁에 돌렸는가. 공산당이 나쁘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말하기만 하면 ‘반혁명 분자’, ‘반혁명’이라 하고 ‘정치문제’라면 목을 자르려 한다. 당신이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했다, 민중을 속였다’고 선전하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정치를 하기에 남들은 당신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산당이 수십 년을 하루와 같이 정치를 해서 사람들에게 준 하나의 억지 논리다.
정치를 하는 한 전문가가 지금 정치를 더러운 말로 간주해 좋은 사람에게 퍼붓는데 이것이 깡패짓 하는 것이 아닌가?
진상 알림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여, 우리 파룬궁 제자는 진정 수련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개인의 득실을 포기하고 초탈해서 진정 반본귀진한다. 모든 법문 중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수련인의 본분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수련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을 때, 우리 사부님을 마음대로 모함하고 우리들의 신앙을 마음대로 짓밟을 때, 대법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당할 때, 수천수만의 좋은 사람들이 강제 노동교양 당하고 판결당하고 학살당하며 심지어 장기를 적출 당해도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마땅히 사실 진상을 설명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파룬따파가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말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공산당이 무엇인가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성한 대법이 능욕을 당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그런 악행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멈춰라, 당신이 이렇게 하면 우선 당신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라고 충고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를 마음대로 유린하는 것이 바른 이치인가? 수련하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일단 진상을 말하면 곧 정치를 하는 것이고 또한 공산당식 정치인가? 이것은 무슨 이치인가?! 우리는 진상을 알리며 반드시 누가 여러분을 속이고 우리를 박해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말해야하고 누가 상식도 없이 ‘천안문 분신사건’을 만들었는지? 누가 수십 년간 끊임없이 사람의 생명을 해쳤는지? 그것은 무슨 물건인지? 그것은 왜 이렇게 하는지? 이것은 여러분을 보호하기 위해 알아야할 권리가 아닌가?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동시에 여러 방면의 의견을 들어야만 정확하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한쪽 말만 믿으면 반드시 일방적인 실수를 범하게 된다’고 했는데 옳은 말이 아닌가?
그러므로 진상을 알리고 진상을 전파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서 사람 마음을 얻고 국가에 유리하고 인민에게 유리한 덕을 쌓고 선을 행하는 좋은 일이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지금 진정 수련하는 사람, 정의가 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고 그 당시 기독교도들이 학살 앞에서, 불교도들이 법난 앞에서 굽히지 않고 진리를 견지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친구여, 우리 생각해 보자. 도리는 이런 것이 아닌가? 친구여, 당신은 선택하라. 인류의 정상적이 세상 정치관 각도에서 ‘정통인화(政通人和)’을 해야만 ‘백폐구흥(百廢俱興)’할 것이고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해야만 비로소 천하를 태평하게 할 것이다. 공자는 자산(子產)이 항교를 훼손하지 않는 것은 인정(仁政)이라 하고 당태종은 관리들은 반드시 정직해야만 비로소 국가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서방의 민주 정치, 『인권선언』, 『세계 인권선언』들은 모두 정치를 함에 사람의 기본권을 정치로 삼지 않았는가? 그러면 우리가 전파하는 『9평 공산당』, 진상을 알리는 것도 사람들의 안전 및 억압에 반항하는 기본권을 위해 하는 정의로운 행동이 아닌가? 이것을 어찌 공산당의 수십만 수백만을 죽이는 정치와 함께 논할 수 있는가? 정치에 관련 된다고 해도 절대 공산당의 그런 마귀를 이끌어 사람을 해치는 정치가 아니라 바르게 하는 정치다. 상애를 겸비한 정통의 회귀이고 거짓말을 타파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진상(眞相)이고 먹구름을 헤치고 맑은 하늘을 보는 의거다.
친구여, 만약 선택하라고 하면 당신은 문화혁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문경지치, 정관지치 혹은 강희제, 건륭제를 선택하겠는가?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서방의 민주 정치를 선택하겠는가, 아니면 마오쩌둥식의 ‘인민민주전정’을 선택하겠는가? 만약 선택한다면 당신은 링컨의 보통 일병이 되겠는가, 아니면 마오쩌둥의 홍위병 두목이 되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반파쇼 전쟁의 전선으로 달려가겠는가, 아니면 장쩌민 ‘6.10조직’의 마르크스레닌 악도가 되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전정한 염황의 후대가 되겠는가, 아니면 도적을 아버지로 삼아 마르크스레닌의 자손이 되겠는가? 세상 정의의 정치와 공산당의 사악한 마귀 ‘정치’사이에서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비록 역사는 선택할 수 없으나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길을 걷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이 완전히 선택할 수 있다.
친구여, 만약 당신이 건강한 인격과 완정한 정치권을 선택한 사람이고 한 시기 ‘정치’ 대포의 재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당신은 공산당 당, 단, 대 조직에서 퇴출하고 하늘이 우리 매 사람에게 준 자유, 행복, 광명과 영예를 영접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9월 2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26/230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