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림(緣林)
18살 되던 해 외진 시골에 갔다가 마을 앞동산에서 가을햇살 아래 소담스레 피어나고 있는 들국화의 모습을 보았다. 산비탈에 지천으로 널린 들국화는 자랑할 만한 맵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깔은 없었지만 가을바람에 자유롭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조용한 들국화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세 밖에 몸을 두고서도 처한 환경에 조용히 적응하는 그들의 평온함에 감동했다.
들국화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간고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위틈에서도 한 가닥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강경하게 뿌리를 내리며 생명의 밝은 빛을 뿌린다. 당조시인 원진은 필을 들어 “꽃 중에 국화를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이 꽃이 피고나면 더 이상 필 꽃이 없노라”고 칭찬했다.
오늘의 들국화는 중공의 감옥에서 능욕을 당하고도 의연히 신앙을 지키고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일종 존경과 사랑으로 연역될 수 있다. 그들은 세간에서 가장 된서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들국화이다.
1999년 7.20후 중공 감옥 어디에서든 이런 파룬궁 여 수련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간에서 독특한 아름다움과 빛을 펼쳤다. 나는 오늘 그녀들 1만천 중, 1송이 꽃을 소개하려한다. 아직 박해가 지속되고 있어서 그녀의 실명을 밝힐 수 없으므로 잠시 그녀를 로화(魯花)라고 부르기로 하자.
2009년 7월, 로화는 8년간 고생스런 감옥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 로화를 보았을 때 나는 마음 깊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석양의 노을 빛 속에서 걸어온 로화에게서 8년의 옥중재난이 남긴 그늘이라고는 한 점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평온하게 웃으며 8년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견정한 신념으로 걸어 왔다고 말했다. 로화의 이마에는 약 3센티미터 넘는 흉터가 있었는데, 감옥 작은 방에서 죄수 9명에게 10시간 넘도록 혹독한 폭행을 당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로화는 98년부터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 각종 질병이 모두 나았으며, 시어머니와의 모순도 수련을 하면서 자비롭고 선한 마음으로 풀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저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어머님께는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시어머님도 마을에서 “나의 며느리가 파룬궁을 수련해서 좋게 변해 다시는 나와 싸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1년 7월 로화는 마을 사람들에게 파룬궁진상을 알리다 마을 지부서기와 파출소 악경들에게 납치되었다. 그 후 시 구치소에 감금당한 채 여 경찰은 그녀를 20여 일 동안 온몸에다 수갑과 족쇄를 채우는 고통으로 신앙을 포기하도록 협박했다.
2001년 10월, 그녀는 8년이라는 억울한 판결을 받고 성 여자 감옥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감옥의 합동 훈련대에서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대장은 9명의 죄수에게 10시간이 넘게 잔혹한 폭행을 가하도록 했다. 그녀는 이마에 3센티미터 넘는 상처가 나 피를 줄줄 흘려 머리가 어지럽고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감옥에서는 그녀에게 매일 계란 알만한 옥수수 가루 떡과 한 덩어리 쉰 김치만 주었는데, 그런 일을 늘상 발생했다. 한 번은 조용하고 깊은 밤, 지도원 조 xx는 당직 서는 죄수에게 감방 사람들을 불러 4사람이 1시간 30분 동안 그녀를 무차별 폭행을 가하도록 시켜 다음날 걸을 수조차 없었다.
중공이 감옥에서 늘 사용하는 한 가지 박해방법은, 파룬궁 수련생들의 밥에 약을 넣는데 멍한 상태에서 수련을 방치하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로화는 헤이룽장 파룬궁 수련생 조춘[周春(가명)]이가 2년간 줄곧 원기부족, 의기소침한 채 잠이 부족해 멍한 상태임을 발견했다. 그녀의 이런 상태는 반드시 문제가 있다고 여겨 긴 시간 관찰해 죄수와 옥의가 주춘의 밥그릇에 약을 넣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밥그릇을 들고 식탁에서 죄수들에게 그들이 주춘의 밥에 약을 넣는 것을 보게 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당하는 비열한 행위를 보도록 했다. 후에 로화는 보복성 폭행을 당했다.
로화는 감옥에서 늘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들이 자행하는 박해수단은 머리털이 곤두 설 정도다. 작은 방에 가두고, 죄수를 사주해 각종 형구로 폭행을 가해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은 불구가 되었다. 합판으로 손가락을 집고, 노년 파룬궁 수련생을 작은 의자에 앉힌 채 자지 못하게 하며, 생리 중인 파룬궁 수련생을 홀랑 벗겨 울안에서 끌고 다니며 조리를 돌리는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이것이 중공이 문명감옥에서 문명적으로 관리하는 소행이다.
한 노년 수련생이 수감당한 동생(동수)을 면회하러 갔을 때, 옥경은 당신도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물었다. 그는 감방을 가리키며 “당신들이 그들의 신체는 가두어도 그들의 마음까지 가둘 수 있는가?”라고 했다.
그렇다. 중공이 감방을 만들어 파룬궁 수련생의 몸을 가둔다 해도, 그들의 신앙을 포기시킬 수 있겠는가? 왜 모르는가? 그들의 견정한 마음은 일찍 새장을 벗어나 높은 공중에서 빙빙 돌면서 날고 있음을.
11년이 지나갔다. 파룬궁은 쓰러지지 않았고 도리어 세계 114개 국가에 전해졌다. 파룬궁 수련생은 중공의 감옥에서도 쓰러지지 않았고 그들의 불굴의 의지는 끈질긴 들국화마냥 마난을 당하고도 굳건하게 서서 웃으며 백화가 지는 것을 보며 된서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문정발표: 2010년 7월 23일
문장분류: [시사 논평]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72/A03/index.html#7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