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첸짜이윈(千載雲)
[밍후이왕 2010년 5월 8일] 10여 년 전 사람이 되려고 도덕을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도덕이 몇 푼 되나요? 먹을 것을 사고 마실 것을 살 수 있습니까? 빨리 공돈을 법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예요!”라고 말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말로 도덕성을 거의 다 잃게 된 후에야 도덕성이 없다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도덕은 비록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살 수 없지만 도덕이 없으면 독성 식품, 독성 음료를 먹게 된다. 오늘날 중국에서 당 중앙에 특수 음식을 공급하는 것 외에 당신이 돈을 얼마나 벌든, 당신이 누구든 독성 식품과 음료를 먹게 되는 것이며 어느 날 중독으로 죽게 될 것이다.
도덕적 구속이 없는 사리사욕의 추진으로 인해 중국인의 창조력은 이익을 도모하고 남에게 손해를 주고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는 데로 발전되고 있으며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으로 사람마다 서로 해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오늘날 밝혀진 독성 식품만 보더라도 하수도 식용유, 수단훙(蘇丹紅.공업용 색소), 독성 쌀, 수육정(클렌부테롤), 인조계란, 독성 야채, 멜라민 우유 등 그리고 기타 방면의 부도덕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중화민족이 가장 부도덕한 시기에 처했다”고 말하고 있다.
도덕성을 잃은 원인
도덕성을 잃고 사람마다 스스로 위험을 느낄 때 사람들은 아마도 질문할 것이며 반성할 것이다. 우리가 왜 도덕성을 잃었을까? 도덕성을 잃은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 전통문화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높이 받들었으며 옛날 중국인은 하늘을 공경하고 명을 알며(敬天知命) 선악은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믿었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모두 비교적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유지했다.
중국 공산당은 집권한 후 혁명이란 명의로 무신론이라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전통문화를 대부분 파괴했고 전통 도덕도 문밖으로 쓸어 버렸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사람들은 국가를 봉쇄하고 공산주의를 경건하게 공양할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이 죽은 후 공산주의의 꿈은 소련 해체와 독일 공산당 붕괴에 따라 소멸됐다. 사람들의 신앙과 숭배는 사당(邪黨)의 인도 하에 금전과 권력으로 전향됐다. 문장 시작에 ‘고양이론(猫論)’은 덩샤오핑이 적극적으로 광범히하게 제창한 것인데 그는 사람을 고양이에 비유하고 쥐만 잡을 수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도덕성에 어긋나도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의 금전과 권력에 대한 추구는 장쩌민 시대에 와서 거센 조류가 됐으며 돈과 권리를 위해 완전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중공 관리들의 횡령과 부패도 정상에 올랐다. 짱저민은 ‘쩐싼런(眞善忍)’을 믿는 좋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탄압했으며 마오쩌둥이 발동한 문화대혁명처럼 헤아릴 수 없는 건달 깡패를 양성했다. 그러므로 한 저명한 작가는 “장쩌민 시기는 전체 중화민족을 해쳤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다면 공산당 집권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의지하는 도덕성을 때려 부쉈다. 도덕적 구속이 없는 사회에서 사욕은 홍수처럼 범람하고 맹수처럼 날뛰고 있다.
중국 도덕성의 희망
오늘날 도덕성 타락에 따라 사회에는 부끄러운 일들이 매우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뺑소니를 당했다. 당신이 좋은 마음으로 환자를 구했지만 오히려 모함을 당해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이 이 사람을 치지 않았으면 왜 병원으로 데려왔습니까?”라는 것이다. 버스에서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데 어떤 사람이 나서서 도둑을 붙잡는다면 다른 도둑 패거리가 달려들어 그 용감하게 나선 사람은 뭇매를 맞게 되고 도둑맞은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 앞에서 도둑질 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무덕(無德)이 조성한 각종 괴상한 일은 너무 많다.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오늘 중국의 도덕성 문제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중국의 도덕성은 아직 회복될 희망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별 생각없이 “있습니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중국 도덕성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고 묻는다면 나는 분명히 “우리의 도덕적 희망은 파룬궁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쩐싼런(眞善忍)’을 믿는다. 그들은 진실하고 선량하며 관용하고 강인하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든지, 부유하든지 빈곤하든지, 관리든 민중이든 모두 자기 스스로 엄격히 단속하는 믿을 만한 단체다. 파룬궁수련생은 성실하게 일하며 사람을 돕기 즐긴다는 것은 중국에서 모두 구전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파룬궁은 광범위한 기반이 있다. 1999년 장쩌민이 중공 정권을 이용해 파룬궁을 탄압할 때 수련자가 7천만이 있었는데 이것은 공안부 내부에서 조사한 숫자다. 이후에 비록 심한 박해를 당했어도 파룬궁 수련생은 신앙을 견지했다. 파룬궁은 1999년 이후 11년간 대륙 밖에서 신속히 발전해 대만 한 곳만 하더라도 1999년 1천 명에서 50만 명으로 증가됐다. 파룬궁 수련생은 관리든 평민이든, 부유하든 빈곤하든, 학력이 높든 낮든, 어른이든 어린이든, 민족과 국경을 뛰어 넘으며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전해졌다.
도덕적 표준이 높고 기반이 광범위하다. 중국 도덕성의 희망은 파룬궁에 있다. 사람들이 도덕성의 소실로 위험과 두려움을 인식하고 도덕을 제고하려고 할 때 파룬궁 수련생을 본보기로 하라. 만약 당신이 높은 도덕적 표준이 있고 마음만 있다면 자신부터 시작하고 지금부터 시작하라. 그렇다면 우리들의 도덕성을 다시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파룬궁은 우리 중화민족 도덕의 희망이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8일
문장분류: 평론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8/2231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