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滄海(창하이)
【밍후이왕 2010년 4월 22일】《소상(晨報)조간》 4월 13일자에 실린 기사내용이다. ‘허베이 탕산(唐山) 허화컹(荷花坑) 노동교양소에 감금된 둥슝보(董雄波)는 병이 들었으나 오래도록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못받고 강제노동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4월 9일 보석 출옥하자마자 사망한 그의 나이는 37세였다. 둥슝보는 180센티미터의 키에 사망당시 체중은 35Kg이었다. 해골 같은 그의 모습에 분개한 네티즌들은 그의 죽음을 가리켜 ‘해골의 사망(骷髅死)’이라 불렀다.
국내에 발표된 한 문장에서, ‘과연 이름붙이지 못할 죽음은 없고, 오직 생각지 못한 사망만 있을 뿐이다’라고 하면서, 최근 ‘목욕사’, ‘세면사’가 있었는데 또 ‘해골사’가 나타났다고 통탄했다. 이렇듯 기이하게 죽는 방법은 매 번 일반서민의 상상력을 초월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중국에는 기이하게 죽는 사례가 아주 많아졌는데, 이번 ‘해골의 사망’사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상하리만큼 비분강개했다. 180센티미터 되는 사람이 35Kg라니, 도대체 그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조차하기 힘들어했다. 도대체 노동교양소에서 무슨 권리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박해할 수 있단 말인가?
둥슝보 해골사는 개별적인 사례지만 대륙민중의 집단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은, 그의 구체정황이 주로 인터넷에 게재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극한의 주검을 사진까지 함께 실렸기에 그 참혹한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둥슝보의 충격적인 죽음에 세상 사람들은 중공의 노동교양 체제에 대해 지금까지 있어본 적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만약 둥슝보의 죽음이 인터넷에 게재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분노할 수 있었을까? 또 그의 죽음으로 인해 중공 감방의 음험함을 엿볼 수 있었을까?
둥슝보 해골사같은 사례는 중공의 감방에 대량으로 있다. 그들은 이미 죽었거나 혹은 생사의 기로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히려 이 사회로부터 기본적인 동정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 한 무리는 겹겹으로 봉쇄되어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중공의 선전에 따라 그들을 ‘×교’ 교도들이라고 부른다. 노동교양소가 가한 박해로 극도로 쇠약해진 그들은 중공의 선동으로 민중들의 배척마저 당하고 있다. 이는 우리 전체 중국인의 비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십여 년간 줄곧 중공의 박해를 당하고 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이다.
-구체적인 사례 몇 가지-
산둥 웨이팡(濰坊) 안추(安丘)시 훙사거우(紅沙溝)진 유치원 교사 리슈전(李秀珍)은 지금까지 19번 체포되어 불법으로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616차례 당했으며 10가지가 넘는 각종 혹형을 당했다. 전기몽둥이로 고문하는 악경을 향해 그녀는 꾸준히 파룬궁 진상을 알렸지만 감옥 정치과 과장은 자신이 스스로 지칠 때까지 전기고문을 계속했다. 그녀는 또 매일같이 5, 6차례 가혹한 폭행을 당하자 단식으로 부당한 박해에 항의했다. 지난(濟南)감옥에서는 악인이 그녀를 침대에 묶어 놓은 채 꼼짝하지 못하도록 고문을 가했고, 악경은 강제로 코에 호스를 연결해 장기간 음식물 주입을 강행했다. 악경은 또 그녀의 눈을 벌려 빗가시로 걸쳐 놓아 28일동안 강제로 잠을 재우지 않았다.
2002년 말 온갖 고문으로 이미 피골이 상접해진 리슈진은 체중 20Kg으로 걸음을 뗄 수 없었다. 지난 감옥은 그녀의 생명이 일각에 달하자 가족에게 인계했는데, 그녀의 모습을 본 13살 딸이 기절하고 말았다.
2009년 6월 13일 오후, 리슈진은 다시 안추 사복경찰에 체포되어 불법으로 판결을 받았고, 지난 감옥에서 고문당한 끝에 죽음에 이르자 수일이 지난 10월 상순에 악경은 가족에게 시체를 보인 뒤 현장에서 강제로 화장처리 했다.
파룬궁 수련자인 그녀는 자신의 숭고한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단식으로 불법 박해에 항의했다. 그녀가 그동안 당한 혹형을 알게 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차마 중공이 그렇게까지 했겠느냐고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중공은 TV에서 파룬궁 수련자에게 봄볕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표방하지 않았던가? 단식 중인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야만적인 고문을 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성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라 이 같은 사례는 너무나 많고도 많다. 파룬궁 수련자의 집단 단식은 중공의 감옥에서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단식하는 것은 대부분 부당한 핍박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는데, 아래의 사례를 보면 당신은 파룬궁 수련자의 단식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네이멍구(內蒙古) 린허(臨河)시 왕샤(王霞, 32세)는 진(真)선(善)인(忍) 신앙을 견지해, 네이멍 제1여자감옥에서 오래도록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다. 가혹한 폭행, 전기충격, 음부에 빗자루 손잡이를 삽입하는 성폭행, 악도들은 큰 침바늘을 손톱에 찔러 넣었으며, 불로 태우고 … 왕샤는 이에 단식으로 항의했다. 그러자 또 정신병원에 보내져 박해로 기억이 상실됐다. 왕샤는 감옥에 납치되기 전 체중이 55Kg였다. 2004년 6월 29일, 젊고 아름다웠던 처녀가 집에 실려왔을 때는 산송장으로 몸무게는 20Kg밖에 안된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 젊은 여성에게 가한 중공의 파렴치한 박해는 정말로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다. 그녀가 단식한 것은 자신의 생명으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한 여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박해로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겠는가를 당신은 상상해보라. 그러나 이 일체는 중공이 엄밀히 통제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정상적인 소식 외에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어느 정도로 잔혹한 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중공은 거짓말로 전인민을 미혹시키고 있는 반면, 다른 한 편으로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감옥에 납치하여 야만적인 고문을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공은 파룬궁 수련자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다고 기만하고 있다. 파룬궁에 가하고 있는 중공의 박해는 가히 깡패적일 뿐 아니라 계통적이면서 잔혹한 것이다.
중공은 젊은 여성에게 이런 모욕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사회 지도층 지식인 여성에게도 같은 모욕을 주고 있다. 이런 걸 두고 보더라도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는 어떠한 최저선도 없다. 당신이 사회에서 어떤 존중을 받았던지, 사회명망의 높낮이와는 상관없이 오직 파룬궁을 수련한다면 무조건 잔혹하게 박해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농업대학 부교수이며 석사생 도사이고 전 축생의학학부 당지부서기 류리메이(劉麗梅, 41세)는 대법을 수호하다 여러 차례 납치당했다. 그녀는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서 약7개월간 단식한 적이 있다. 7, 8명 되는 악경이 강제로 관을 삽입해 옥수수죽을 주입했다. 완자병원에서 오래도록 강제 음식물주입을 당하는 기간에도 악인들은 그녀를 괴롭혔다. 겨자물을 주입했고 정신병 약물을 주사하는 등의 고문으로 몸무게가 20Kg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결국 2003년 8월 12일 박해로 사망했다.
둥슝보가 노동교양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것은 파룬궁 수련자의 진술을 통해서도 간접 입증된다. 중공의 감방에서는 제소자의 단식 여부에 관계없이 강제 노동임무는 반드시 완료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 파룬궁 수련자 런수제(任淑傑)는 2002년 5월 21일에 체포되어 룽산(龍山) 노동교양소 2대대에 납치됐다. 런수제는 그곳에서 64일간 박해에 항의하는 단식을 했는데, 이 기간에도 그녀는 15시간의 강제노동을 했고 전기고문을 당했다. 2004년 3월 22일 룽산 노동교양소는 런수제를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 3대대로 보냈다. 그곳에서는 차가운 바닥에서 3개월 동안 잠을 재웠다. 런수제가 2004년 12월 24일 노동교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몸의 극도로 쇠약해져 60Kg 나가던 몸무게가 40Kg도 안됐다.
사진(사망 전 앙상한 뼈에 겨우 숨이 붙어있는 런수제)
석방된 그녀는 제작된 비디오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아침 6시 반에 출발해 밥을 먹고 7시가 안되어 노동 현장에 도착한다. 3층이다. 적어도 20Kg인 밀랍을 맥주박스에 담았다. 매일 들어 올리고 내리고 해야 하는데 하루는 40박스를 들어서 너무 힘들어 그만 울었다. 매일 밤 평균 10시 반에 일을 끝마친다. 점심시간마저 휴식할 수 없었는데, 만일 당신이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하면 밤 노동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실은 우리의 몸을 떼어가는 것과 같다. 더 연장하면 10시 반이 아니며 12시에 끝마칠 때도 있다. 매일 이렇게 계속되며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게 아니다. 뿐 아니라 노동 강도가 아주 크다. 게다가 짧은 시간 내에 배불리 먹을 수도 없다. 시간에 따라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가야 한다. 우리는 휴식할 시간이 없으며 아무런 자유도 없다. 오직 노동이며 머리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노동뿐이다.”
이것은 파룬궁 수련생이 직접 증언한 것으로 이런 일은 대량으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중공은 이같은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다른 사례는 우리가 말하지 않더라도 둥슝보에 대해서만 말해보자. 그가 노동에 시달려 그렇게 되었으며 나온 후 며칠 되지 않아 사망했다. 네티즌의 질타에 중공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중공의 대변인 중국 뉴스망 4월 14일자 보도에서 ‘허베이성 탕산시 검찰원 부검찰장 정잉샹(鄭應祥)은 ‘조사’에 의하면 노동교양인원 둥모라는 사람은 ‘양쪽 폐결핵으로 잇따라 폐가 감염됐고 호흡이 힘들었다’, 노동교양소 밖에서 치료하는 동안 병사했다.’ 이 말은 노동교양소에서 치료할 시간을 지연시켜 강제로 중노동에 투입했음을 부인하는 말이다.
물론 현재 중공이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중공은 사람 목숨을 잡초같이 하찮게 여겼고 결코 인정하지 않은 사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어찌 그것들이 인민에게 가한 박해를 감히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것들이 감히 진실한 정보를 알릴 수 있겠는가? 중공의 감방은 고금중외로 가장 사악한 감옥이다!
이상 소개한 것은 몇 명의 여파룬궁 수련생이 감옥에서 박해당한 정황이다. 그럼 남파룬궁 수련생은 이에 비해 좀 괜찮은 것인가?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파룬궁 진상전단지를 붙이다 체포된 산둥성 웨이팡시 파룬궁 수련생 자오젠서(趙建設)는 2004년 1월 20일 불법으로 9년 중형을 당했다. 후에 불법으로 우시(無錫)감옥에 납치됐다. 자오젠서는 175센티 키에 85Kg 몸무게가 나갔으나 후에 고문으로 35Kg밖에 안됐다.
자오젠서는 체포된 뒤 난징(南京)공안국과 우시 감옥은 줄곧 그를 ‘전화’시키려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후에 그것들은 자오젠서의 연로한 부모님과 어린 딸을 감옥에 데리고 와 부자지간의 정으로 자오젠서를 전화시키려 했다. 장기간 아버지를 보지 못한 딸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버지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딸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를 잃었는데 더 이상 아버지마저 잃을 수 없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생은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파룬궁에 대한 견정한 신념은 추호도 변함없다. 그들은 자신의 거대한 신체로 감당하면서 세상을 향하여 파룬궁의 아름다움과 초상을 실증하고 있다.
하얼빈 파룬궁 수련생 자오수쉐(趙書學)는 2001년 여름에 체포된 뒤 가족과 일체 만나지 못했다. 2003년 12월 26일, 하얼빈 제3감옥에서 그를 가석방한다는 통지를 전화로 알렸다. 가족이 그를 데리러 갔을 때 감옥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사람은 이미 폐인과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가도 살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 단가대에 누워 들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다 헤진 옷에 40Kg도 안 되는 체중, 공처럼 부풀어 오른 배, 전신은 악취가 진동했다. 자세히 봐서야 비로소 친인임을 알 수 있었다.
자오수쉐의 여동생도 파룬궁 수련생이다. 오빠를 보러 갔을 때 병석에 누운 그의 배가 너무 부풀어 반짝반짝 빛이 났고, 다리와 허리 부위는 썩은 채 나체로 누워있는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머리카락은 드문드문 했다. 너무나 야위어 두 눈이 퀭했으나 의식은 아주 똑똑했다. 그는 여동생을 보고 웃으며 “울지 마라, 나는 괜찮다, 네가 울면 너의 아이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새에 너도 곧 엄마가 되겠구나.”
2004년 1월 20일 자오수쉐는 중공사당의 박해로 사망했는데 향년 40세였다.
자오수쉐는 예전에 이미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세상 사람에게 이 일체를 알리겠다고 했으며, 그는 누구에게도 원한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단지 자신과 연분이 있는 선량한 사람들이 모두 생명의 진리를 아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대법제자로서 자신의 생명은 대법과 같이 있으며 진리와 함께 있었고, 자신의 생명으로 대법을 지키려고 했다. 가족에게 진선인을 견정히 믿으며 신앙을 견지하라고 말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대법제자가 박해를 당하지 않고 공원에서 연공할 수 있고 단체로 법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는 파룬궁 수련생이 당하는 박해로써, 그들 자신이 잔혹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수련인의 풍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박해를 당하면서도 중공은 이에 대해서는 엄밀히 겹겹으로 소식을 봉쇄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동포가 ‘해골사’ 당하자 중공을 강렬하게 비평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혹형을 당한 수련생들도 당신들의 동포임을 생각해보았는가. 뿐만 아니라 파룬궁 수련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동포를 위한 것이며, 그 속에는 당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그들이 중공에게 야만적인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당신은 그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중공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당하고 있는 박해소식을 국민의 시선 밖에다 봉쇄해 놓았다. 한 집단이 이러한 박해를 11년간 당하고 있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소식을 여러 경로를 통해 일정부분은 들었을 것이다. 비록 제한된 정보일지라도 당신의 양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며,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하루빨리 중국에서 일체 비정상적인 죽음과, 소유의 박해가 흔적을 감추기 바란다! 그리하여 모든 중국인이 정정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기원한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22일
문장분류: 평론 >수련자평론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22/2219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