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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늑대인간’계획으로부터 생각한 것

글/각성

【밍후이왕 2010년 2월 28일】아래에 진술하려고 하는 것은 히틀러의 ‘늑대인간’계획에 관한 하나의 비참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새롭게 이 단락의 역사를 회고하고자 하는 의의는 어떻게 오늘날 한창 발생하고 있는 동일한 비극을 멈춰 세울 것인가 하는데 있다.

1.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은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다. 세계의 반 파시즘 세력은 독일 나치에 대한 최후의 훼멸적 타격을 발동하려고 하였다. 이때 히틀러의 군대는 이미 병력과 장비의 보충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쇠약의 말기에 처해 있었다.

일찍이 1944년, 히틀러는 이지(理智)를 상실한 미치광이처럼 ‘늑대인간’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곧 전체 독일인을 선동하여 유격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들게 하여 전 국민을 병력화 하였다. 독일에 병사가 부족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늑대인간’계획의 실행 중에서 청소년을 훈련시켜 간첩과 파괴분자로 되게 하였다. 그들로 하여금 비상(砒霜)과 폭약(爆藥)을 몸에 지니게 하고 동맹군 전선의 배후에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독일 역사학자, 독일텔레비전2방송 책임자 Goudeau – Knop박사가 쓴 『히틀러 시대의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진실하게 이 한 단락의 역사를 기록했다.

1945년 2월 21일, 프란츠와 허버트, 이 두 남자 아이는 ‘늑대인간’으로서 Eifel산 의 적 후방에서 공중투하 되었다. 나치 친위대가 바로 이 두 명의 남자아이를 공중 투하한 곳이 목표와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결과는 그들이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미군(美軍)에게 잡히고 말았다.

심사를 거쳐 미군 제9군 군사법정에서는 간첩죄로 그들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그들의 변호인인 한 미국군관은 법정에 사면(赦免)신청서를 제출하고 그들은 단지 미성년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몇 주일 후, 그들은 사면이 거절 당했고 그리고 이튿날10시에 총살한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다.

부모에게 쓴 유서에서 프란츠는 ‘내가 이렇게 함은 절실이 나의 친애하는 도이치 조국과 나의 국민을 위해 복무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쩌면 이때까지도 그들은 아직 똑똑히 몰랐던 것이다. 그들이 몸바친 제3제국(第三帝國)이 최종 전멸될 때까지 겨우 마지막 34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숭배해온 제국의 우두머리 히틀러가 일찌감치 한달 전에 자살의 방식으로 자신의 죄악의 일생을 끝냈다는 것을 몰랐다.

1945년 6월 1일 이른 아침, 독일 브런즈윅의 채사장(采砂廠)에서 두 명의 독일 소년이 기둥에 꽁꽁 묶여 있었다. 처량한 총소리와 함께 그들은 말없이 죽어갔었다. 이때 프란츠는 겨우16살 5개월이었고, 허버트도 겨우 17세 밖에 안됐다.

이런 비참한 사건은 절대 프란츠와 허버트의 몸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나치 독일시대에 어찌 수천만뿐이겠는가? 나치 친위대의 ‘정예군”이라 불리는 장갑사단 —‘히틀러 청년사단’은 전부 다 17살 전후의 젊은이로 조직 편성된 것이다. 조직되어서부터 소멸되기까지 ‘히틀러 청년사단’은 겨우 2년도 채 안 되는 동안 9천여 명이 전사하고 실종되었으며 부상당하거나 혹은 포로가 됐다.

Goudeau Knop교수가 말했다. “히틀러 시대의 아이들은 정권(政權)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지기반이었다. 만약 히틀러 청년사단의 꾸준한 전 방위적인 투입이 없었다면 독일경제와 사회는 일찍이 붕괴 되었을 것이다. 청년들은 그들의 투입을 통해 전쟁을 연장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1921년부터 1925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 중에서, 3분의 1이 넘는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참살 당했고 혹은 국내의 전쟁터에서 죽었다.”

2. 당연히 그런 생기가 넘치고 순진하며 선량한 소년소녀들이 무엇 때문에 히틀러의 광열적인 추종자가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이들은 임종 시에도 자기들이 ‘자신을 팔아먹고 자신의 정부를 기만했다’는 것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걸 승인하지 않으려 하는가? 그들은 진정한 ‘애국주의자’인가, 아니면 하나의 광열적인 나치분자인가? 역사는 하나의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히틀러 시대는 독재 폭정 시대일뿐 아니라 더욱이 거짓말과 기만이 가득 찬 시대였다. 바로 히틀러 자신이 진술한 것과 같이, 사람들은“단호히 지지하는 것이 일종 인류사회가치의 세계관을 저버리는 것임을 종종 간파하지 못하였다. 인성과 인도주의 가치관념이 우리들의 머리 중에서 완전히 없어졌다” 괴벨스(Goebbels) 지휘하에서의 나치선전기구는 쉴새 없이 지껄이면서 주입을 했고, 독일 국민은 완전히 그 한 세트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나치스 독재정치는 합법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치관념도 역사 발전규칙에 부합된다. ‘독일 민족의 진흥’을 위하여, ‘게르만족이 더욱 큰 생존공간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생존에 부합되지 않는 개체, 저열한 민족, 타락된 계급을 몰아내고 또한 소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나치 문화가 각종 어휘에 부여한 주석(注解)은, 예컨대 ‘인민’, ‘민주’, ‘도덕’, ‘정의, ‘법률’, ‘선량’, ‘평등’등등 어휘가 구비하고 있는 세상원칙의 본의를 떠나 전부 다 뒤바뀐 해석이었다.

‘적(敵人)’에 대한 증오를 주입한 외에 나치는 또 ‘열애’하게끔 사람들을 요구하기도 한다. 국민들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열애를 왜곡해서 독재정권을 ‘열애’하게 하고, 국가 원수를 ‘열애’하게 하여 – 그지없이 히틀러에게 충성하게 하였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에게 그가 사람의 선량한 품성을 구비할 것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젊고 무지한 청년들이 완전이 파시즘의 세계관을 접수하고, 이미 머리 속에 증오의 종자가 심어진 후, 인격의 타락, 인성의 결함, 도덕의 비틀림은 즉시 필연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들이 다 커서 성인이 되어, 돌격대(衝鋒隊), 혹은 나치 친위군에 참가해서 유태인을 도살할 땐, 이미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못하였으며 가진 것은 다만 비틀어진 역사의 책임감과 증오의 발산뿐 이었다.

이 ‘히틀러 청년사단’에 참가한 아이들이 만약 정상적인 자유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세상도덕의 교육하에서 건강하게 자라날수 있었다면, 많은 사람이 우수한 예술가, 과학자로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불행하게도 그 사악한 거짓말이 충만 되고, 증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나치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젊은 생명이 나치의 희생양으로 되었을 때, 역사를 향해서도 경종을 울렸다. 강권폭정이 가장 무서운 점은 그 폭력의 일면이 아니라,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짜놓은 사악한 거짓말이며 ㅡ 그 거짓말은 사람들의 사상을 박탈하고, 사람의 영혼을 말살해버리며, 증오로 인성을 파괴하여, ‘사람’을 ‘마귀’로 변하게 한다.

이 단락의 역사를 되새겨보면 사람들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세상가치관으로 판단해야 함을 마땅히 깨달아야 한다. 어떤 정권이든 막론하고 어떠한 허울좋은 이유로도 오직 증오와 폭력을 선동한다면 그건 꼭 사악이며, 반 인성적인 것이며 전 세계에 재난을 가져다 줄 것이다.

3. 이러한 역사의 비극은 본래 다시 연출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도리어 지금 마찬가지로 당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당년 괴벨스(Goebbels)의 선전부는 일찌감치 한 동방고국으로 이사해갔다. 선전수작이 새로 바뀌었지만 본질은 사실 완전히 똑같았다: 이른바 ‘전인류를 해방’하기 위하여, 이른바 ‘사람마다 평등한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이른바 ‘중화민족과 전국인민의 이익’을 위하여, 일체 중공(中共)이 인정하는 적에게 ‘증오’와 ‘폭력’을 진행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중화민족의 전통문화, 전통도덕관념을 철저히 파괴하고 ‘당문화(黨文化)’의 세계관으로 대체 하였으며 – 일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유일한 표준은 바로 – 무조건적으로 중공에 복종하는 것이다.

또한 민족의 구세주, 인민의 대표라고 허풍 떨면서, 국민이 민족과 국가에 대한 열애를 중공에 대한 정감으로 왜곡했다. 중공을 비평하는 모든 언행을 ‘반동’이라고 하고, ‘정치를 한다’, ‘국가의 기밀을 유설 한다’고 하면서 심지어 ‘국가 전복죄’라고 모자를 씌웠다.

이러한 관념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틀어박힌 후면 한차례 또 한차례의 피비린내 나는 정치운동이 등장한다. 지주, 자본가, 지식분자 등등이 이어서 ‘증오’와 ‘폭력’을 가하는 대상으로 되었다. 그리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많은 이는 모두 당시의 ‘열혈청년’이었다. 그 해에 그런 ‘혁명’을 위하여, 친부모를 무고하고, 선생님을 혹독하게 때리고, 심지어 살인방화까지 한 홍위병 들, 만약에 아직도 양심이 남아있다면, 지금 분명히 자신의 당년의 우매함으로 초래한 악과로 인하여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중공은 지난 매 차례의 정치운동 중에서 8천만 중국사람을 박해해 죽였다. 하지만 가장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 하는 건, 이런 참혹한 사실과 아버지 대들이 중공에게서 당한 기만과 쓰라린 교훈을, 많은 청년들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공의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매일 거듭되는 교육과 위선적인 선전 하에, 청년층은 여전히 중공의 거짓말을 경솔하게 믿는다. 다만 증오의 대상과 이유가 바뀌었을 뿐이다.

밍후이왕 2월 22일 보도에 의하면, 2월15일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 한 중국관광객, 톈 진(天津)대학의 3학년생 자이차오(賈乙超)가 파룬궁수련생 청(成)선생을 습격하였는데 큰 돌로 청 선생의 머리부위를 내리쳐 약 5밀리 되는 길이의 상처가 났다. 프랑스 ‘탈당서비스센터’의 일원인 청선생은 당시에 다만 대륙의 유람객을 향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진상을 폭로하고, 희망컨대 그들이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보아내며 이 사악한 조직에서 퇴출하여, 자신과 국가를 위하여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자이차오는 현장에서 프랑스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프랑스 파리 대법정에서는 그에게 8개월 동안 감금하고 집행유예한다는 형사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에게 프랑스 관련 당국에 1000유로의 벌금을 물라고 명령했고, 이외 피해자 청선생에게 경제배상1000유로를 먼저 지불하라고 하였으며, 잔액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대학3학년 학생이 무엇 때문에 이처럼 파룬궁을 증오하는가? 같이 온 친척이 말하기를, 그가 국내에서 중공매체가 일으킨 파룬궁을 적대시하는 선전보도를 많이 봤기 때문에 이렇게 파룬궁을 적대시하며, 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곳에서 악을 행하게 까지 되었다고 하였다.

펑칭양(風清揚)이라고 하는 한 젊은 인터넷상의 친구가 「나는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적대시하는가」라는 한편의 인터넷문장을 쓴 적 있다. 문장 중에서 말하기를“어느 하루 가까운 친구가 나한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적대시하니?”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본 다음 친구한테 솔직히 고백했다:맞다, 나는 파룬궁을 적대시한다, 비록 내가 줄곧 나타내지 않았지만, 나 자신은 내가 파룬궁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세계상에서 가장 사악한 조직과 그들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다!”

“친구가 묻기를:무엇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이것을 대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은가? 내가 말했다:원인은 – 참혹한 장면, 병이 있어도 치료하지 않고, 사교, 자살 등등을 보고서이다. 친구가 또 물었다: 나도 알고 있다, 네가 말한 건 중앙텔레비전에서 말하는 ‘무엇 때문에’ 라는 것을, 내가 묻는 건, 넌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적대시하니?”

“난 한 순간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또 물었다: 너 파룬궁 서적을 한 권이라도 본적 있어? 이번엔 내가 더 크게 놀랐다. 나는 파룬궁 서적을 한 권도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지 그 중 한 권 『전법륜』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과, 현재 이미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들었었다. 나는 겨우 이 책의 겉 표지만 보았을 뿐이지 여태껏 펼친 적이 없었다.”

“파룬궁이 무엇인가? 나는 갑자기 온몸이 싸늘해졌다. 원래 나도 모르게 몇 년씩이나 증오해오던 이 파룬궁에 대해 난 사실 조금도 몰랐으며, 그런데 도리어 그녀를 적대시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이번에는 나 자신이 자신한테 물었다.”

‘펑칭양’은 문장가운데서 자기가 어떻게 중공 한 쪽의 선전만 듣고 머리가 세뇌되었는가를 반성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 몇 년간 점차적으로 머리 속에 파룬궁을 증오하는 사상이 심어졌다는 걸 발견했을 때, 극도로 불안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줄곧 주입 당한 증오로 파룬궁을 대했다고 했다. 사실 이번 박해의 악당과 한 패거리로 된 것과 같다고 하였다. 때문에 나중에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 심심히 사죄의 뜻을 표했다.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10년 박해에서, 중공은 계속 거짓말로 파룬궁에 먹칠하고 있었으며,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증오를 인민들에게 선동하였는데, 특히 청소년에 대한 세뇌(洗腦)가 더욱 엄중했다. 그것들은 직접 파룬궁을 모독하는 ‘천안문분신가짜자살사건(自焚僞案)”을 교과서에 써넣은 탓으로, 파룬궁 진상이 널리 사람에게 알려지고 있는 오늘에도, 아직도 많은 청소년이 파룬궁에 대해 아주 깊은 오해와 적대시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공은 계속 ‘당’과 ‘국가’의 개념을 헷갈리게 해서, 끊임없이 애당(愛黨)이 바로 애국(愛國)이라고 왜곡시켰기에, 많은 청년으로 하여금 중공을 수호하는 것이 곧 애국이라고 여기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중공이 나쁘다고 하면 중 국(中國)을 공격하는 것으로 잘못 여기고, 마음 속에 엄중한 저촉(抵觸)이 생긴다. 심지어 자유세계에 가서도 중공이 저지른 죄행의 진상을 알려 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 이지적이고 청성한 두뇌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을 희망한다. 하지만 하나의 거짓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이건 정말 어렵다. 그러나 당신이 더욱 많은 정보를 접촉하려고만 한다면, 대륙에서 이미 광범하게 유전되고 있는 『9평공산당』을 가서 읽어 보고, 안전하고 빠른 인터넷봉쇄를 돌파하는 프로그램을 클릭하기만 하면, 당신은 그 붉은 담장 안에서 걸어나올 수 있을 것이며, 본래 마땅히 당신에게 속해야 할 진실한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2010년 02월 28일
문장분류:시사평론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2/28/21896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