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7년 9월27일] 9월20일 저녁, 산서(山西)TV 뉴스란에서 “우담바라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방송하였고, 아울러 작은 꽃이 창문 유리에 피어난 것을 사람들이 다투어 보고 있는 장면을 방송하였다. 어쩌면 대륙 뉴스가 너무도 “거짓말, 큰소리, 헛소리(假大空)”를 잘 쳤기 때문인지, 평소에 거뜰떠 볼 가치도 없다고 여겼던 연고인지, 비록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보도가 일찍이 2006년에 파룬궁의 진상자료에서 볼 수 있었지만, 국내 중공 매체에서 공개보도한 것을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일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중공의 무신론에 몇십 년이나 미혹된 사람들을 놓고 말할때 이는 기쁜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럴때마다 아내는 언제나 곁에서 냉수를 퍼 붓는다. “우담바라가 피였는데 어떻단 말이예요? 당신과 또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렇다. 우담바라가 피었는데, 나와 무슨 상관이냐?
그렇지 않으면 아예 이렇게 말하자, 우담바라가 핀 것은 당신과 나와 모두 상관이 없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휴가를 받아 여행가고 싶으면 어서 여행가고. 그렇지 않는가?
다만, 우담바라가 피어난 것은 도리어 부득이 사고해야 할 문제 하나를 끄집어 낸 것이다. 바로 프로그램중에 제기된 것처럼, 우담바라는 불경 전설중의 꽃으로서 3천년에 한 번 핀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십 년 래 부처수련은 줄곧 중공의 선전에 의해 유심으로 여겨왔다. 즉 중공의 선전에서는 “미신”이라 불려왔고 무신론을 선전해온 중공이 일관적으로 배척하고 정신적으로 타격해온 대상이다.
중공에 대한 우리의 요해에 따르면 능히 중공의 뉴스가 공개적으로 보도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바로 묵인한 것이며, 즉 중공이 “이것이 바로 불교 전설 중의 그 우담바라 꽃”이라는 것을 승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지금 현재 중공이 거짓말이라고 선전했던 것이 도리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그 “3천년에 한번씩 피는” 시간적 간격으로 보면 생명은 다만 짧은 몇 십년 뿐인 세인들로서 진정으로 본 사람은 근본적으로 없다. 그러나 중공은 도리어 그 뉴스 보도에서 불경중의 논술을 인용하였고, 이 사실을 묵인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를 설명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일찍도 늦지도 않게 하필이면 이때에 피었겠는가?
나는 부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것이 바로 부처는 진실한 존재라는 것을 세인들에게 실증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한 말씀이 진실하고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한 것이며, 불경 중의 기재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불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담바라는 3천년에 한번 핀다. 꽃이 피어 날때면 전륜성왕이 하세하여 정법으로 사람을 구도할 때이다. 물론 내가 인용한 것은 꼭 불경중의 원 말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트집을 잡는 이들께서는 너그럽게 봐 주시길 바란다.
우담바라 꽃이 피였다고 승인하였다면 불경중의 기재는 진실한 것이며 부처가 말한 윤회전세, 선악 보응 등의 일도 바로 거짓이 아닌 진실이란것을 승인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 끄집어 나오게 된 다른 한 문제, 즉 꽃이 필 때가 전륜성왕이 하세하여 정법으로 세인을 구도하는 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륜성왕은 누구인가? 그가 하세하여 정법하고 사람을 구도한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법륜성왕이 하세하여 세간에서 정법으로 세인을 구도한다고 승인하였다면 그 전륜성왕은 어떤 방식으로 정법을 하고 있으며 사람을 구도하고 있는가? 전륜성왕이 말씀하신 법은 또 무어라고 말씀하셨는가? 전륜성왕이 설법에서 하신 그런 말씀들은 모두 실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륜성왕이 정법으로 세인을 구도하는것을 교란하고, 전륜성왕의 제자들을 박해한 생명은 또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노라면 더이상 우담바라꽃이 피어난 것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귀중하신 세인들이여, 우리는 마땅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위해 책임있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담바라꽃이 피어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것인가?
문장발표 : 2007년 9월27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9/27/1634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