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이밍(飛鳴)
【명혜망2005년1월25일】1월 23일은 중공의 또 다른 생일로 되는 듯 하다. 해마다 이날이면, 중공 매체는 2001년 1월 23일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에 참여했던 몇 사람을 내세워 파룬궁을 모함하면서 한바탕 소란스럽다. 이를 내세워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CCTV는 ‘초점방담(焦點訪談)’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일 년에 한 차례씩 내려오는 정치적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또 한 번 연극을 시작했다.
‘초점방담’ 프로그램에서는 분신 자살한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생이라고 억지로 못박았지만 하나의 가장 큰 초점적인 사실을 반박할 수 없다. 즉 파룬궁은 누구에게도 분신자살이나, 자살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으며, 파룬궁은 자살과 살생을 엄금한다.
파룬궁은 하나의 폐쇄적인 조직이 아니며, 회원증 혹은 명부가 없고, 파룬궁의 모든 활동은 사회에 개방하고 있으며 누구나 파룬궁의 책을 읽고 공법을 연마할 수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은 파룬궁을 연마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가 하는 행실이 파룬궁의 가르침에 완전히 위배될 때, 이 사람을 파룬궁 수련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이 사람이 잘못한 짓을 파룬궁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가? 국내외 억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이 있는데, 왜 그들은 분신자살하지 않았는가? 유다는 예수의 열두 번째 제자였는데 유다의 행위를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미국 어느 유선방송 인터넷 판의 2004년 3월 30일 보도를 보기로 하자. 텍사스주에 사는 39세 주부 Deanna Laney는 그녀의 여덟 살과 여섯 살짜리 두 아들을 죽이고 15개월 된 어린 아들에게는 중상을 입혔다. 그녀는 “하느님이 나에게 아들들을 죽이라고 알려주었다”라고 변명하였다. Deanna Laney는 원래 어느 교회의 성가대 단원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어느 한 매체에서도 그녀의 이지적이지 못한 미친 행위를 기독교 때문이라고 보도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기간인 1963년, 남베트남 정권의 ‘우팅옌(吳庭豔)’은 고도(古都) 순화 불교신자들의 불사활동을 무장으로 간섭하면서 승려 몇 명을 총살하였다. 불교계의 한 승려는 이에 반발하여 사이공의 번화가에서 분신 자살하였다. 후에 일부 승려들이 잇따라 모방하였다. 이 사건은 전세계를 아주 놀라게 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그 후 베트남에서 철수하였다. 우팅옌 집단이 베트남에서 진행했던 난폭한 통치는 정권을 장악한 지 얼마 안 되어 붕괴되었다. 이 승려들의 분신자살 행위는 불교와 불경의 가르침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이 때문에 불교를 질책하지 않았다.
천안문 분신자살에 참여한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예전에 파룬궁을 접촉하였든 그들의 신분과 동기가 어떠했든, 우리는 그들의 비극에 대해서는 동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가 중공 장씨 집단의 유혹과 이끌림 속에서 초래된 것이든 아니면 그들이 자신 스스로 어떤 원인 때문에 초래한 것이든, 분명한 것은 그들의 비극이 파룬궁의 가르침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의 박해가 없었다면 그들은 절대 분신자살하지 않았다고 긍정할 수 있다. 개인의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를 그가 믿었던 신념 탓으로 돌릴 순 없다는 사실은 가장 기초적인 상식이다.
CCTV 초점방담은 당과 정부가 이런 분신자살에 대하여 ‘보살피고’ 있다고 줄곧 허풍을 쳤다. 그럼 중공은 국민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보기로 하자
— 싱저우일보(荊州日報)》에서 한 농민이 청원할 길이 없어 우창(武昌)거리에서 독약을 먹은 사실을 보도했고《후난일보(湖南日報)》에서는 한 중년 시골 부녀자가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저수지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고 보도했으며 상해 인민광장에서 실직자 한 명이 생활고로 비관하여 자살했으며 쉬후이(徐匯)구 화산(華山)가의 주씨 성을 가진 회사원은 재개발에 항의하여 온몸에 휘발유를 뿌린 후 뭇사람 앞에서 분신자살하였다.
한 실직자는 가정의 생활비를 부담할 수 없고 어머니가 자전거에 치어 좌골반이 골절된 후 십만 위안의 수술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게 되자, 일가족과 함께 독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안후이(安徽) 농민 주정량(朱正亮)은 지역정부에서 재개발할 때 그의 새 집을 강제 철거하는 일로 여러 차례 청원하였다가 결과를 보지 못한 상황을 비관하여 천안문 앞에서 분신 자살하였다. 후베이(湖北) 실직자 양페이취안(楊陪權)은 퇴직금이 강제 삭감된 것과 부패에 불만을 품고 세 차례 청원하였다가 결과를 보지 못하자 국경절날, 천안문 광장에서 분신자살하였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백성에 대한 보살핌이다. 중공의 배려 하에 힘없는 군중들이 분신자살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중공의 보살핌 속에서 북경 청원촌의 사람들은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며 원한이 바다보다 깊어 가고 있다.
중공의 ‘보살핌’ 속에서 수 십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다만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 노동교양소 세뇌반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시달림을 받고 있다. 왕진둥(王進東) 등 분신자살에 참여한 자들에 대한 관심도 중공은 이 몇 사람을 이용해 파룬궁을 모독 중상하는 도구로 전락시켜 놓은 것일 뿐이다. 인간의 생명은 중공에게는 여태껏 한 푼의 가치도 없었다.
한 매체로서 CCTV의 ‘초점방담’ 프로그램은 인민의 고충을 알면서도 외면하였다. 비록 이 프로그램이 때로는 사회상의 부정기풍을 폭로하였지만 폭로한 것은 모두 지방에서 큰 배경이 없는 파리와 여우들이었고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나라를 갉아먹는 이리떼가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은 파리와 여우를 폭로하는 것을 통해 조그마한 신뢰를 얻어온 후에는 곧 이 가련한 신뢰를 사용해 이리떼들을 분칠하여 미화하였으며 이리떼들이 싫어하는 선량한 군중들의 명예를 거리낌 없이 실추시켰다. 약간의 진실을 말하고 나서 다시 사기를 치는 사기꾼은 ‘최고의 사기성’을 구비한 사기꾼으로서 초점방담(焦點訪談)”은 명실 상부한 초점황담(焦點謊談)이다. (편집자 주, 謊談: 거짓말하기 )
문장완성 : 2005년 1월 24일
문장발표 : 2005년 1월 25일
문장수정 : 2005년 1월 25일 3시 44분 15초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25/9420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