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용천묵객(龙泉墨客)
[명혜망 2004년 11월23일] 가마를 자청해서 들어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타기를 거절하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장쩌민이 후진타오를 위해 가마를 들어주는 데는 이유가 없을리 만무하다.
2004년 11월 16, 17일 아르헨티나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후진타오가 거느리고 온 중국대표단을 향해 평화적으로 청원할 때 중국대사관 관원들이 사주한 교란과 습격을 받았는바, 파룬궁수련생들 손에서 현수막을 빼앗아 찢고 칼로 잘랐으며 파룬궁수련생들을 구타하고 밀어제치며 부딪치는 등 폭력행위를 저질렀다. 아르헨티나 주재 중국대사관 문화공보관 장이는 심지어 파룬궁수련생을 향하여 돌진하며 이 수련생을 죽이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장쩌민이 후진타오를 위해 가마를 든 것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며 후는 그때마다 모두 흔쾌히 올라탔다. 금년 1월, 후진타오가 프랑스를 방문하는 동안, 그리고 6월 후진타오가 유럽 4개국을 방문할 당시, 모두 중국대사관과 영사관이 파룬궁 수련생의 신변을 공격하거나 현지 정부에 압력을 넣어 당국 법률을 위반하며 청원을 금지시킨 사건이 발생하였다.
중국대사관 관원들은 왜 파룬궁수련생들의 평화로운 청원에 이다지도 화를 내며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손에 무기 하나 없는 시민을 대하면서 후진타오에게 극력 ‘아첨’하는가?
파룬궁수련생들의 청원은 여태껏 모두 고문과 학살의 책임자인 장, 뤄, 저우, 류 일당을 법에 따라 처벌하기를 요구하였다. 심지어 후진타오가 금년 1월 프랑스를 방문하기 전 매스컴에서는 파룬궁수련생들이 후진타오의 프랑스방문을 환영하며 장쩌민을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보도한 바가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펼친 청원 현수막은 ‘法輪大法好(파룬따파 하오)’, ‘眞,善,忍(진,선,인)’, ‘장쩌민을 법에 따라 처벌하라’, ‘중국의 파룬궁수련생을 구원하라’ 등이었다. 후진타오를 위해 가마를 든 사람들은 모두 장쩌민일당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가마 위에 눈에 띄는 한 폭의 기를 꽂았는데 “국법을 짓밟고 국민과는 적이다―장쩌민일당전용”이란 몇 글자가 적혀있다.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후 겨우 이틀 만에 후진타오는 19일 칠레 수도 산티야고에서 거행된 2004년 아태경제협력기구 공식 수뇌회의에서 발언하기를 인류의 발전은 얻기 어려운 기회를 마주하면서 또한 준엄한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고 하였다. 후진타오 본인이 이틀 전에 아르헨티나에서 마주한 것이 마침 한차례 얻기 어려운 기회와 준엄한 도전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울러 그의 선택은 참으로 이상하였다.
5년이 넘도록 지속된 잔혹한 탄압은 국내외 파룬궁수련생들이 다함께 노력함으로써 끊임없이 사회를 향하여 진상이 폭로되고 있다. 국법을 짓밟고 민심을 배반하며 4분의 1의 국가예산을 낭비한 이번 탄압은 이미 계속되기 어렵다. 요즘 인터넷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의하면 중공의 새로운 지도부는 파룬궁의 ‘명예회복’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고 한다. 믿을 만한 베이징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현재 고위층이 ‘명예회복’에 관한 논쟁초점이 바로 ‘속죄양’을 추려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기에 장쩌민이 재차 가마를 들어주는 배경에 대하여 후진타오는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국민을 근본으로 하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집행하는’ 중공의 최고 지도자가 악명이 높고 역사에 의해 곧 도태될 망나니 정객 장쩌민의 가마를 사양하는 표시조차 없이 흔쾌히 들어앉는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그의 전도에 대하여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옛적에 우(禹)와 제(稷)는 덕으로 천하를 얻었고 예(羿)와 오(奡)는 힘으로 그의 종말을 보았다. 폭력통치로 오래가는 자가 없으며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이는 간단하고 소박한 역사의 법칙이다. 민심을 깡그리 잃은 장씨 폭력집단은 역사의 도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데 이 한 점은 역사적 시각이 조금만 있는 사람도 모두 알아볼 수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자오쯔전같은 작은 관리마저 모두 자신과 장씨 탄압집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있으며 심지어 하수인이 되었던 일부 지방경찰도 이미 암암리에 파룬궁박해에 참여했던 증거를 없애고 있다. 억 만인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후는 오히려 한번 또 한 번 거절하며 곧 멸망할 장씨 집단이 들어주는 가마에 한번 또 한 번 앉았는데 견식이 있는 인사들이 모두 후의 전도에 대하여 낙관적이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진정한 정치가는 권모술수를 쓰는 정객과 다르며 진정한 정치가는 역사에 대한 시각이 있다. 장은 우둔하여 역사의 법칙을 믿지 않았고 그를 추종했던 자들은 사리사욕 때문에 판단을 그르쳐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였거나 혹은 바로 보았다고 하여도 감히 정시하지 못하였다.
2000년 미국 콜롬비아방송(CBS)기자 월러스가 장을 방문할 때 장은 그가 독재자가 아니라고 변명하며 월러스에게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중공중앙위원을 선거하고 중공중앙위는 한개 정치국인바 자신은 정치국상위의 일원이라고 알려주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자신이 국민이 선거하여 무대에 오른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비록 헌법이 규정한 최고 권력기관이지만 그것은 중공중앙위원을 선거하지 않고 후자는 집정당 내부의 일이며 선거방법은 그 당규에 의해 규정된다. 이는 기본적인 국민상식인데 삼위일체인 최고집권자로서 장은 사실상 근본적으로 어떠한 법률의 기본지식이 없으며 자신이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단지 자신이 ‘황제’가 되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마침 장이 극도로 아둔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99년 4.25 파룬궁 수련생들이 청원한 후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치고, 권력 불안정에 대한 우려와 질투심 때문에 정치적 요구가 전혀 없이 몸과 마음을 닦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크게 손을 댔다. 역시 장의 아둔함과 질투로 99년 7.20에 먼저 탄압하고, 3개월 뒤 탄압을 위하여 입법하는 소란이 일어났으며, 공식적인 법체계를 초월하여 전문적으로 파룬궁에 대처하는 ‘610사무실’을 건립하여 공식 법체계가 완전히 평형을 잃게 만듦으로써 오늘날 국민들의 원한이 들끓는 악과를 얻게 되었으며, 이로써 파룬궁을 대처할 때 어떠한 수단을 취하여도 괜찮다는 비밀지령을 내려 수천 명이 잔혹하게 사망하고 수백만 명에 달하는 민중들이 고문을 받게 되었다. 결국에 장본인은 10여개 국가에서 기소를 당하였고 차후, 건전한 중국 법체계 하에서 엄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은 ‘행정수반 문책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문책제도’에 따라 후진타오 임기 중에 각 지역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로 사망한 사건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무고한 파룬궁수련생들이 잔혹한 혹형을 당하거나 거액의 벌금형을 당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들어나면 본인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 선양시 룽산 강제수용소에서 7시간동안 전기감전고문을 당한 파룬궁수련생 가오룽룽이 10월5일 선양 ‘의대(醫大)’에서 나온 후 선양시 사법국 등 관련부처는 공공연히 ‘조사협조 통보’를 내보내어 “가오룽룽의 신체가 매우 허약하고 체중이 40킬로 밖에 안되며 좌측 얼굴에 선명한 상처가 났고 혼자서 길을 걸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가오룽룽이 어찌하여 길을 걸을 수 없게 되었는가? 그녀 얼굴부위의 선명한 상처는 어찌된 일인가? 통보상의 사진은 그녀가 본래 건강하고 상처가 없었음을 나타내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국가의 행정처벌기관인 노동수용소에서 얼굴이 훼손되고 불구가 되었는데 선양시 사법국에는 어떠한 책임이 있는가? 사람의 얼굴을 훼손시키고 불구로 만든 범죄자들이 자신의 범죄증거를 공개하였는데 죄 없는 피해자(강제노동은 단지 행정처벌인데 가오룽룽은 형법을 위반하지 않았음을 표명함)를 체포하고 국법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는 사법부장관에겐 어떠한 책임이 있는가? 국가 최고지도자는 이런 유사한 토비행적이 임기기간에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또한 어떠한 책임이 있는가? 사실 인간성을 말살하는 폭행은 본래 중립이 없다. 침묵은 그럼 일종의 선택이 아니란 말인가?
파룬궁수련생은 어떠한 정치적 요구가 없지만 사회성원과 국민으로써 도덕과 양심을 단호히 지키고 사회정의와 법의 존엄성을 수호하는데 이것이 모두 인간으로써 필수적인 준칙이 아닌가? 중국의 법제는 결국 건전해질 것이고 장씨 집단의 수치스러운 종말 역시 당연한 것이다. 한개 집단 더 나아가 한개 정당은 결국 형세에 따라 흥하고 시간에 따라 쇠퇴하는데 역사적으로 영원한 권력과 통치가 전혀 없었다. 인간세상의 정의와 도덕, 양심만이 오랫동안 존재하는바 어느 것이 선후인지 아직도 선명하지 않는가? 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악을 따를 것인가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권력 이외에 아직 정의가 있음을 절대 잊지 말라. 일개 국가지도자로써 일거일동을 모두 억 만 쌍의 눈이 주시하고 있는데 누가 또 감히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사실 역사가 인간에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게 하는 기회는 언제나 얻기 힘든 것으로써 이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하고 시기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만약 기연을 놓치면 결국 기연을 포기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세밀하고 심중한 원칙이 악을 계속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문장완성:2004년 11월22일
문장발표:2004년 11월23일
문장갱신:2004년 11월23일 19:48:52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1/23/8986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