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대법을 얻었습니다. 대법을 얻은 후 선천성 알레르기, 편두통, 안질환 등 여러 질병이 모두 사라져 정말 병이 없고 온몸이 가뿐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제 사고방식과 가치관이었습니다. 대법을 얻기 전 저는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사람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공산당 문화 환경에서 자라 정말 눈에 티끌 하나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점차 인내와 관용을 배웠고 타인을 더 많이 배려하게 됐습니다.
생활과 직장에서 사부님의 법에 따라 행동하려 노력하면서, 선(善)의 힘을 점점 더 깊이 체험하게 됐습니다. 겉보기에 해결 불가능해 보이던 많은 갈등들이 선의 힘으로 풀렸고, 세인들도 대법제자의 특별함을 느끼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절대로 내 언행으로 인해 세인들의 법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이는 매우 엄숙한 문제다.’ 마음속으로 엄격한 규칙을 세웠습니다. ‘절대 내 언행으로 세인들의 제도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극히 큰 범죄다.’
부족함을 발견했을 땐 즉시 바로잡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많지만, 여기서는 사악한 감옥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겪은 몇 가지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거칠고 성질 급한 ‘대장 언니’의 격려, “감옥에서 나가도 절대 수련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마!”
한번은 제가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감금되었을 때, 감방에는 5~6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제자들이 창작한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회에서 노는 두 사람이 들어왔는데, 고모와 조카 관계였으며, 고모인 아닝(阿寧)은 ‘대장 언니’로 불렸습니다.
아닝은 성격이 거칠고 폭력적이었으며, 태도 또한 매우 무례하고 고압적이었습니다.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감방의 세 사람을 폭행했는데, 그들은 외지에서 온 체구가 작은 여성들이었습니다. 맞은 세 사람은 감히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울고만 있었습니다. 전 과정을 지켜본 저는 ‘이렇게까지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정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무위(無爲)해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감방 사람들 모두에게 경찰에게 알리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감방 사람들이 저를 상당히 신뢰하고 제 말을 대체로 따르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건지 아니면 저를 복종시키려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저를 따로 화장실로 불렀습니다. 화장실은 감시 카메라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경찰이 저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신앙이 있습니다. 폭력으로 저를 굴복시킬 수 없어요.” 그녀는 갑자기 제 뺨을 한 대 때렸습니다. 그 순간 저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시드니법회 설법)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매우 침착하게 물었습니다. “또 치시겠어요?” 그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때려봐야 소용없어요. 저에게는 제 원칙이 있습니다. 더 때리지 않으신다면 이만 나가겠습니다.” 제가 나왔을 때, 모두가 걱정스럽게 저를 쳐다보고 있었고, 저는 미소 지으며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감방 사람들 모두가 울었고, 아닝과 함께 온 조카는 저에게 편지까지 써주었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고모가 잘못했어요. 당신 같은 좋은 사람을 때리다니,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저도 고모가 무서워요.”
그날 이후로, 모두가 묵시적으로 아닝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닝은 이런 상황이 될 줄 예상치 못했고 완전히 기가 꺾여버렸습니다.
수련하기 전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21살 때 공장에서 일할 때, 한 남자 동료가 저를 화나게 해서 그 자리에서 뺨을 한 대 때렸는데, 때리고 나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맞고도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과 상서로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이토록 특별한 대법을 가르쳐 주시고, 갈등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전법륜)이라고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그녀와 어떤 격한 충돌을 일으켰을지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 무술을 배웠고 성격도 강인해서 겉보기에도 쉽게 얕잡아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녀가 저를 때린 것은 사실 제 마음가짐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그녀에게 맞서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경찰이 저를 불러 대화할 때도 저는 맞은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많은 수련생들이 박해를 받아 구치소에 감금되었을 때, 대부분의 경찰은 이미 진상을 들어봤고, 대법제자들이 선량한 사람인데 부당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법제자들이 감방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번호를 보고하지 않는 등의 행동에 대해서도, 그들은 다른 수감자들에게 “대법제자들과 비교하지 마라. 그들은 개인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날의 일을 말했다면, 아닝은 분명히 처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닝의 본성이 정말 악하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고난도 잘 견디고, 이혼도 했으며, 구치소에 처음 와서 적응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갈등들도 다 풀릴 수 있고, 굳이 서로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아닝이 다시 경찰과 충돌하여 고함치다가 뺨을 맞고 수갑과 발목 수갑까지 채워졌습니다. 감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나서 “이번엔 내가 맞았으니 기쁘니?”고 말했고, 그 경찰이 같은 지역 출신이라 서로 집을 안다며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화를 시도해 그녀의 상황을 분석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구치소의 모든 사람과 맞서며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 말씀도 전했습니다. “사실 慈悲(츠뻬이)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慈悲(츠뻬이)할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그리고 그녀가 추앙하는 무력은 가장 취약하고 힘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진심으로 그녀를 위한다는 것을 느끼고 제 말의 이치에 공감했습니다. “정말 그래, 선(善)이 가장 큰 힘이야”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점차 변하여 모두와 화목하게 지내고, 공산주의 청년단도 탈퇴했으며, 남자친구의 단원증도 탈퇴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직접 만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출소하면 제 아들을 대신 찾아가 기쁘게 해주겠다고 했고, 무언가를 고수하면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며 저를 이해해주었습니다. 제가 감옥으로 이송될 때 그녀는 식사를 주문해주며 “감옥에서 나가도 절대 수련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마!”라고 당부했습니다.
구치소를 떠나던 날, 감방 사람들은 모두 아쉬워했고 어떤 이들은 흐느껴 울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팀장’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감옥으로 끌려가 계속 박해받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얼마 안 돼 생산 작업장으로 배정됐고 생활팀은 6팀이었습니다. 이 팀 사람들은 모두 대단했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거나 양보하려는 사람이 없어 방에서는 자주 다툼이 있었지만, 일 처리는 꽤 공정했습니다. 그들은 가끔 옆 팀인 생활 4팀을 이야기했는데, 그들이 팀 내 노약자, 환자, 장애인들을 자주 괴롭히고 식사도 배불리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4팀 팀장이 공개적으로 정신병 환자를 때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반년이 넘은 후, 갑자기 감옥 전체가 큰 조정을 했고, 저는 생활 4팀으로 배치됐습니다. 그 팀에는 정신병 환자 한 명과 노인 두 명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60대가 넘었고, 이미 너무 괴롭힘을 당해 정신 상태도 불안정했으며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거의 70세로, 이 세 사람은 팀에서 말도 할 수 없었고, 세면 같은 일은 항상 마지막에 해야 했습니다. 더 심한 것은 식사 시간에 팀장과 그 측근들이 먼저 좋은 밥과 반찬을 남겨두고, 나머지 세 사람에게는 조금씩만 밥과 국을 줘서 절대 배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 못했고, 팀장과 그 일행이 모두 연줄이 있어 감히 반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억지로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저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 이익이 관련되지 않았다고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대법의 순수한 선한 에너지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제 자신부터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매 식사 때마다 제 밥의 일부를 정신병 환자에게 나눠주어 그녀가 배부르게 먹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가족의 돌봄도 없고 계좌에도 돈이 없어, 평소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감옥의 비싼 식품을 살 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노인에게는 빨래를 도와주고, 손톱을 깎아주고, 건강을 살피며, 생활면에서 더 많이 돌봐주었습니다. 팀에서 하는 일도 저는 앞장서서 했습니다. 이 팀 사람들과 지내면서 저는 그들이 감옥에 들어왔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선한 면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공산당이 전통문화를 파괴한 환경에서 길을 잃고 올바른 삶의 목표가 없을 뿐, 그들도 모두 신뢰받고 이해받고 선하게 대우받길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선으로 모든 사람을 대했기에, 많은 사람이 저와 교류하고 가까워지길 원했습니다. 팀장도 점차 저와의 관계가 좋아졌고 저는 그녀에게 사악한 당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설득했습니다. 감옥에서 각 팀의 팀장은 파룬궁(法輪功)을 감시하고 신고하도록 특별히 배치됐지만, 근무자가 저를 신고할 때 팀장은 저에게 자신을 보호하라고 알려주었고 감옥경찰에게 가서도 저를 위해 변호해 주었습니다. 4팀의 전체적인 환경과 분위기는 점점 좋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식사 시간이 되면, 팀장이 앞장서서 먼저 그 세 사람이 충분히 먹을 때까지 음식을 주고 그들이 더 원치 않는다고 할 때까지 기다린 뒤 다른 사람들이 먹게 했습니다. 목욕할 때는 두 노인이 먼저 씻었고 팀의 노인 혈압이 높아지면 팀장은 서둘러 감옥 의사를 찾았습니다.
이후 70세 가까운 노인이 저와 대화할 때 말했습니다. “팀장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당신은 그녀가 예전에 어땠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녀는 매우 감회가 깊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약물 치료를 받던 다른 노인도 나중에 정신 상태가 점차 좋아져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팀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마음을 다해 외우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을 때, 당시 팀에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장에서 이 노인은 저를 한쪽으로 불러 조용히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물었고, 제가 가르쳐주자 매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원래 그녀는 감형 기회가 없었지만 나중에 갑자기 새 정책이 생겼고, 그 정책은 그녀만 제외하고는 모두 판결 조건에 맞지 않았으며, 결국 그녀는 1년 일찍 감옥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전 6팀에 있던 한 노인은 구치소에서 파룬궁을 연마한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 그 일을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좋아요. 전에 4팀이 어땠는지 보셨죠? 파룬궁수련생이 간 후 어떻게 변했는지도 보셨죠? 파룬궁은 정말 좋아요.” 경찰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4팀의 변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전향’시키려는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며 어렵고 위험한 1년을 지나오다
감옥에서 저는 1년간 강제 전향 시도를 당했습니다. 그 과정은 매우 길고, 힘들며, 험난했습니다. 처음 ‘전향반’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었고 앉아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언변이 강하다고 자부해 그들과 정면으로 맞섰고, 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감옥에서는 ‘전향’ 작업을 위해 많은 사람을 배치했는데, 여러 팀으로 나누어 각 팀은 일반 죄수 한 명과 사상이 어긋난 수련생 한 명으로 구성됐습니다. 여러 무리가 저를 대상으로 번갈아 배치되었고 3개월마다 교체됐습니다. 매번 새 무리가 올 때마다, 저와 ‘전향’ 작업을 하는 두 사람은 수면 시간 외에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매일 제 공격에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였고, 그중 한 명은 마약 밀매로 들어온 사람으로 화가 나서 저를 때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대항했습니다. “날 때려봐요. 때려서 전향시켜 보세요. 내가 죄를 인정하게 때릴 수 있는지 봅시다. 감히 저를 때린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요. 감옥에서 나가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 가족들에게 감옥에서 한 일을 다 알리겠어요. 좋은 사람을 때리고 선량한 사람을 박해한 것을요. 당신 지역에 가서 고발하고 제 가족들에게 감옥 관리국에서 당신을 주시하게 하겠어요. 누가 감히 당신을 감형해 주는지 보겠어요.” 그녀는 매우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혐오스러워요. 당신 입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저는 당시 제 정념이 꽤 강하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감히 저를 때리지 못한다는 것에 약간 우쭐했습니다.
이후 다른 조가 바뀌어 저에게 ‘전향’을 시도했고, 저는 여전히 그들과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과 논쟁 중 숨이 막히고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즉시 제 안을 찾아보았고, 쟁투심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볼 때 드러나는 혐오의 눈빛을 보며 문득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선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설령 그들이 사악한 것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해도, 나는 대법제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지 않는가?’ 그 순간부터 즉시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이성을 잃고 사악함을 드러내며 사악에 조종당한 말을 할 때는 더 이상 언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이 감정이 차분하고 정상적인 이성을 보일 때는, 차분히 대화하며 그들의 주제를 따라가면서 법에서 깨달은 이치로 분석하고 안내했습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자신들의 사고 속 오류를 깨닫고 대법의 이치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점점 우리는 더 잘 어울리게 됐습니다. 저는 생활에서 그들을 챙기고, 가정 문제로 걱정할 때 위로해 주었으며, 때로는 함께 울기도 했습니다. 가족 면회가 오면 그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졌을 때, 저는 사오(邪悟)한 수련생들이 모두 잔혹한 박해를 경험했으며, 그들의 순수함과 선량함이 사악에 이용되고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반 재소자들 대부분은 대법 진상을 들은 적이 있었고, 공산당이 제공하는 소위 ‘학습 교재’를 전혀 믿지 않았으며, 전향 업무를 맡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악한 경찰들이 그렇게 배정하면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꼭 잘 지켜야 한다, 당장 손해 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나중에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책을 읽어주거나 사악한 영상을 보여줄 때, 그 둘은 한 패였지만, 한가할 땐 죄수가 저와 관계가 좋아 오히려 사오한 사람을 더 싫어했습니다. 제가 항상 대법으로 자신을 요구했지만, 사오한 사람은 대법의 지도를 잃어 속인 중에서 다투고 싸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했을 것입니다. 또한 곧 출소하게 된 한 죄수는 저에게 가족 연락처를 요청해 제 상황을 가족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녀는 파룬궁을 박해했던 공안국 경찰인 친척에게 가서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범죄이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의 1년이 되었을 때 사악은 제가 여전히 ‘전향’하지 않자, 저를 ‘강제 전향 특별조’에 가두었습니다. 전향 수감 구역은 감옥 내의 감옥이었고 ‘강제 전향 특별조’는 전향 수감 구역 내의 또 다른 감옥이었습니다.
강제 전향 특별조에서는 ‘전향’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매번 한 팀씩 저를 대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교대로 배치되었고 특히 사람을 괴롭히고 때리는 데 가장 악랄한 죄수인 제쯔(傑子)를 특별히 지명했습니다. 제가 강제 전향 특별조에 갇히기 전에, 한 수련생이 제쯔의 사악한 기세를 견디지 못해 ‘전향’되었습니다. 제가 막 강제 전향 특별조에 들어갔을 때, 제쯔는 바로 제 의자를 빼앗고 명령했습니다. “서 있어! 만약 ‘전향’하지 않으면 출소할 때까지 서 있어!” 저는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왜 서 있어야 하죠?” 그들이 일어났을 때 저는 의자를 되찾아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든 의자를 밖으로 가져갔고 그들도 저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첫날 저는 아침 5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3시 30분까지 서 있었고, 그들은 3교대로 저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저는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빠졌으며, 일어날 때 거의 넘어질 뻔했습니다. 당시 저는 생각했습니다. ‘계속 서 있을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즉시 대답했습니다. ‘상관없어, 지금 매분 매초를 잘 견디면 돼.’ 둘째 날 아침 5시부터 자정까지 서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는 저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사오한 사람들은 모두 잔혹한 박해를 경험했기 때문에 신체 상태가 좋지 않았고, 어떤 이는 다리를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아파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앉으세요, 저 혼자서 서 있을게요. 더 이상 여러분과 의자를 빼앗지 않을게요.” 하지만 제쯔는 저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함께 서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게 ‘세뇌’를 하던 중 제쯔가 중공이 대법제자들의 장기를 강제로 적출하지 않았다는 것과 파룬궁이 X교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지만, 저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난 듯했고 저를 한 번 때렸습니다. 저는 즉시 감옥경찰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만약 제쯔를 처벌하지 않으면, 저는 당시 근무 중이던 경찰을 고소하겠으며, 그들이 지시한 것이라고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제쯔와 한 명은 저를 화장실로 끌고 갔습니다. 제쯔는 저를 바닥에 눌러 놓고 물었습니다. “내가 널 못 때릴 것 같아?” 저는 당시 매우 평온했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저를 때리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저를 보더니 저를 놓아주었습니다.
감방 담당 경찰은 제가 나중에 그녀를 악인 명단에 올릴까 봐 두려워 사태를 진정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 셋 모두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그들 둘에게 점수를 깎았습니다. 그날 밤 그 둘은 모두 매우 실망했습니다. 감점은 형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출소 기간이 연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오한 사람은 가족 사진첩을 보다가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저는 보고 다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은 모두 위로는 어르신, 아래로는 어린이가 있었고 평소 우리 관계가 좋아 맛있는 것이 있으면 저에게도 나눠주었습니다. 제쯔도 직접 공산당의 책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제가 생각하기에 그녀가 저를 때린 것도 사악에 의해 조종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방 경찰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그들의 점수를 깎지 마세요. 저도 더 이상 이 일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 후 약 1주일이 지나서 저는 ‘강제 전향 특별조’에서 나왔고 며칠 후에는 ‘전향반’에서도 나와 생산 작업장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선(善)의 힘을 체득하다
감옥이란 사악한 환경 속에서 대법제자들은 가장 심한 박해를 받는 집단입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면서, 대법 수련을 통해 얻은 순수한 선(善)으로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대했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심한 박해를 당했고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으며, 억울함을 느낀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제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명심했으며, 저의 사소한 방심으로 인해 어떤 사람도 대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종종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참을 수 있어요?”
한 팀장이 팀원들에게 매우 불친절했는데 저는 항상 선으로 팀의 모든 사람을 대했습니다. 나중에 그 팀장은 자주 저를 붙잡고 속삭이듯 이야기하며 저를 심복처럼 대했습니다. 그녀는 “당신들 대법제자들과 대화하면 입이 피곤하지 않아”라고 말했고, 때로는 모두가 누워 쉬고 있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저를 붙잡고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전환 감방에서 약 1년 가까이 있었을 때, 한 부감방장은 저를 볼 때마다 항상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면회를 갈 때마다 그녀를 만나면, 그녀는 항상 먼저 인사했습니다. “오셨어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았지만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대법 수련을 통해 얻은 선(善)이 그들을 감화시키고 주변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은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신의 사명을 잊지 말고 항상 선의로 대하며, 중생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남겨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제가 억울하게 갇혔던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복을 받았구나, 얼굴에 선한 기운이 있어.” 저 자신도 발견했는데, 전에는 얼굴색이 붉었는데 이제는 피부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예전의 조급함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과거의 이러한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매우 감회가 깊습니다.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런 종류의 일을 처리할 때 틀림없이 악으로 악을 대했을 것이고, 갈등은 오히려 격화되었을 것이며,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대법에서 배운 자비와 선의, 사랑으로 중생들을 선으로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악으로 악을 대하는 것 외에도 선(善)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래 호전적이고 거칠고 폭력적이던 사람들이 더 이상 함부로 화를 내거나 말로 상처를 주거나, 폭력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졌으며, 일을 만났을 때도 선(善)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대법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법의 순수함과 자비로움이 그들의 오염된 사상과 행동을 씻어냈습니다. 저 자신도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로움을 느끼며, 이번 생에 인연이 있어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고 인생의 의미와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19/4924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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