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장시성 통신원) 장시성 주장시 파룬궁수련자 톈하이잉(田海英·여)는 2024년 8월 20일 경찰에게 납치당했고, 같은 해 12월 25일 융슈현 법원의 불법 재판을 받았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톈하이잉은 1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그녀는 이미 항소했다.
톈하이잉은 올해 58세로, 주장시 주장현 사허진 출신이며 현재 주장시 차이상구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과거 중학교에서 대리교사로 일했다. 20여 년 동안 톈하이잉은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고수하다가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여러 차례 납치되고 구금됐으며, 세 차례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고, 두 차례(이번 포함) 불법 판결을 받아 총 10년 이상의 억울한 형을 살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악당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이래, 톈하이잉은 총 네 차례의 불법 강제노동과 한 차례의 판결을 받았으며, 총 10년 동안 불법 구금됐다. 장시 여자 감옥에서 그녀는 고문과 학대, 수갑으로 매달림, 수면 박탈, 구타와 욕설, 강제 세뇌 등을 당하며 여러 차례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장기간의 박해로 그녀의 정신과 육체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녀의 남편은 여러 차례의 박해를 견디지 못해 20년 전에 그녀와 이혼하고 집을 팔아버렸으며, 딸의 앞날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 딸이 그녀와 왕래하는 것을 막았다.
다음은 톈하이잉이 중공의 박해를 받은 경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2000년 10월, 톈하이잉과 어머니 구이수이인(桂水銀)은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경찰에게 납치됐다. 이후 지역으로 압송되어 주장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되어 박해받았다. 톈하이잉은 3개월 동안 구금된 후 주장현 세뇌반으로 끌려가 계속 구금됐다. 이후 톈하이잉은 주장현 공안국 1과 경찰에게 3,000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풀려났다.
2001년 5월, 톈하이잉은 세뇌반에 불법 구금된 수련자들에게 대법 사부님의 새 경문을 전달하다가 당시 주장현 공안국 경찰인 리젠화(李建華), 라오훙옌(饒洪炎), 팡서우웨이(方守衛) 등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주장시 마자랑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2004년 7월 9일 저녁, 주장현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장 겸 ‘610’ 부주임인 장훙즈(張鴻志), 라오훙옌 등 일당이 톈하이잉의 집에 침입해 불법 가택수색을 하고, 톈하이잉과 어머니 구이수이인을 주장현 공안국으로 납치했다. 공안국 부국장 루룽(陸龍)이 톈하이잉의 가슴을 발로 차고 구두를 벗어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톈하이잉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다. 이후 톈하이잉과 어머니 구이수이인은 주장현 구치소로 끌려가 구금됐다. 어머니 구이수이인은 생명이 위태로울 때야 집으로 풀려났다. 톈하이잉은 주장시 마자랑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3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노동수용소에서 그녀는 구타, 수면 박탈, 각종 체벌, 야만적인 강제 음식 주입 및 노예 노동 등의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전향’을 거부하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구금 기간이 연장되어 2007년 8월 20일에야 억울한 구금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9년 11월 20일, 톈하이잉은 주장현 공안국 국보 대대장 웨이창(韋强)과 주장시 공안국 쉰양분국 국보 대대 경찰에게 납치됐다. 주장시 구치소에서 톈하이잉은 강제 노역을 당했고, 그녀는 단식 항의를 했다가 오랫동안 ‘시체 침대’(고문 도구)에 묶인 채 강제 음식 주입을 당했으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러서야 석방됐다.
2009년 12월 29일, 톈하이잉은 주장시 공안국 쉰양분국 국보 대대 경찰에 의해 장시성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매일 장시간 노역을 강요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벌로 서있어야 했다(각종 모욕적인 자세 포함). 톈하이잉이 박해에 항의하자 감옥 경찰은 그녀를 금지실에 수갑으로 매달았다. 잔혹한 박해로 톈하이잉의 혈압이 180mmHg까지 올랐고, 감옥 경찰은 그녀를 4제곱미터도 안 되는 방에 가두고 하루에 한 끼만 주었다. 먹고 마시고 배변을 모두 그 안에서 해야 했으며, 7일 후 변기가 가득 차야 경비원들이 비우도록 허락했다. 2010년 8월 27일, 톈하이잉은 고혈압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가 되자 노동수용소는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8년 1월 3일 저녁, 톈하이잉은 주장현 융취안향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주장현 공안국 융취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주장시 루이창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10년, 톈하이잉은 산에서 공개적으로 연공하다가 주장현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루이창 구치소에 구금됐다. 한 달 후 다시 장시성 여자 노동수용소로 끌려갔으며, 경찰은 그녀에게 다시 1년 6개월의 불법 강제노동을 시키려 했으나, 그녀의 혈압이 너무 높아 노동수용소가 수용을 거부하여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12년 4월 7일, 톈하이잉은 진상을 알리다가 탄융(譚勇) 등 5명의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주장현 공안국 국보 대대장 왕이진(王義金)에 의해 루이창 구치소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으며, 4월 말에야 풀려났다.
2012년 7월 30일 오후, 톈하이잉은 루이창 구치소 근처 길가에서 두 명의 무장경찰에게 ‘삼퇴’(중국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로 평안을 지키라고 권하다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루이창시 공안국 구이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루이창시 공안국 국보 대대로 끌려간 후, 루이창 구치소로 끌려가 구금됐다.
2014년 6월 10일, 톈하이잉은 주장현 병원 앞에서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주장현 공안국 사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주장현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14년 8월 말, 주장현 법원은 톈하이잉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어 3년 6개월 형을 선고했으며, 전 과정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014년 11월 초, 톈하이잉은 장시 여자 감옥 3감구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기간 동안 그녀는 강제 세뇌, 수면 박탈, 벌로 서있기, 속박대로 묶임, 장시간 수갑으로 매달리는 등의 고문을 당했다. 어느 시기에는 감옥장 완쉐훙(萬雪紅)의 지시 하에 감옥 경찰 과장 후루이화(胡瑞華)가 사람들을 이끌고 연쇄 수갑으로 톈하이잉의 손과 발을 함께 수갑을 채워 낮에는 창고에 매달고 밤에는 침대 머리에 매달았다. 이런 상태가 총 10일간 지속되어 그녀의 유방에 낭종이 생겼다.
2018년 6월 14일, 톈하이잉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고용한 변호사와 함께 주장시 공안국 쉰양분국 국보 대대에 가서 납치된 파룬궁수련자 왕수이훙(王歲紅)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결국 톈하이잉, 변호사 등이 국보 대대장 리쥔(黎軍) 등 경찰에게 납치돼 구금됐다.
2021년 7월 29일, 톈하이잉은 일하던 직장에서 주장시 개발구 바리후 신구 주룽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2022년 11월 15일, 톈하이잉은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러 가던 중 주장시 공안국 차이상분국 사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2023년 3월 15일 저녁, 톈하이잉은 주장시 공안국 쉰양분국, 창훙 파출소 사복경찰에게 납치돼 주장시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24년 8월 20일, 톈하이잉은 다시 주장시 공안국 차이상분국, 사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가 심각한 고혈압 증상(혈압 220mmHg까지 상승)을 보여 구치소가 수용을 거부했다. 다음 날, 경찰은 그녀를 주장시 제1병원 바리후 원구 공안 감시병실로 끌고 가 15일간 불법 행정 구류했다. 이후 경찰은 그녀를 주장시 구치소로 끌고 가 불법 형사 구류했다. 톈하이잉은 주장시 차이상구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됐다. 2024년 12월 25일, 융슈현 법원은 주장시 구치소에서 톈하이잉에 대한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현재 그녀는 1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그녀는 이미 항소를 제기했다.
톈하이잉은 원래 완전한 가정이 있었다. 전남편 구이쉰루(桂訓爐)는 차이상구 1중학교의 고급 교사였으며, 딸은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1999년 이후, 그녀가 여러 차례 중공의 박해를 받으면서 전 남편은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006년 그녀가 불법 강제노동을 받는 동안 주장현 법원을 통해 강제로 톈하이잉과 이혼했다. 또한 딸이 그녀와 연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재산도 분할하지 않았다. 구이쉰루는 부부 공동 재산인 주택을 불법적으로 팔아 돈을 혼자 차지했다. 이로 인해 당시 출소한 톈하이잉은 무일푼에 홀로 집 없이 지내며 친정으로 돌아가 살면서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톈하이잉은 박해를 받은 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항상 전력을 다해 도왔고, 특히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마음이 착하고 성격이 명랑했으며, 직장에서 상사들은 그녀를 높이 평가했고 동료들도 그녀와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그녀가 이기적이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녀는 다시 감옥에 갇혀 있으니, 각계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구출해 주기를 바란다.
톈하이잉 박해에 참여한 관련자:
융슈현 법원:
차이멍이(蔡夢旖)
융슈현 검찰원:
수진밍(蘇金銘)
차이상구 공안국:
국장 펑타오(馮韜)
정위 예즈춘(葉志純)
국보 대대장 단젠펑(單劍峰) 13607920555
사허 파출소:
소장 후리원(胡力文) 13879200625
교도원 장광푸(張光普) 13755205403
부소장 왕셴쥔(王賢俊) 13970255920(직접 박해에 참여)
원문발표: 2025년 3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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