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지역의 많은 대법제자들이 끊임없이 베이징으로 청원[上訪]하러 갔고, 그들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1. 구치소장이 변하다
당시 구치소에는 군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소장이 있었는데, 혈기왕성했던 그는 ‘큰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범죄자들에게 매우 가혹하게 대했으며, 서슴없이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이 구치소에 수감된 후, 그는 대법제자들의 언행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대법제자들의 선(善)한 영향으로 그는 점차 변하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잔혹하게 사람들을 때리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구금된 사람들을 최대한 선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구치소에 있을 때, 그는 가끔 저를 불러내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면서 얻은 체험과, 파룬궁이 어떻게 사람에게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며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지에 대한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듣고 매우 감동했으며 파룬궁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히 처음에 들어온 그분들(7·20 전날 납치된 각 지역의 보도원들)은 정말 훌륭했어요. 경지가 정말 높더군요! 저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접한 후 저도 변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수들을 가혹하게 때리지 않고, 최대한 설득과 교육을 통해 다가가려고 합니다.” 그는 저와 인생과 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토론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선량함을 지키고 대법제자들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정말로 대법제자들을 선하게 대했으며, 자신의 권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도우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법제자가 단식에 들어가면 그는 상부에 보고서를 올려 “빨리 석방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니 저는 책임지지 않겠습니다”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구치소에서 단식 중이던 수련생은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이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쓰고 싶어 하면 그는 종이와 펜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이 그곳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때, 그는 눈을 감고 모른 척했습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우연히 그를 만났을 때 식사에 초대했는데 그는 기꺼이 응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함께했고 식사 중에 그에게 삼퇴(三退, 공산당·공청단·소선대 탈퇴)를 권하자 그는 동의했습니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일부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갇혔을 때 우리는 자주 그를 찾아가 상황을 알아보았고, 그의 직권 범위 내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그는 항상 도와주었습니다.
2. 두 명의 경찰
박해가 시작된 이후, 저는 두 명의 경찰과 접촉했습니다. 첫 번째 경찰은 몇 년 후 퇴직 예정이었습니다. 그는 비교적 선량해보였지만, 평생을 그런 환경에서 일했기 때문에 속마음을 깊이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가 우리집에 올 때마다 저는 항상 파룬궁에 관한 진상을 이야기했고, 그는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제 말을 모두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저를 어렵게 하지 않았고 단지 형식적으로만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길에서 마주칠 때면 저는 항상 따뜻하게 먼저 인사하고 짧게 대화하곤 했으며, 그도 웃는 얼굴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사거리에서 자전거에 공기를 넣고 있었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저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며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에 그에게 가명을 지어주며 공산당·공청단·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제가 지어준 가명을 즐겁게 되뇌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의 생명의 깨달은 면이 기뻐하며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한번은 제가 자료를 배포하다가 잠복 중이던 사람에게 발각됐습니다. 저는 재빨리 도망쳤지만, 자전거 손잡이에 걸려 있던 가방에 제 정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두 달 동안 외부에서 몸을 숨겼습니다. 놀랍게도 그 두 달 동안 경찰은 단 한 번도 우리집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 경찰이 이 일을 덮어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진상을 깨달은 후 행한 선행이었습니다.
이 경찰이 은퇴한 후,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비교적 젊은 여경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저는 그녀가 생각이 단순하고 성격이 솔직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진상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매우 동정적이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그렇게 바보처럼 살지 마세요.”
어느 날, 상부에서 무슨 명령이 내려왔는지 그녀는 우리집에 와서 외지에서 일하는 제 아들의 전화번호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진상을 전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번호를 줄 수 없어요. 만약 드린다면 그건 당신을 해치는 일이에요. 그것은 당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러자 그녀는 매우 당황해하며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하죠? 돌아가서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요?”
그녀가 울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중공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동시에, 이 경찰들도 함께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대법제자는 결코 그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된다. 자비롭게 대하며 구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저는 그녀를 위로하며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막 이 일을 맡아서 아직 경험이 부족한 거예요. 상부에서 시키니까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렇게 어리석게 하진 마세요. 중공은 이용할 때는 이용하다가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조직입니다. 문화대혁명 때도 앞장섰던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됐나요? 그 후 그들 중 700~800명이 한꺼번에 윈난(雲南)으로 끌려가 총살당했어요. 너무 순진하게 행동하지 마세요. 이전의 그 남자 경찰분은 그냥 형식적으로만 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죠? 게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알잖아요? 누가 중공을 위해, 선한 사람을 박해하는 악행에 끝까지 충성하겠어요? 보고해야 할 것을 걱정한다면, 간단한 해결책이 있어요. ‘집에 아무도 없었다’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보고는 끝난 거예요. 만약 상부에서 또 가라고 한다면 그때는 제가 번호를 하나 만들어 드리죠.”
그녀는 망설이며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었고, 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죠. 왜냐하면 당신은 선한 사람을 보호하는 거니까요. 그건 좋은 일이고, 하늘이 복을 내려줄 거예요.” 그녀는 제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초조해하지 않고 안심한 듯 돌아갔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다시는 제 아들의 전화번호를 요구하지 않았고 이 일은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제가 납치됐다가 풀려난 후 그녀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그동안 그렇게 많은 진상을 이야기해줬는데, 어떻게 아직도 사람들을 데리고 우리집을 수색하러 왔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진심 어린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저는 파출소 경찰인데 안 갈 수가 있나요?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사진만 봤을 뿐이에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당신 일 때문에 저는 상부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어요.”
저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그들에게는 당신이 일을 잘했다고 보일 거예요. 만약 제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들은 오히려 당신이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저를 보호한 것은 곧 당신 자신을 보호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녀는 제 말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몇 명의 경찰과 함께 우리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 없었고, 제 남편이 매우 화가 나서 격양된 감정으로 그들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경찰들은 곧 떠났습니다. 집을 나설 때, 그녀는 맨 마지막에 문을 나서며 남편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두 번 힘을 주었습니다. 그 의미는 무언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괜찮아요’라고 저에게 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과일을 사 들고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꼭 받아달라고 했지만, 저는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특별한 악의 없이 진심으로 건네는 것이 느껴져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날, 저는 감사의 뜻으로 그녀의 휴대폰에 100위안을 충전해 주었습니다.
2024년 초, 어느 날 단지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저는 다시 한참 동안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리커창(李克强)도 어이없이 죽었어요. 그는 국가 총리였어요! 그런데 당신은 한낱 작은 경찰에 불과하잖아요. 그러니 상황을 잘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야 해요. 제가 해준 말들 꼭 기억하세요. 중공의 희생양이 되지 마세요!”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안색이 예전보다 안 좋아 보여 물었습니다. “혹시 중공에 가입했어요?”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네, 가입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저는 즉시 말했습니다. “제가 가명을 하나 지어드릴게요. 이 이름으로 마음속으로라도 탈퇴하세요.”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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